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것을
- 작가
- 나가이다카시
- 출판
- 바오로딸
- 발매
- 1991.03.01.
이 책은
일본의 방사선학자인 나가이 다카시가 쓴 자전적 소설로 지나친 방사선 노출로 백혈병이 생겼을 때 영원한 것을 찾으면서 쓴
책이다.
책의
제목은 ‘영원한
것을’,
처음
받았을 때 책 뒷면에 ‘모든
것이 재가 된 비명 속에서 발견한 [영원한
그분]을 찾게
한다’,
‘지상의
삶 허무하다’
등의
말들이 이해되지 않았다.
이
책에서 나는 여러 가지 가치를 찾았다.
노력,
의지,
허무,
믿음
그리고 깨달음이다.
의지와
허무가 같이 있다는 것이 이상할지도 모르지만 이 책을 읽다보면 이해가된다.
책의
주인공,
류우키치는
의대를 수석으로 졸업하지만 급성중이염으로 청력이 감퇴하여 청진기를 사용할 수 없게 된다.
이 때
그는 일본에서 새로운 학문인 뢴트겐과(방사선과)의
조교로 들어가면서 새 세계를 경험한다.
이 당시
뢴트겐과는 유럽에서는 매우 많은 관심을 받지만 일본에서는 독립되지 않은 과,
쓸모없는
과로 대우받는다.
이에
주임인 아사쿠라 조교수와 류우키치는 독립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한다.
뢴트겐과는
여러모로 유용하고 발전할 학문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가장 인상적 이였던 말은 아사쿠라 조교수가 ‘정치가는
한시적이지만 과학자는 영원하다’라는 말
이였다.
칭키즈
칸은 한때 위대했지만 현재의 몽고는 제대로 된 국가의 모습을 갖추지 못한다.
하지만
아르키메데스,
피타고라스는
지금까지도 사람들에게 기억되고 있다.
또한
지금도 문제인 일본의 역사에 대해서도 말한다.
흥망성쇠,
시간적인
일만 중요시하고 영원한 것,
즉
정신적인 것은 돌아보지도 않는다.
이러한
시각이 1900년대에도
존재했다는 게 일본에 대한 나의 시각이 조금이나마 달라지게 되었다.
또,
이
책에서 핵심이 되는 것은 ‘종교’이다.
1900년대
초반,
일본은
많은 전쟁을 일으켰다.
만주사변부터
제2차
세계대전의 핵폭탄 투하까지 류우키치는 전쟁으로 소집된 군의관으로서 적군,
아군
상관없이 자기의 신념으로 부상자들을 치료하게 된다.
그리고
왜 죄 없는 청년들이 지도부 때문에 희생당해야하는지 여러 번 느끼고 국가를 위해서가 아니고 벗,
그리고
부상병을 살리기 위해서라는 것을 깨닫는다.
마지막의
핵폭탄 투하 때 류우키치는 그렇게 열심히 모은 실험의 자료와 연구,
친구,
동료,
이웃들과
아내마저 재로 변한 것을 보고 지상에서의 삶은 허무하고 그리스도의 말씀만이 영원히 남는다는 것을 깨닫는다.
나는 이
책을 이해하기위해 여러 번을 읽었다.
아무래도
종교적인 이야기가 많았고 지상에서의 삶은 허무하다는 말이 인간의 의지는 부질없다고 이해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책을 읽고서는 나는 이 말이 의지와는 상관없이 정신적인 가치라는 것을 깨달았다.
우리의
모든 것이 사라졌을 때는 종교,
정신적인
것만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약간 부정적인 책이라고도 생각 할 수 있지만 나는 약간이나마 그 속에서 ‘영원한
것’을
발견한 것같다.
나는 이
책의 마지막 문장,
그리스도의
말씀,
‘하늘과
땅은 사라질지라도 내말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가
진실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영원한 것이 무엇일까? 한정된 삶을
살고있는 인간에게 영원한 것이란 무엇일까?
사람마다 영원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마 다를 것이다.
나의 경우는, 찰나가 영원하다고
생각한다. 이미 지나간 시간은 공기처럼 흐드러져버리지만
그래도 그 순간은 존재했기 때문이다.
분명히 어디에 존재하고 있을 것 같은 그런 느낌을 가진다.
그 외에도 이런 것을 생각해봤다.
