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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8월 6일 비대면강의 - - -
날씨가 더워도 방학은 없습니다.
대신 오늘 간단히 올리겠습니다.
화엄경약찬게 마지막입니다.
39품에 이어 流通正法(유통정법)입니다.
[105] 是爲十萬偈頌經(시위십만게송경)
이 경은 십만 개의 게송으로 되었으며
[106] 三十九品圓滿敎(삼십구품원만교)
삼십구 품의 원만한 가르침이니
[107] 諷誦此經信受持(풍송차경신수지)
이 경전을 외우면서 믿고 받아 지니어서
유통정법(流通正法)
[105] 是爲十萬偈頌經 [106] 三十九品圓滿敎
[107] 諷誦此經信受持 [0 0] 書寫解說無量劫
[108] 初發心時便正覺 [109] 安坐如是國土海
[110] 是名毘盧遮那佛 [0 0] 大方廣佛華嚴經
이와 같은 10만 게송 경을,
80화엄경은 4만 5천 게송이라고 합니다.
60화엄경은 3만 6천 게송입니다.
여기서 10만 송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다만 화엄의 원만 숫자로 10만이라고 한 것입니다.
‘우리하고 생각이 좀 다르다.’ 이렇게 볼 수 있겠습니다.
십만 개의 게송으로 이루어진
삼십구 품의 원만한 가르침을
외우면서 믿고 받아 지니어서
그다음에 書寫解說無量劫(서사해설무량겁)은
쓰고 해설하는 것까지 붙여서 5종 법사가 됩니다.
[108] 初發心時便正覺(초발심시변정각)
보리심을 처음 낼 때가 바른 깨달음이니
[109] 安坐如是國土海(안좌여시국토해)
이와 같은 국토에서 편안하게 지낸다면
[110] 是名毘盧遮那佛(시명비로자나불)
이 사람을 비로자나 부처님이라 하리라
[0 0] 大方廣佛華嚴經(대방광불화엄경)
모든 경전이 그렇습니다
처음에 시작할 때, 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하고,
끝나는 대목에도 大方廣佛華嚴經이라고 목판본에 되어있습니다.
도돌이표처럼, 무시무종(無始無終)= 시작도 끝도 없이,
원(圓)처럼 계속 돌아가는 겁니다.
그것도 상징적으로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바가 있습니다.
80권 화엄경은 39품 4만 5천 게송이며,
60권 화엄경은 34품 3만 6천 게송이기 때문에
10만 게송경이라는 구절은 맞지 않는 말이다.
화엄경의 원융사상에 근거해 원만 수로써
10만이라고 하면 일리는 있겠지만,
80권 화엄경을 근거로 편집한 화엄경약찬게라면
당연히 4만 5천 게송으로 해야 옳을 것입니다.
10만 게송이라고 하면 하본(下本) 화엄경 48품이 되어야 한다.
하본(下本)에 10만 게송이라고 되어있습니다.
初發心時便正覺(初發心時便正覺)은
「초발심공덕품」을 설하기 바로 앞 범행품 끝에 나오는 구절로,
깊은 믿음으로 보리심을 내면
마치 야무진 씨앗 하나에 뿌리와 줄기와 잎과 열매가
완전한 것과 같다는 말입니다.
간절해지면 진실해지고
진실이 사무치면 비로소 보리심을 일으키게 되고
궁극의 깨달음과 상응하여 시작과 끝이 둘이 아니다.
화엄경을 수지하면 이미 중생이 아니라
곧 비로자나불과 다름이 없다는 뜻으로, 初發心時便正覺입니다.
화엄경약찬게 총정리
阿蘭若法菩提場(아란야법보리장).
부처님께서 始成正覺(시성정각)하신 곳입니다.
아란야법보제장은 천상이나 지상이다 할 수는 없는 자리입니다.
법 보리장 아란야에서 1회 차 설법이 시작됩니다.
여기서는 부처님께서는 여래현상품에서 방광을 하시고,
보현삼매품에서 보현보살이 비로자나 일체제불 여래 장신삼매에
들어가셨습니다. 여기서 6품이 설해졌습니다.
