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에서 활동하는 사람들, 그리고 청소년인권활동가네트워크에서 활동하는 일부 활동가들이 참가해서 만든 청소년인권서가 나왔습니다. ^^ 개굴 활동가의 서평으로 소개드립니다.>
미성숙의 봉인을 푼 자들, 인권을 넘보다
- 개굴 (인권교육센터 '들' 상임활동가)
힘있는 자들에게서 아량이라도 기대하려면 최대한 몸을 낮춰야 한다. 구걸하는 부탁하는 모양새를 취해줘야 아량을 베풀
맛이 생기지 않겠는가. 하소연이라도 해야 동정이라도 얻을 수 있지. 그런데 요놈들 좀 보게. 이 '넘보는
것들'은 한낱 아량 따윈 동정 따윈 구걸하지 않는다. "힘들어요" 하소연은커녕 "우리 인권 좀
보호해주세요" 매달리지도 않는다. "동등하게 대우하지 않으면 못 배기게 해주마!" 이런 당돌한 태도로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것들이 '것들'이기를 거부하고 곧장 동등한 듯이 행동한다. 그렇게 구원을 기다리지 않고 스스로 봉인을 풀고
나온 청소년들이 하나의 책으로 우뚝 다가와 우리 앞에 섰다.
빈곤한 현실에선 책 하나도 변화의 기폭제가 될 수 있는 법이다. 청소년인권에 관한 책이라면 2000년 출판된
<인권은 교문 앞에서 멈춘다>가 거의 유일무이했던 현실에서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것들 인권을
넘보다ㅋㅋ>의 출판은 반갑기 이를 데 없다. 광막한 대지 위에 봉우리 하나가 외롭게 서 있었다면, 청소년인권운동이
열심히 발품을 팔고 이빨을 깐 결실이 또 하나의 봉우리로 세워졌다. <...넘보다>는 당연하게도
<...멈춘다>를 훌쩍 넘어선다. <멈춘다>가 학생인권 문제에 착목해 학교안 구조와 문화를 파헤친
것이라면, <...넘보다>는 지금까지 제기된 청소년 인권 의제를 거의 아우르는 종합 해부서다.
<멈춘다>가 한 비청소년이 인권의 프리즘으로 학생인 청소년의 삶을 해석하고 변화를 촉구한 것이라면,
<넘보다>는 청소년들이 직접 인권의 프리즘으로 자기 삶을 말하고 말함으로써 변화를 일궈낸다.
'청소년의 반대말은 자유.' 자유를 빼앗긴 자들은 인권을 넘보며 말한다. 청소년이 문제인가?
사회가 문제다. 이딴 것도 교육이라고?! 우리를 계몽하겠다는 저 교육의 위선 따위엔 속지말자. 학생간 폭력만, 과잉체벌만
문제로 바라보는 틀부터가 폭력이다. 우리에게 뭐가 좋은지 제발 너희들끼리 논하지 마. 청소년은 쉽게 휩쓸리고 위험한
존재라고? 청소년은 정치적 동물이다. 야하면 안 돼? 우리에겐 금지된 것에 접근할 권리가 있어. 부모의 소유물이기를
거부하는 순간, 그 다음엔 무엇이 기다리고 있지? 집이 가난하지 않다고 청소년도 가난하지 않은 건 아닌 아니다. 청소년은
하나의 계급일 수 있다! 우리를 보호해주겠다고? 우리를 보호하지마, 우리를 해방시키지도 마, 우리가 알아서 할게.
이 책을 집어들 정도라면 청소년인권에 어느 정도 관심이 있는 사람일 것이다. 그러나 그 사람들조차 이 발칙한 책의
마지막 장을 덮을 때쯤이면 양극단으로 갈라설지도 모른다. "아무리 귀엽게 봐주려
해도 뭔가 불편해지는 건 어쩔 수 없네요. 살짝 현기증도 이는 것이......" 다른 한편 탄성을
내지르는 이도 있을 수 있다. "주장 한번 시원시원하군요. 십년 묵은 체증이 확 내려간 느낌입니다. 이 녀석들 참
기특해요." 마지막 장을 덮고 나니 책이 다시 말을 걸어온다. "이 책이 불편함을 불러일으켰다면 다행입니다. 약자로
규정된 이들의 당당함은 불편함을 야기하는 법이니까요. 이 책을 보고 우리를 '기특'해하는 당신에게도 묻습니다.
우리를 기특해할 수 있다는 그것. 그것조차 우리의 고통과 연결되어 있는 특권 아닐까요?" 기특해하는 그
시선에조차 오래된 권력관계의 흔적이 묻어있음을 발견했다면,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제대로 읽은 것
아닐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