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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양론은 서양 학문에 어떤 역할을 하였나?
교무부 이호열
음양은 동양 고대부터 유가(儒家) 경전인 『주역』의 주요 원리를 이루며 우주와 인간 세계를 이해하고 설명하는 중요 개념으로 받아들여졌다. 대순진리회 종지(宗旨)의 첫머리에도 음양합덕(陰陽合德)이 나타나며, ‘상생’이라는 실천윤리도 음양오행 상생ㆍ상극론과 관련된 전통적 사유의 기반 위에서 발전한 개념이다. 그리고 『전경』의 「음양경(陰陽經)」(교운 2장 42절)에 대순사상의 음양론적 관점이 상세히 설명되어 있을 정도로 음양론은 철학적으로 대순사상의 중요 기반을 이룬다.
하지만 청나라의 개화사상가였던 량치차오(梁啓超, 1873~1929)는 “음양오행설은 이천 년 동안 온갖 미신을 낳은 본거지”01라며 냉혹한 비판을 서슴지 않았고, 오늘날 젊은 세대 가운데 상당수는 음양론을 다소 옛날 사람들이 세계를 설명하던 방식으로 바라볼 뿐 ‘과학적 설명 체계’로 받아들이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음양론에 종종 부여되는 ‘비과학적’이거나 ‘고루한 전통’이라는 선입견을 벗겨내는 탐구가 필요할 것 같다. 이 글에서는 음양론이 『주역』의 전파와 함께 서양 학문에 미친 영향 중 융(Carl Jung, 1875~1961)의 심리학과 특히 음양론이 컴퓨터 언어와 양자역학에 미친 공헌에 주목하여 음양론의 가치를 되새겨 보려 한다.
『주역』의 연구와 서양 전파
『주역』은 동양 사상의 정수라 할 수 있는 도(道)를 음양으로 드러낸 점서(占書)이자 철학서이다. 유럽인의 『주역』 연구는 예수회 선교사들의 중국 선교와 그들의 편지에서 비롯하였는데, 그 내용은 17ㆍ18세기 유럽으로의 중국 사상 전파와 함께 주목받기 시작했다. 17세기에 『주역』을 서양에 소개하는 데 역할을 한 사람은 예수회 선교사 마르티니(Martino Martini, 1614~1661)였다. 그는 『중국 상고사』에서 『주역』을 알렸는데, 음양에 대한 정의와 함께 팔괘의 변천 과정과 복희육십사괘도(伏羲六十四卦圖)를 설명하였다. 그리고 『주역』의 64괘를 수학이나 과학과 관련된 어떤 것으로 소개하여 이 관점은 이후 서양인들이 『주역』을 받아들이는 데 일정 부분 영향을 주었다.02
『주역』을 소개하는 차원을 넘어 그것을 깊이 연구한 사람이 있었으니, 그는 예수회 선교사인 프랑스 신부 부베(Joachim Bouvet, 1656~1730)였다. 당시 청나라의 강희제(康熙帝, 1654~1722)는 서양 수학에 관한 관심이 지대하여 부베에게 기하학을 강의받기도 하였다. 이러한 인연 속에서 강희제는 부베가 서양 수학의 지식을 활용하여 『주역』에 숨어 있는 깊은 원리를 발견하기를 희망했다.03 이런 까닭에 부베 신부는 강희제의 직접적인 독려를 받으며 5년 동안 『주역』을 연구할 수 있었고, 이는 청나라 전기 동서양 문화교류의 중요한 사건으로 평가받는다.04
이러한 예수회 선교사의 중국 문화 연구는 17~18세기 유럽의 중국에 대한 관심을 고조시켰다. 특히, 부베 신부의 『주역』 연구는 편지를 통해 라이프니츠(Wilhelm Leibniz, 1646~1716)에게 전해져 그의 이진법 연구에 큰 영향을 주었다. 라이프니츠는 모나드(단자)론05을 창시한 철학자이자, 수학자로서 뉴턴(Newton, 1643~1727)과 거의 같은 시기에 미적분을 수학적으로 계산해 낸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는 선교사들의 노력에 힘입어 중국의 신유학을 상세히 고찰하면서 태극(太極)을 기독교의 신이나 순수 정신으로 존재하는 최고의 모나드와 같은 것으로 인식하였다.06 라이프니츠는 당시 유럽에 머물러 있었지만, 중국 베이징에 있던 부베 신부와 편지를 주고받으며 『주역』과 괘상을 연구하였고, 0과 1을 사용하는 이진법에 관해 연구하면서 고대 중국의 음양 기호와 괘(卦)의 형성 이론을 차용하였다.07
그는 이러한 연구의 결과를 파리 과학 학술원에서 ‘이진법 정수론 주해’(1697)란 논문으로 발표하였는데, 그 논문의 부제가 ‘0과 1의 기호 사용, 고대 동양 복희의 괘상에 나타난 이진법 산술이 갖는 의미와 그 효용성에 관한 고찰’로서,08 이는 『주역』에 관해 주석을 단 유럽 최초의 논문이었다.