설법 내용은 擧果勸樂生信分(거과권락생신분)이라는 대목입니다.
설해진 품은 세주묘엄품ㆍ여래현상품ㆍ보현삼매품ㆍ세계성취품ㆍ
화장세계품ㆍ비로자나품입니다.
아란야 법 보리장에서는 설법주가 보현보살입니다.
2회 차 설법은 보광명전에서 1차 설법이 시작됩니다.
여기서는 6품이 설해집니다.
2회 차 설법에서는 설법주가 문수보살이 되고,
설법 내용은 10신 설법이 되겠습니다.
6품 품명은 여래명호품ㆍ사성제품ㆍ광명각품ㆍ보살문명품ㆍ정행품ㆍ현수품.
이 중에서 부처님이 방광하신 부분은 발바닥이고,
품은 광명각품이고, 보살삼매는 없습니다.
10신 설법이기 때문에 삼매는 없다고 나오고,
해인삼매와 화엄삼매가 현수품에 나온다고 되어있습니다.
이제 드디어 天上으로 올라가게 되겠습니다.
천상의 제1 천상. 도리천은 수미산 정상에 있습니다.
하늘과 땅 사이의 수미산꼭대기에 있기에 수미산정품입니다.
수미산꼭대기에 올라간다.
승수미산정품ㆍ수미정상게찬품ㆍ십주품ㆍ범행품ㆍ초발심공덕품ㆍ
명법품. 도리천에서는 3회 차 설법이 됩니다.
아란야법보리장 1회 차 6품.
보광명전 2회 차 6품.
도리천 3회 차 설법에서 6ㆍ6ㆍ6. 6품이 설해집니다.
부처님께서 방광하신 품은 수미정상게찬품에서 방광하고,
삼매는 10주품에서 법혜보살이요. 혜자 돌림이 10명 있었지요?
일천불찰미진수세계의 법혜불에게 가피를 받아서 법문을 설하지요.
법혜보살이 설법주가 됩니다.
네 번째 설법은 야마천입니다.
여전히 아란야법보리장 보리수 아래에서
而恒此處菩提座(이항차처보리좌).
한발자국도 움직이지 않고, 동시에 갔다. 이렇게 나옵니다.
야마천궁게찬품은, 제가 카톡을 보내면,
단체 톡으로 한 사람만 보내면 다 같이 전송됩니다.
그것이 화엄경 보고 만든 겁니다.
원래 이치가 다 그렇게 되어있는 것입니다.
야마천에서는 4품이 설해지는데요.
야마천궁에 일단 올라가고요. 승야마천궁품.
야마천궁게찬품 게송 찬탄이니까, 거기서 부처님께서 방광합니다.
도리천에서는 10주를 설하지만,
야마천에서는 10행을 설하기 때문에 발등에서 방광을 하고,
설법주는 공덕림보살이 되지요.
네 품은 승야마천궁품ㆍ야마천궁게찬품ㆍ십행품ㆍ십무진장품.
삼매는 10행품에서 공덕림보살이 들어갑니다.
공덕림(功德林)이라 했을 때 林은 수풀은
남에게 행동을 펼침으로 해서 공덕이 숲처럼 쌓인다
그래서 공덕림보살을 상징적으로 적어놓은 것입니다.
다섯 번째 설법은 도솔천에서 3품을 설합니다.
도솔천을 다른 말로는 知足天(지족천) = 만족할 줄 알고,
또 喜足天(희족천) = 기쁘게 만족한다고 하는 것은,
만족할 줄 알기 때문에 회향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진다는 말이지요.
야마천궁게찬품이 끝나고,
십무진장품에서 무진장 창고를 가지고
도솔천으로 넘어왔으니까 회향할 수 있는 소지가 있는 것입니다.
승도솔천궁품. 도솔천궁에 올라가서
도솔천궁게찬품에서 무릎에서 방광을 해야 합니다.
