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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예배 준비
한 주간의 일상 가운데 예배를 사모하며, 주님을 믿으며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가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 기본적인 예배의 준비입니다. 모든 일상을 예배자로 살아갈 때, 우리는 주일에도 하나님께 바른 예배를 드릴 수 있습니다.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롬 12:1)
토요일 저녁: 예배를 위해 기도하는 시간을 가집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함께 모여 예배드리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교회의 직분자들이 예배를 잘 섬기도록 기도합니다.
주일 아침: 온 가족이 아침 일찍 일어나서 예배당에 나갈 준비합니다.
예배당에 도착: 최소 예배 시작 30분 전에는 예배당에 도착합니다. 짧게라도 다른 신자들과 친교를 나누며 함께 예배드리는 기쁨을 누립시다.
예배실 좌석 배치: 서로 선호하는 좌석들이 다를 수 있으니, 여러 성도들이 자연스럽게 원하는 좌석에 앉을 수 있도록 양보하며 배려합니다. 좌석 배치에서 소외되는 사람이 없도록 서로서로 배려합니다.
예배를 기다리며: 기도, 찬송, 성경 읽기. 반주자의 전주가 예배를 묵상하며 준비하는 좋은 방식이 됩니다.
2. 하나님께 나아감
예배로의 부르심: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예배로 초대하십니다. 죄인된 우리로서는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나아가 예배드릴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자들만이 하나님께 나아갈 자격을 얻습니다.
고신의 예전예식서에는 예배로의 부름 이후에 기원(하나님의 인사)의 순서를 구분하여 제시합니다.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고전 1:3) 또는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오실 이와 그의 보좌 앞에 있는 일곱 영과, 또 충성된 증인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에서 먼저 나시고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기를 원하노라.”(계 1:4-5)
이 인사말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여 예배로 나아온 언약 백성들에게 목사가 하나님을 대신하여 인사하는 순서입니다. 이 인사 속에 담겨진 내용은 은혜와 평강이 예배 중에 예배자에게 임할 것을 약속한 복입니다. 그런 점에서 이 인사말은 예배 마지막의 축도(강복선언)과 연결됩니다. 하나님의 축복으로 예배를 시작하고 예배를 끝맺습니다.
신앙고백은 하나님께로 나아온 성도들이 하나님의 부르심 앞에 화답하며 자신의 신앙을 맹세하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나는 여호와 하나님이 천지를 지으셨으며 지금도 나의 아버지로서 나를 돌봐주신다는 사실을 믿는다, 나는 세상의 것을 의지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한다’는 사실을 고백합니다.
3. 십계명
십계명은 사도신경, 주기도문과 함께 전통적으로 기독교 신앙을 가장 잘 요약한 표준 문서로 받아들여져 왔습니다. 오늘날 신약 성도들과 전 인류에게 요구되는 도덕법이 십계명에 집약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율법의 요구가 십계명만으로 국한되는 것은 아니며, 십계명은 그 요약에 불과합니다. 웨스트민스터 대소요리 문답과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은 십계명 해설을 통해 계명 하나하나에 함축된 도덕법의 요구를 폭넓게 해설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예배 시간에 십계명을 낭독하며 이 계명 속에 녹아있는 하나님의 모든 말씀의 요구를 생각하며 우리를 비추어 봅니다.
우리 교회는 죄 용서의 은혜를 풍성히 누리는 것이 복음의 핵심임을 강조해 왔으며, 예배 순서에도 이 점이 잘 반영되어 있습니다. 이와 동시에 예배를 통해 하나님의 은혜를 풍성히 누림으로 십계명이 이루어지는 삶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는 지향점을 의식하면서 십계명을 들을 필요가 있습니다.
4. 고백의 기도와 사죄의 선언
고백의 기도와 사죄 선언이 예배 전반부에 배치되었습니다. 예배에 초대된 신자는 본질상 죄인이며 오직 그리스도의 죄 용서의 은혜를 의지해서만 주님께 나아갈 수 있음을 드러냅니다.
예배식 순서에 고백의 기도와 사죄의 선언을 포함시킨 것은 로마교의 고해성사의 문제점을 극복하고자 한 것입니다. 죄 고백을 사제 개인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공적으로 행하도록 하여 죄를 용서해 주시는 분이 오직 하나님이심을 분명히 하였습니다. 또한 매 주일 예배 때 죄를 고백함으로 우리의 회개가 평생 지속되어야 함을 나타냅니다.
