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텃밭시인학교 시창작 교실 요강
텃밭의 정신은 각양각색의 씨앗을 존중하는 터입니다. 개인의 창의와 개성을 꽃 피울 아름다운 세상을 열어갈 사람을 기다립니다. 《텃밭시인학교》는 2024년 시창작교실을 개강합니다. 즐거운 시 창작이론과 행복한 시쓰기를 통한, ‘나와 세상과의 멋진 연애하기’, 또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섬 꿈꾸기’에 함께 할 詩의 동반자를 찾습니다.
일시 : 매주 월요반 · 화요반(10시 30분~12시 30분) / 첫째 시간 시 이론 / 둘째 시간 퇴고 및 토론 수업 / 월 8만원 / 이메일 수업 진행
장소 : 텃밭시인학교 사무실(수성구 무학로 187 (지산동, 녹원맨션) 101동 102호
강사 : 김동원 시인( 010-3276-8034)
특강자로 모신 분 : 김상환, 김석, 장하빈, 홍승우, 이승주, 이진엽, 박지영, 이자규, 변희수, 박소유, 김창제, 김청수, 박이화, 박정남, 이규리, 이하석, 이태수, 정하해, 류인서, 이진엽 시인
교재 : ◆ 김동원 평론집 『시에 미치다』 ◆ 김동원 편저 『신춘문예 100년사』
◆김동원 편저 『한국서정시 200선, 1권 2권』 ◆ 김동원 평론집 『시집사리詩集思理』
시와 사유 · 하나
모든 시는 그 스스로 ‘유일한 시’로 태어난다. 모든 시는 태어나는 순간 항상, 최초의 단 한 작품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태어남과 함께 그것은 어디론가 떠밀려 간다. 태어남 자체가 격랑이기 때문이다. ‘유일한 시’로서의 비밀은 체험됨과 동시에 사라져 간다. 그것은 시인에게서 빠져나간다. 이것이 언어의 본질이다. 언어들은 일렁이는 상태로 존재함으로써 태어나는 순간을 끝없이 재현해 내지만 ‘유일한 시’는 끝내 말해지지 못한다. ‘유일한 시’라고 말해지는 상태조차 파도가 일고 있는, 끝없이 미끄러지는 격랑의 순간에 불과한 것이다. … 시는 시인이 아는 것을 쓰는 것이 아니라 모르는 것을 쓰는 것이다. 시인은 모르되, 시는 알고 있는 것, 그것이 시이다. 시인이 앎으로부터의 도피를 해야 하는 까닭은 그가 한 편의 시 속에서 매번 기성의 것을 배반하고 새로운 발견을 해야 하는 현행범이기 때문이다. … 시인은 덫을 만드는 사람이다. 그 덫에는 자신만이 걸려든다. 시를 썼을 때 그는 그 덫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 펜을 잡고 언어와 씨름하고 있을 때, 그는 자신이 쓰고 있는 시가 완전한 형태로 존재하는 어떤 시에 근접하고 있음을 느낀다.
― 이수명,『횡단』(민음사, 2011, p49) 중에서
시와 시인
시는 문장의 가장 심오한 것(유우석,「董氏武陵集紀」)이다. 시는 듣는 것이 아니라 들리는 것이다. 보는 것이 아니라 보이는 것이다. 오는 것이 아니라 이미 와 있는 것이다. 미치지 않으면(不狂) 미치지 못하는 것(不及)이 시다. 언어로 전하고 마음으로 받는 것이 시감(詩感)이다. 하여, 시가 무(巫)에 접하면 신(神)이 보인다. 명시는 보이지 않기에 들리고 들리지 않기에 보인다. 신품은 행간 사이에 귀신이 지나간 흔적이 있다. 대저, 천지창조의 시법은 무량하다. 모든 사물의 근본은 하나지만 저마다 생긴 모양이 다르듯, 시법은 한곳으로 귀착되나 그에 이르는 길은 천만 갈래이다. 있는 것은 있는 것이 아니요, 없는 것은 없는 것이 아닌 세계, 그것이 시다. 유(有)가 유가 아니며 무(無)가 무가 아니듯, 시는 물질이자 에너지이다. 언어 이전의 사물과 실재의 비밀은 억겁을 통해 모였다 흩어지고 흩어졌다 다시 모이는 생기(生氣, 生起)에 있다. 시는 이런 생생한 기운과 일어남, 사건 그 자체다. 찰나에 떠오르는 생각의 기미와 기색, 기척은, 시인이 아니면 잡을 수 없다. 하여 시인은 시신(詩神)과 접하거나, 시마(詩魔)에 들리어 귀신도 반할 귀시(鬼詩)를 짓거나 귀경(鬼景)을 펼쳐 보인다. 시의 예지가 번뜩이는 광인이야말로 다름 아닌 시인이다. 시구 한 자를 빼면 우주가 무너지고, 시구 한 자를 더하면 한 우주가 생겨나는 묘처가 시이다. 시는 한바탕 무의식의 꿈이라도 좋다. 그 꿈을 깨고 나면 형(形)은 상(象)에 숨고, 상(象)은 다시 형(形)에 숨느니. 형상은 호흡에, 호흡은 형상에, 이것은 저것에, 저것은 다시 이것에 숨는, 중중무진(重重無盡)의 인연이 바로 시다.
