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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의 법'에게 주어진 '권세'
'하나님의 법'이든 '죄의 법'이든 사람에게 해당되는 것
'하나님의 법'이든 '죄의 법'이든 모두 하나님께서 만드신 법이고,
하나님께서 관리하시고, 하나님께서 주신 권세이다.
이것은 영의세계의 일이며, 절대로 스스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하나님을 대적할 수 있는 권세도 아니다.
사람에게 해당되는 것이다.
사람 속에 있는 '하나님의 법'과 '죄의 법'과의 싸움이다.
그런데 거의 '죄의 법'이 이긴다. 사람은 아예 태어날
때부터 '죄의 법'에 속해졌기 때문이다.
우리 믿는 사람들도 물론 그런 갈등을 겪고 이제는 '죄인'임을 고백하게
됐지만, 이제 하나님을 믿으려고 하는 사람들이 "내가 왜 죄인이지?"
"나는 누구를 죽인 적도 없고, 남의 물건을 훔친 적도 없고, 간음을
하지도 않았는데, 욕도 안 해보았고, 싸움도 안 해보았고, 누굴 때려
보지도 않았고, 나는 참 도덕적인 사람인데 왜 내가 죄인이지?"
라는 갈등을 겪을 것이다.
그렇지만 양심 속까지 완벽하리만큼 진실하고 정의롭고, 속과 겉이 같고,
정말 거짓이 아닌 사랑으로 충만할 수는 없다. 그리고 지금 현재 그런
환경이 안 되었기 때문에 나쁜 성격이 많이 발휘되지 않았다고 해도
내 속에는 나쁜 성격들이 존재하고 있는데, 그 나쁜 성격은 누가 나를
함부로 건드리기만 하면 튀어나오려고 준비하고 있다.
나의 나쁜 성격 자체가 '죄'다... 그래서 '죄인' 이다
그런데 '죄(마귀)' 라고 불리우는 나의 '나쁜 성격'은 밖으로 튀어나오지
않아서 사람들은 모를지라도, 하나님께서는 미워하는 마음도 죄라고 하시고,
남의 것을 탐내는 마음도 죄라고 하시고, 간음하지 않았어도 간음하고자
마음만 먹어도 죄라고 하시고, 형제에게 욕하는 것도 죄라고 하시고,
속이 진실하지 못한 것도 죄라고 하시고, 속과 겉이 다른 것도 죄라고
하신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는 그저 죄인이다.
나의 나쁜 성격들은 내 속에서 잠잠히 있는 것 같지만, 남을 미워하고,
시기하고, 남이 잘 되는 것이 배 아프고, 기혼자라 할지라도 다른 이성을
보면 가슴이 두근거리고 궁금하고 사귀고 싶고 잠자리를 생각해보고,
누군가에게 욕하려고 하고, 남이 잘못됐다고 정죄하고 싶고, 이렇게 다른
사람을 향하여서 무언가 나쁜 심성이 드러나고 싶어도 참고 있을 뿐이지
아예 그런 성격이 없다고 장담할 수가 없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 들어있는 '나쁜 성격'을 '마귀'라고 부르시고
'사탄' 이라고 부르시는데, 이 '마귀(나쁜 성격)'가 '죄' 라는 것이다.
'죄'가 '마귀'라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 자체를 '죄인' 이라고 하신다.
그래서 예수님도 베드로에게 "사탄아!"라고 하신 것이다.
이런 '죄인' 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입장에서 말씀하시는 것이다.
이것은 영적인 일이기 때문에 그런가보다 해야지 따지고 들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따져도 나중에 죽어서 하나님 앞에 가야 따질 수가
있는데 그땐 또 따질 수도 없는 것이 하나님 앞에 가면 자동으로
'사람'에 대해서 알게 되기 때문이다.
완전 '몰카' 인생이라고 비유할 수밖에 없다.
원래 '죄값'은 계산됐다 이제는 사람에게 '죄인' 되지 말라
어짜피 우리 사람은 창세 이래로 시작해서 지구가 멸망하는 날이 올 때까지
인류 전체적으로 하나님께는 원래 '죄인' 이지만, 하나님께서 스스로 '예수'
라는 사람의 모습으로 오셔서 그 죄 값을 다 계산하셨다.
믿든지 말든지 사실이다.
그리고 이제는 사람 관계에서 '죄인'이 되지 말라고 하신다.
(요한복음 20:23)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누구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하시니라" 아멘.
그래서 십계명을 주셨는데, 위로 4가지는 하나님께 향한 것이고,
아래로 6가지는 사람에게 향한 것이다. 하나님께 향한 4가지는
'성도' 들은 지키려고 노력하는 것이고, 불신자들은 모르는 것이고,
사람에게 향한 6가지는 성도나 불신자나 다 지키라고 하시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네 이웃의 것을 탐내지 말라" 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시는 것이 '사랑' 이시다.
눈에 보이지 않으시는 하나님께 향한 사랑하는 마음은 잘 모를지라도,
눈에 보이는 사람에게는 사랑하는 마음으로 잘해주라고 하시는 것이다.
특히 부부에게, 부모 자녀에게, 친척 형제에게, 이웃에게, 교회에,
나라에, 세계에... 그것을 눈 여겨 보신다.
사랑하는데 미워하지 않을 것이며, 사랑하는데 욕하지 않을 것이며,
사랑하는데 폭행하지 않을 것이며, 사랑하는데 그가 잘되는 것이 배
아프지 않을 것이며, 사랑하는데 남의 것을 빼앗지 않을 것이며,
사랑하는데 죽이지 않을 것이며, 사랑하는데 강간하지 않을 것이며,
사랑하는데 장기를 빼지 않을 것이며, 사랑하는데 음식물에 독을 타지
않을 것이며, 사랑하는데 험담하거나 이간질 하지 않을 것이며,
사랑하면 내 것을 주고 싶을 것이며, 사랑하면 남이 잘될 때
박수를 쳐주고, 남이 잘 못되면 같이 울어 줄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그렇게 서로 서로 사랑하라고 하신다.
