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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구럼비야 사랑해 원문보기 글쓴이: 진달래산천
국가인권위원회 웹진에 실린 강정마을 이야기를 올린다.
1990년 소설 <빨치산의 딸>을 쓴 정지아 작가의 글이다. <빨치산의 딸>은 금서였다가 최근 복간되었다.
'지아'라는 이름은 지리산과 백아산에서 하나씩 따온 이름이다.
그녀의 어머니는 지리산에서 아버지는 백아산에서 빨치산 투쟁을 했다. 지금 지리산 한모퉁이에서 살고 있다.
나와 같은 동네다. 술 친구다.그립다.
8월 26일 강정에 와서 취재했다.
구럼비와 붉은발말똥게와 은빛멸치떼와 앞으로도 오늘처럼
한라산은 마치 할머니처럼 머리를 풀어헤치고 편안히 누워 강정마을을 굽어보고 있다.
그 산에서 발원한 강정천과 악근천이 강정마을의 들을 적시며 바다로 흘러든다.
물이 많은 덕분에 강정마을의 땅은 그 어느 곳보다 기름지고, 강정마을 감귤은 익기도 전에
서울 상인들에게 밭떼기로 팔려나간다.
서귀포 어디나 흔한 감귤 가판대가 유독 강정마을에서만 보이지 않는 이유다.
강정마을 귤은 당도가 다른 마을 것보다 평균 20~30% 높다. 강정천 다리 하나 만 건너가도 맛이 다르다.
물이 풍부하고 땅이 기름진 강정마을을 예로부터 제주 사람들은 일강정이라 불렀다.
제주에서 일등으로 살기 좋은 마을이라는 뜻이다.
제주에서 일등으로 살기 좋은 강정마을이 요즘 연일 매스컴에 오르내린다. 해군기지 때문이다.
강정마을에서 해안가로 내려가면 기다란 해안선을 따라 구럼비라고 부르는 검은 너럭바위가 있다.
폭이 600m, 길이가 무려 1.2km에 달하는 구럼비는 화산돌이 아니라 먹돌로, 전국 유일의 용암 너럭바위다.
구럼비 군데군데서는 용천수가 분출한다. 구럼비의 용천수는 요즘도 먹을 수 있을 만큼 깨끗하다.
이곳에 해군기지가 들어설 예정이다.
둘로 갈라져버린 마을
얼마 전까지 마을 사람들은 구럼비로 들어가는 중덕삼거리에서 쇠사슬로 자신들을 묶은 채 공사차량의 진입을 막았다.
그러나 지금 중덕삼거리에는 주민들의 출입을 통제하는 펜스가 설치되었다.
강정마을 사람들은 내 집처럼 다니던 곳을 이제 다시는 들어갈 수 없다.
펜스 안에서는 구럼비 바위를 깨는 평탄화 작업이 진행 중이다.
해군기지 생각만 하면 정영희 씨는 자다가도 심장이 벌렁거려 벌떡 일어나곤 한다.
올해 예순다섯의 정영희 씨는 강정마을 해군기지대책위원회 여성위원장이다.
해군기지 문제가 불거지기 전까지 영희 씨는 자신이 정부를 향해 목소리를 높이는 날이 있을 거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한
평범한 농민이었다. 그런 영희 씨가 요즘 감귤농사도 뒷전으로 미뤄두고 해군기지 건설 반대운동에 나섰다.
이유는 간단하다. 아름다운 강정에서 살아오던 그대로 죽 살아가고 싶기 때문이다.
영희 씨는 강정마을 출신이 아니다. 강정이 고향인 강성원 씨와 결혼해 22년 전 강정에 정착했다.
전기 기술자였던 성원 씨는 사우디, 이란, 하와이, 오키나와 등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젊은 날을 보냈다.
군 시설 설치나 보수도 자주 했다. 싸움이 끊이지 않는 곳들을 돌아다닌 때문인지 평화로운 고향 제주가
늘 마음에서 떠나지 않았다. 언젠가는 고향에 돌아가 살 작정으로 돈만 생기면 고향에 땅을 마련했다.
정년퇴직을 3년 앞두고 성원 씨는 마침내 고향으로 돌아왔다. 객지 생활 40년 만이었다.
