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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시절의 추억 - 서면 주변의 극장을 섭렵하던 시절
서면 로타리 주변 개봉관들 1960년대 초반
서면로타리 북성극장 1966년 (1947개관~1975폐관)
서면의 극장중 제일 먼저 접해 본 곳은 북성극장이다.
서면에서 제일 먼저(1947년)생긴 극장이고 해방후
전국에서 처음 생긴 극장이란 타이틀도 있는 영화관이다.
초등시절 설날이나 추석에 세배돈 받아서 동네 형님들
따라 학장에서 주례까지 걸어가서 버스타고 서면 북성
극장에 가서 서부영화를 봤었다. 대서부란 영화를 본 것
같고 The Big Country 영어제목은 청년이 되서 알았다.
동보극장 1970년 추석특선프로 (1957개관~1993폐관)
태화극장 1979년 (1962개관~1982폐관)
1965년12월말 중학교 시험 합격하고 난 후 1966년3월초
에 입학하니까 2개월 정도의 여유가 있었다.
그 시기에 나는 당시 태화극장과 동보극장 사이에 있던
제일학원에서 중학 영어 기초를 하루에 2시간씩 두달간 배웠었다.
수강하는 학생수가 생각보다 엄청 많았다. 그러다보니
동아극장 1968 (1931개관~1968폐관) 현 동아데파트(세명약국 맞은 편)
창선동 동아극장과 서면 동보극장 으로 학원에서 단체
외국영화 감상을 하러 두어번 갔었다.
기초 영어 배웠으니 극장에서 외국영화 보고 영어대사
하는 거 들어보라는 의미로 영화관람을 시켰다고 한다.
그 시기에 학원에 같이 다니던 서면 주변에 살던 애들
따라 처음 가본 곳이 부전동 적십자회관 앞에 있던
이성극장 이었다. 가격도 싸고 영화도 2편 보여주니
좋았었다.
1960년대 이성극장(1962개관~1975폐관), 노동극장(1962개관~1987폐관) 주변
그 후 중학교 입학하고 1학년 초반에는 열심히 공부
해서 성적이 반에서 항상 상위권으로 나왔었다.
중학교 1학년 전반기에 조부모님이 김해에 사시다
우리집으로 합치셨다. 다음해에 김해에 살던 막내삼촌
께서 결혼해서 우리집에 또 살림을 합치셨다.
졸지에 부모님 우리형제 3남1녀에다 조부모님,
삼촌부부까지 10명이나 되는 대 식구가 방3칸 있는
초가집에서 함께 살게 된 것이다.
식구가 많다보니 어린 내가 보기에도 민망할 정도로 집안이
시끄러웠다. 그러다보니 중3때인 '68년 조부모님과 삼촌부부는
가정불화로 김해로 이사가 버리시게 되었다.
사상공단 조성 초기 모습 1968
엎친데 덮친격으로 그 해에 장마로 모내기를 세번 하고
지친 아버지께서 논 10마지기를 팔았는데 그 때는 사상
공단조성계획 발표한 뒤라 땅값이 전에 보다 4~5배 올라
있으니까 파셨던 것 같다. 평당 천원받고 파시고 연산동에
평당 천오백원하는 땅 사실려고 이미 봐 두셨다고 한다.
그 때 잔금 치는 자리에서 우리 논 매매 중개한 우리 동네
유지에다 부자이던 아저씨가 잔금 받은 돈 한달만 빌려
달라고 해서 특별히 쓸 일도 없고 연산동 땅 사는 시기도
여유가 있고 해서 빌려주셨는데 한달이 지나도 갚아 주지를
않으니까 돈 받으러 다닌다고 집안이 난리가 아니었는데..
알고보니 그 아저씨가 사상공단발표 되고나서 부동산
소개하다가 부동산 브로커에게 사기 당하고 민사재판
진행중이고 해서 그 집 꼴이 말이 아니란 걸 모르시고
돈을 빌려줬으니 갚을 수가 없을 지경 이었던 것이다.
무협소설 비룡[원제 비연경룡(飛燕驚龍)],가장 재미있게 읽었던 책 (주인공:양몽환,심하림,주약란,조소접)
그래서 그랬던가 모르겠는데 그 때 부터 농땡이 친 것 같다.