방광을 하시고 나서 삼매에 드는데,
금강당보살이 도솔천에서 설법주가 되어서 법문을 설합니다.
10회향을 금강당보살이 설하고,
여섯 번째는 오직 한 품이 설해집니다.
타화자재천에서 한 품이 그 유명한 10지품입니다.
(십지품)十地品의 특색은 1지부터 10지까지 보시ㆍ지계.
이렇게 수행법을 배대를 해서, 화엄경에서 가장,
모든 불교경전의 교리를 망라해놓은 것이 10지품입니다.
10지품에서는 설법주가 금강장보살입니다.
5회 차에서는 금강당보살이고, 지금은 금강장(金剛藏)보살입니다.
금강(金剛)이라는 뜻은,
다이아몬드라고 하는 것은 본체적인 의미는 굉장히 견고하다.
이것을 작용할 때는 굉장히 예리하다. 밝고 예리하다.
타화자재천에서는 10지 보살이 오직 한 품.
부처님은 백호미간에서 방광하시고,
설법주 금강장보살은
10억 불찰미진수 金剛藏부처님께 가피를 받는다.
7회 차 설법.
보광명전에서 두 번째, 2차 설법이 되겠습니다.
10주ㆍ10행ㆍ10회향을 三賢(삼현)이라고 합니다.
10지는 十聖(십성)이라고 하지요. 聖人(성인)들이요.
삼현(三賢)을 다른 말로 資糧位(자량위)라 하고,
10지의 초지를 見道位(견도위)라 하고,
10지의 2지부터 10지까지를 修道位(수도위)라고 합니다.
10지에서 10지수행이 완전히 끝나면,
감이 익어서 땅에 내려와야지요.
땅에 내려와서 드디어 等覺(등각)ㆍ妙覺(묘각)법문이 시작됩니다.
보광명전 2차에서 11품이 설해집니다.
십정품ㆍ십통품ㆍ십인품ㆍ아승지품ㆍ여래수량품ㆍ제보살주처품ㆍ
불부사의법품ㆍ여래십신상해품ㆍ여래수호광명공덕품ㆍ보현행품ㆍ
여래출현품
부처님방광은 마지막 끝 여래출현품이고요.
부처님 刹那際三昧(찰나제삼매)는 제일 앞의 10정품에서 듭니다.
이때 법문은 等覺ㆍ妙覺.
8회 차 법문은 그 유명한 이세간품 1품만 설해집니다.
설법주는 보현보살이 되고,
앞의 7회 차 설법주는 세존과 보현보살.
이세간품에서는 보혜보살이 200가지로 질문하고,
보현보살이 2000가지로 대답하는 대목인 8회 차 설법이 이세간품에서 끝난 이것이 보광명전의 3차 설법이 되겠습니다.
8회 차 설법은 방광은 없고 삼매가 있는데요.
보현보살의 佛華莊嚴三昧(불화장엄삼매)에 들어갑니다.
그리고 드디어 마지막 품 뭡니까?
아홉 번째 설법. 입법계품 1품이 21권이나 장대하게
근본법회와 지말 법회.
53선지식 분으로 나누어서 설해지는데,
이때 부처님께서는 먼저 사자빈신삼매에 들어가시고,
그것을 보현보살이 설명하고 문수보살이 찬탄해도,
광염당급수미당 대덕성문사리자 중에서
500명의 보살들은 알아듣는데,
부처님의 10대 제자들은 전부 다 알아듣지 못하고
귀머거리 같고 눈먼 사람 같았다.
그래서 할 수 없이 문수보살이 사리불 내지
어린 햇중들을 데리고 남쪽으로ㆍ남쪽으로 내려가면서
복성 동쪽 장엄당 사라림. 사라숲에서 법문을 설하셨다.
옛 부처님들이 법문을 설할 때는
그 자리에서 法界普照經(법계보조경)을
부처님이 방광하신 것은 普照三世法界門(보조삼세법계문).