목사의 사죄 선언은 사람의 권위가 아닌 하나님의 권위를 의지하여 행해집니다. 이를 잘 나타내기 위해 목사는 성경의 구절을 직접적으로 인용하며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사죄를 선언합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아멘.”(요일 1:9)
사죄의 선언은 죄 고백의 기도에 이어서 조건 없이 즉시 행해집니다. 이는 기도하는 성도 개인이나 목사에게 죄 용서의 능력이 있지 않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무조건적 은혜에 의해 우리 죄가 용서됨을 나타냅니다.
이 사죄 선언 자체는 그 자체로 죄를 용서해 주는 효력을 나타내지는 않습니다. 죄 용서의 효과를 실질적으로 받아 누리기 위해서는 예배식에 참여하는 신자들이 참된 회개를 하며 믿음으로 이 선언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5. 필요를 아뢰는 기도, 감사찬송
사죄 선언 이후에는 “필요를 아뢰는 기도”를 드립니다. 죄 용서받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우리의 필요한 모든 것을 하나님께 아뢰며 의지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이 기도는 “목회 기도”라고도 불리며, 공교회 전통에 비추어 보았을 때에는 목사가 기도를 인도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교회가 당면한 목회적인 현안과 필요를 가장 잘 이해하고 있으며, 교회를 대표하는 사람이 목사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 기도는 성도들에게 기도의 모범을 보임으로 주 중에 어떤 기도제목을 가지고 어떻게 기도하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는지를 자연스럽게 전달하는 성격도 있기 때문에 목사가 직접 행하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6. 성경 듣기
일반적으로 “성경 봉독”이라고 하는 순서를 우리 교회에서는 “성경” 또는 “성경 듣기”라고 부릅니다. 봉독은 ‘받들어 읽는다’는 뜻으로 읽는 사람의 관점에서 붙여진 용어이다. 하지만 이 순서는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말씀을 내려 주시는 시간이기에 듣는 사람 입장에서 ‘성경 듣기’라고 부릅니다. 용어를 무엇으로 사용하든, 이 순서는 우리가 하나님께 말씀을 올려 드리는 시간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으로 내려오시는 시간임을 잘 알고 듣는 게 중요합니다.
일반적으로 성경 봉독 시간은 설교에 필요한 본문을 미리 읽는, 설교에 수반되는 예비적인 시간으로 이해하는 것이 보통입니다. 하지만 교회사적으로 이 시간은 설교와 별개로 성경 본문 자체를 들음으로 말씀을 깨닫는 독자적인 의의를 지니는 순서로 발전되어 왔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중세 말기 각종 성인들의 전설을 듣는 시간으로 변질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종교개혁자들은 성경 중심의 설교를 강조하며 폐단이 많은 설교와 무관한 성서목록 읽기를 폐지하였습니다.
우리 교회에서는 종교개혁 전통을 중시하여 성서목록 읽기는 채택하지 않고 있습니다. 다만 성경 봉독의 본래 취지를 존중하여 성경 본문을 조금 길게 잡아서 본문의 흐름을 충분히 파악하며 들을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설교자가 강단에서 성경을 봉독할 때 그 말씀을 들으며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직접 듣는다는 의식을 가지는 게 중요합니다. 믿음으로 들을 때 성령님께서 역사하셔서 성경의 진리를 새롭게 깨닫게 하실 것입니다.
7. 조명을 위한 찬송
하나님의 말씀과 설교 전후로 우리는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말씀을 내려주시는 분도 하나님이시요, 깨닫게 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오직 성령님을 의지하여서만 말씀을 통해 은혜를 누릴 수 있기에 기도로 간절히 성령님의 도우심을 의지합니다.
최근 우리 교회에서는 조명을 위한 기도를 찬송으로 바꾸어 드립니다. 성령님의 도우심은 단지 설교자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설교를 듣는 성도 모두에게 요구됩니다. 모든 성도가 마음을 모아 기도에 함께 참여한다는 의식을 분명히 드러내도록 찬송으로 기도를 드립니다. 제한된 곡들을 반복하여 부르는데, 찬송가 곡들 중 말씀을 내려 주시길 간구하는 찬송이 몇 곡 없기도 하지만, 아이들도 모두 찬송부를 수 있도록 반복해서 부르기도 합니다.