'나라 법'으로도 잡아내고 '양심 법'으로도 잡아내고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 땅의 시스템을 만드시기를 사람에게 잘못하는
것들을 잡아내게 하시는데, 법으로 잡아내야 하는 것들은 '나라 법'으로
정해져서 잡아내고 감옥에 가두고, 사형도 당하고, 몇 년형 벌을 받고,
벌금을 내고, 서로 합의를 보고 하게 하셨다.
하지만 그 정도는 아니더라도 도덕적인 잘못이 드러나 손가락질 받고,
비판을 받고, 창피하게 되고, 도망 가고 싶고 숨고 싶고,
욕도 먹게 되기도 한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양심 법' 이라는 것도 적용하시기 때문에
아무도 모를지라도 내가 나를 잘 아는 내 속의 죄를 책망하시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아주 약간의 비웃음이나 눈흘김도 싫어하신다.
사람 앞에서는 죄 같지 않은데 하나님 앞에 서면 죄가 된다.
하나님은 우리가 잡아먹는 동물이라 할지라도 함부로 죽이고 다루는
것을 싫어하신다. 우리가 맛있게 먹는 음식물이기 전에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작품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러니 '사람' 이라는 작품은 우리는 생각할 수도 없고 상상할 수도
없을 만큼 대단한 것이다. 그 '작품'을 존중히 여기라는 말씀이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런 것을 못 믿겠어요" 하는 것도 이해하신다.
불신자도 안 믿어질 뿐이지 하나님께 계산되고 있다
내가 정말 죄인이 아니라면 인생에 아무 형벌도 안 당했어야 한다.
나쁜 성격 이라는 것은 눈꼽만큼도 나타나지 않았어야 한다.
그러면 하나님의 징계도 없기 때문에 세계에서 제일 잘 살아야 하고 제일
높은 자리에 올라 있어야 한다. 지구가 당신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자녀들도 세계에서 제일 잘 되어 있어야 한다.
먼지만한 질병이나 고통도 없어야 한다.
하지만 평범하게 살고 있다면, 그래도 살면서 이런 저런 어려움도
있었고, 질병도 있었고, 고난이 있었다고 한다면, 일의 엉킴이 있었다고
한다면, 자녀가 속도 썪였다면, 본인은 몰랐어도 하나님께 계산당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나님께서 내 눈에 안 보일 뿐이지 영의세계에서 하나님의 '복'과
'화'의 명령에 의해 내 인생이 펼쳐졌던 것이다.
안 믿어질 뿐이지 지금 나는 그렇게 살고 있다가 죽는 것이다.
하나님을 믿든 믿지 않든 인생을 가만히 생각해보자.
태어나서 자라서 늙어서 죽는다.
그렇지만 사고로 죽고, 질병으로 죽고, 고생고생 하다가 일찍
죽는 것이 결코 좋은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 그나마 계산이 적게 된 것이 '자는 듯이 죽는 것'이고
'호상' 이고, 고생을 아주 짧게 하고 죽는 것으로 '복' 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은 죄인이 아니고 불신자들은 죄인이라고 하시지
않으신다. 둘 다 죄인으로 보신다.
(출애굽기 32:33)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내게 범죄 하면 내가 내 책에서 그를 지워 버리리라" 아멘.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죄를 범해도 가만 내버려 두신다거나
불신자보다 죄 값을 가볍게 계산하신다거나, 생명책에 한번 기록이 되고
나면 끝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누구든지' 책에서 그를 지워버리신다고 하신다.
구약의 말씀은 지나간 말씀이 아니다. 심판의 말씀이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과 안 믿는 사람들과
똑 같이 대하시는데, 다른 점이 있다면
하나님을 의지하고 기도를 드리는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네가 하나님이 계신 것을 믿고 의지하는구나" 하시면서
내가 노력하는 것을 보시고 도와주시는 것 외에도
하나님께서 '직접' 도와주시는 법칙을 쓰시고,
하나님을 믿어도 기도생활을 안 한다거나, 하나님을 안 믿는
사람들은 "너는 하나님이 계신 것을 모르겠느냐? 그렇구나" 하시면서
'스스로 노력하는 것'을 보시고 도와주시는 법칙을 쓰신다.
개인 '죄의 법'이 뭉치면 '공중권세 잡은 죄의 법' 형성
(로마서 7:22~23)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아멘.
'하나님의 법'이 형성이 되어서 결정체가 되었을 때는 하나님께서 크게
쓰시는 종이 나오는 것이고, 그러면 '죄의 법'을 이기는 어떤 사건이
벌어지는데 우리는 잘 모를 수도 있다(계시록 12:5~9).
이것은 영의세계의 일이며 육의세계로 연결되어 있는 어떤 사건이다.
'죄의 법'이 형성이 되어서 결정체가 되었을 때는 세상 적으로 쓰임 받는
자가 나오는 것이다(계시록 16:13~14).
이 세상 적으로 쓰임 받는 자가 하는 정권은 일부러 하나님을 대적하려고
하지 않아도 '죄의 법'에 속한 자로서 자동으로 성도들이 하나님을 잘
섬기지 못하도록 하는 정권을 펼치게 된다.
이 개인의 '죄의 법'의 권세가 뭉치면 하늘에서는 '공중 권세 잡은 자'
라는 '죄의 법'이 형성이 된다. 이 공중권세 잡은 자의 대표가 '사탄'이다.
사탄의 종류는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가지이다.