사자빈신삼매에 드시고, 세법보조문 방광을 하시고,
알아듣지 못하니까 문수보살이 사람들을 데리고,
“가자.” 이러면서 53선지식을 찾아 나서면서,
문수사리가 그때 선재동자 인연을 얘기하지요?
선재동자는 잉태하자마자 그 집에는 칠보의 싹이 돋아났고,
칠보의 창고가 생겼고,
태어나자마자 500개의 그릇ㆍ그릇마다,
금강으로 된 그릇에 묘향이 가득했고,
선재동자의 내력들은, 이런 사람 정도 되면,
발심했기 때문에 이런 공덕을 가졌으니까
선재동자가 남쪽으로 가서 덕생동자유덕녀한테 법을 듣고,
大莊嚴樓閣(대장엄누각)에서 미륵을 만나서 홀딱 다 잊어버리고,
다시 문수를 만나서 마정수기 받고,
보현을 만나서 마정수기 받고 선재동자 할 일은 다 끝났지요.
다 깨치고 나니까 선재가 비로자나부처님이었습니다.
여러분이 비로자나부처님이고ㆍ제가 비로자나부처님이고요.
이래서 초발심시변정각(初發心時便正覺)!
“발심을 하는 것이 굉장히 힘들다.”고 얘기를 하는 겁니다.
약찬게를 통해서 화엄경80권 전체를 이렇게 간략하게,
어설프게 장시간 동안 고생 많았습니다.
꼭 열심히 하셔서 화엄경이 널리 전해 졌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참회합니다.
일체중생행복하여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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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一微塵中含十方 일미진중함시방
하나의 먼지 가운데 시방세계를 포함하고 있으며
☀ 깨어있는 화엄의 안목으로 볼 때 공간적인 것은 하나의 작은
먼지 속에 저 드넓은 시방세계가 다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신기하다.
앞의 “하나 가운데 일체며 많은 가운데 하나로다.
하나가 곧 일체며 많은 것이 곧 하나이다.”라는
구절에서 이미 일부의 뜻을 밝혔다.
세상의 좁은 안목으로 볼 때 언제나 많은 것과 적은 것,
큰 것과 작은 것, 높은 것과 낮은 것의 차별과 갈등과 반목이
너무나 심하여 사람들이 괴로움을 겪는데 이 경구 하나의 뜻을
잘 새겨서 삶에 적용한다면 훌륭한 처방전이 될 것이다.
하나의 먼지 가운데 시방세계를 포함하고 있거늘 어찌 작은
것이 작은 것이며 큰 것이 큰 것이겠는가.
只這一星兒中에 包含無盡法界하야 無量生佛이 淨土와 穢土를
지저일성아중에 포함무진법계하야 무량생불이 정토와 예토를
一一充滿하고 一一周遍하대 無欠無餘라 伊麽인댄 則只這一星兒에
일일충만하고 일일주편하대 무흠무여라 이마인댄 즉지저일성아에
還有許多限量麽아 無量法界에 還有許多伎倆麽아
환유허다한량마아 무량법계에 환유허다기량마아
다만 이 하나의 먼지 가운데 무궁무진한 법계를 포함하여 한량없는 중생들과 부처님이
정토(淨土)와 예토(穢土)에 낱낱이 충만하고,
하나하나에 두루 퍼지되 모자람도 없고 남음도 없다.
그러면 다만 이 작은 하나의 먼지에 또한 그 많은 양이 있는가?
한량없는 법계에 또한 그 많은 능력이 있는가?
☀ 저 앞에서도 잠깐 언급한 바가 있지만 설잠스님이
“이 작은 하나의 먼지에 또한 그 많은 양이 있는가?
한량없는 법계에 또한 그 많은 능력이 있는가?”라고
하셨으므로 같은 뜻이 될지 모르지만,
현대의 상식으로 해석하자면 손톱만 한 컴퓨터의 칩 속에
수억 만권의 책이 다 들어 있는 것과 같은 이치이며,
돌 조각에 수십억 년의 지구의 역사를 아는 이치이며,
사람을 위시한 모든 동물과 모든 실물의 작은 세포 하나하나에
그 사람 그 동물 그 식물의 모든 정보가 다 들어 있어서 얼마든지 복제하고 분화하는
것이 가능한 이치이다.