우리 교회는 회중들 모두가 찬양대로서 역할을 감당하기에, 지속적으로 찬송 연습을 함으로 찬송의 수준을 높여 가려는 노력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지휘자 등 준비가 되면 예배 후에 별도 시간을 마련하여 연습을 해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8. 어린이 설교
우리 교회에서는 예배 설교의 전반부에 어린이 설교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는 어린이를 위한 별도 부서 예배를 드리지 않고 모든 연령대 어린이들이 어른과 함께 예배에 참여합니다. 특별히 이 어린이들만을 위한 예배의 순서로 어린이 설교 시간이 배정되어 있습니다.
어린이가 함께 예배에 참여하는 것은 모든 하나님의 언약 백성(=세례교인)이 총회로서 함께 예배를 드리는 구약과 신약 예배의 전통을 그대로 계승한 것으로 지극히 성경적입니다. 어린이 설교를 통해 어린이들도 우리와 함께 예배를 드리는 성도이며, 예배에 어린이들을 위해 준비된 자리가 있다는 의식을 분명히 드러냅니다.
또한 어린이 설교는 설교의 핵심을 간단하게 요약하여 어린이들에게 전달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기에, 어른들에게도 도움이 됩니다.
9. 설교
설교는 하나님의 말씀을 성도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풀어서 설명하며, 오늘날 성도들의 삶의 정황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지를 설명합니다. 예배 가운데 말씀에 담긴 하나님의 영광이 밝히 드러나야 하기에, 설교는 교회의 주관 하에 엄격한 신학 교육을 받고 그 자격을 부여받은 자에 의해서만 이루어져야 합니다.
설교자 또한 사람이기에 여러 부족함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그 설교자의 설교를 통하여 회중들에게 역사하신다는 사실이 예배의 은혜이며 신비입니다. 회중들이 성령님을 의지하여 설교를 들을 때 “설교자를 통하여” 반드시 말씀을 깨닫게 해 주시고 은혜를 누리게 하여 주신다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설교는 단순한 성경 내용의 해설이나 성경 강의에 불과한 것이 아닙니다. 은혜의 수단이며, 하나님의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위로와 사랑의 말씀입니다. 본문 자체의 무미건조한 해설에만 그쳐서는 안 되며, “하나님께서 지금 이 본문을 통해 우리들에게 전하시는 가르침이 무엇인가” 하는 메시지가 분명해야 합니다.
한 교회에서 행해지는 예배 설교는 그 교회 회중들에게 전해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목사는 평소 심방이나 대화를 통해 성도들의 사정과 고민을 두루 파악하고, 그 문제에 대하여 말씀의 가르침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목사가 평소 성도와 친밀한 관계를 가지고 위하여 기도할 때에, 그 성도들에게 꼭 필요한 하나님의 위로를 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설교의 메시지 뿐만 아니라 태도도 매우 중요합니다. 설교자가 경박스러운 말이나 태도를 보인다거나, 저속한 용어를 자주 사용한다면 말씀의 권위를 크게 떨어뜨릴 것입니다. 옷차림이 단정하고, 발성이 분명하고, 원고가 잘 숙지되어서 준비된 가운데 설교를 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종교개혁자들은 예배에서 말씀을 회복하는 데 역점을 두었고, 설교의 중요성을 매우 강조하였습니다. 그 영향으로 많은 성도들은 설교를 중심으로 예배를 이해합니다. 설교가 예배의 중심인 것은 분명하지만, 설교가 예배의 전부는 아닙니다. 설교 뿐만 아니라 예배의 각 순서들에 나름의 중요성이 있고, 그 모든 순서를 통하여 주님께서 은혜 베풀어 주신다는 것을 알고 모든 순서를 소중히 여겨야 할 것입니다.
10. 감사의 찬송
설교가 끝난 뒤 성도들은 주신 말씀에 감사하며 순종을 다짐하는 찬송을 부릅니다. 이때 선정하는 찬송은 설교의 내용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선정합니다. 설교자는 찬송을 통해 말씀이 성도들의 마음 가운데 깊이 뿌리내릴 수 있도록 숙고하여 찬송곡을 선정합니다. 그런 점에서 감사의 찬송은 설교의 연장선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11. 성례: 온몸으로 경험하는 그리스도의 복음
세례와 성찬은 “복음 약속의 눈에 보이는 증표”로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의 수단입니다. 세례와 성찬을 받을 때 우리는 온몸으로 복음의 의미를 생생하게 느끼며 우리에게 주신 구원의 은혜를 확신합니다.