이 땅에서는 하나님을 안 믿는 사람들의 어떤 권세를 말하는데 이
'죄의 법'의 권세가 커지면 영의세계에서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행위가
만들어지면서, 이 땅에서는 성도들이 하나님을 섬기기에 힘든 상황이
펼쳐지게 된다.
이런 것도 그냥 '죄의 법'의 권세가 커서 스스로 함부로 그러는 것이
아니라 성도들의 믿음과 기도가 작아지기에 하나님께서 성도들을
혼내시는 방편이다.
내가 잘못해서, 내 가정이 잘못해서, 내 교회가 잘못해서, 주의 종이
잘못해서, 중직들이 잘못해서, 성도들이 잘못해서 오는 장애와 삐그덕
거림과 시끄러움과, 다툼과 시험과 떠남과 불신과 방해와 불순종과
약오름과, 의욕상실과, 유혹과 손가락질과 눌림과 부흥이 멈춤과
한마음이 되지 못함 등을 무조건 "사탄의 역사" 라고 핑계대지 말자.
아무 소용이 없다. 오히려 일이 엉키고 하나님께 혼나기만 한다.
개인의 잘못으로 인한 죄의 법이 크게 뭉쳐서 하늘에서는 '공중권세
잡은자' 라고 불리는 죄의 법이 형성이 된 것인데 이것도 '사탄(뱀 용 마귀)'
이라고 부른다.
이 '죄의 법'이 형성이 됐다는 것이 하나님께 혼날 일이 벌어진다는 것이다.
이 땅이 아무리 '죄의 법'의 권세로 넘어갔다고 해도 그것은 하나님께서
인간들을 다스리시기 위해서 세우신 시스템일 뿐이지, 그 '죄의 법' 이라는
것이 스스로 권세가 있어서 하나님을 대적한다든지, 하나님의 일을 방해
한다든지,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는 행위를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법' '죄의 법'은 하나님의 다스리심의 시스템이다.
이 땅은 '죄의 법'의 권세... 문명도 '죄의 법' 의 권세가
하나님께서는 문명을 발달하게 하시면서 이끌어 가시는데, 이 땅은
아담과 하와의 불순종 사건 때부터 '죄의 법'의 권세(누가복음 4:6)로
붙임 바 되었기 때문에 문명을 발달하게 하는 사람들도 거의 '죄의 법'의
권세에 놓여 진 사람들이 쓰임 받고 있다.
(창세기 4:21~22) "그의 아우의 이름은 유발이니 그는 '수금'과 '퉁소'를
잡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었으며, 씰라는 두발가인을 낳았으니 그는
'구리'와 '쇠'로 여러 가지 기구를 만드는 자요" 아멘.
'죄의 법'의 권세에 놓인 사람들이 교회에서 하는 말로 하나님을 안 믿는
사람들이다. 우리도 잘 생각해 보자. 아기 때부터 하나님을 믿었나?
그런 사람도 있지만 거의가 자라면서 어떻게 하다가 보니 교회에 나오게
되었고, 전도를 받기도 했고, 스스로 나가기도 했고, 하나님의 강권하심으로
들어온 주의 종들도 있다.
자꾸 우리는 착각하기를 나는 구원 받기로 선택되었고 저들은 구원 받지
못하도록 선택받은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저들도 언제 하나님을
믿도록 선택받을지 아무도 모른다.
하나님을 믿어도 ‘하나님의 법’으로 계산되어지는 사람들은 소수이다.
기도를 드리는 자들이 계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기도를 많이 드리면서
살라고 세상 일을 하지 않고 분깃을 받는 주의 종들이 합심해서 기도를
많이 드려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주의 종들이 모여서 합심해서 기도를 드리면 그 기운은 클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면 이런 문화적인 것들을 꼭 안 믿는 사람들에게만 하도록 하셨나?
하면 아니다. 성전을 지으면서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지혜의 영을
충만하게 하셔서 각종 모든 것들을 만들어 내도록 하셨다.
(출애굽기 35:31~32) "하나님의 영을 그에게 충만하게 하여 지혜와 총명과
지식으로 여러 가지 일을 하게 하시되, 금과 은과 놋으로 제작하는 기술을
고안하게 하시며, 보석을 깎아 물리며 나무를 새기는 여러 가지 정교한
일을 하게 하셨고" 아멘.
안 믿는 사람들이 문화를 이루고 정치를 하고 경제를 이끌어가고 하는
것이 꼭 하나님을 대적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본인들은 본인들의
일에 충실하게 살고 있는 것이고, 최선을 다해서 문명을 발달시키려고
노력하고 있는 것이고, 편리한 생활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을 안 믿는 사람' 그러면 하나님께서 버린 사람인 줄 안다.
아니다. 그저 하나님께 다스림을 받는 사람들 중에 하나이다.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이 범죄 하면 불신자들에게 권세를 넘기시고,
불신자들도 하나님 앞에 범죄 하면 심판하신다. 하나님은 성도들의
하나님이시기도 하시고 불신자들의 하나님이시기도 하시다.
(신명기 9:5) "네가 가서 그 땅을 차지함은 네 공의로 말미암음도 아니며
네 마음이 정직함으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이 민족들이 악함을 말미암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 앞에서 쫓아내심이라" 아멘.
(예레미야 20:5) "내가 또 이 성읍의 모든 부와 그 모든 소득과 그 모든
귀중품과 유다 왕들의 모든 보물을 그 원수의 손에 넘기리니 그들이
그것을 탈취하여 바벨론으로 가져가리라" 아멘.
그들이 하나님을 믿고 안 믿고도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다.
내가 어떻게 하나님을 믿었는지를 생각해 보면 안다.
특히 주의 종들은 내가 그 자리를 선택한 것이 아니다.
바벨론 느부갓네살 왕은 이방인 왕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내 종' 이라고 부르신다.
