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thout You - Harry Nilsson
No I can"t forget this evening
Or your face as you were leaving
But I guess that"s just the way
The story goes
You always smile but in your eyes
Your sorrow shows
Yes it shows
No I can"t forget tomorrow
When I think of all my sorrow
When I had you there
But then I let you go
And now it"s only fair
That I should let you know
What you should know
I can"t live
If living is without you
I can"t live
I can"t give anymore
I can"t live
If living is without you
I can"t give
I can"t give anymore
Well I can"t forget this evening
Or your face as you were leaving
But I guess that"s just the way
The story goes
You always smile but in your eyes
Your sorrow shows
Yes it shows
I can"t live
If living is without you
I can"t live
I can"t give any more
I can"t live
If living is without you
I can"t give
I can"t give anymore
I can"t live
If living is without you
I can"t live
I can"t give any 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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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오늘 저녁을 결코 잊을 수 없어요
떠날 때의 당신의 얼굴도요
하지만 세상사가 다 그렇다고
생각해요
당신은 항상 미소를 짓지만
당신의 눈은 슬픔에 젖어 있어요
예 슬픔에 젖어 있어요
전 내일을 결코 잊을 수 없어요
저의 모든 슬픔을 생각할 때
그곳에서 당신과 함께 있을 때
하지만 전 당신을 보내 드려요
그리고 지금 당신이 알아야 하는 것을
알게 하는 것은
옳은 거예요
전 살아갈 수 없어요
당신이 없는 삶이라면
전 살아갈 수 없어요
전 더 이상 베풀 수 없어요
전 살아갈 수 없어요
당신이 없는 삶이라면
전 베풀 수 없어요
전 더 이상 베풀 수 없어요
글쎄요 전 오늘 저녁을 잊을 수 없어요
떠날 때의 당신의 얼굴도요
하지만 세상사가 다 그렇다고
생각해요
당신은 항상 미소를 짓지만
당신의 눈은 슬픔에 젖어 있어요
예 슬픔에 젖어 있어요
전 살아갈 수 없어요
당신이 없는 삶이라면
전 살아갈 수 없어요
전 더 이상 베풀 수 없어요
전 살아갈 수 없어요
당신이 없는 삶이라면
전 베풀 수 없어요
전 더 이상 베풀 수 없어요
전 살아갈 수 없어요
당신이 없는 삶이라면
전 살아갈 수 없어요
전 더 이상 베풀 수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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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thout You - Harry Nilsson
스웨덴계 아버지와 아일랜드계 어머니 사이에서 뉴욕의 부르클린에서 태어나 켈리포니아에서 자란 헤리 닐슨은 이제 71세 노년의 나이로 접어들었다
1941년 6월 15일, 뉴욕의 브룩클린에서 출생한 해리 에드워드 닐슨(Harry Edward Nilsson)은, 소년 시절을 로스엔젤레스에서 운동 선수로 활동하면서, 레이 찰스의 음악에 심취해 뮤지션의 길로 들어선 싱어 송 라이터이다.
그후 해리 닐슨은 야간은행의 컴퓨터 기사로 일하면서, 선전 레코드의 대리업을 부업으로 했다. 또한 이 부업과 함께 곡을 만들어 뮤지션들에게 주기도 했는데, 그는 이 때문에 자주 레코드 스튜디오를 오가며, 자신이 만든 노래의 반응을 살폈는데, 이때 프로듀서로 명성이 높았던 필 스펙터를 알게 되었으며,
필 스펙터의 도움으로 해리 닐슨의 곡이 유명 뮤지션들에 의해서 발표될 수 있었는데, 그룹 Three Dog Night가 불러 히트시켰던 <One>을 비롯해, 야드버즈의 <Ten Little Indians>, 그리고 몽키즈의 <Cuddy-Toy> 등을 만들어, 일약 송 라이터로 각광을 받기 시작했다.
그리고 1967년 12월에는 RCA 레코드사와 전속 계약을 맺고 데뷰 앨범 「Pandemonium Shadow Show」를 직접 발표했는데, 여기에는 11곡의 비틀즈 넘버가 실려 있는데, 비틀즈의 멤버인 존 레논을 감동시키기도 했다.
그 뒤로 계속해서 1969년에 영화 『한밤의 카우보이』의 타이틀 곡 <Everybody's Talkin'>을 불러 히트시키면서 그는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싱어 송 라이터이며 프로듀서로 인정받았다
. 이 곡은 두번째 앨범은 「Aeriar Ballet」에도 수록되어 있으며, 세번째 앨범 「Harry」를 발표하고부터는 랜디 뉴먼의 작품을 부르면서 「Nilsson Sings Newman」이란 앨범을 발표하기도 했다.