청나라 황제 강희제의 수학적 관심이 부베 신부로 하여금 『주역』 연구에 매진하도록 했고, 라이프니츠는 이진법 체계를 완성하는 데 부베와의 교류 속에서 『주역』으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다. 이러한 이진법이 컴퓨터가 모든 데이터를 0과 1로 처리하는 기계어의 토대가 되었으니, 오늘날 현대 과학 문명의 토대에 음양론이 중요한 역할을 한 셈이다.
중국 고전에 대한 번역은 초기에 마테오 리치(Matteo Ricci, 1552~1610)에 의해 시도되었으며, 그가 1591년 12월부터 1593년 11월까지 사서(四書) 번역 작업을 진행했음이 다른 예수회 회원들과 주고받은 편지에 나타난다.10 하지만 마테오 리치의 번역본은 지금까지 발견되지 않고 있다. 이후 1687년 예수회 선교사 쿠플레(Couplet, 1623~1693)에 의해 『중국인 철학자 공자(Confucius Sinarum Philosophus)』라는 책이 라틴어로 출간되었다.11 이는 유교의 ‘사서(四書)’ 가운데 『중용』, 『대학』, 『논어』의 라틴어 번역본에 ‘서문(序文)’과 함께 ‘공자의 생애’, ‘중국 왕조 연표’를 덧붙인 책으로, 17세기 중국 사상의 서양 전파와 동서양의 사상 교류를 입증하는 중요 저작물로 평가받는다.12 이 책은 유럽의 계몽주의 발생에 큰 영향을 미쳤다.
빌헬름의 『주역』 번역과 융(Jung)의 심리학
부베 신부가 세상을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예수회 선교사 르기(Regis)에 의해 『주역』이 라틴어로 번역되었고(1736), 그로부터 100여 년이 지난 19세기 후반에 5권의 번역서가 출간되었는데, 그때 영국 선교사이자 한학자(漢學者)였던 제임스 레게(James Legge, 1815~1897)의 번역서(1882)가 주목받았다. 하지만 『주역』을 높은 수준에서 연구하여 깊이 있게 이해하고, 새로운 해석 담론을 창출하여 실제 활용한 학자로서 독일의 리하르트 빌헬름(Richard Wilhelm, 1873~1930)이 나타난 것은 20세기에 와서의 일이다.13 그는 권위 있는 중국학 전문가이자 역학자로서, 그가 오랫동안 『주역』을 번역하여 1924년 독일어로 출간한 독보적인 번역서 『역경-변화의 서』는 서구 사회에 큰 반향과 영향을 미쳤으며, 일반인도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의 최고 번역본으로 평가받는다.
현대 심리학의 중요 인물인 융은 빌헬름과 그의 번역서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다. 융은 프로이트의 제자로서 그의 분석심리학은 정신의 두 측면인 의식과 무의식 간의 관계를 확립하고 이해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특히 그는 무의식을 음(陰)으로, 의식을 양(陽)으로 보았고, 고대 중국에서 음양이 하나의 전체성 안에 들어있듯이 분석심리학에서도 동일한 입장을 견지하여 의식과 무의식의 통합을 지향하였다.14
빌헬름의 번역서 영국판(1948)의 서문(序文)을 쓰기도 했던 융은 어머니의 영향을 받아 어릴 적부터 인간 이성으로 이해할 수 없는 심령현상을 다루는 신비주의에 깊은 관심을 가졌다. 근래의 연구에 따르면, 그가 『주역』 점술을 행한 것은 1900년경 이전으로 꽤 젊은 나이에 『주역』을 접한 것으로 보이며,15 이 시기로부터 음양론적 사유를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스스로 동양의 정신에서 많은 영감을 받았다고 인정하기도 했다.