세례와 성찬은 “믿음으로” 받는 것입니다. 믿음이 없이는 성례의 유익이 없습니다. 유아세례는 세례에 참석하는 부모와 성도들이 믿음으로 유익을 누리고, 또한 우리 아이들이 장차 커서 믿음으로 세례를 돌아보며 그 은혜를 누리길 기대하며 주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세례에 대한 다양한 의미: 제자도, 고난, 구원, 성령을 받음, 새로운 탄생, 죄 용서/죄 씻음, 죄에 대하여 죽음, 교회로 들어가는 편입, 그리스도라는 새 옷을 입음, 몸의 연합.
위와 같이 성경이 가르치는 세례에 다양한 의미가 있기에, 한 번의 예배식에서 이 모든 것들을 다 드러내기란 불가능합니다. 세례를 시행할 때마다 설교와 연동하여 강조할 부분들을 다양하게 돌아가며 강조함으로, 오랜 시간에 걸쳐 성도들이 세례의 의미를 풍성하게 이해하도록 도울 필요가 있습니다.
유아세례는 구원에서 하나님의 은혜의 우선성을 보여주는 가장 분명한 표시입니다. 우리 자녀들이 아직 의식도 분명하지 않은 태아 때부터 주님께서 그들을 언약 백성으로 삼아 주시고 은혜로 돌보아 주십니다. 유아세례를 받았다고 구원을 받는 것은 아닙니다. 오직 믿음으로 구원받습니다. 세례는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언약백성이며 교회의 회원으로 받아 주셨다는 징표이지, 구원의 징표는 아닙니다. 유아세례를 받은 사람도 믿음으로 자신의 구원을 확증해야 합니다.
유아세례를 시행하는 것은 우리 교회의 회원 중에 아직 신앙을 고백하지 않는 어린이와 청소년, 또는 믿음이 연약한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함축합니다. 교회는 어린이와 청소년들을 배려하여 운영되어야 합니다. 또한 믿음이 연약한 사람들을 위한 복음 전도가 교회 안에서도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누가 세례(입교)를 받을 수 있는가? 일부 사람들은 신자로서 합당한 삶이 드러나는 사람이 세례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여 지나치게 엄격한 기준을 설정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스스로 세례받을 준비가 되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오히려 세례받기에 부적절합니다. 스스로의 부족을 깨닫고 믿음으로 은헤를 받아 누리길 원하는 사람은 누구나 세례(입교)받을 수 있습니다.
세례의 세 가지 방식: 물 흩뿌리기, 물 붓기, 침수. 교회의 상황과 형편에 따라 방식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세례의 취지를 잘 살릴 수 있도록 앞뒤로 축하식 등 다른 순서를 배치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성찬에 대한 다양한 의미: 언약, 하나님/그리스도의 임재, 감사, 용서, 천국 잔치를 기대함, 유월절/속죄의 표지, 계시/현현/현시, 영적 영양 공급, 교제/몸의 연합, 윤리적 헌신의 표지, 기억, 선포.
세례와 마찬가지로, 성찬 또한 한 번의 예배식에서 이 모든 것들을 다 드러내기란 불가능합니다. 성찬의 다양한 의미를 성도들이 점점 더 깊이있게 알아가도록 고려할 필요가 있습니다.
개인적인 죄로 말미암아 양심에 거리낌이 있어서 성찬에 임의로 참석하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개인의 양심의 문제를 강제할 수는 없지만, 예배식에 참석하는 이상 그 순서의 일부에 해당하는 성찬 참여를 임의로 참석하지 않는 것은 바른 태도가 아닙니다. 당회가 수찬 정지를 명하지 않는 이상에는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주님의 은혜를 구하며 나오는 것이 바람직한 태도입니다. 스스로 해결하기 어려운 죄의 문제가 있다면 자의적으로 판단하기보다는 당회에 이야기하여 도움을 받아야 할 것입니다.
성찬을 시행하는 방식에도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목사와 장로가 이동하며 빵과 잔을 나눠주는 방법, 성도들이 앞으로 나와 줄을 서서 받아가는 방법, 테이블에 둘러앉아 빵과 잔을 나누는 방법, 한 잔을 돌아가며 마시는 방법 등. 교회의 전통을 고려하여 다양하게 선택할 수 있습니다.