咄, 要大에 即大요 要小에 卽小라 一塵에 計十方할새 十方이
咄, 要大에 即大요 要小에 卽小라 一塵에 計十方할새 十方이
爲小요 以十方으로 量一塵할새 一塵이 爲大니
위소요 이십방으로 량일진할새 일진이 위대니
無緣起故며 無自性故라 爲甚如此오
무연기고며 무자성고라 위심여차오
昨夜에 金烏가 飛入海러니 曉天이 依舊一輪飛로다
작야에 금오가 비입해러니 효천이 의구일륜비로다
“돌(咄)” 크다면 곧 큰 것이요, 작다면 곧 작은 것이어서
하나의 먼지에서 시방세계를 헤아리므로 시방세계가 작음이 되고,
시방세계를 가지고 하나의 먼지를 헤아리므로
하나의 먼지가 큼이 되는 것이니,
연기(緣起)가 없기 때문이며 자성(自性)이 없기 때문이다.
어찌하여 이와 같은가.
“어젯밤에 해[金鳥]가 바다로 날아들었는데
새벽하늘에 여전히 하나의 둥근 바퀴가 되어 날아오르도다.”
☀ “돌(咄)”은 또 무슨 “돌(咄)”인가.
일체 존재의 이치를 바르게 깨달은 안목과 최첨단 과학적 지식과 기술을 가진 사람은
큰 것과 작은 것이 원융하여 걸림이 없고 많은 것과 적은 것이 또한 서로
상즉상입(相卽相入)하여 장애가 없다는 사실을 너무나 쉽게 알고 증명하여 보인다.
결코 신기하거나 이상한 일이 아니다.
해가 뜨고 지는 일이나 달이 뜨고 지는 일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그냥 일상사일 뿐이다.
10. 一切塵中亦如是 일체진중역여시
일체의 먼지 가운데서도 또한 이와 같도다.
☀ 앞에서 “하나의 먼지 가운데 시방세계를 포함하고 있다.”
하였는데 그 이치는 어느 특정한 먼지나 사물만 그런 것이 아니라 일체 먼지, 일체 사람,
일체 사물들이 한결같이 다 같다.
이 세상에서 어찌 특정한 사람이나 특정한 사물이 있겠는가.
그래서 진정으로 평등한 것이다.
只這十方法界는 个个히 是一微塵이어니와 一微塵도 亦不可得이니
지저십방법계는 개개히 시일미진이어니와 일미진도 역불가득이니
如光如影하며 亦如因陁羅網이 互相叅徹하고 重重交映일새
여광여영하며 역여인타라망이 호상참철하고 중중교영일새
一一寶中에 衆象이 無盡하니라
일일보중에 중상이 무진하니라
이러한 시방 법계는 낱낱이 곧 하나의 작은 먼지이거니와
하나의 작은 먼지도 또한 있을 수 없으니,
빛과 같고 그림자 같으며 또한 인드라 그물이
서로서로 참여하여 사무치며, 거듭거듭 주고받아 비추어서
하나하나의 보석 가운데 여러 모양이 다함이 없음과 같다.
☀ 지구가 크고 우주가 크고 우주에 있는 별들이 아무리 크고
많더라도 그것은 모두가 본래 하나하나의 작은 먼지로 이루어졌다.
우리가 사는 이 지구가 처음 생길 때 먼지가 하나하나 모여서 45억여 년의 세월을
지나면서 이렇게 되었고,
다른 많은 위성도 모두 그와 같은 과정을 거치면서 저렇게 하늘에서 빛나고 있다는
사실을 이제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이 지구와 다른 모든 별까지도 먼지가 모여 이뤄지고,
머물고, 변화하고, 다시 먼지로 돌아가서 없어지는 과정을 반복하고 있어서 작은
먼지 하나도 잡아낼 길이 없다.