문학, 미술, 학문 등 후세에 길이 남는 어떤 업적. 이런 것이 인간이 영원히 존재하는 방법이 아닐까란 그런 생각. 그런데, 이 책을 읽고
생각이 바뀌었다.
인간은 영원한 존재가 아니기 때문에
그런 업적이 인간이란 생물체가 존재하고 있을 동안은 의미가 있을진 몰라도, 인간이란 존재가 사라져버렸을 때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을.
그것은 곧 그저 인간에게만 중요한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그런 생각이.
인간이라는 생물체가 원자폭탄에
사라져버릴 수 있듯이 작은 생명이 불과하다는 것.
회의주의에 빠지자는 글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로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에서 어떤 진리를 찾고 싶은 것이다.
이 책을 쓴 저자가 가련하다. 나보다
멋지고, 훌륭하고, 똑똑한 분이시지만 너무 힘든 시대를 살았다. 언제나 생각하지만 지금 내 삶에 전쟁이 없다는 것에 난 정말 감사하고 또 앞으로
전쟁이 없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현재에도 전쟁으로 고통받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그 고통에서 벗어났으면 좋겠다.
순수하고, 잘 웃고, 약간은
바보스러운 주인공 류우키치의 이야기.
배경은 일본. 나가사키. 우라카미.
1930-40년대다.
청년 류이키치는 우라카미의 카톨릭에
매료되어 개종을 한다. 그리고 로사리오기도를 언제나 열심히 한다.
중국땅에서 군의관으로 있으며
류이키치는 이렇게 생각한다.
<개인과 개인이 서로 만났을
때에는 아무리 화를 내려고 해도 화를 낼 수 없고, 미워하려 해도 미워할 수 없는 사람들이 민족과 민족이라는 집단 대 집단이 되면 서로
증오하고, 서로 매도하고, 마침내는 서로 죽이려 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국가를 위해 싸우는게 과연 무슨의미가
있는지 회의를 가지기도 한다.
그래도 끝까지 긍정의 힘을 버리지
않고 살아 돌아온 류이키치. 연구에 몰입한다. 류이키치는 볼모지인 자신의 전공에 대한 진정한 연구가 영원한 것이라 생각하고 몸이 상하는 것도
모르고 연구에 집중한다.
그러나, 일본의 탐욕은 끝이 없고.
미국에 대한 공격을 감행한다. 태평양에서.
그때 류이키치는 예감한다. 일본이
중국땅처럼 되겠구나....공격받겠구나!!!
그리고 그 이후는 우리가 알고있듯
원자폭탄이 떨어진다.
한국인이라면 이 시기 한국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고 있을 것이다.
언제나 일본이 가해자라고 생각해왔다.
그러나 이 책을 읽고 생각이 바뀌었다.
가해자란, 권력을 가진 자가 아닐까
한다.
권력을 가진 자들의 탐욕이 인간의
가치를 무시하고 서로 폭력을 자행하는 것이다. 권력에 이용당하고 착취당하고, 그래서 각국의 순수한 청년들은 서로를 향해 총을 겨눈다.
게다가 원자폭탄까지
맞아야하고.
인간은 참 여러가지 모습이 있다.
서로를 죽이는 참혹한 모습이 있는가 하면, 서로를 돌봐주고 아껴주고 낫게해주는 숭고한 모습도 있다. 순수함. 사랑함. 이런 것을 마음깊이
소중하게 간직한다면 과연 부를 위해, 권력을 위해, 나의 이익을 위해, 명예를 위해서 그런 전쟁을 일으킬 수 있을까?
천주교에는 <재의
수요일>이라는 것이 있다.
재. 결국 모든 것은 재가
되어버린다.
결국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신앙이었다.
영원하다는 표현을 쓸 수 있는 것은,
인간 외의 것이다.
그 모든 고통 후에 이 삶을 떠났을
때
그냥 사라진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그건 우리가 알 수 없는
부분이다.
분명한 것은 인간은 연약하다는
것이다.
힘과 권력을 가지면 내가 영원해지는
것 같고, 최고인 것 같겠지만
죽음을 피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지만 그것이 쉽지 않음은 나도
느낀다.
나 역시도 나자신을 컨트롤하기 힘들
때가 있으니까..
류이키치의 삶.
아니 나가이 다카시의 삶. 그
숭고함에 경의를 표한다.
이제는 영원한 곳에서. 아내와 함께
행복하겠지.
당신에게 영원한 것은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