융은 오늘날 MBTI의 원형이 된 ‘성격유형론’을 체계화했는데, 먼저 성격을 내향성(I)과 외향성(E)으로 나누고 마음의 기능을 사고(T)와 느낌(F), 감각(S)과 직관(N)에 따라 분류하였다. 여기서 특히 발달된 기능은 주기능이라 하고, 그 반대에 해당하는 기능은 무의식에 남아 열등 기능이 되는데, 융에 있어서 자기실현(개성화)은 이러한 열등 기능을 포함하여 모든 기능을 골고루 발전시키는 것이기도 하다. 이러한 융의 성격유형은 8가지로 분류되는데, 이는 『주역』 팔괘 원리에서 발전한 것으로 평가되기도 한다.16
또한 융의 분석심리학은 인간 정신을 구성하는 요소들을 대극(대립) 관계를 바탕으로 개념화하였다. 즉 의식과 무의식, 남성 안의 여성성을 의미하는 아니마(anima)와 여성 안의 남성성을 의미하는 아니무스(animus), ‘억압된 무의식’을 의미하는 그림자와 개인이 사회적 요구에 맞춰 형성하는 ‘외적 인격’인 페르소나 등을 개념화하고 이들의 상호작용을 강조하였다. 그리고 융은 음양의 관계가 상호작용을 통해 조화를 이루듯이 인간 심리 안의 상대적 요소들이 균형과 통합을 이룰 때 건강한 자기실현(self-realization)이 가능하다고 보았다.
이는 융이 데카르트식 이원론과 기독교식 선악의 이분법을 지양(止揚)하며, 정신과 물질, 사고와 감정, 의식과 무의식 등 이원론적 대극 관계를 전일적(全一的) 관점에서 재정립하고자 한 것과 관련된다.17 여기서 전일적이라는 말은 ‘전체적인 관점에서’라는 의미이며, 서로를 보완하는 음양의 관계론을 심리적 대립 요소에 적용하여 통합을 지향한 것이다.
무엇보다 융이 높게 평가받는 것은 비인과적 사건을 ‘동시성’이라는 개념을 통해 설명하였다는 점이다. 비인과적 동시성이란 두 개 혹은 그 이상의 사건들이 비인과적으로 동시에 발생하여 의미 있는 우연의 일치를 보이는 현상을 말한다. 예를 들면 어머니의 죽음과 관련되는 꿈이 어머니의 실제적인 죽음과 시간적으로 일치한다든가, 남편이 밖에서 교통사고를 당할 때 부인은 집에서 그릇을 깬다든가 하는 동시성을 말하는 것이다.
이를 쉽게 이해하자면, 융의 동시성 현상은 우리 신체 여러 부분의 작용을 상호인과적인 것으로 보기보다는 신체의 전체적인 균형을 유지하기 위하여 일어나는 동시적 상호작용으로 이해하는 것과 같으며, 세상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부분적인 인과의 작용으로 이해하기보다는 전체적인 관점에서 ‘동시적 의미’로 바라보는 것이다.18 이는 융의 음양론적 사유에서 비롯한 전일적 사고에서 기초한 것이기도 하다.
이러한 동시성 현상은 그것을 해석하는 데 있어 인간의 삶과 초월적 영역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세계관의 확장을 가져왔으며, 인과론이 아닌 세상에 대한 새로운 이해의 틀을 제공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또한 융은 동시성 개념을 양자역학 관련 연구로 노벨상을 수상한 파울리(Pauli, 1900~1958)와의 공동 연구를 통해 창안하였는데, 융의 심리학이 음양론적 사유가 녹아있다고 알려진 양자역학과도 관련을 맺으며 발전하였다는 점이 주목되기도 한다.