그래서 실체는 없으나 분명하게 있는 빛과 같고 그림자와 같다.
그래서 마치 인드라 그물을 이루고 있는 낱낱 보석에 서로서로
비치고 있는 많고 많은 그림자가 무궁무진하지만 다만 그림자로
존재할 뿐이다.
一一佛國이 滿十方하대 十方이 入一도 亦無餘라 非擬議의 所知요
일일불국이 만십방하대 십방이 입일도 역무여라 비의의의 소지요
非智眼의 所見이니 何也오 經行과 及坐臥가 常在於其中이로다
비지안의 소견이니 하야오 경행과 급좌와가 상재어기중이로다
하나하나의 불국(佛國)이 시방세계에 가득히 차되 시방세계가
하나의 불국에 들어가더라도 또한 남음이 없다.
생각으로 헤아려서 알바가 아니요,
지혜의 눈으로도 볼 바가 아니니 무슨 까닭인가.
“걸어 다니고 앉고 눕는 것이 늘 그 가운데에 있도다.”
☀ 시방세계가 하나의 국토에 들어가는 이치를 생각으로 헤아려서 알 수 없으며,
지혜의 눈으로도 알 수 없다고 하였다.
보는 눈과 보이는 대상이 나눠지는 경계가 아니며 하나의 국토와 시방세계가
둘이 아닌 경계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걸어 다니고 앉고 눕는 것이 늘 그 가운데에 있도다.”라고 한 것이다.
여기까지는 공간적인 것이 원융하여 걸림이 없음을 설파하였다.
아래는 시간적으로 원융하여 걸림이 없음을 나타낸다.
11. 無量遠刧即一念 무량원겁즉일념
한량없이 오랜 겁이 곧 한순간이요
☀ 한량없이 오래고 오랜 겁이 곧바로 한순간인 것은 아무리 길고 긴 억만년의 시간이라
하더라도 아주 짧은 한순간을 떠나서는 존재할 수가 없어서 그 긴 시간이 곧 한순간에
속해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한순간과 한량없는 오랜 겁이 같은 것이며 하나인 것이다. 공간적이거나
시간적인 이야기가 그냥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화엄의 안목에 기준을 두고 이해해야 하는 차원이다.
如前所說하야 微塵과 十方이 無有自性體相故로 一切古今의
여전소설하야 미진과 시방이 무유자성체상고로 일체고금의
三世諸佛이 從初發心으로 立普賢願하야 窮未來際히 不離如今이라
삼세제불이 종초발심으로 입보현원하야 궁미래제히 불리여금이라
앞에서 설한 바와 같이, 작은 먼지와 시방세계가
자성의 체와 상이 없기에, 일체 고금의 삼세 제불이
처음 발심(發心)함으로부터 보현의 원을 세워
미래의 끝이 다하도록 지금을 떠나지 않는 것이다.
☀ 아주 작은 미세먼지가 되었든 우리가 사는 이 지구와 지구의 수천수만 배나
큰 별들과 은하계 전부가 되었든 그 실상을 찾아보면 어디에도 자성의 체와 상이
없기에 그 위에 거주하고 있는 부처나 중생들의 실상도 또한 그 자성의 체와 상이
없기에 모든 부처님이 발심해서 성불하고 다시 보현의 행원을 일으켜서 미래제가
다하도록 교화하는 일도 지금의 한순간 한 생각을 떠나지 않는다.
或謦欬一聲과 或彈指一下와 乃至楊眉瞬目이 無不是諸佛方便이니
혹경해일성과 혹탄지일하와 내지양미순목이 무부시제불방편이니
且道하라 還相逶悉麽아 不離當處하야 常湛然하니 覓則知君컨댄
차도하라 환상위실마아 불리당처하야 상담연하니 멱즉지군컨댄
不可見이리라
불가견이리라
혹은 기침 소리 한 번이나, 혹은 손가락 퉁기는 것 한번에서
내지 눈썹을 찡긋하고 눈을 깜박임에 이르기까지
모든 부처님의 방편 아님이 없으니 어떻든 말해보라.