성원 씨에게는 꿈에도 그리운 고향이지만 영희 씨에게는 모든 게 낯선 타향, 게다가 강정마을은 외지인이
별로 없어 텃세도 만만치 않았다. 강정은 마을치고는 상당히 큰 편으로 인구가 근 2000명에 달한다.
그중 90% 이상이 강정에서 나고 자란 토박이다. 해군기지 문제가 터지기 전까지 강정 사람들은 남달리
의도 좋아 갑장계, 동창계, 몰질계, 이름도 다양한 계가 수두룩했다. 계원들끼리 어울려 사시사철 꽃구경에
단풍구경, 해외여행도 자주 다녔다. 그렇게 어울리면서 외지인 영희 씨는 어느덧 강정 사람이 되었다.
처음에는 텃세를 부렸지만 시간이 흐르고 가까워지니 그만큼 더 다정하고 사이 좋은 이웃이었다.
그 사이 좋던 이웃들이 요즘 찬성파, 반대파로 나뉘어 서로 말도 하지 않는다.
어떤 집은 아버지는 찬성파, 아들은 반대파인가 하면 어떤 집은 형이 찬성파, 동생이 반대파다.
처음에는 서로 자기주장을 펼치며 말도 오갔지만 몇 년간 골이 깊어져 요즘은 서로 발길을 끊었다.
제사나 명절 때도 오가지 않는다. 영희 씨도 강정에 와 제일 처음 사귄 해녀 친구가 찬성파라 몇 년째 말도 섞지 않고 있다.
시사촌 하나도 찬성파여서 친척 간에 낯 뜨거운 언성이 오간 적도 있다.
식당도 마트도, 찬성파는 찬성파가 하는 데로, 반대파는 반대파가 하는 데로만 다닌다.
무슨 일이든 똘똘 뭉쳐 단합 잘되기로 유명했던 강정이 둘로 나뉜 것, 영희 씨는 그게 젤 가슴 아프다.
지난 2007년 4월 강정마을은 총회를 열어 해군기지 유치 찬성을 결의하고, 제주도에 유치 신청을 했다.
반대파들은 바로 이 총회를 문제 삼는다. 이장의 주도로 열린 이 총회에 참석한 인원은 해녀 84명이 전부였다.
실거주자만 해도 1200명이 넘는데 총회 참석률이 10%도 되지 않았던 것이다.
8월에야 이 사실을 알게 된 마을 사람들은 다시 총회를 열었고, 해군기지 건설에 반대한다는 의견이 70%가 넘었다.
반대하는 주민들이 절차를 문제 삼는 것도 다 이 때문이다. 유치 신청을 위한 총회가 주민들에게 알려지지도 않은 채
이장의 주도로 찬성할 만한 사람 84명만이 모인 채 실시된 것 자체가 적법하지 않다는 것이다.
반대파 주민들은 총회를 다시 열어 50% 이상의 주민이 해군기지 건설에 찬성한다면 당장 반대운동을 중지하겠다고
의사를 밝혔지만, 해군에서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적법하게 절차를 밟았고, 보상까지 끝났으므로 공사를
강행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이쪽도 저쪽도 할 말은 있고, 하여 이쪽이나 저쪽이나 자신들의 뜻을 굽히려
하지 않는다. 총회의 적법성을 두고 비롯된 강정 사람들의 골은 시간의 흐름과 더불어 더욱 깊어져, 더 이상 말도
주고받지 않는 상황이 된 것이다.
‘평화의 섬’이 평화로울 수 있도록
찬성파와 반대파의 이유는 단순하고 분명하다.
해군기지가 들어서고 군인들이 주둔하게 되면 지역발전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게 찬성파의 이유다.
반대파는 돈이고 무엇이고 지금처럼 아름다운 강정에서 살고 싶을 따름이다.
고향에서 살던 대로 살고 싶다는 것은 환경보호와도 차원이 다르다.
물론 반대파들은 강정의 자연이 파괴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강정마을 사람들에게 구럼비에 사는 멸종 위기
붉은발말똥게나 천연기념물 연산호 군락, 강정천에 서식하는 맹꽁이는 보호해야 할 대상이라기보다
늘 함께 살아온, 앞으로도 함께 살아가야 할 이웃과 같은 존재다.