(예레미야 27:6) "이제 내가 이 모든 땅을 '내 종'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의 손에 주고 또 들짐승들을 그에게 주어서 섬기게
하였나니" 아멘.
발명 가들이 하나님을 대적하려고 무언가를 만들어 내고 하는 것이
아니다. 가정에서 아내가 불편한 것이 있나 살피다가 편리하게 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 골똘히 생각할 때 발명도 할 수 있는 것이다.
농사를 짓기 위해 나무로 돌로 땅을 파다가 보니 불편해서 쇠붙이를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이런 것들도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시고 알려
주신 것이지 마귀나 귀신들이 하나님과 상관없이 알려준 것이 아니다.
(이사야 54:16) "보라 숯불을 불어서 자기가 쓸만한 연장을 제조하는
장인도 내가 창조하였고 파괴하며 진멸하는 자도 내가 창조하였은즉"
아멘.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 아니니 '죄의 법'으로 계산
하나님께서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찬양하도록 창조하셨는데
하나님께 불순종하면서 쫓겨남으로 '죄의 법'에 속해지면서, 찬양이
아닌 노래를 하게 되었는데, 악기를 만들어내고 노래를 하고 살았던
것이다.
이것을 교회에서는 세상의 노래라고 부르는데 이런 노래가 꼭
하나님을 대적하려고 부르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이 살면서 힘들거나
즐거울 때 자동으로 입에서 흘러나왔던 것이다. 그러다보니 악보를
만들어내고 전문적으로 노래를 하는 자들과 곡을 만드는 자들도
나오게 된 것이다.
마귀나 사탄을 찬양하는 노래가 아닌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을 찬양
하는 노래가 아닌 것은 '죄의 법' 으로 계산된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찬양하도록 지음 받은 사람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악기도 이렇게 하나님을 안 믿었던 조상들이 만들어 낸 것이다.
그러면서 세상에서 많이 사용되었다. 그리고 교회 안으로 들어왔을텐데,
어떤 사람은 이런 악기들이 세상문화에 쓰임 받았다고 하면서 교회에서
사용을 금한 사람도 있었다. 그렇다면 그 사람이 고상하게 살고 있다고
착각하는 것이 본인도 실제로는 모든 세상 문명을 누리고 살고 있는데
이런 것들이 다 세상적이라고 한다면 본인은 무인도 섬에 가서 그냥
열매 따먹고 살아야 한다.
성도가 세상 사람이고 세상 사람이 성도
우리는 교회 안에서 말을 할 때 "저 세상에 나가면" "저 세상 사람들은"
"불쌍한 안 믿는 영혼들" 이라고 하면서 우리와 분리를 시킨다.
우리가 교회 안에 있을 때는 교인 같지만, 우리가 집으로만 가도
우리가 말하는 저 세상 사람들이 곧 우리인 것이다.
저 세상 사람들이 산다고 하는 밖으로 나가보자. 내가 그들을 볼 때
다 지옥 갈 것 같은 안 믿는 영혼들로 보인다. 그들 중에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통 털어서 다들 안 믿는 사람들로
보인다.
그러면 그 사람 입장에서 보자. 그 사람이 볼 때도 다 지옥 갈 것 같은
안 믿는 영혼들로 보일 것이다. 그 사람 앞에 서 있는 나 조차도.
주의 종 조차도.
성도와 세상 사람들. 세상 사람들이 성도일 수도 있고, 성도가 세상
사람들일 수도 있다. 교회 밖으로 나가면 우리는 자동으로 세상 사람들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물론 나쁜 성격 죄성이 많이 발휘되지 못하도록 교육이 되어야 하고,
세상보다 교회 일을 해야 하기 때문이지만, 우리는 교회 일도 잘해야
하고 세상의 일도 잘해야 한다.
교회 일은 하나님적이고 세상일은 마귀적인가?
그런데 교회 일은 하나님적이고, 세상 일은 마귀적이라고 교육이 되고
자꾸 분리를 시켜놓으니 믿는 자들과 안 믿는 자들이 혼합을 못하고
원수지간이 아닌 원수지간이 되 버리는 것을 본다.
무슨 죄인 보듯이 보는 습성이 생기고, 귀신을 보듯, 마귀를 보듯하게
되면 웬지 마음이 께림칙하고, 말도 잘 안 트게 되고, 그러면 그 당사자들은
또 우리를 적대시하게 되고 계속 무언가로 막히는 입장이 되어버린다.
그들과 같이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면서 친해져야 전도를 하든
교회를 한번이라도 데리고 오든 할 터인데.
교회를 떠나지 못하게 하려고 하는 것일지라도, 그런 세뇌교육으로
하는 것보다는 주의 종이 친절하게 자상하게 잘 대해줘서 사랑이 넘치는
그 모습을 보고, 세상에서 살다가도 주의 종에게 오면, 교회로 오면
마음이 안정이 되고 더 좋고 무슨 문제가 해결되는 삶으로 연결되도록
하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
우리는 우리가 우리를 양과 염소로 분리시킨다
그러면 주의 종이 그 성도들을 놓고, 자기 자녀기도를 드리듯이 정말
성도들이 잘되기를 원하는 진실한 마음으로 기도를 드려주어야 할 것
같다.
지금 현재 주의 종들이 이런 사랑을 가지고 더 잘되기를 바라고 병도
낫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내가 닥친 일처럼 울면서 기도를 드리는
주의 종이 몇이나 있을까?
그런 주의 종의 모습을 보고 배운 성도들은 또 목사님을 닮은
중직이 되어서 같이 그런 사랑을 발휘하면서 살아야 될텐데 말이다.
그래서 세상에 나가서 살아도 교회가 가고 싶고, 주의 종이 보고 싶은
마음이 되어야 할 것 같다. 그렇게 사람들이 하나씩 교회에 들어와야
할 것 같다.