지금까지 9장의 앨범을 발표하고 있는 해리 닐슨은, <Without You>로 오래도록 명성을 지속하여 오고 있지만, 수퍼 스타의 지위는 얻지 못하고 작곡가로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러한 이유는 스테이지에서 한번도 공연을 벌이지 않은 데 있다고 할 수 있다.
스웨덴의 서커스단을 끌고 이민해 온 그의 할아버지의 피를 이어 받아서인지 닐슨의 방랑벽은 12세 시절부터 고향인 뉴욕을 등지고 그 반대방향의 종착역인 LA로 향하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3년여의 사춘기 시절을유랑으로 보낸 그는 15세가 되던 해에 LA의 파라마운트 극장의 안내원으로 고용이되면서 꿈에 그리던 스타들을 직접 볼수 있었으며 자신도 이미 스타의 길을 걷기 시작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17세가 된 닐슨은 스타가 되기에는 너무 불안한 자신을 깨닫게 되었고 뭔가 현실적인 기술을 배워야겠다는 생각 끝에 컴퓨터 프로그래머가 되기위해 학원에 다니기 시작했으며,
7년간의 피나는 노력끝에 24세가 되던해야 Va-n Nuys 에 있는 First National 은행에 입사하는 보람을 얻어낸다.
닐슨은 매일 2억불에 이르는 거액을 체크하는 유능한 은행원이 되었으며 아울러 생활 때문에 오는 걱정거리는 사라졌다.
허나 그의 집념은 12세에 집을 나올 때와 조금도 변함이 없었으며 프로그래머를 택한것은 연예인이 되기 위한 경제적인 디딤돌에 불과했다.
닐슨은 틈나는대로 작곡을 했으며. 완성된 노래는 데모 테잎에 차곡차곡 수록해 놓는 작업을 게을리 하지 않았는데. 그의 솜씨는 순식간에 알려져 휠 스펙터, 허브 앨퍼트, 뉴 크리스티 민스트렐즈 등의 초 수퍼스타들이 다투어 닐슨의 곡을 취입하기 시작했다.
1967년 닐슨은 3년간의 프로그래머 시절을 청산하고 꿈에 그리던 스타의 시발점에 26세의 나이로 도달하기에 이르렀다.
굴지의 RCA 그룹에 스카웃된 닐슨은 67년에 "Pandemonium Shadow Show" 앨범으로 데뷔했으며, 이후 4년동안 "Aarial Ballet" - "Harry" - "Nilsson Sings Newman" - "The Point!"- "aerial pendem-onium ballet" 등의 연작을 발표하면서 서서히 스타덤에 오르고 있었다
특히 더스틴 호프먼의 신기에 가까운 연기가 우리의 가슴 깊숙히 자리잡게 만든 뉴 아메리카 시네마 역작 "미드나잇 카우보이" 의 주제곡 "Everybo-dy's Talkin" 을 (69년) 닐슨이 담당하므로써 그의 처절한 재능을 세인에게 알린 출세작이 되었다.
그의 다양하면서도 획일적인 이미지는 전천후 연예인으로 팬들에게 확고한 개성을 심어주었음은 두말한 나위가 없다.
불후의 연가 "Withot Yopu"를 필자가 처음 접했던것은 무려 21년전인 1971년의 후레쉬맨의 시절 X-마스 였다.
당시 닐슨의 그 처절한 창법으로 받은 충격은 지금까지 생생하게 자리잡고 있으며 "Without You" 가 담긴 명반 "Milsson Schmilssom" (7집: 1971.12) 의 감동은 영원히 잊을수 없다.
닐슨의 청아한 피아노 전주로 시작되는 신선한 오프닝 넘버 "Gotta Get Up", Klaus Voorman 의 빈틈없는 어쿠스틱 리듬기타에 자동차의 시동거는 이펙트가 멋지가 어우러지는 "Diving Along" 닐슨의 탁월하며 무디한 오르간 반주에 맞추어 아무도 침범치못할 특유의 보컬이 번뜩이는
"Early in the morning"솜털같이 부드러운 달노래 "The moon beam song"절규의 로커빌리 "Down" 설명이 필요없는 "Without you" 영상언어적 이색작 코코넛 빌리 조엘에게 결정적 영향을 준 렛츠 굿타임스 롤.
전설의 그룹 "Derek & The Dominos" 의 드러머였던 짐고든이 타악기의 한계를 초월해주는 "Tump into the fire" , "조지팁톤의 오키스트레이션과 함께 대미를 장식해주는 이별가 I'll Never Leave you" 등 열손가락의 트랙이 어느한곳 깨물어 아프지 않은곳 없듯 주옥같이 점철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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