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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 여성영상집단 움 |
지난 11월 8일, 노동해방학생연대와 함께하는 2006 노동자대회 참가단 [일점돌파]에서 주최한 ‘우리들은 정의파다’ 상영회가 고대에서 있었다. 이미 올해 여성영화제와 부산영화제에서 상영되었던 이 영화는 1970년대 동일방직 여성노동자들의 투쟁이야기를 담고 있다. 영화 상영에 앞서 KTX 동지들의 투쟁 모습을 담은 ‘비정규직은 이 땅에서 살 수 없습니까?’ 상영도 준비되어 있었다. 영화 상영이 끝난 후에는 당시 동일방직 투쟁에 함께 했던 김용자 동지와의 간담회가 마련되어 있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민주노조운동이 1980년대 이후부터 시작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리고 당시 운동을 일컬어 정규직 남성노동자 중심의 운동이었다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 이전에도 민주노조를 만들고, 지키기 위한 투쟁은 여기저기서 끊임없이 벌어지고 있었다. 1970년대 박정희 군사독재정권의 탄압을 뚫고 터져 나온 여성노동자들의 투쟁이 바로 그것이다.
1970년대 여성노동자들
전태일 평전에도 나오듯이 1970년대에는 경공업을 중심으로 많은 여성노동자들이 장시간 저임금에 시달리고 있었다. 섬유업계가 호황이던 시절, 인천에 위치해 있던 동일방직은 솜에서 실을 뽑아내어 천을 만들어내는 업체였다. 40도가 넘는 공장의 열기 속에 무섭게 돌아가는 기계 소리. 30여 년 전 일하던 때를 떠올리며 그녀들은 ‘생지옥’이란 단어를 썼다.
노동 강도를 높이기 위한 자본의 술책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이 존재해왔다. 다만 현재의 시도가 세련되고 교묘한 형식을 취하고 있다면, 예전에는 차마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무지막지하게 무식했다는 점이 굳이 차이라면 차이랄 수 있겠다. 손에 땀띠가 날 정도로 하루에 14시간, 15시간씩 일을 하면서 제대로 밥 먹을 시간조차 없었고, 고된 야간 노동에 잠이 쏟아지는 걸 막기 위해 타이밍이라는 각성제를 수없이 먹어가며 겨우겨우 버텨야 했다. 게다가 (기계 속도에 맞춰) ‘1분에 140보 걷기’처럼 유치하고 악랄한 괴롭힘까지 견뎌내야 했다.
당시에 꽤 많은 여성노동자들이 몇 달씩 식모살이를 하다가 주인집의 소개로 동일방직에 입사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녀들은 죽도록 일한 대가로 자장면 한 그릇도 사 먹을 수 없는 70원의 월급을 받고, 또 그것을 쪼개어 집안 식구들을 먹여 살리는데 보태기도 했다. 아마 그 중 상당수는 오빠나 동생들의 학비에 쓰였을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그녀들을 힘들게 했던 건 ‘공순이’라는 비아냥거림이었다. 같은 처지에 있던 남성노동자들까지 차별과 멸시를 일삼았다. 배우지 못했다는 열등감 때문에 그녀들은 월급을 쪼개 할부로 책을 사기도 했다. 공장 밖에서는 알게 모르게 ‘○○클럽’이라는 이름으로 몇 개의 소그룹이 돌아가고 있었는데, 이 소그룹들은 그녀들의 삶에 있어 탈출구 역할을 했다. 이렇게 소그룹으로 모인 노동자들은 몰래몰래 노동법과 근로기준법에 대해 하나씩 익혀나가기 시작했다.