그래도 한번 교회에 나와도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시면 그 은혜를
생각해서인지 오게 되기도 하고, 사람이 한번 좋은 눈길과 마음을
주어도 그 사람을 생각해서라도 교회를 나오게 되는 것 같다.
내가 어디에 쓰임 받던 자랑하지 말라
하나님께서는 누구든 어디서든 당을 짓고 분리하지 말라고 하시는데,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양과 염소로 분리하시는 것인데, 우리는 우리가
우리를 양과 염소로 분리시키고 혼합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사람들이 4분의1만 천국 가고, 아니면 몇 %만 천국 가고 나머지는
지옥 간다는 말 조차도 사실은 우리를 서로 분리시키고 있는 것이다.
저 사람이 지옥 가야 내가 천국 갈 수 있는 숫자에 들기 때문이다.
다른 학생이 대학을 떨어져야 내가 대학을 붙을 수 있는 것과 같은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다. 사람이 죽어서 하나님께서 그렇게 분리
하실지는 몰라도 이 땅에서 우리는 다 같이 천국가야 한다고,
다 구원 받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매달려야 한다.
우리는 태어나면서 하나님께서 어떻게 쓰시겠다고 지정하시는 것이 있다.
내가 하나님을 믿는 성도로 있는 것도,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불신자로
있는 것도 하나님의 주권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래서 자랑하지 말라고 하시는 것이다.
나는 왜 남한에, 북한에, 타 종파에, 이때에 태어났을까?
누군 '노아'이고, 누군 '아브라함'이고, 누군 '모세'이고, 누군 '다윗'이고,
누군 '바울'이고, 누군 '선지자'이고, 누군 '목사'이고, 누군 '성도'이고,
누군 '점치는 자'이고, 누군 '불신자'이고, 누군 '타 종파' 이고가
내 뜻대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 속에 있는 일이다.
내가 북한에 태어났으면 불신자였을 수도 있고, 순교자였을 수도 있고,
공산당원일 수도 있는 것이다. 내가 이슬람권에서 태어났으면 나는 그냥
'이슬람교도'인 것이다.
내가 불교 집안에서 태어났으면 나도 불교신자였을 수 있는 것이다.
내가 이곳에 태어나겠다고 선택한 것이 절대로 아니다.
"하나님께서 하셨어요" "하나님의 주권이세요" "하나님의 섭리하심이예요"
"하나님께서 저를 선택하셨어요"를 말로만 하지 말고 진심으로 고백해야 한다.
(예레미야 1:5) "내가 너를 모태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배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성별하였고 너를 여러 나라의 선지자로 세웠노라 하시기로" 아멘.
그런데 자꾸 "나는 선지자로 선택 받은 천국 갈 백성, 너는 선택 받지 못한
지옥 가야 할 불신자" 라고 우리 스스로 구별하고 있다.
내가 어떻게 선지자가 되었고 내가 어떻게 하나님을 잘 믿을 수 있는
이 나라에, 이때에 태어났는지를 전혀 모르고 하는 소리다.
이것은 영의세계의 일로서 그 사람이, 그 나라에, 그 곳에, 그 집에,
그 때에 태어나야 마땅한 일이 벌써 영의세계에서 결정되어진 것이다.
그저 하나님의 주권 속에 이루어진 일이다.
내게 하나님을 믿는 행운이 주어졌다면, 하나님께 예배를 드릴 수 있는
행운이 주어졌다면, 교회에서 봉사를 할 수 있는 행운이 주어졌다면
순종하면서, 감사하면서, 열심히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고, 다른
사람에게 나의 믿음과 행함을 보여주면서 살면 되는 것이다.
(에베소서 4:11~12) "그가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선지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 전하는 자로, 어떤 사람은 목사와 교사로 삼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아멘.
지옥 갈 것 같은 마귀적인 불쌍한 사람이 '나다'
누군가 교회를 나왔다가 "와 보니 별로네" 라고 세상으로 나가버리는
것을 그들에게 물들었다고 하나 모르겠지만, 처음부터 하나님을 만나기는
힘든데, 교회 분위기가 보일 것이고, 주의 종의 모습이 보일 것이고,
성도들의 모습이 보일 것이다.
이들에게서 얼마나 마음의 안심을 느끼고 얼마나 사랑을 느끼느냐가
중요한데, 교회가 오죽 사랑이 없고, 주의 종이 오죽 사랑이 없고,
성도들이 오죽 사랑이 없고, 세상 사람들만 못하다고 생각했을 때
세상으로 나가버렸을까를 생각해야 한다.
하나님을 안 믿는 사람이 전도되어서 오면 하늘에서 잔치가 열린다는
말을 들어도 소용이 없는 것은 이 땅에서 서로 분리를 시켜놓았기
때문에 누가 교회를 들어와도 흡수되기가 힘들다.
그저 나와 똑 같은 사람이 들어온 것인데 말이다. 그들을 무슨 지옥 갈
사람들, 마귀적인 사람들, 불쌍한 사람들... 이라고 부르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들은 그저 나와 똑 같은 사람들이다. 혼합해서 살아가야 하는.
그냥 그들은 하나님을 모를 뿐이다.
이스라엘 선민이 행했던 것을 우리도 영적인 선민이라고 하면서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것을 본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께 혼났는데
우리도 언제 혼날른지 모르겠다.
우리 성도들은 처음부터 하나님을 믿었다고 착각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처음부터 그들과 다르게 구별되었다고 착각하지 말아야 한다.
그들이 볼 때 우리도 똑 같은 죄인이고, 똑 같은 세상적인 사람들이고,
똑 같은 마귀적인 사람들일 뿐이다. 우리는 그들과 같이 살면서 하나님의
뜻을 따르고 살 줄 알아야 한다. 그런 것을 잘 가르쳐 주고, 교회가 본을
보이고, 주의 종이 본을 보이고, 중직들이 본을 보이고, 성도들이 본을
보이면서 살면 되는 것이다.
