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속득층 학생 75만명 대책없이... 학교는 매주 놀토
교과부.교육청은 태평한데
토요일 방과후 수업 원하는
학부모.학생 숫자도 파악 못해
"학기 시작되면 준비해도 된다"
형편어려울수록 속 탄다.
"토요일 학교 안 가면 아이들 TV.게임 빠질텐데...
학원보내자니 사교육비 걱정
오는 3월부터 전국 초.중.고등학교에서 토요일에 학교 안 가는 주5일 수업제가 전면 실시된다.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진 사람은 토요일 날 일하는 저소득층 아빠.엄마다. 2011년 현재 전국 초.중.고등학생 720만명 가운데 기초생활수급자와 차상위계층 자녀는 75만명이다. 특히, 이 중 절반이 아직 돌봄이 필요한 초등학생이라고 가정할 때. 당장 개학(3월2일 금요일) 이튿날부터 전국적으로 37만명의 초등학생이 우두커니 혼자 있어야 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정부는 새 학년이 보름 앞으로 다가온 지금까지도 토요일 방과 후수업을 원하는 학부모와 학생이 몇명인지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이들이 어떤 프로그램을 필요로 하는지. 일선 학교에서 과연 그런 프로그램을 소화할 수 있을지도 불투명한 상황이다. 교육과학기술부는 19일 "개학하면 조사하겠다"고 했다.
◆제대로 준비했나
정부는 1998년부터 주5일 수업제를 꾸준히 확대해왔다. 하지만 준비를 꼼꼼히 한 건 아니다는 지적이다. 교과부는 작년 11월 전국 1만1000여개 초.중.고등학교에 공문을 보내 그중 9040여개 학교로부터 "토요일 방과후수업 수요가 있다"는 보고를 받았다. 하지만 수요가 있다는 학교숫자만 헤아렸지 주5일 수업제를 전면 실시했을 때 지역별. 계층별로 어떤 문제가 생길 수 있는지는 따로 챙겨보지 않았다.
준비가 없긴 일선 교육청도 마찬가지다. 서울시교육청은 "그동안 초등학교 저학년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운영해온 평일 돌봄 프로그램이 제대로 자리 잡지 못한 지역에서는 동네 도서관을 개방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얼마나 어떻게 확대할지는 정한 바 없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새 학년이 시작되면 어차피 아이들이 바뀌기 때문에 방과후수업 수요조사를 미리 해 놓는 게 무의미하다"고 했다.
학부모들은 걱정하고 있다. 남편과 사별하고 청소로 아이 셋을 키우는 신민자(50)씨는 "겨울방학 할 때 학교에서 '주5일 수업제 전면 시행에 찬성하느냐'고 묻는 설문지가 오더니. 좀 있다 아이에게 '선생님이 새 학년부터 토요일 특기.적성수업은 웬만하면 신청하지 말아달라고 했다'는 말을 들었다"면서 "나는 매일이 전쟁인데 공무원과 교사는 자기네 편한 것만 생각한다"고 했다.
◆어렵게 살수록 속 탄다.
또 다른 문제는 자칫'사교육 부담이 늘지 않을까'하는 점이다. 경기도 부천시 한 설렁탕 체인점에 근무하는 이상미(40)씨는 회사원 남편(41)과 중2.초등학교 5학년 형제를 키운다. 업종 특성상 이씨는 주말을 포함해 하루 10시간씩 주6일 근무하고 평일 하루만 쉰다. 남편은 격주 토요 휴무다. 두 아이 영어.수학.피아노.농구 학원비로 월 100만원 안팎이 사라진다.
이씨는 "주5일 수업제를 하면 부모가 프로그램을 짜주지 않는 한 아이들이 TV와 게임에 빠지기 쉽고, 그걸 막자니 학원에 보내게 된다"면서 "지금도 둘이 벌면 한 사람 봉급은 사교육비로 나가는 판이라 부담스럽다"고 했다.
계층 갈등을 키울 수도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아이 셋 키우는 신씨의 경우 "먹고살기도 힘든 판에 정부가 주5일제 한답시고 사교육만 부추긴다는 생각에 청와대 신문고에다 '이런 거 하지 말라'는 글도 올린 적 있다"고 했다.
김희삼 한국개발연구원 연구위원은 "공부시간을 줄이는 것 그 자체는 올바른 방향이지만. 이런 식으로 준비 없이 주5일 수업제를 시행하면 오히려 계층 격차를 벌릴 수 있다"면서 "지금이라고 정규 수업으로 해결되지 않는 예체능.체험 학습 중심으로 질 좋은 토요일 프로그램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