대체 자세히 알고 있기나 하는가.
“이 자리를 여의지 않고 늘 담연(湛然)한 것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을 찾아보아야
볼 수 없음을 그대는 알리라.”
☀ 한마음의 이치를 알고 그것만을 거량 하는 선객들은 기침 소리 한 번이나 손가락을
퉁기는 것이나 눈썹을 찡긋하고 눈을 깜박이는 것이나 주장자를 들어 보이는 것이나
고함을 치는 것이나 손가락을 들어 보이는 것 등등이 모두 그 한 물건임을 보라고 하는
방편이다. 그러나 그 한 물건이 그토록 분명하고 명확하지만 실체를 찾아보면 그 누구도 찾을 수 없을 것이다.
이것이 그것의 실상이다. 역시 영가스님 증도가의 일절이다.
12. 一念卽是無量劫 일념즉시무량겁
한순간이 곧 한량없는 겁이니라.
☀ 한량없이 오랜 겁이 곧 한순간이기 때문에 한순간이 곧 한량없는 겁이 되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다시 말하면 한순간과 한량없는 겁은 곧 하나이며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순간순간 안에 수많은 세월이 낱낱이 포함된 것이 마치 잠
간 꿈을 꾸는데 수십 년의 일생이 지나가는 것과 같다.
그리고 그 꿈속에는 수십 년의 세월만 있는 것이 아니라 수십 년 동안 격은 사건과
무수한 공간들과 하늘과 해와 달과 별들까지도 다 들어 있다.
우리가 현실에서 보고 듣고 느끼고 아는 모든 것들이 다 들어 있다. 참으로 신기하지
않은가.
即今에 一念이 亘徹十世하고 橫遍十方일새 建立一切諸佛하야
즉금에 일념이 긍철십세하고 횡편시방일새 건립일체제불하야
同時에 度生하고 行布一切衆生하야 同時에 滅度라
동시에 도생하고 행포일체중생하야 동시에 멸도라
지금의 한 생각이 십세(十世)에 걸쳐 사무치고
시방에 두루 퍼지는 것이니, 일체 모든 부처님을 건립하여
동시에 중생을 제도하고, 일체중생을 펼쳐서 동시에 열반[滅度]하는 것이다.
☀ 꿈이 그렇듯이 현실의 우리의 한 생각도 그와 같아서 부처님의 세계에서 펼쳐지는
즉 중생들을 제도하는 온갖 일들과 중생들이 한순간에 다 같이 열반에 드는 일들까지도
지금의 한순간에 다 포함되어 있다.
마치 곡식의 씨앗이나 사람의 세포 안에 모든 것이 다 있어서 추호도 부족함이 없이
그대로 나타내 보이는 것과 같은 것이다.
非古非今이며 非新非舊니 且道하라 無量遠劫에 還有時分也無아
비고비금이며 비신비구니 차도하라 무량원겁에 환유시분야무아
無影樹下에 合同船이어늘 琉璃殿上에 無知識이로다
무영수하에 합동선이어늘 유리전상에 무지식이로다
옛날도 아니고 지금도 아니며, 새것도 아니고 오랜 것도 아니니,
아무튼 말해보라.
한량없는 오랜 겁에 또한 시간이라는 것이 있는지.
“그림자 없는 나무 아래에서 같은 배에 올랐는데 유리의 전각 위에 아는 이 없다.”
☀ 깨달음의 안목으로 보면 공간이나 시간이 전혀 다른 차원이다. 실은 새롭게 다른
차원이 되는 것이 아니라 본래 그와 같은 차원으로 존재하는 것을 알게 되고 보게 된다.
“그림자 없는 나무 아래” 운운은 벽암록 제18칙 충국사의 이음새 없는 탑[忠國無縫塔]
이라는 내용의 글이다.
설잠스님은 선의 안목이 높아서 인용한 글들이 영가스님의 증도가(證道歌)를 위주로 한
모두가 선문(禪文)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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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복더위에 수고하섰습니다.
법채강녕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