'죄의 법' 안에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모른다
(로마서 3:9) "하나님은 다만 유대인의 하나님이시냐 또한 이방인의
하나님은 아니시냐? 진실로 이방인의 하나님도 되시느니라" 아멘.
하나님은 그렇게 누구든 무언가 지혜가 필요하다고 골똘히 생각할 때
아이디어도 주신다. 지혜도 주신다. 그런 이유로 가전제품의 발달이나,
운송기구의 발달이나, 생활용품의 발달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을 믿는 자에게는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시고, 안 믿는 자들에게는
사탄이나 마귀가 지혜를 주는 것이라고 알고 있다면 큰 착각이다.
그 어떤 것도 모두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시다.
우리는 그렇게 사람들에게 편리함을 주기 위해서 노력하고, 과학을
발달시키고 가고 있는 것인데, 그들이 하나님을 모른다는 것이다.
하나님을 알아도 아주 적게 알고 있고, 하나님을 아는 것을 많이
발휘하지 못하고 살고 있다.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하나님을 모르도록 되어 있다.
부모가 믿는 사람이라도 그렇고 아니라도 그렇다.
하나님을 많이 알도록 해주시고 발휘하도록 쓰시는 사람들이 '주의 종'
들이고 '성도' 들이다. 주의 종들이 하나님을 보여주어야 하고, 부모가
하나님을 보여주어야 하고, 성도들이 하나님을 보여주어야 한다.
'성전'이 '문명' 보다 즐거운 곳이라는 것을 보여주라
믿음의 선배들이 하나님을 행함으로 모습으로 보여주어야 하는데
말로만 "하나님을 믿으라"고 잔소리를 하니 후배들이 지겹다고 한다.
그런 주의 종이나 성도들은
거의 문명을 발달시키고 있지는 않다.
우리 믿는 사람들도 그들이 발달시켜 놓은 문명 속에 사는 것이다.
그런 문명을 누리고 살면 마귀적이라고 생각하게 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본다.
너무 거기에 혹하면서 살지 않도록 잘 가르쳐야 하고, 교회가 문명보다
더 재미있고 좋은 곳이라는 것을 보여주어야 하는데, 보여주지는 않고
무조건 세상 문화는 마귀적이라고 하니 문명에 뒤처지게 되는 것을 본다.
그렇다고 하나님의 뜻대로 기도를 드려서 잘사느냐 하면 또 그렇지도 않다.
오히려 고생을 더 하는 것을 보는데 우리는 또 그것을 '거룩한 의인의 고난'
이라고 착각하도록 교육되어져 있다.
양반기질이 있어서 그런지 신앙생활도 율법적
우리나라는 선진국보다 믿음으로 사는 것이 굉장히 율법적이라고
생각한다. 양반기질이 있어서 그런 것 같다. 양반은 함부로 웃어도
안 되고, 펄쩍펄쩍 뛰어도 안 되고, 마음을 활짝 열어도 안 되고,
함부로 이웃을 사랑해도 안 되고, 누구에게 함부로 사랑한다고
말을 해도 안 되고 등 제약이 많다.
기도도 장황스럽게 길고 멋있게 해야 기도를 잘한다고 한다.
선진국은 자기감정 표현이 풍부하다. 우리는 감정을 감추지
펼치지를 못한다.
선진국은 잘 웃는다. 우리는 함부로 웃으면 미친 줄 안다.
"지금 나를 비웃는 것인가?" "내가 그렇게 만만히 보이나?"라는
뜻으로 받아들인다.
선진국은 서로 모를지라도 인사를 잘한다. 우리는 모르는
사람이 인사를 하면 "저 사람이 나를 언제 봤다고 아는 척하는거야!"
"저 사람 이상한 거 아냐?" 한다.
선진국은 기도도 짧다. "일용할 양식을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아멘"
하고 식사를 한다. 우리는 이것저것 길게 기도를 드려야 잘한다고
생각한다.
아이스크림 하나를 놓고 감사 기도를 드려도 아이스크림이 다
녹을 때까지 해야 잘한다고 생각한다. 짧으면 기도 같지가 않다.
그리고 그들은 즐겁게 사는 것을 본다.
한국인 특성상 우리는 거의 젊잔은데 우울할 정도로 젊잖다.
우리는 경건의 모양은 많은데 정작 경건은 없는 것 같다.
정말 경건한 것은 누가 본다고 경건의 모양을 갖춘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 겉을 보아도 경건해 보이고, 그 사람 속으로
들어가 보아도 경건한 것이 정말 '경건'인 것이다.
기독교가 몇 %를 차지하느냐에 따라 세계의 부가 계산
그러는 우리가 그들보다 절대적으로 잘 살지 못하는 것을 본다.
먼저는 하나님을 윗 조상들부터 잘 믿었느냐가 부를 상징하는 것 같다.
1660~1689년 청교도가 이끈 미국은 지금 현재 제일 잘사는 나라이고
세계를 이끌어 가는 형님격 나라이다. 우리나라는 1948년 일제시대에서
해방을 받고 이승만을 대통령으로 하는 대한민국 정부가 출범한다.
이승만 대통령이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었다고 한다.
믿음의 계열로 보아도 거의 300년이 뒤쳐진다.
세계적으로 부를 상징하는 척도를 보니 하나님을 믿는 자와
안 믿는자와 기독교와 타종파가 얼마나 많이 섞였느냐인 것 같다.
민족 전체적으로 다 기독교냐 아니면 몇 %냐로 갈라지는 것 같다.
그럴거 같으면 이스라엘이 최고의 강대국이 되어야 할 것 같다.