“이번엔 여자를 찍어야 돼”
공장 안에 있는 1300명의 노동자 중 300명이 남성 노동자였고, 1000여 명은 여성 노동자였다. 하지만 소수의 남성 노동자들 때문에 여성 노동자들의 의견이 무시되는 경우가 많았다. 1945년에 만들어진 동일방직 노조에서도 남성 조합원들이 여성 조합원들을 억압하고 차별하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여성 조합원들은 노동조합을 바꾸기 위해 여성을 간부로 찍어야 한다고 암암리에 뜻을 모으기 시작했다. 마침내 1972년 5월 10일 대의원 대회에서 최초의 여성지부장인 주길자 지부장이 선출되었다. 동일방직 여성노동자들은 노조활동을 통해 여성에 대한 남성의 지배를 깨나가기 시작했다고 이야기했다. 현장 순회를 통해 그 동안 아무 말 못하고 묵묵히 당하고만 있던 부당한 처우를 해결하는 등 노조는 현장의 목소리를 대변하기 위해 노력했다. 식당 메뉴의 개선이나 월차, 생리휴가의 쟁취 등을 통해 조합원들은 처음으로 어용노조가 아닌 민주노조의 활동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옷을 벗으면 잡아가지 않는대”
여성노동자들이 주도하는 민주노조운동의 흐름은 반도상사, YH무역 등으로 번져나갔다. 동일방직에서는 이들 노조에 교육을 나가기도 했다. 주길자 지부장에 이어 또다시 이영숙 여성지부장이 탄생하자 사측에서는 이때부터 노골적으로 남성노동자들을 이용하여 노조를 탄압하기 시작했다. 1975년 7월 25일, 노동자의 권익옹호를 외치며 임금인상과 복지확대를 주장하던 여성 집행부를 퇴진시키고 남성 어용 집행부로 대체하기 위한 사측의 움직임에 맞서 800명의 여성노동자들은 공장 밖으로 뛰쳐나와 파업농성을 전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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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8년 2월 21일 동일방직 똥물투척사건 (출처 : 여성영상집단 움) |
그녀들은 공권력에 의한 강제연행을 눈앞에 두고, 서로를 지켜야 한다는 생각에 옷을 벗기 시작했다. ‘누가 그러는데 옷을 벗으면 잡아가지 못한다고 하더라, 설마 잡아가지 않겠지’ 라는 생각에 그저 몸뚱이 하나만으로 무장한 공권력과 마주했다. 나는 그저 화면 속의 상황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힘이 들었는데, 그 때 당시 여성노동자들은 무엇 때문에 그렇게 용감하게, 그리고 처절하게 나설 수 있었던 것일까? 단지 노조를 지켜야 한다는 것뿐만이 아니라 이제까지 여성이라는 이유로 당해왔던 모든 차별과 멸시에 대한 분노, 슬픔, 억울함, 저항의 표현이 아니었을까? 결국은 모두가 다 강제로 연행되고 말았다. 그 일이 있은 이후로 며칠씩 혼수상태에 빠진 사람도 있고, 결국 정신분열증에 걸린 사람도 있다고 했다. 몇 십 년 전의 일인데도, 그 때 당시의 기억을 끄집어내던 그녀들의 눈엔 끝끝내 눈물이 맺혔다.
하지만 이러한 탄압에도 굴하지 않고 77년에 또다시 이총각 3대 여성지부장이 탄생했다. 그리고 그 이듬해 78년 2월 21일, 노동운동사에 길이길이 남을 사건이 한 번 더 일어났다. 대의원 대회 때 남성조합원들이 여성노동자들을 향해 똥물을 투척했던 것이다. 사진으로만 봐도 그 정도가 매우 충격적이었다. 남성노동자들은 여성노동자들의 옷 속에, 심지어 입 속에까지 똥물을 들이부으며 사측에 대한 충성을 과시했다. 당시 남성노동자들의 행동을 두고 자본에 의해 매수당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음을, 본질적으로 남성노동자는 여성노동자의 적이 아니기 때문에 하나로 뭉쳐야 한다는 것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대체 왜 그렇게까지 해야 했을까 선뜻 납득이 가진 않았다. 남자를 제치고 여자가 나선다는 게 이성을 잃게 할 만큼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나? 자본가들이 왜 눈에 쌍심지를 켜고 여성노동자와 남성노동자들을 갈라놓으려고 발악을 했는지 그 이유를 새삼 알 것도 같다. 그들의 이윤을 지키기 위한 방법 중 가장 악랄하고도 확실한 것이었을 테니까.
