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4대 미녀(美女)
<4> 천하절색 양귀비(楊貴妃)
당(唐)나라 6대 황제 현종(玄宗:AD 685~762)은 52세에 총애하던 황후 무혜비(武惠妃)가 죽자 하필이면 자신의 18번째 아들(왕자)의 부인이던 며느리 양옥환(楊玉環)의 미모에 빠져버린다.
현종(玄宗)은 환관(宦官) 고력사(高力士)를 시켜 며느리였던 양옥환을 도교(道敎) 사원에 넣어 5년간 신분세탁을 시킨 후 AD 745년, 61세 때 자신의 귀비(貴妃)로 책봉하니 곧 중국 고대(古代) 4대 미녀의 한 사람으로 꼽히는 양귀비(楊貴妃)로 당시 26세였다고 한다.
(1) 당 현종과 양귀비
당(唐) 현종(玄宗) / 시안(西安)의 화청지(華淸池) / 양귀비 동상 / 장한가(毛澤東 친필)
알려진 것과는 달리 현종은 뛰어난 시인이며 서예가(현종의 친필로 새겨진 비석이 남아 있다.)이자 음악에도 조예가 깊었다고 하고, 양귀비는 당시의 미인 기준이었다지만 풍만한 체구(키 165cm, 몸무게 70kg 정도)에 체취(體臭/암내)가 심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그녀는 춤과 노래에 능해 현종이 시를 짓고 노래를 부르면 기막히게 춤으로 표현하는 재주가 있었다고 하니 두 사람은 천생연분(天生緣分)이었던 듯싶다. 훗날 중국 사람들은 양귀비의 미모를 두고 수화(羞花)라는 말을 만들어 냈는데, 양귀비가 모란꽃을 어루만지자 꽃이 양귀비의 미모에 부끄러워 꽃송이를 오므리고 고개를 숙였다는 뜻이다. 또 연수환비(燕瘦環肥)라는 말도 있는데, 조비연(趙飛燕)은 말랐으나(瘦) 미인이고, 양귀비는 뚱뚱했으나(肥) 미인이라는 뜻이다.
양귀비는 옥(玉)을 좋아해서 항상 온몸에 수많은 옥을 달고 다녔다고 하는데 양귀비가 걸으면 발소리는 들리지 않고 잘랑거리는 옥구슬 소리만 들렸다고 하는데 밤에 잘잘 때에도 커다란 옥을 입에 물고 잤다고 한다. 양귀비는 자신의 몸에서 심한 체취(암내)가 있어 이를 감추려고 사향(麝香-사향노루 수컷의 배꼽과 생식기 부분에서 나오는 향즙<香汁>) 주머니를 늘 몸에 지니고 다녔다고 하는데 사향(麝香)은 고급 향료일 뿐만 아니라 귀중한 한약재이다.
그 약리작용은 ①개규(開窺-정신을 맑게 함), ②활혈(活血-혈액순환이 잘 되게 함), ③최생(催生-아기 분만을 쉽게 함) 등에 특효가 있지만, 여성이 소지하면 지속적인 자궁경련(子宮痙攣)이 일어나 임신을 어렵게 한다고 한다. 그런 연유인지 현종과 양귀비 사이에는 소생(所生/子息)이 없었다.
대 서사시 장한가(長恨歌)는 당나라의 천재 시인인 백거이(白居易/樂天)가 양귀비와 현종의 사랑 이야기를 주제로 쓴 칠언고시(七言古詩)로 120구(句) 840자(字)에 이르는 서사시인데 특히 마지막 부분인 ‘비익조(比翼鳥), 연리지(連理枝)’ 부분은 특히 중국 사람들의 심금을 울려 지금까지도 부부의 금실이나 사랑을 이야기할 때 회자(膾炙) 되는 유명한 구절이고, 특히 공연 끝부분에서 현종이 양귀비를 안고 이 부분을 노래 부르는 장면에서는 많은 중국 관객들이 손수건으로 눈물을 찍어내는 것을 나는 직접 보고 왔다.
장한가(長恨歌)<일부분>
在天願作比翼鳥(재천원작비익조) 在地願爲連理枝(재지원위련리지)
하늘을 나는 새가 되면 비익조가 되고 / 땅에 나무로 나면 연리지가 되기를.
天長地久有時盡(천장지구유시진) 此恨綿綿無絶期(차한면면무절기)
천지 영원하다 해도 다할 때가 있으련만 / 이 슬픈 사랑의 한은 끊일 때가 없으리.
♧ 비익조(比翼鳥)-암컷과 수컷의 눈과 날개가 각각 하나씩이어서 둘이 합치지 못하면 날지 못한다는 전설상의 새
♧ 연리지(連理枝)-각기 다른 뿌리에서 장성한 나무가 가지가 만나 하나로 연결된 나무
이 장한가는 백거이(AD 772~846)가 35세 때 시안(西安/長安) 주지현(周至縣)의 현위(縣尉)로 재직할 때 고을의 장로(長老)들로부터 들은 이야기에 감명을 받아 서사시 형식으로 쓴 것이라고 한다.
첫째 부분은 양귀비가 총애를 받다가 안녹산의 난이 일어나 양귀비가 죽는 장면까지, 둘째 부분은 양귀비를 잃고 난 후의 현종이 양귀비를 못 잊어 몸부림치는 쓸쓸한 생활, 셋째 부분은 죽어서 선녀가 된 양귀비가 하늘에서 내려와 현종과 만나는 장면으로 되어 있는데 공연도 그 줄거리를 그대로 따라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