그들은 하나님을 최고로 잘 섬기는 선민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이 예수님을 안 믿으면서 나라가 없어지면서
2000년이나 지난 1948년 5월 14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다시
재건시키셨지만 미국을 따라가지는 못하는 것 같다.
하나님께서는 영적선민 사상을 교만으로 계산하셨다.
사회주의도 자유가 섞인 사회주의가 있고 완전 공산주의가 있는데
이 완전 공산주의 나라가 제일 못사는 것 같다. 얼마나 공산주의가
판을 치냐에 따라 부의 척도가 달라진다.
듣기에 좋은 예언이 반드시 맞는 예언이 아닐 수도 있다
(예레미야 27:8)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을
섬기지 아니하며 그 목으로 바벨론의 왕의 멍에를 메지 아니하는
백성과 나라는 내가 그들이 멸망하기까지 칼과 기근과 전염병으로
그 민족을 벌하리라" 아멘.
(예레미야 27:11) "그러나 그 목으로 바벨론의 왕의 멍에를 메고
그를 섬기는 나라는 내가 그들을 그 땅에 머물러 밭을 갈며 거기서
살게 하리라 하셨다 하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시니라" 아멘.
하나님께서 남유다 왕국의 죄값을 계산하셔서 '바벨론'이라는 강대국에
넘기시면서 예레미야 선지자에게 예언을 하게 하셨다.
다른 선지자들은 아니라고 했다. 하나님께서 바벨론이라는 나라에 속국으로
넘기지 않으신다고 했다. 우리 하나님께서 구원 하실 것이라고 했다.
이 예언이 얼마나 유대 왕가에서 듣기는 좋았는지 모른다.
누가 자기 나라가 다른 나라의 식민지로 넘어갈 것이라고 하면서
그 나라의 말을 잘 듣고 있어야 그 땅에서 밭을 갈고 살 수 있다고
하는 예언을 좋아할까? 매국노라고 할 수도 있겠다(예레미야 32:3).
이것은 하나님께서 강대국에 우리 나라의 실권을 넘기셨다는 것인데
순응해야 하는 것이다. 아니다 아니다 하고 있다가 왕의 눈이 뽑히고
붙잡혀 가고 나라가 망했던 것이다.
(역대상 25:7) "그들이 시드기야의 아들들을 그의 눈 앞에서 죽이고
시드기야의 두 눈을 빼고 놋 사슬로 그를 결박하여 바벨론으로 끌고
갔더라" 아멘.
우리가 하나님을 몰라서 그렇지 하나님의 명령을 안 듣는 나라나
백성들을 가만두시지 않으신다.
위의 나라로 세우신 하나님께 함부로 대항하지 말라
우리나라도 일단은 하나님께서 6.25 전쟁 이후에 북쪽은 소련에게
관리를 맡기셨고, 남쪽은 미국에게 관리를 맡기셨다.
그것이 기분 나쁘다고 할 것이 아닌 것은 미국이 관리했기 때문에
남한이 자유주의가 되었고 크게 발전하게 되었고 하나님도 자유롭게
믿게 된 것이다. 그것은 고마워해야 하는 것이다.
북쪽은 완전 공산주의로 살 수가 없는 곳이 되었다.
그 곳이 정말 좋다고 생각하나? 그곳에서 정말 살고 싶은가?
미군이 물론 우리나라에 잘못한 것도 있을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선하냐? 우리는 더하고 있다. 가난한 나라에서 돈을
벌겠다고 왔는데 얼마나 적은 돈을 주고 많은 일을 부려먹는지 모르며
사기를 치고 힘들게 하는 일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미국이 처음부터 잘 못살았던 것이라면 지금 그렇게 세계
경제를 쥐고 갈 수가 없다. 그 최고의 자리를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높은 자리에 있는 자들을 함부로 욕하고
대항하고 하지 말라고 하셨다.
미국이든 영국이든 어느 나라든 위의 나라로 세워졌다면 마찬가지이다.
그 자리를 하나님께서 주셨기 때문에 하나님을 욕하는 것과 같다고
보신다. 그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이 잘 못할 경우 하나님께서 처벌하신다.
우리가 욕을 하고 대항해서 처벌되는 것이 아니다.
(로마서 13:1~2)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 그러므로 권세를 거스르는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름이니 거스르는 자들은 심판을
자취하리라" 아멘.
그런 윗나라를 칭찬하고 세계를 선행으로 잘 이끌도록 기도를 드려준다면
그 민족 영들이 알고 좋아할텐데, 얼마나 욕하고 물러가라고 외치는지
그들이 삐뚤어지고 있다. 그리고 결국에는 욕을 하고 물러가라고 외쳤던
우리나라를 힘들게 할 것이다.
미국은 현재 오직 하나님 뜻대로 살겠다고 몸부림 쳐왔던 이스라엘보다
잘 살고 있다. 사람 개인적으로 따지자면 유대인이 똑똑하고 경제권을
쥐고 있다고 한다. 그럴지라도 그 훌륭한 경제권 이스라엘에서 키운
것이 아니라 미국에서 키웠다.
하나님께서 선민에게 주신 특권인 것 같다.
세상적인 삶과 성전의 삶을 스스로 비교하도록 유도
주의 종이 새신자를 가르칠 때, 생활적으로도 좋은 모습을 보이고,
교회적으로도 좋은 모습을 보여서 그들 스스로가 세상적으로 살았던
때하고 교회를 와서 사는 삶하고 비교를 해봐서 그들의 입에서
"왜 진작 내가 교회를 안 왔을까? 아깝다" 하고 고백할 정도로 만들어
주면서 과거의 세상적인 삶을 스스로 정리하도록 해주어야지, 생활적으로든
말로든 사랑으로든 본을 보이지 못하면서 세뇌교육만 시킨들 교인들의
마음이 힘들기만 하다.