끈질긴 복직 투쟁과 블랙리스트
124명의 여성노동자들은 결국 해고되었고, 상급단체인 한국노총 섬유노조에서는 동일방직 노조집행부를 제명해 버렸다. 그럼에도 그녀들은 굽히지 않고 계속해서 투쟁을 이어나갔다. 오갈 데가 없어 산업선교회에서 함께 숙식을 하며 복직투쟁을 전개하고 있었는데, 한국노총과 중앙정보부에서 전국에 뿌린 블랙리스트 때문에 다시 일을 시작하기도 매우 어려웠다. 너무 되는 일이 없어 어떻게 죽어야하나 고민하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고 했다.
밥 해 먹을 때면, 서로 더 큰 밥그릇을 차지하기 위해 눈치까지 보아야 하는 어려운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1979년 3월 10일 장충체육관에서 생중계되고 있던 노동자의 날 행사(박정희 군사독재정권은 의도적으로 메이데이 날짜를 바꾸었다)에서 유신을 철폐하고 동일방직 문제를 해결하라며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그 이듬해에는 한국노총을 점거하고, 노동부를 압박하여 드디어 사측을 대화로 이끌어내는데 성공하게 된다. 그러나 1980년 5월 17일 갑자기 전국에 비상계엄이 떨어지게 되었다. 그 땐 다들 이제 여기서 끝이라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그 후에도 계속해서 포기하지 않고 끈질기게 투쟁을 이어나가려 했지만, 결국 84년에 퇴직금을 타고, 85년 이후 대법판결에서도 좋지 않은 결과가 나와 각자 개인 생활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몇 년에 걸친 복직투쟁에도 불구하고 끝내 승리를 거두진 못했지만, 포기하지 않고 끈질기게 싸움을 이어나가려했던 과정을 지켜보면서 과연 현재 우리의 모습은 어떠한지 뒤돌아보게 되었다. 7,80년대 군사정권을 뚫고 87년 노동자 대투쟁을 기점으로 노동운동은 크게 성장했다. 민주노총이라는 조직이 있고, 당시 상황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총파업도 가능하다. 그러나 조직이 배가된 만큼 투쟁의 힘도 그만큼 세어졌는가? 꼭 그렇지만은 않다. 오히려 현재 대부분의 투쟁은 다른 노동자들과 함께 할 수 있는, 또 다른 연대를 불러낼 수 있는 투쟁이 아니라 점차 개별 단위, 단사의 문제로 고립되어가는 양상을 띠고 있다. 현장에서 더 많은 조합원들을 끌어낼 수 있는 투쟁 대신에 상층부끼리의 사회적 합의와 제도적 개선으로 우리의 시야를 가리고 있기 때문이다. 노동자들에 대한 자본가들의 공격이 더욱 거세지고 있는 이 시점에서 이 한계를 뛰어넘지 않는다면 각개격파 당하며 그들에게로 빨려 들어갈 수밖에 없다.
시대적인 여러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전투적으로 싸움을 이어왔던 모습에서 우리는 매우 의미 있는 질문 하나를 뽑아낼 수 있다. 만약 동일방직 여성노동자들이 사회적 여론을 두려워하고, 보수 언론의 방망이질을 두려워하고, 정부의 탄압을 두려워하여 좁아터진 1차선에서 평화적 행진만 하려고 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정말 바로 복직이 되고, 노조 활동을 인정받고, 자본가와 같은 하늘 아래 함께 살 수 있다는 희망적 메시지라도 가져다 주었을라나? 투쟁의 방식을 고민하며 우왕좌왕 하고 있는 현재의 시점에서 다시 한 번 이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 이후의 이야기
2000년에 동일방직 투쟁이 민주화운동으로 인정받게 되면서 전국 각지로 흩어져 있던 124명의 해고자들이 다시 한 번 한 자리에 모이게 되었다. 오랜 시간동안 주변으로부터 따가운 시선을 받으며 험난한 고갯길을 넘어왔던 그들이었다. 투쟁이 끝난 이후에도 공안에 의한 감시가 끊이지 않았고, 빨갱이라 하여 시골의 어느 마을에는 현수막이 걸리기도 했으며, ‘치마 두른 기집’이 설친다고 더욱 많은 설움을 받아야 했다. 게다가 아직까지 유령처럼 살아 있는 블랙리스트 때문에 끊임없이 해고의 위험을 감수하고 일해야 했다.