음양론이 양자역학에 미친 영향
음양론이 양자역학에 녹아있다는 말은 음양론이 20세기에 들어와 양자역학의 철학적 기초를 제공하였다는 점을 말한다. 당시 유럽의 과학자들은 철학적 명제를 깊이 사유하는 데에도 많은 관심을 가져 철학사상이 과학연구에 있어 아이디어를 제공한 사례도 종종 있었다. 아인슈타인(Einstein, 1879~1955)도 자신의 상대성 이론을 정립하는데 철학자 흄(David Hume, 1711~1776)의 사상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고백하기도 하였다.19 아인슈타인이 흄의 철학에서 상대성 이론에 대한 영감을 얻은 것처럼, 보어(Niels Bohr, 1885~1962)는 음양론적 사유에서 비롯한 ‘상보성(相補性) 원리’를 양자 세계의 물리 현상을 설명하는 이론으로 활용하여 양자역학의 철학적 기초와 세계관을 세우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19세기를 거치며 과학자들은 뉴턴의 법칙 아래 세상을 완벽히 설명할 수 있다는 자신감에 차 있었으나, 빛이 어떤 실험에서는 파동으로 나타나고 어떤 실험에서는 입자로 나타나는 바람에, 빛을 파동으로 정의하기도 어렵고 입자로 정의하기도 어려운 상황을 맞이하면서 제동이 걸렸다. 이 시기 아인슈타인은 1905년 발표한 광전효과 연구에서 빛이 입자임을 증명해 내면서 기존에 빛을 파동이라 생각했던 물리학계에 처음으로 ‘빛이 파동이면서 입자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하며 양자역학의 태동에 기여하였다. 이와 함께 그는 미시세계를 포함해 우주 어느 곳에서도 정확한 물리적 예측이 가능하다는 입장을 견지하였다.20 하지만 양자역학의 연구 결과는 그의 신념과는 반대로 흘러갔다.
고전역학의 자신감은 ‘위치와 속도(운동량)를 알면 미래의 위치를 알 수 있다’는 것에서 비롯한 것이었다. 하지만 하이젠베르크(Heisenberg, 1901~1976)가 1925년 양자역학을 설명하는 수학적 기초를 세우고, 곧이어 슈뢰딩거(Schrödinger, 1887~1961)가 이를 파동함수로 설명해 낸 이후, 하이젠베르크가 ‘위치와 속도(운동량)를 둘 다 동시에 정확하게 측정할 수는 없다’라는 ‘불확정성의 원리’(1927. 5. 31)를 발표하면서 ‘미시세계는 예측 불가능한 세계’임을 선언하는 충격을 주었다.
이에 보어는 ‘불확정성은 파동-입자의 이중성에서 비롯한 것’이라며 근본적인 이유를 설명하였고, 서로를 반박하던 입자 관점의 하이젠베르크와 파동 관점의 슈뢰딩거 두 사람의 연구 결과를 종합해 파동과 입자의 상보성 원리로 양자역학의 이론적인 틀을 정립하였다. 상보성이란 음양론에서 비롯한 ‘상호보완하는 성질’을 의미하며, 빛의 파동성과 입자성이 함께 상호보완적으로 빛의 특성을 이룬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여기에 슈뢰딩거 파동함수를 통계적으로 해석해 양자의 운동을 확률적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막스 보른(Max Born, 1882~1970)의 해석이 더해졌고, 이러한 바탕 위에서 보어는 이탈리아 코모에서 열린 국제물리학총회(1927. 9)에서 ‘양자가설과 원자 이론의 새로운 발전’이라는 제목으로 상보성 원리를 처음 발표하였는데, 논문의 원제목은 ‘양자이론의 철학적 기초’였다.21
『주역』의 논리를 구성하는 기본 요소는 음양이며, 이 둘은 대대(對待)의 관계로 설명된다. 대대(對待)는 음과 양의 관계에 대한 두 가지 성격을 내포한 개념으로, 맞섬의 의미를 가진 대(對)는 성질의 다름을 나타내며, 기다린다는 뜻의 대(待)는 상호보완성을 의미한다.22 모든 존재는 음양의 두 측면이 상호보완적으로 하나의 존재를 이루는데, 때로는 양적인 모습 때로는 음적인 모습의 양면성이 나타난다. 음양론의 관점에서 보면 빛도 파동과 입자의 두 가지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으니, 보어는 이러한 음양론의 상보성 개념을 수용하여 빛이 가지는 파동과 입자의 이중성을 받아들일 수 있다고 한 것이다.23