특히 해군기지가 들어서는 구럼비는 강정에 사는 사람들에게나 고향을 떠난 강정 사람들에게나 고향의
상징과도 같은 곳이다. 강정 사람들은 유년 시절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구럼비에서 보냈다.
지금은 많이 줄었지만 그때만 해도 풀이 지천에 널려서 아이들은 이른 아침부터 소를 끌고 구럼비로 달려왔다.
소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는 구럼비에서 아이들은 입술이 시퍼래지도록 수영을 하고, 목이 마르면 바위에서
솟는 용천수로 목을 축였다. 구럼비 앞바다에서는 고래가 물을 뿜고, 때로는 상어들이 떼 지어 물살을 갈랐다.
구럼비는 아이들의 놀이터이자 일터였다. 물이 들어왔다 나가면 은어나 장어, 게 들이 바위틈에 즐비했다.
그것들만 주워도 저녁 찬거리가 넘쳐났다. 여름철, 아이들은 바다가 가까운 바위에 통을 놓았다.
물이 나간 뒤면 그 통에 은빛 멸치가 가득 담겨 있었다. 멸치나 갈치 떼가 은빛으로 뛰놀던 바다,
해군기지가 들어서면 강정 사람들은 이제 그 바다에 다시는 들어갈 수 없다.
정부는 강정에 들어설 해군기지가 미국의 태평양 함대 모항인 샌디에이고나 프랑스의 툴롱처럼 군항이면서도
크루즈 여객선과 요트가 평화롭게 쪽빛 바다 물결을 가르며 드나드는 세계적 미항으로 만들겠다고 공언한다.
그러나 성원 씨는 정부의 말을 믿지 않는다. 성원 씨는 직업상 군 기지가 있는, 세계 여러 도시에서 일을 했다.
군항이 있는 어떤 곳도 지금의 강정처럼 평화롭지는 않았다.
사람들은 제주를 평화의 섬이라고 부른다. 지난 2005년, 노무현 대통령이 제주 국제 자유도시 특별법 제12조
규정에 따라 제주도를 세계 평화의 섬으로 지정한 뒤부터다.
현 정부는 평화를 지키기 위해 해군기지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강정 사람들은 해군기지가 들어섬으로써 긴장이 고조될 것이라고 믿는다.
해군기지 없이도 지금까지 제주도는 평화로웠다.
강정사람들은 지금까지처럼 앞으로도 평화롭게 살고 싶을 뿐이다.
평화롭게 살기 위해 지난 4년간 영희 씨와 성원 씨는 농사도 뒤로한 채 해군기지 반대운동에 나섰다.
농사야 내년에 또 지으면 되지만 해군기지가 들어서는 순간, 고향은 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정부에서 외부세력이라고 부르는 평화운동가들, 환경운동가들이 들어오기 전까지, 강정 사람들은 외로운 싸움을 해왔다.
그동안 모아두었던 마을 회비도 바닥이 났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싸움이 근 4년, 많은 사람이 지쳐 나가떨어졌다.
영희 씨도 성원 씨도 예외는 아니었다.
모든 것을 포기하려는 찰나 외부세력이 들어왔고, 그들이 온 뒤 많은 것이 달라졌다.
강정 사람도 아닌 그들이 동네에 눌러앉아 경찰 진입을 막고, 컴퓨터와 트위터를 이용해 강정 소식을 세상으로 전했다.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이 강정마을을 지키기 위해 십시일반 돈을 보냈고, 물이며 쌀이며, 음료수가 가득 쌓였다.
영희 씨는 그들이 보낸 돈이나 선물이 반가운 게 아니다. 그들의 마음이 고맙고 관심이 고맙다.
요즘 30여 명의 외부세력이 강정마을에서 먹고 잔다. 동네 사람들은 수시로 음식을 해 나른다.
남의 일에 팔 걷어붙이고 나선 그들에게 강정 사람들은 큰절이라도 올리고 싶은 심정이다.
영희 씨도 틈틈이 그들이 묵는 마을회관을 찾는다. 때로는 부침개를 들고 때로는 김치를 들고.
본래 강정은 본토박이가 많아 외지인을 품기보다 다소 배타적인 곳이었다.