동일방직 복직 추진위원회가 만들어 진 후 정부에서는 사측에 복직을 권고했으나 사측에서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동일방직 여성노동자들은 또다시 사측을 상대로, 정부를 상대로 투쟁에 나서게 되었으며, 지금까지 그 흐름은 지속되고 있다. 정말 어이없는 일이지만, 지난 11월 7일 한국섬유산업연합회에서는 섬유·패션산업 발전에 기여한 공로자라 하여 이항평 동일방직 사장에게 금탑산업훈장을 수여했다고 한다. 몇 십 년 동안 노동자들을 착취하며 고혈을 짜왔다는 게 자본가들에겐 꽤나 큰 자랑거리가 되나보다.
투쟁은 계속 된다
영화가 시작되기 전에 보았던 KTX 동지들의 영상물에는 경찰에 의해 농성장에서 끌려나오던 모습과 민세원 지부장의 삭발식이 담겨 있었다. 서울역에서 농성투쟁을 하며 서명운동을 하고 있을 때, 지나가던 여러 시민들은 투쟁 동영상을 보며 가던 길을 멈추곤 했다. 지금 다시 보아도 여전히 가슴이 먹먹하다. 이렇게 여성노동자들의 투쟁은 계속되고 있다. KTX 승무원들의 투쟁은 이제 300일을 넘어가고 있으며, 골프경기보조원 노동자들의 투쟁이 끊이지 않고 있고, 금융권에서는 분리직군제를 통해 여성노동자들에 대한 차별을 확신시키고 있다. 철도공사는 KTX에 이어 새마을호 여승무원까지 KTX 관광레저로 외주위탁 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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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TX승무원 동지들의 투쟁 |
지겹도록 투쟁해도 승리의 길은 멀고 험하다. KTX 승무원 동지들은 ‘어린 여성 노동자’라든가, 투쟁의 ‘꽃’과 같은 존재로 인식되면서 노동운동 내에서의 성차별적, 가부장적 사고방식과도 맞서 싸워야 했다. 뿐만 아니라 복직투쟁을 전개하면서 다시 일하고 싶다는 의지를 내보이기 위해 가부장적 시선을 기준으로 만들어진 유니폼을 입어야 했다. 서비스업이나 금융업에서 일을 하는 여성노동자들은 단정해보여야 한다는 이유만으로 좁은 치마를 입고 딱딱한 구두를 신는다. 이처럼 여성노동자들이 유니폼을 입는 이유는 좀 더 편하게 일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대부분의 유니폼이 몸에 너무 꼭 붙어 불편한 경우가 더욱 많다. 하지만 고객을 대해야 하는 여성노동자는 항상 고분고분해야 하고 말끔한 외모를 갖추고 있어야 한다. 여성에게만 차별적으로 적용되는 기존의 고정관념이 유니폼을 통해 매우 효과적으로 재생산되고 있는 것이다. 이로써 여성노동자들의 외모는 (주로 남성) 고객의 만족을 위한 하나의 도구로 전락한다. 여성노동자들의 투쟁이 한 걸음 더 앞으로 나아가려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여성을 억압하고 있는 여러 가지 기제에 대한 문제제기도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여성노동자들의 투쟁을 바라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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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용자 동지와의 간담회 |
1970년대부터 이어져 온 여성노동자들의 투쟁은 그저 하나의 사건으로만 가두어져선 안 된다. 강산이 세 번 바뀌고도 한참 더 시간이 흐른 지금, 노동계와 학계 일부에서는 이제까지 노동운동사에서 제대로 논의되지 못했던 여성노동자들의 투쟁을 진지하게 재평가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영화를 만든 감독과 인터뷰에 응했던 동일방직 여성노동자들은 이와 같은 지식인들의 평가에서 더 나아가, 그 당시 주체였던 당사자들의 목소리로 다시 한 번 투쟁의 역사가 재구성되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김용자 동지는 해고 이후 124명의 삶을 정리해보기 위해 그에 따른 자료를 준비 중이라며 동일방직 투쟁뿐만 아니라 반도, 원풍, 해태, 마이크로전자, 콘트롤 데이터 등 7,80년대 민주노조운동이 이후 노동운동을 형성해내는 밑바탕이 되었다고 이야기했다.