하여, 시는 보기는 하되 보지 못하고, 듣기는 하되 듣지 못한다. 사물은 침묵하고 인간은 말한다. 시인은 사람도 아니고 귀신도 아니며, 이승과 저승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음허(陰虛)한 존재이다. 시는, 행간마다 화두를 뚫어야 보이는 독참(獨參)이다. 하여 시는, 시를 만나면 시를 죽이고, 시인을 만나면 시인을 죽여야만 관(觀)을 얻는다. 시를 말하는 자는 시를 모르고, 시를 아는 자는 말하지 않듯, 시의 경계는 선(善)도 되고 악(惡)도 된다. 시는 도끼를 갈아서 바늘을 만드는 과정이다. 시인은 사물과 언어가 관통하는 고통의 통로다. 시는 시니피에와 시니피앙 사이에서 사라진다. 하여, 시의 무의식은 언제나 의식의 터진 틈 사이에서 여러 겹으로 흔들거린다.
시가 태어난 자리가 본디 꽃자리이다. 시는 시시각각 휘황찬란하다. 흉중에 젖은 불이다. 천 갈래 만 갈래 찢어지고 갈라지다, 끝내 한곳에 모인 것이 시다. 시의 심장은 고인 핏속에 슬은 구더기다. 사람살이의 갈라진 바닥이 시다. 시적 진실은 과학적 사실 너머에 존재한다. 시는 시 아닌 것을 시로 여긴다. 겨울 흰 눈 속에 핀 매화가 꽃의 진경이듯, 시는 모순과 갈등 속에 핀 언어의 꽃이다. 시는 인간 영혼의 바다를 정화하는 소금이자 천기누설이다. 하여, 시는 신(神)이다. 시인은 천지만물 속에 내재한 신을 해방시킨다. 영원의 입장에서 보면, 사물간의 연기(緣起)는, 서로 동화하고 드나들며, 이어지고 변화한다. 이런 세계에서는 모든 사물 간 걸림이 없다. 즉,‘하나가 곧 일체이고 일체가 곧 하나’(一卽多 多卽一)이다. 하여, 우주 일체는 그 어느 하나라도 홀로 있거나, 일어나는 일이 없이, 모두가 끝없는 시공 속에서 서로의 원인이 되며, 대립을 초월하여, 하나로 융합한다. 하여, 아무리 아름다운 시일지라도 궁극엔 헛것이며, 그 헛것의 본질은 비극적이다.
“무릇, 세상 만물은 무엇인가 평안함을 얻지 못하면 소리 내어 우는 법이다. (大凡物不得其平則鳴.)”(한유韓愈, 당 768~824년) 하여, 시는 천지만물을 위해 울어 주는 곡비(哭婢)다.“시란 궁한 연후에 나온다.(詩窮而後工)”(구양수歐陽脩, 송 1007~1072년) 시의 밥그릇은 텅 빈 기물이다. 시는 첫사랑의 흰 눈이자 이별의 폭설이다. 이것을 말하는가 하면, 저것에 가 있고, 저것을 말하는 가하면, 이미 그것 너머에 존재한다. 아득한 마음의 천 길 벼랑이‘자아’와‘타자’의 거리이자, 그리움의 무늬요, 외로움의 공간이다. 시는 태초의 집이다. 유한한 세계를 짜올려 무한을 짓는다. 시는 언어 밖에 있고 언어 안에 있다. 수십 억 년 지었다 부순, 몸 가진 것들의 창조와 몸 없는 것들의 파괴이다. 시는 몸의 감옥을 부수고 뛰쳐나와 길(道)의 자유를 얻는다. 시는 색채다. 원형으로 가는 순결의 흰색이자, 모든 색이 다 집결한 검은색이다. 하여, 대상을 욕망하는 천지간의 무늬다. 시는 촉감이다. 바람의 악기로 직조된 음이다. 만물의 선율로 그려낸 이미지이다. 서정시는 답답한 가슴이 뻥 뚫리는 구멍이다. 하여, 서정시는 내 몸을 관통한 접신이자 신명이다. 지극(至極)을 통해 울리는 종소리이다. 시는 환(幻)이다. 잠깐, 허공에 보였다 사라지는 복사 꽃빛이다. 아니, 꽃빛 너머에 흔들리는 비바람이다. 시는 무너진 억장이다. 언어의 지문이 문드러져버린, 무(無)의 손바닥이요 발바닥이다.
곰곰 생각해보면, 시는 생사(生死)의 그림자놀이다. 시는 선(禪)이면서 禪이 아니요, 시이면서 詩가 아니다. 하여, 시란 언어 이전도 아니요, 언어 이후도 아니다. 시는 추상을 통해 구상으로 직진하고, 구상을 통해 추상을 초월한다. 시는 언어를 통해 이 세상 모든 더러운 색(色)과 공(空)의 욕망을 대신 닦아 준다. 알고 보면, 언어는 우주의 욕망의 기호다. 상극을 뚫어 상생을 추구하며, 주관과 객관, 안과 밖, 중심과 주변의 이원 구조를 부정한다. 하여, 물과 불의 갈등이 아니라 태극의 조화요, 율려이다. 둘로 나뉘지도 않고 하나에 집착하지도 않는 뫼비우스의 띠다. 하여 시는, 역(易)의 오행 속에서 한바탕 우주와 함께 배꼽 빠지도록 웃다가는, 몸짓들의 풍자요 해학이다. 그렇다. 시는, 사물의 기미(幾微)들과 세계의 기척들을 통해‘지금 여기’를 자각한 꿈 꾼 자의 노래다.
―김동원 시집, 『빠스각 빠스스각』, 그루, 2022, pp.79~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