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핑몰의 피아니스트
파울로 코엘료(Paulo Coelho)
바이올리니스트인 친구 우르슐라와 함께 쇼핑몰을 어슬렁거리던 때였다. 헝가리 태생인 우르슐라는 국제적으로 명성이 높은 오케스트라 두 곳에서 수석 바이올리니스트를 맡고 있다. 갑자가 그녀가 내 팔을 잡아 당겼다.
“들어봐요.”
나는 귀를 기울였다. 어른들 목소리, 아이 울음소리, 전자제품 매장의 TV 소음, 타일 바닥에 부딪히는 구두 발짝소리, 그리고 어느 쇼핑몰에서나 흘러나오는 평범한 음악소리가 전부였다.
“대단하지 않아요?”
나는 대단하기는커녕 별 특별한 것도 없는 소리밖에 안 들린다고 대답했다.
"피아노 말이예요!"
그녀가 실망한 표정으로 나를 보았다.
“저 피아니스트 정말 대단해요!”
“음반을 틀어 놓은 것이 아닐까요?”
잘 들어보니 직접 연주하는 소리가 확실했다. 쇼팽의 소나타였다. 집중해서 듣다보니 피아노 소리가 주변의 소음을 차단하는 듯이 느껴졌다. 우리는 사람들과, 바겐세일을 하는 상점들과, 광고에 의하면 아직 나와 당신에게만 없는 물건들이 잔뜩 쌓인 통로를 지나 식당가에 도착했다. 사람들이 음식을 먹고 대화를 나누고 토론을 하고 신문을 보고 있었다. 그곳에선 쇼핑몰에서 마련한 고객 특별행사가 열리기도 하는데, 그날의 주인공은 피아노와 피아니스트였다.
피아니스트는 쇼팽의 소나타를 두 곡 더 연주한 후, 슈베르트와 모차르트로 넘어갔다. 서른 살 남짓으로 보이는 연주자는 구 소련령인 그루지아의 유명한 음악가라고 했다. 아마도 일자리를 찾다가 굳게 닫힌 취업문 앞에서 좌절하고 체념한 후 이곳을 택한 것이리라.
그런데 그는 정말 이곳에 있는 걸까? 그의 눈은 음악이 탄생한 마법의 세계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의 손은 그의 내면에 깃든 사랑과 그의 영혼, 열정, 그가 들려 줄 수 있는 최상의 연주, 수년 간 전력을 다해온 고된 연습과 공부의 과정을 우리와 나누고 있었다.
그러나 단 한 가지, 그가 모르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아무도, 그 누구도 그의 연주를 들으려 쇼핑몰에 온 게 아니라는 사실이다. 사람들은 소비하고, 먹고, 시간을 때우고, 윈도쇼핑을 하고, 친구를 만나기 위해 이곳에 왔다.
몇몇 사람이 우리 곁에서 큰 소리로 떠들다가 총총이 사라졌다. 그러나 피아니스트튼 아무 것도 알아차리지 못하고 여전히 모찰트의 천사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그는 자신에게 두 명의 청중이 생긴 것도,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바이올리니스트가 눈물을 흘리며 그의 연주를 듣고 있는 것도 의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언젠가 우연히 들어갔던 성당에서 만난, 신을 위해 성가를 부르던 처녀가 떠올랐다. 그곳은 성당이었으나 그녀의 노래에는 나름의 의미가 있었다. 하지만 여기서는 아무도 피아니스트의 연주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아마 신조차 그랬을지도 모른다.
아니다. 그렇지 않다. 신을 듣고 있었다. 신은 피아니스트의 영혼과 손에 현존하고 있었다. 주위의 반응이나 보수에 상관없이, 피아니스트가 혼신을 다해 연주하고 있는 것이 그 증거이다. 마치 그곳이 밀라노 스칼라 극장이나 파리의 오페라 하우스라도 되는 듯이, 그것이 자신의 기쁨이고 운명이며, 존재이유인 듯이.
순간 내마음 속에서 그에 대한 깊은 경외와 존경심이 우러나왔다. 그는 내게 아주 중요한 가르침을 일깨워 주었다. 우리 각자에게 실현해야 할 신화가 있다는 것, 바로 그것이었다. 타인이 우리를 믿어주든 말든 비판하거나 무시하거나 봐주거나 상관없이 우리는 그것을 수행한다. 그것이 이 땅에 태어난 우리의 소명이고, 모든 기쁨의 원천이므로,
피아니스트는 모차르트의 다른 곡으로 연주를 마무리 했고, 그제야 우리의 존재를 알아 차렸다. 그는 우리에게 공손히 고개를 숙여 인사했고, 우리도 그렇게 했다. 그리고 그는 다시 자신만의 낙원으로 돌아갔다.
그를 그곳에 남겨두는 게 최선이리라. 이제 어떤 세속적인 것도 닿지않는, 심지어 우리의 수줍은 박수소리마저 들리지 않는 그곳에,
그는 우리 모두에게 귀감이 되었다. 왜 내 일엔 아무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을까 하는 의문이 들 때, 그를 떠올려 보자. 그는 연주를 통해 신과 대화했고, 그 순간 다른 그 무엇도 중요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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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울로 코엘료 Paulo Coelho>
1947년에 리우데자네이로에서 출생하여 음악 작곡가로 브라질 음악에 큰 영향을 미쳤다. 저널리스트, 록스터, 극작가, 세계적인 음반회사의 중역들 다양한 경력을 가졌다. 1986년에 이 모든 것을 내려 놓고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순례를 갔다.(중세부터 유명한 순례지 ) 이때의 경험이 큰 영향을 주었다.
이 경험을 「순례자」로 발표했다. 이듬해에 「연금술사」로 세계적인 작가의 반열에 오른다. 유엔평화대사를 하다가 2006년에 다시 순례를 하고 2010년에 「알레프」를 발표했다. 코엘료의 책은 168개국 73개 언어로 번역되어 1억 3천 5백만 부가 팔린, 우리 시대의 가장 사랑받는 작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