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사랑
이민하
내 아이가 흙으로 뛰어가고 있다 아파트 단지 내 시멘트바닥,아스팔트길...
소위 흙이 없는 땅을 밟으며 우리 이웃은 아무런 정이 없이 오간다
어느날 우리집 아이가 아장아장 걷기 시작 했을 때 그 아인 어른들이
다니는 땅 아닌 땅을 밟지 않았다 나무와 잔디를 위하여 흙이 담겨진 울타리
쳐짐 그 땅으로 본능적으로 가고 있었다 그후 초등학교에 입학한 지금까지
흙 있는 곳으로 길을 찾아 다닌다 그곳에서 잔디와 노래하며 민들레와 인사하고 나무와 이야기한다 땅속 개미집을 신기해하며 흙 때문에 살고 있는 벌레들을 귀여워한다 그래서 아침에 유치원이나 학교에 가끔 늦기도 하고 오후엔 손톱 발톱에 새까만 흙때와 온몸에 흙을 주렁주렁 달고 집에 돌아오곤 한다
나는 야단치지 않는다 왜냐하면 내 아인 내가 잃은 것을 찾아 주었기 때문이다
흙! 내게서 누군가가 흙을 조금씩 조금씩 퍼가는 것도 몰랐고 그와 더불어 나는 세상에 가난한 자가 되어 가고 있었다 우린 어릴적 가장 다정하고 가까은 벗은 바로 흙이었다 포근포근한 흙 위에서 고무줄 넘기를 하였고 신나는 동요를 부르며 많은 놀이를 하였다
“우리 집에 왜 왔니? 왜 왔니?”라든지“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또 “여우야
여우야 뭐 하니?“”두껍아 두껍아 헌집 줄게 새집 다오“하면서 흙 속을 뒹굴며
자랐다 이런 흙의 사랑은 이름 모를 꽃들과 풀들을 여기저기 자라게 하였고 주인 없는 나무들도 무성하게 자라 우리를 보호하여 주었다 동네 담들은
나지막하였고 많은 것들이 공동소유였다 그리고 조그만 땅에 작은 채소들을
심어 나누어 먹을 수도 있었다 상추,부추,특히 오이와 호박,수세미 넝쿨 등은 흙내음과 함께 얼마나 평안함을 주었던가
결국 우리는 흙에서 나고 흙에서 난 것을 먹고 흙으로 돌아가는 인생이다 이렇게 흙의 사랑 속에서 살아야 하는 우리들은 나무와 잔디에겐 흙을 줄줄 알면서도 진정 우리의 삶 속에서는 왜 흙을 망각하고 있는 것일까
이젠 한점의 흙이 사랑과 땀으로 얼룩진 삶의 터전이 아니라 한탕주의 야욕의
싸움터로 변하고 있고 흙을 알고 아끼는 이들을 떠나 가게 하고 있는 것이다
흙을 일구고 흙에 묻혀서 그곳에 이웃이 둘러 앉아 서로의 슬픔을 나누어 반으로 줄이고 서로의 기쁨을 배로 늘리는 흙의 정과 사랑은 어디로 사라져 가고 있는 것일까?
흙대신 시멘트벽 같은 차가운 회색 마음,그것은 더 이상 이웃의 아픔이 내 아픔이 아니며 이웃의 기쁨이 내 기쁨이 아닌 것이다 오히려 이웃의 슬픔이 내
기쁨이 되게 하고 있으니 이렇게 흙에 배반된 우리의 삶을 어디서부터 고쳐야 할까...우리들의 아이들을 보면 눈앞이 캄캄해 온다 흙이 존재하지 않더라도
나만 편하면 되고 나만 잘 살면 된다는 닫힌 마음들 이 “나만”이란 눈 뜬 봉사의 마음이 우리를 보호해 주던 생물들을 말없이 죽어가게 하고 있고 생태계를 조금씩 무너뜨리고 있는 것이다 얼마 전 세계적으로 힘을 자랑하던 곳에
일어난 대지진이며 폭설,강추위 등은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경고하고 있으며
우리는 이제 물조차 마음놓고 마실 수가 없게 되었다 앞으로 우리의 땅이 우리의 지구가 심각해진다면,내 아인,우리의 아이들은 어떻게 살 수 있을 것인가
! 우리 아이가 밟고 싶어하는 한줌의 흙도 남지 않는 날에 우린 죽어서 흙조차
될 수 없는 불쌍한 영혼으로 떠돌 수밖에 없다
흙! 흙을 찾자
흙의 사랑을 다시 찾자
어린 아이와 같이 흙이 나와 동체임을 느끼며 흙을 아끼고 흙과 같이 하자
그러면 당연하고도 자연스럽게 흙의 사랑을 따뜻하고 넉넉하게 나눌 수가
있으리라 이 땅은 새로이 아름답게 조화되어 갈 수 있으리라 내 아이가
흙으로 뛰어가고 있다 퐁퐁퐁 흙먼지를 일으키며 흙의 가치를 뽀얗게 내게 입혀 주는 것이다
약력
숙명여고 한양대 사회교육원 국문과 졸업 건국대교육대학권 교육학 석사
연세대 사회교육원 논술과정 강사 역임 문에사조 등단<1992> 한국문인협회
국제펜한국본부 한국기독교수필문학회 회원 짚신문학회 부회장 제4회 짚신문학상 수상
시집 하늘 아래 앉아 있음 현재 캄보디아 선교활동 중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