제주 어디나 흔한 펜션이 강정에는 하나도 없는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다.
외부세력의 도움을 받으면서 강정 사람들이 변하고 있다. 아무 연고도 없는 외지인들이 강정을 지키기 위해
발 벗고 나섰고, 강정 사람들은 그들을 자식인 양 조카인 양 품고 있다.
평생 경험해본 적 없는 이러한 연대감이 원동력이 되어 강정 사람들은 지루한 싸움을 계속하고 있다.
고향이 사라지는데 돈 몇 푼 더 벌어 뭐해
구럼비가 깨져 나가고 있지만 아직도 영희 씨는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정부의 대응이 강경해진 만큼 강정을 지키는 데 동의하는 사람들이 더 늘어나고, 반대 운동에 합류하는 사람들이
더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3일에는 강정을 지키려는 평화의 비행기가 떴다. 평화의 비행기로 온 200여 명과
제주도 각지에서 평화버스를 타고 온 2000여 명의 사람이 강정 주변의 올레길 7코스를 걷고 ‘놀자 놀자 강정 놀자’ 문화제에
참석했다. 모인 사람들보다 더 많은 경찰병력이 에워싸고 있었지만 문화제는 평화적으로 진행되었다.
평화의 비행기는 오는 10월 1일에도 뜰 예정이다.
감귤농사로 한창 바쁜 철이다. 매일같이 벌어지는 시위 때문에 농사일도 여러 번 때를 놓쳤다.
조랑조랑 매달린 감귤만 보면 영희 씨는 억장이 무너진다. 귤을 따줘야 나머지 귤이 크고 싱싱하게 자라는데
올해는 못난이 귤만 잔뜩 따게 생겼다. 22년 전 제주도에 와서야 영희 씨는 처음으로 농사를 지었다.
힘들고 고되지만 가을 햇살에 샛노랗게 익어가는 귤을 보면 그동안의 힘든 게 싹 가셨다.
아무리 힘들어도 영희 씨는 그 맛에 농사를 짓는다. 땅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뿌린 땀만큼 땅은 정직하게 돌려준다. 자식들에게도 영희 씨는 나이 들면 고향에 내려와 농사를 지으며 살라고 말한다.
이쪽 농장은 큰아들, 저쪽 농장은 작은아들, 마음속에서 이미 자식들 몫도 정해놓았다.
하지만 이제 다 부질없는 짓이 될지도 모른다.
반대운동에 실패해서 해군기지가 들어서면 영희 씨 부부는 고향을 떠날 작정이다.
영희 씨의 밭 중 일부는 기지 부근에 위치해 있다. 앞으로 자기 밭에 가려면 해군에서 발급하는 신분증을
목에 걸고 들어가야 한다. 내 땅 내가 가는데 목걸이를 걸고 가야 한다는 것도 못마땅하고,
기지가 들어선 뒤 마을을 휘젓고 다닐 군인들을 보는 것도 못마땅하고, 하루 종일 이착륙할 비행기 소음도 못마땅하다.
내 집처럼 드나들던 강정천에 마음대로 못 가는 것은 더욱 싫고, 구럼비가 사라지는 것은 더더욱 싫다.
영희 씨나 성원 씨에게 해군기지가 들어선 강정은 더 이상 강정이 아니다.
강정천과 구럼비는 강정의 상징이자 얼굴이다.
구럼비 깨는 중장비 소리가 강정 사람들에게는 고향이 무너지는 소리나 다름없다.
“내가 나고 자란 고향이 사라지는데 돈 몇 푼 더 벌어서 뭐하겠어요?”
이것이 영희 씨의, 성원 씨의, 해군기지 건설에 반대하는 강정 사람들의 한결같은 마음이다.
순수 군항이든 민군 복합형 관광미항이든, 강정 사람들은 물을 뿜는 고래와 용천수
솟아나는 구럼비와 구럼비를 한가롭게 기어다니는 붉은발말똥게와 은빛 멸치떼와 함께 살아가고 싶을 뿐이다.
지금 이대로의 강정에서.
★ 정지아님은 소설가로 1990년 <빨치산의 딸>을 출간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고, 소설집으로 <행복> <봄빛> <고구려국선량 을지소>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