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야는 터키 이슬람 메블라나 교단의 본산지이다. 메블라나 교단은 메블라나 루우미가 12세기에 창시한 이슬람 수피 교단 중 하나이다. 메블라나는 유일신 알라와 만나기 위해서는 욕망과 집착을 버리고, 마음을 비워야 하며, 금욕과 고행을 통한 끊임없는 기도생활을 해야 한다고 보았다. 다소 신비주의적 경향을 띠며, 터키 특유의 이슬람이라 할 수 있다. 중앙아시아 발흐(지금의 아프간 북부)에서 태어난 메블라나는 득도를 위해서는 출가해 코란을 육신의 눈으로가 아니라 마음의 눈으로 읽고, 궁극적으로 알라 신과의 만남을 추구할 것을 주창했다. 메블라나 하면 떠올리게 되는 것은 더비쉬(dervish, 세마)라고 부르는 수도승들의 춤인데, 이것은 일종의 신과의 교통에 이르는 수행 방법이다. 메블라나사원에서 원무(圓舞)의 한 형태인 더비쉬 춤판이 벌어지는 12월에는 그것을 보기 위해 밀려드는 인파로 발 디딜 틈이을 정도로 유명세를 치르는 곳이다. 콘야에서는 관광객들을 위하여 이 명상춤을 선보이고 있다.
메블라나 박물관은 콘야인들의 자랑이다. 이 박물관은 콘야에서 가장 중요하고 유명하다. 박물관에는 이슬람 신비주의 종파를 창시한 메블라나의 유적들이 전시되어 있다. 이곳은 원래 궁전의 장미 정원이었는데, 오스만 제국의 왕이 메블라나의 아버지 바하틴 벨레디에게 선물로 준 것이다. 입구에서부터 가장 이색적으로 인상을 주는 푸른색 타일로 장식된 탑은 1396년에 세워진 것이다. 터키 정부가 이곳을 박물관으로 개장한 것은 관은 1927년이다. 휠링 더비쉬의 창시자인 메블라나의 숙소로도 사용되었던 이 박물관은 전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휠링 더비쉬의 명성 때문에 1년에 백만 이상의 관광객이 몰려온다고 한다. 특이한 것은 수도자들이 추는 더비시 춤판이다. 남성 무용수, 원통형 모자, 하얀 윗도리, 둥근 치마, 침묵 속의 댄스로 요약되는 더비쉬는 춤추는 자를 황홀의 경지로 이끌기에 충분해 보였다. 이러한 특수한 수련 방식은 신비주의적 색채가 농후하다는 이유로 정통 이스람에서는 고운 시선을 보내지 않는다. 이스람은 알라의 가르침을 그대로 따르도록 할 뿐 개인의 자유의지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박물관 메블라나의 관
박물관 메블라나의 애용품들
정면 입구로 들어서면 단상 위에는 금박 수를 놓은 천으로 덮인 관(棺)이 있는데, 맨 안쪽의 가장 크고 중후한 관이 메블라나의 관이다. 그 옆에는 그의 의복과 애용품과 신비한 악기들, 셀주크 시대와 오스만 시대의 공예품 등이 전시되어 있다. 중앙 유리관에는 마호메트의 턱수염을 넣은 조그만 상자가 있고, 별채에는 수행자들의 생활을 표현한 인형과 카펫 등이 전시되어 있다. 또 그가 쓴 시집과 코란의 사본, 친필 서적이 진열되어 있어 터키 신비주의 이슬람 문화를 접할 수 있다. 메블라나 박물관은 터키 국내에서도 특별히 성스러운 곳이어서, 여성은 관광객이라고 할지라도 스카프를 쓰도록
메블라나의 사상을 추종하는 종교의식에는 세마(SEMA)라고 불리는 명상춤이 있다. 이것은 신비주의자들이 전통적으로 행하는 의식으로서 우주의 신과 융합하는 의식이다. 영적으로 간절히 사모하는 마음으로 명상춤을 추면서 무아지경에 빠지게 된다. 춤을 추는 사람들을 '세마젠'이라고 부른다. 이들은 흰색의 긴 치마를 입고 위에는 수의를 뜻하는 흰색 저고리를 입는다. 또 그 위에 무덤을 상징하는 검은 망토를 입는다. 세마젠들이 머리에 쓰는 갈색이나 흰색인 뾰족한 모자는 묘비를 의미한다. 세이히(SEYH)는 메블라나의 사상을 지상에서 추종자하는 사람이다. 세이히는 머리에 터번을 쓴다. 명상춤은 함께 기도를 한 후 네이(터키 피리)를 불기 시작하면서 시작된다. 네이 소리는 신에 대한 그리움을 나타낸다고 한다. 명상춤을 추는 무용수들이 먼저 세이히의 손에 키스를 한다. 그 후 우주를 향하는 여행객처럼 천천히 몸을 움직이기 시작한다. 우주를 향하는 춤 여행은, 먼저 무덤에서 나와서 우주의 신에 대해 의식이 준비되었음을 알리기 위해 망토를 벗는다. 명상춤은 한 손을 위로 향하고, 또 한손은 아래로 향하는데 이것은 신으로부터 받은 축복을 세상 사람들에게 널리 전함을 표현하는 것이다. 명상춤은 처음에는 천천히 돌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차츰차츰 더 빨리 돌기 시작한다. 빠른 물살이 깊은 웅덩이를 만들 듯이 빠른 회전을 통하여 우주의 신에게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고는 사상의 표현이다. 메블라나의 사상은 분명 정통적인 이슬람 사상과는 사뭇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터키인들은 메블라나의 사상에 깊은 매력을 가지고 있다. 매년 12월이면 콘야에서 메블라나 축제가 열린다. 이 때, 우주의 신과 깊은 만남을 열망하는 메블라나 추종자들의 숙련된 춤을 관람할 수 다.