시내 애들과 비교도 하다보니 열등감도 생기는 것 같고
그래서 학교는 땡땡이 치고 만화 보고 무협소설 보고 혼자서
영화 보러 서면주변 극장들을 여기저기 많이 돌아다녔다.
학교 도서관에서는 주로 탐정소설만 보고 친구들과는
탁구장에만 좀 다녔었다. 이른바 현실 도피였다.
그 당시 우리중학교 야구부가 전국중학야구대회 우승을 두어번 할 정도로
야구를 잘했기 때문에 단체로 구덕운동장에 야구응원 갈때는 빠지지 않았다.
시합 끝나면 학장출신 동기 선후배들과 함께 구덕고개를 넘어서 집에 갔다.
한국 세계야구대회에서 최초 우승시 출전한 우리학교 출신 야구선수들 김정수(아마 롯데),심재원, 감독 김응룡
프로야구 롯데 원년 3번타자 김정수(18회),포수 심재원(19회),
부산고 고려대 감독을 했던 조두복(17회), 성남고 고려대에서 투수를 했던
노길상(17회)등이 구덕야구장에서 응원할 그 당시 선수로 뛰었다,
김정수는 동기고 김응룡 감독님은 6회로 한참 선배님이다.
농땡이를 많이 쳤지만 좋아하는 과목은 있었다.
음악시간과 체육시간은 재미있었다.
노래를 좋아하고 노래 부르는 것도 참 좋아하다보니
음악시간은 기다려졌다.
그 시절 배운 노래들 오 아름다운 나의 벗, 스와니강,
올드 블랙 죠, 켄터키 옛집, 고향집, 꿈길에서, 금발의 제니,
쟁반노래방에서 김건모가 두번 만에 성공한 "희망의 속삭임"
등 주로 외국 민요를 많이 배웠고 좋아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가사들이 지금도 머리에 남아있어 흥얼 그린다.
체육시간은 운동을 좋아하고 기본적으로 달리기는 좀 하고
축구, 야구, 피구, 탁구 등 구기 종목은 곧 잘 하는 편이니까
재미있을 수 밖에 없었다. 특히 학장 촌 동네에서 그 당시
몸으로 하는 고생받기 놀이나 서열 다툼 싸움도 가끔 하고
동네 형들이나 어른들이 재미로 씨름시합도 가끔 시켰는데
어지간히 덩치 큰 아이들 한테도 지지 않았었다.
백양대 1968
그 것을 알리없는 중학교 같은 반 친구 덩치 좀 큰 아이중 한명이
키 작다고 만만히 보고 시비 붙다가 보니 학교뒤 백양대에서
한 판 붙었는데 이단 옆차기로 들어오는 걸 살짝 피하니까 제풀에
업어졌다. 업어졌다가 땅에 손 짚고 일어 나는 녀석 머리를 두손으로
잡고 무릎으로 얼굴을 가격했더니 그대로 "엌"하고 고꾸라졌다.
요즘 말로 얼굴에다 니킥을 작렬한 것 이었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교실로 들어와 버렸고. 그 때 싸움 구경하러
왔던 친구들이 부축해서 교실로 들어 오는 것 같았는데..
공부시간에 미안하기도 하고 해서 뒤돌아 보니 손으로 얼굴을
가리던데 눈밑하고 코사이가 멍이 시퍼렇게 들어 있는게 보였다.
그 뒤 부터 구경하러 와서 본 아이들도 많고 해서 소문이 나서
그런지 덩치 큰 아이들이 시비를 안 걸었다. 키 작은 놈하고
괜히 시비 붙어서 이겨봐야 본전이고 지며는 쪽 팔리니까??
근데 지나고보니 다행이다 싶다. 만약 눈이나 코에 정통으로
맞았다면 코가 부러지거나 눈이 손상 될 수도 있었는데..
그 친구를 졸업하고 한번도 못 봤다. 중등 동기회 총무를
맡아보면서 그 친구 연락처를 수소문 해 보기도 했는데..
찾지를 못했다. 그냥 넘어가버린 그때 일 사과하고 싶었는데..
최초 노동회관에서 노동극장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1960년대 (1962개관~1987폐관)
후에 노동극장을 리모델링하여 현대극장으로 운영하던 시기도 있었다.