일각에서는 세례와 성찬에 차이가 없는 만큼, 유아 세례를 받은 어린이들에게도 성찬에 참여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바울 사도는 성찬을 받을 때 “스스로 분별할 것”을 요청합니다. 이 말씀은 성찬의 의미를 알고 회개할 수 있는 믿음과 판단력을 전제로 하는 것으로, 입교인 이상 되는 연령이 될 것을 요구합니다.
12. 헌금: 나의 전 존재를 하나님께 드림
요리문답에서는 직접적으로 헌금에 대해 말하고 있지는 않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헌금의 목적에 대한 교훈을 도출할 수 있습니다.
① 말씀의 봉사: 목사의 사례와 교회 운영, 전도와 선교
② 봉사를 위한 교육: 목사 양성, 신학 교육
③ 가난한 자들에게 기독교적 자비를 행함: 대내외 구제
④ 주 안에서 안식하며 주를 위해 헌신하는 신앙의 표현
총회 해설에서는 헌금을 “성도의 교제”의 일환으로 보고 어려움에 처한 이웃을 돕는 구제의 의미를 갖고 있음을 강조합니다.
우리 교회 해설서에서는 헌금을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의 표현”임을 강조합니다. 물질을 주신 것에 감사하며, 주님께 삶을 헌신할 것을 결단하는 표현으로 봅니다. 찬송과 기도와 본질적으로 동일한 영적 의미를 가진 행위로 보며, 주로 하나님을 향해 드리는 것으로 이해합니다.
고려신학대학원의 보고서에서는 헌금의 의미를 “내 모든 것을 하나님께 바친다”는 주님을 향한 신앙의 표현이며, 동시에 예배와 교회의 운영을 위해 필요한 비용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라고 봅니다.
십일조에 관하여는 구약과 신약의 관계의 측면에서 그 현대적 의미를 설명합니다. 오늘날 십일조 규례를 율법적으로 준수할 의무는 더 이상 없으나, 그 정신은 더욱 깊이있고 철저하게 계승되어야 합니다. 오늘날에도 십분의 일이라는 헌금의 기준은 유효하며, 오히려 더욱 많은 액수를 헌금할 수 있으면 좋습니다. 하지만 이는 의무감이나 기복적인 동기에서가 아니라, 자발적으로 기쁜 마음으로 행해져야 합니다.
민수기 3장에서 구약의 십일조는 하나님께서 모든 생명의 초태생을 취하신 것에 대한 대가로 드리는 것으로 설명합니다. 모든 구약 백성들의 큰아들이 하나님께 속한 존재인데, 그들을 대신하여 레위 지파가 성전의 일에 봉사하니 레위인들의 생계를 위하여 십일조로 섬긴다는 것입니다.
신약에서 헌금에 대해 생각할 때 중요한 본문은 과부의 두 렙돈입니다. 액수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왔음을 생각하면서 하나님께 헌물을 일종의 상징물로 드리는 것입니다. 일정액을 헌금으로 바쳤으니 나머지는 다 내 것이라는 것이 아니라, 나의 모든 존재와 소유가 전부 하나님의 것이라고 고백하며 헌금을 드립니다.
이 땅에서 하나님의 도우심은 가장 중요하게는 교회를 통해서 옵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이 땅에서 그리스도의 뜻을 이루는 기관입니다. 가난하고 어려움에 처한 성도들이 가장 직접적으로 교회를 통해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교회의 구체적인 성도들을 긍휼히 여겨 주시길 구하며 우리는 헌금합니다. 또한 이 성도들에게 주님의 도움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기도하며 노력합니다.
13. 마침 찬송
마지막 찬송은 예배의 절정과도 같습니다. 예배의 모든 순서 가운데 받은 은혜를 되새기며 주님을 찬양합니다. 그리고 용서받고 의롭게 된 하나님의 자녀로서 세상을 향하여 파송받습니다. 그런 점에서 마침 찬송은 감사와 결단을 동시에 표현합니다.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성도들은 예배 가운데 누린 하나님의 임재를 다시금 간구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성도들에게 모든 삶은 예배의 연장선입니다. 우리가 모든 삶을 예배로 드리기를 간구하며 주님의 은혜를 간구하는 심정으로 찬송을 부릅니다.