사실 요즘 나는 어떤 관점을 가지고 여성노동자들의 투쟁에 접근해야 하는지 고민이 된다. 노동해방이 먼저냐 여성해방이 먼저냐의 논쟁이 무의미한 것처럼, 여성노동자들의 투쟁 또한 전체 운동 상황과 맞물려 함께 갈 수밖에 없음을 알고 있다. 하지만 곳곳에서 여성노동자들의 투쟁은 끊임없이 계속되고 있는데 노동운동 내에서, 사회주의자들 사이에서 이에 대한 문제의식은 아직 걸음마단계에 머물러있다. 부르주아적 여성운동에서 하는 것처럼 그저 정책적 접근만이 해결책이라고 이야기 할 수는 없다. 자본주의 사회가 끝나지 않는 한 온전한 여성해방은 불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외치며 싸워야 하는가? 어떤 슬로건으로 이 체제에 균열을 내야 하는가? 이것은 물론 내 의지만으로 혼자 해결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니기에 장기간의 전망을 함께 고민하기 위한 시도가 필요하다고 본다.
한 걸음 더 전진하기
지금이야 많이 나아졌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노동운동 내에서 ‘여성’이란 주제를 따로 들고 나오는 것은 단결로 똘똘 뭉쳐야 할 조직에, 안 그래도 힘겨운 투쟁에 커다란 짐을 얹어주는 것과 같았다. 그러나 여성노동자들의 문제는 앞에서도 이야기했듯이, 전체 노동자계급의 문제와 따로 떨어져 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아직은 역량이 안 되니까 조금만 있다가 나중에 고민해도 되는 문제가 아니라는 말이다.
얼마 전 진보넷과 노동자의 힘 기관지에 몇 차례 실린 적이 있는 「최지영의 글쓰기」를 접해봤을 것이다. 그녀는 조직을 위한다는 구실로 성폭력 가해자를 감싸며 2차 가해를 저질렀던 사람들을 냉철하게 비판했다. 그녀의 문제제기를 지지한다며 많은 사람들이 인터넷으로 서명을 남겼다. 그 중엔 ‘사실 난 여기 서명할 자격이 없다’는 이야기가 꽤 많이 쓰여 있었다. 그 말은 즉, 현실에서는 아직도 가부장적인 태도를 떨쳐버리지 못했다는 고백이었을 것이다. 자기 자신에 대한 솔직한 평가로부터 문제의식은 확산될 수 있다. 하지만 그저 어쩔 수 없다는 냉소적 고백만으로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한 번 더 되돌아보아야 한다. 끊임없이 성찰하는 자세만이 나 자신을 가두고 있는 울타리에서 벗어나게 할 것이다.
현재 운동권 내에서는 과거의 가부장적 분위기와 질서를 타파하기 위한 움직임이 여기저기서 전개되고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우리의 의식이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바뀌는 것은 절대 아니다. 더구나 여성과 남성의 분할을 적극 권장하고 있는 자본주의 이데올로기의 집중포화를 맞고 있는 현시점에선 좀 더 적극적인 자세가 필요하다. 여성이 아니라는 이유로, 내가 잘 아는 영역이 아니라는 이유로 관심이 적을 수밖에 없다고 이야기하는 남성 동지들, 혹은 여성동지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의식적으로 실천하고 노력을 기울일 때만이 기존의 사고방식을 바꿔낼 수 있다. 평상시에 여성 노동자들의 문제에 관심을 갖지 않았다고 부끄러워 할 필요는 없다. 움츠러들 필요도 없다. 늘 그렇게 자책만 하고, 실제로 아무런 실천도 하지 않는 것이야 말로 질책 받아 마땅하다. 사소하지만 이런 영화부터 하나씩 감상해보는 데서 지평을 넓혀나가자. 함께 고민할 때만이 한 걸음 더 앞으로 나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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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 여성영상집단 움 |
우리들은 정의파다 좋다 좋다
같이 죽고 같이 산다 좋다 좋다
무릎을 꿇고 사느니보다
서서 죽기를 원한단다
우리들은 정의파다
<동일방직 여성노동자들의 노래 가사 바꿔 부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