태평시네마 주변 1972년 (1961~1979)
노동극장은 그 때 이본 동시상영을 안했던 것 같고 그러다보니
300번지 입구 아시아캬바레 맞은 편에 있던 부전동 태평시네마에
갔었다. 다음 간 곳이 부일시네마, 범내골 로타리에서 동성중학교
올라가는 완편에 있었다 이 극장도 중앙동쪽에서 옮겨왔다..
그 다음 간곳이 중앙시장에서 평화시장 쪽 금은방 골목쪽으로
가다 보면 있는 태평극장 이다.
범일동 주변의 극장들 1960년대, 태평극장(1957~1981),부일시네마,삼일,삼성,보림 등 5개나 있었다.
부일시네마와 동아극장에 대해서 정리해 보려고 한다.
부일시네마 중앙동(1957~1963)-->부일시네마 범일동(1963~1968)
창선동 동아극장 1968년 폐관-->부일시네마 범일동 인수-->동아극장 범일동 개관1968~폐관1980
창선동 동아데파트 2층에 소극장 동아극장 개관1982~폐관1993
* 의문점
창선동 동아극장이 범일동 부일시네마를 인수하여 동아극장으로 이름을 변경한 시기(1968?은 추측임)
부산진역 주변 미성극장 1962년 (1942개관~1976폐관)
태평극장에서 한번 더 진출하면 부산진역앞 미성극장(대화관)이다.
이 극장은 역사가 깊다. 일제 시대 때 부터 있었던 극장이란다.
일제 시대때 개관한 극장들은 ㅇㅇ좌, ㅇㅇ관 이런 씩으로
극장 이름을 붙였던 곳이 많다고 했다.
그 당시 돈이 없다 보니 돌아다닌게 다 이본동시 상영관이었다.
'67년도 가을 이던가 하루에 영화6편 본적도 있었다. 학교는 빼먹고
이성극장에서 조조로1프로(2편)보고 옮겨서 부일시네마에서1프로(2편)
또 옮겨서 미성극장에서1프로(2편)해서 6편 보고 집에가니 밤10시였다.
당감동 천일극장 (1957개관~1985폐관), 가야동 대명극장(1968개관~1992폐관) 주변 1990년대
철도청 부산공작창은 범천동에 있는데 화차2공장만 가야조차장안에 있었다.
대명극장 1980년대 (1968개관~1992폐관)
학교에서 제일 가까운, 반도극장에서 이름이 바뀌었다는 천일극장도
이본동시가 아니라 거의 안갔고 가야의 대명극장은 중3학년 후반기에
갓 설립했고 범일동에 일제때 개관했다는 삼일극장과 해방후 개관한
삼성극장이 있었으나 당시에 그 극장들은 이본 동시 상영이 아니어서
전차타고 지나가면서 봤지만 영화보러 가지는 않았다.
삼성극장 2011년 (1959개관~2011폐관)
삼일극장 1986년 (1944개관~2006폐관)
보림극장 1978 (1968개관~1998폐관)
보림극장은 중3때인 1968년도 후반기에 남포동 쪽에서 이사와
교통부로타리에 일류 극장, 즉 개봉관으로 신축 개관했고 개관시
최초 상영했던 영화가 신성일이 주연으로 나온 "출세가도"란 영화
이었지 싶다. 후에 쇼를 전문으로 하는 극장으로 바뀌었고 그 뒤엔
이본동시 상영하는 삼류극장으로 바뀌고 말았다.
출세가도1968 (신성일,남정임 주연)그 당시 포스터를 본 기억이 아직도 남아 있었다. 신기한 일이다.
그 당시 여배우들(최은희,김지미,엄앵란,남정임,문희,윤정희,고은아)중에서 남정임을 제일 좋아했다.
태화극장, 동보극장 1960년대 초반
태화극장,동보극장은 주로 학교에서 단체영화 보러 가끔 다녔는데
"저 하늘에도 슬픔이"와 "OK목장의 결투"를 본 기억이 난다.
북성극장은 준 개봉관이라 관람료가 비싸 통 안 간 것 같다.
1967년 독일 뤼브케 대통령 방문 모습, 뒤편 오른쪽에 태화극장과 동보극장 중앙은 서면로타리
1967년 청춘극장 윤정희,신성일,고은아 주연, 태화극장에서 관람한 기억이 난다.
윤정희가 2000대1의 경쟁률을 뚫고 주연으로 뽑힌 데뷔작으로
그 당시 하도 선전도 많이하고 소문난 영화라서 모처럼 비싼 돈 들여 본 것 같다.