콘야인들의 또 하나의 자랑은 셀축 투르크인들에 의해 지어진 가장 오래된 모스크인 알라딘 모스크이다. 이 모스크는 알라딘 언덕에 자리 잡고 있다. 이 모스크의 건축은 루크네딘 메수드의 통치기간(1116-1156) 중에 시작하여 1221년 술탄 알라딘 케이쿠바트 통치시대에 완성되었다. 관광객들을 비롯한 모든 출입객들은 신을 벗고 맨발로 입장해야 한다. 경건한 참배 분위기를 유지하기 위해서다.
콘야에는 오스만 제국의 건축술의 진수를 볼 수 있는 또 하나의 모스크가 있다. 메블라나 박물관 바로 옆에 위치하고 있는 셀리미예 모스크이다. 모스크는 술탄 셀림 2세가 1558년에 시작하여 1587년까지 29년에 걸쳐서 건축하였다. 셀리미예 박물관은 규모면에서 알라딘 모스크보다 작지만, 메블라나 박물관 옆이라는 지역적 이점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참배하는 곳이다. 콘야는 이스람 메블라나 교단의 본산답게 터키의 그 어느 곳보다 이스람 성지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곳이었다.
이고니온 (콘야) 이고니온은 소아시아 남부 중앙에 있는 루가오니아 지방의 수도이며, 부루기아 지방의 경계에 위치한 루스드라의 북쪽에 있다. 해발 1000m의 고원에 위치한 이고니온은 서쪽으로 1500m 정도의 산들이 맥을 이루고 있다. 그리스와 로마 제국 당시 ‘루가오니아’(Lycaonia)의 수도였던 이고니온은 시리아에서 에베소와 로마에 이르는 대로가 지나고 있는 남부 중앙의 상업 도시로서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고 비옥한 곳이다. 이고니온은 B.C. 4C경 크세노폰이 최초로 언급하였다.
B.C. 3C경, 시리아의 셀류커스 왕조에 의해 지배를 받으면서 헬라화되었다. B.C. 165까지, 이고니온은 갈라디아인의 지배를 받았고, B.C. 129, 이고니온과 갈라디아는 폰투스 왕들의 지배를 받았다. B.C. 36 당시 갈라디아의 왕이었던 ‘안티마스’(Antymas)가 이고니온 땅을 차지하게 되었다가, 왕이 죽은 후에 갈라디아의 한 지방이 되었다. 그 후 로마제국에 의해 통합되었다. 235년에는 초대 교회 종교회의가 이곳에서 열렸으며 708년, 아랍의 지배 하에 들어가게 되었다. 이고니온의 번영은 1097년 절정에 달해 셀주크 족의 수도가 되었으며, 1190년에는 피레데릭 1세가 이고니온을 점령하여 지금까지 터키의 도시로 남아 있다.
현재, 이고니온은 터키의 도청 소재지로 ‘코냐’(Konya)라고 부른다. 이고니온은 시리아에서 에베소와 로마로 통하는 대로가 지나가는 교통의 요지였다. 따라서 광대한 상업 도시로 발전할 수 있었다. 이고니온은 비시디아 산맥에서 흘러내리는 강물로 비옥해진 아름다운 평야를 가지고 있어 곡식과 과일 산출의 중심지가 되었는데, 특히 서양 오양, 살구 과수원, 밀, 아마밭이 유명하다. “세계를 보라, 특히 ‘이고니온’(코냐)을 보라”는 속담에서 알 수 있듯이, 이고니온은 세계적으로도 아름답고 비옥한 곳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이고니온에는 터키의 유명한 관광자원이 된 메불라나 수도승들의 집단원무인 테비쉬의 근거지이다. 메블라나 교단은 시아파 수니 교단의 하나로서 이곳에서 교단을 창설하였기에 메블라나 사원이 유명하다. 디모데의 고향이기도 한 이고니온은 바울과 바나바가 제1차 여행 중에 방문한 곳이다(행13:51, 14:1). 제 2차 선교 여행 때, 다시 이고니온을 방문하였다(행16: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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