마침 찬송은 어떤 면에서는 세상을 향해 파송받아 나아가는 주의 군사들의 진군가와도 같은 의미를 지닙니다. 각 성도들이 각자의 사역지로 파송받지만, 한 말씀을 통해 같은 명령을 받아서 유기적으로 팀을 이루어 사명을 수행하는 군대와도 같이 공동체적으로 파송받는 의미를 지닙니다. 함께 소리높여 찬송 부르며 교회적으로 사명을 감당함을 기억하며 서로를 격려합니다.
14. 축도 (강복선언)
축도는 기도일까요, 선언일까요? 축도라는 말은 축복하는 기도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많은 경우에 축도는 “목사가 주님께 교인을 축복하는 기도”라는 의미로 이해되었습니다. 하지만 성경적으로 볼 때 축도를 기도로 이해할 근거는 별로 없습니다.
구약의 제사장의 축복이나 바울 사도의 축복은 하나님께서 교회에 내려 주신 축복의 말씀을 직분자가 대리해서 선언하는 것입니다. 고신의 예배 해설서와 우리 교회 안내지에서는 이 사실을 분명하게 지적하고 있습니다.
목사는 예배 인도자로서 구약의 제사장과 신약의 사도를 계승하여 축복의 선언을 합니다. 두 손을 위로 들고 축도하는데, 이는 예수님께서 승천하실 때 손을 들고 제자들을 바라보고 축복하며 하늘로 오르신 것을 나타냅니다. 축도 시간에 우리는 지금도 하늘에서 손을 들고 하나님의 백성을 축복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하며, 장차 가신 모습 그대로 우리를 축복하며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소망합니다.
축도를 강복선언으로 이해할 경우에 달라지는 실천적인 적용점이 있습니다. 먼저, 성도들은 축도 시간에 눈을 감고 기도하며 듣기보다는 손을 들고 선언하는 목사를 바라보며 축도를 듣는 것이 좋습니다. 이는 기도가 아니라 선언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목사가 바울의 축도 문구 사이에 여러 화려한 수사를 붙여서 장황하게 축복을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그리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축복의 주인은 주님이며, 목사는 하나님의 축복을 대신하여 선포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성경 말씀 그대로 축복해도 충분합니다.
15. 예배 후의 순서
예배가 끝나면 목사가 퇴장하며 교인들과 인사를 하는 시간을 가집니다. 이는 목사가 교회와 성도들을 대표하여 여러 성도들과 친교를 나누는 의미를 지닙니다. 성도들의 입장에서는 예배를 잘 인도한 목사와 직분자들에게 감사를 표하며 합당한 격려를 하는 의미가 있습니다.
예배 후의 광고 또한 성도의 교제의 일환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광고 시간에는 교회의 사명과 관계된 주요 일정들과 성도들의 주요 근황에 대한 내용을 나눕니다. 예배의 정신과 무관한 세속적인 내용들이 다루어져서는 안 됩니다.
광고가 성도의 교제의 일환으로 이해되는 한에서 예배식 순서 중간에 이루어질 수도 있을 것입니다. 실제로 어떤 교회에서는 목사의 대표기도 전에 교인들의 중요한 기도제목을 간략하게 소개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예배가 모두 끝난 뒤에는 성도의 교제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집니다. 교회의 사정에 따라서 다양한 방식으로 교제가 이루어질 수 있을 것입니다. 주님께 받은 은혜를 서로 나누며 기쁨과 감사를 나누는 시간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또한 교회의 하나됨을 이루는 방식으로 소외되는 사람 없이 모두가 참여할 수 있도록 교제가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예배를 마친 후에 귀가하는 길에 가족들과 친지들과 함께 말씀과 교제의 은혜를 함께 나누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주일의 남은 시간들도 주님을 높이고 사랑을 실천하는 안식일의 정신을 잘 실현하며 보내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예배를 잘 드린 성도는 이제 일상으로 나아갑니다. 말씀의 가르침을 마음에 새기고 순종하며 살아야 합니다. 주님의 축복을 받아 주님과 동행하며 사는 일상의 삶은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는 예배의 연장선입니다. 일상 가운데 주님을 의지하며 보내는 삶은 가장 좋은 다음 예배의 준비가 됩니다.
또한 우리의 인생 전체가 영원한 천국의 예배를 향하여 나아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천국의 삶은 예배와 삶이 구분되지 않고 하나되는 삶입니다. 그날을 바라보며 우리는 계속해서 주일 예배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