보고나서 그만한 값어치는 되는 영화라고 생각했다.
대한극장은 중학시절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1970년1월, 고1 겨울방학때 개관했다.
대한극장 1990년 (1970개관~1999폐관)
대한극장을 허물고 2000년6월 멀티미디어 극장인 대한시네마로 신축 개관하였고
2000년11월 CGV에서 인수 CGV 대한점으로 인수 운영되다가 2020년3월 코로나
여파로 문을 닫았다가 2024년9월 메가박스 서면대한점으로 재개관하였다고 한다.
그 외에 부암교차로에서 당감시장 쪽으로 넘어 가는 길
입구 왼쪽에는 성지극장(1970개관~1985폐관)이 있었다고 하고
양정 공무원연금공단 옆 양정로타리쪽에 신도극장이 있었
다고 하며 문현동 문전역 1번출구 금융단지 들어가는 길
입구 왼쪽에 보영극장(1962개관~1977폐관)이, 문현로타리 곱창골목
입구 왼쪽에 대성극장(1960개관~1978폐관)이 있었다는데 중고시절
이나 어른이 되서도 가보지 못했는데 지금은 모두 없어졌다.
양정 신도극장 1987 (1968개관~1990폐관)
중학시절 그렇게 영화를 많이 봤는데도 머리에는 별로 남아
있지 않다. 건성으로 시간 때우기로 봤기 때문일까 ???
고딩시절에는 영화관에 별로 안갔다. 그렇다고 공부를
열심히 하지도 않았다. 축구, 음악, 바둑 등 다른데
취미를 붙였기 때문이다. 그래도 무협소설은 계속 봤다.
만화,무협소설을 계속 보다보니 책 읽는 속도가 엄청 빨라졌다.
하루 밤새 무협소설1질, 5권을 다 보기도 했고
명작소설은 어쩌다가 겉 핡기로 한번씩 읽었을 뿐이다.
거제리 동궁극장(1962~1984) 1970년대 초반 거제리 쌍미섬유 다닐때 가끔 가 본 극장
그 후 인터넷이 활성화 되기 시작한 '90년대 후반부터
인터넷 소리바다 등애서 mp3음악을 공짜로 마음껏 접할 수
있었고 다큐멘타리 영화 등도 이런 저런 경로로 맘껏 다운 받아
볼 수 있었으며 그리고 텍스트 소설, 만화도 제량껏 접 할 수 있었다.
그것도 집 안에 않아서 컴퓨터로 맘껏 볼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음악, 영화, 만화, 소설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더 할 수 없이
좋은 환경이 돤 것이다.
수안동 동래극장 (1944~1984) 수안역 6번 출구
온천동 온천극장(1957~1998?) 1970년대 후반 구서동 턔광산업 다닐때 가끔 다닌 극장
요즘은 1990년대~2000년대 와는 달리 저작권 문제가 많이
이슈가 되고 단속도 심해졌지만 이미 2000년대 중반에 모두
확보해 놓은 나로서는 별 애로사항이 없다.
최신 아이돌 음악은 우리하고는 맞지 않아 잘 듣지도 않고
최신영화는 마일리지 등으로 보면 되니까..
요즘도 여러 경로로 옛날 영화를 찾아보다 보면 정말 귀하게
그 시절 보았던 영화가 얼핏 기억나 보일때도 있다.
그땐 결재하고 본다 스스럼 없이...
장전동 국보극장(1967~1986)부산대쪽으로 걸어 가다보면 소정천가에 홀로 보였지
장전동 동성극장(1960~1998?) 이 극장은 가 본적이 없고 기억에도 없다.
운동은 하기 싫어지고 컴퓨터를 자주 접하다 보니 건강이
문제다. 특히 눈이 안 좋아 지는게 문제다. 이 때까지
그 좋았던 건강과 시력도 세월에는 어쩔수 없나보다.
운동 자주하자. 컴퓨터 사용을 줄이자 다짐하지만 잘 안된다.
컴퓨터와 인터넷에는 모든게 들어있기 때문이다.
초등학교때 영화사에 다니던 외삼촌의 영향으로 공짜 영화
보러 가끔 다녔던 제일, 부산, 대영, 동아, 문화극장 등
남포동쪽 극장이야기는 다음에 함 해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