보어는 양자 물리학의 파동-입자의 상보성을 ‘사고’와 ‘감정’에 비유하여 설명하면서, “어떤 특정한 상황에서든 이 쌍 중 하나만 적용될 수 있지만, 경험에 대한 완전한 설명을 얻으려면 둘 다 필요하다.”24라고 하였다. 즉, 빛이 때로는 파동으로, 때로는 입자로 나타나지만 빛의 성질을 완전히 이해하려면 파동성과 입자성의 두 가지를 모두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보어의 전기(傳記)를 지은 브래델에 따르면, 보어는 논리나 체계보다는 직관과 통찰을 중시한 과학철학자였으며, “동양의 음양론적 세계관과 다름없는 보어의 사상은 그의 동료 교수인 동양학자 요하네스 페데르센(Johannes Pedersen, 1883~1977)으로부터 많은 감화와 도움을 받은 것”이라고 한다.25
보어는 1922년 수소 원자모형에 관한 연구로 노벨상을 받았는데, 그 시상식에 팔괘도가 그려진 복장을 입고 나타나 『주역』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보이며,26 자신의 철학적 관념이 어디서 연유하는지 암묵적 메시지를 보냈다. 이뿐 아니라 보어 가문(家門)의 문장(紋章)에 태극 문양을 그려 넣으며 ‘대립적인 것은 상보적(Contraria Sunt Complementa)’이라는 문구를 새기는 등 그의 음양론에 대한 심취는 여러 모습에서 확인된다. 덴마크 정부도 그러한 뜻을 존중하여 덴마크 지폐에 보어를 그려 넣고는 그 배경에 태극 무늬를 배치하였으니, 여러 사례를 통해 양자역학의 철학적 기초인 보어의 ‘상보성 원리’가 음양론적 사유의 근원인 태극(太極)에서 비롯하였음을 묵묵히 말해준다.
나가며
지금까지 살펴보았듯이 음양론의 영향을 받은 라이프니츠의 이진법은 현대과학의 발전 과정에서 컴퓨터를 중심으로 한 디지털혁명에 크게 이바지하였다. 뿐만 아니라 “파동-입자의 이중성, 이것이 양자역학의 시작과 끝이다.”27라는 말이 있듯이, 당시 물리학의 중요 난제였던 파동-입자의 이중성 문제를 보어는 음양론에서 영감을 얻은 상보성 원리로 설명하면서 양자역학을 체계화하였다. 특히 레이저, 광통신을 비롯하여 반도체, 휴대폰 등 우리가 사용하는 거의 모든 전자제품이 모두 양자역학의 산물이자 양자역학의 토대 위에서 만들어진 것이라는 점에 주목한다면,28 음양론은 양자역학의 성립과 그것에서 비롯한 현대 과학 문명에 중요한 기여를 한 것으로 평가된다.
그리고 융의 심리학에서 음양론적 사유는 심리학을 다루는 분석 대상을 대극(對極: 서로 반대편에 서 있지만, 둘 다 있어야 전체가 되는 관계)적으로 범주화하여 복잡미묘한 심리학을 간결하고 명확하게 체계화하였고, ‘동시성’ 개념이라는 새로운 시각을 열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또한 융과 같은 서구의 학자들이 음양론을 받아들이면서 ‘이것 아니면 저것’의 양자택일적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이것과 저것의 조화, 이것이면서 저것일 수 있다는 ‘통합적 사유’라는 새로운 사고의 지평을 열었다는 것은 그들이 다툼과 경쟁이라는 상극의 그물에서 벗어날 탈출구를 발견하였다는 측면에서 또한 의미가 크다고 본다.
보어가 ‘대립적인 것은 상보적이다’라는 말로 강조한 상보성에 관하여 『전경』의 「음양경(陰陽經)」 (교운 2장 42절)에서는 “하늘은 땅이 없으면 조화를 그 아래에 펼 수 없고, 땅은 하늘이 없으면 공을 그 위에 이룰 수 없다(天無地化無布於其下 地無天功無成於其上)”라고 하여 음양을 대표하는 하늘과 땅이 서로 상호보완적으로 존재함을 언급하고 있다. 음양의 중요 특성인 상보성은 대립하는 존재를 화합시키는 음양합덕(陰陽合德)의 종지를 이해할 수 있는 디딤돌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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