진심으로 보여주는 것이 아닌 것은 하나님께서 '거짓' 이라고
계산하시기 때문에 오히려 역효과가 난다.
내가 하나님을 믿어보고, 기도를 드리는 생활을 해보니 하나님께서는
내가 해결할 수 없는 경제적인 문제도 해결해 주시면서, 내 힘으로는
집을 살 수 있는 형편이 아니었는데 불구하고 집을 사도록 해주시고,
그것도 교회 가기를 원하니 교회 가까이 살게 해주셨다.
나에 대해서나 자녀들에 대해서도 내가 원했던 것보다 더 좋은 것으로
채워주셨던 것을 기억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고난' 이라는 것도 한 때 주시지만
욥이 한번 고난을 받고는 회개하고 일어섰을 때, 140세로 죽을 때까지
행복하게 부유를 누리면서 살았다.
하나님을 믿어도 계속 고난의 연속이고, 재정이 피지를 않고, 죽을 만큼
괴롭고, 질병의 연속이라면 내가 무언가 회개할 것을 찾아야 한다.
그것을 계속 '욥'에게 내려진 의로운 고난이라고 우기고 있으면 안된다.
북한 같은 공산주의에서 당하는 고난과 환난이라면 이해를 하지만
대한민국 같은 자유로운 나라에서 가난의 연속, 환난의 연속, 부흥되지
않음의 연속은 내부에서 잘못된 것이다. 회개하지 않아 곪은 것이다.
세상 사람들은 세상을 다스리고, 성도는 영의세계를 다스리고
우리 성도들은 문명을 발달시키지는 못해도 그저 하나님께 기도를 드려서
'하나님의 법'의 기운이 왕성하기를 바랄 뿐이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여러모로
도와주시는 것이다. 이로 인해 나라가 부강해 질 수도 있다.
안 믿는 자들은 세상적인 것을 다스리고, 믿는 자들은 영의세계를
다스리면서 서로 도우면서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죄하지 말자.
그런데 자꾸 세상적인 것을 다스리는 사람들을 사탄적이라고 마귀적이라고
비난하고 비판하고 정죄하니 그들이 삐뚤어지는 것을 본다. 그러면 그들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행위를 만들어 낸다.
그러면 고통 받는 것은 우리 성도들이다. 이렇게 정죄하고 사는 주의 종이나
성도들이 힘들게 사는 것을 본다. 하나님께서 혼내시는 것이다. 그런데 절대로
하나님께서 혼내신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의로운 자들이 받는 고난이라고 착각하고 산다.
하나님은 그렇게 사람 스스로 누군가를 죄인 취급하고 마귀로 취급하고
사탄이라고 취급하지 말라고 하신다. 예수님께서는 수제자였던 베드로도
사탄이라고 부르셨다. 주의 종들일지라 하나님께서 '사탄' 이라고 부르실지도
모르는 것이다.
우리는 거룩하지 않으면서 거룩한 척하고, 거룩하게 분리
되었다고 착각하고 사니 삶이 힘들기만 하다.
우리를 양과 염소로 분리 하시는 분도 오직 하나님이시다.
'죄의 법'과 '육체'는 절친이다
그렇지만 성경에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뜻은 "하나님을 믿는 너희들이
세상을 통치하라" 이시다. 하나님의 명령과 규례를 따르면 세상에서도
높여주신다고 하셨지 낮은 자리에 있게 하시지 않으신다고 하셨다.
(신명기 28:1~14)
나는 세상으로 나가는 것은 죄고, 마귀 적이고, 사탄적인 것이라고
믿게 되어서 성전에서 "이만하면 좋습니다" 하고 있었던 것이다.
돈을 벌기 위해 할 수 없이 일을 했지 "세상적인 일을 열심히 해서
얻을 것이 무엇인가?"했다. 헛수고 같았다. "교회 일을 열심히 해야지" 했다.
그럴지라도 성격적으로 최선을 다했고 책임감 있게 했다.
하지만 세상으로 높이 올라가기 위해서 나간다 해도 이 '육체'라는 것은
세상 적이고 향락적이고 자유롭고 싶은 것이라서 하나님의 명령과 규례를
온전하게 따르면서 간다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다.
세상은 '육체'의 즐길 것, 먹을 것, 놀 것, 볼 것, 할 것들이 널려 있다.
"죄의 법과 육체는 절친이다"
그러니 이 육체가 얼마나 유혹을 많이 받을까.
딱히 죄가 아닐지라도 하나님의 일에 열심내지 못하도록,
위로 올라가지 못하도록 방해는 받는다.
이 '육체'의 즐겁고 싶고, 편하고 싶고, 놀고 싶고,
자유롭고 싶은 것을 죽이고 가야 하는 것이다.
'죄의 법' 의 부류 중 '무신론자'와 '용한 꿈 쟁이'
'죄의 법' 에 속해 있다고 해서 다 하나님의 징계를 받는 것은 아니다.
징계를 받을 만한 나쁜 죄를 지었을 때 형성된 그 '죄의 법'을 가지고
혼내시는 것이다.
그런데 그 '죄의 법' 안에 사는 사람들 중에도 하나님께서 계신지 잘
모르겠다는 사람들도 있고, 계신 것 같은데 크게 믿어지지 않는다는
무신론적으로 나타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꿈을 꾼다든지, 산신령 이라든지, 꿈에서 할아버지나 할머니가 지시
한다든지, 귀신이라든지, 자기에게 나타나는 어떤 기운을 의지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것도 어쩌다 꿈을 꾸었는데 자꾸 용한 꿈이라고
생각하고 또 그런 꿈을 꾸기를 바라다가 또 꾸고 하다보면 꿈을 의지
하게 되는데 나중에는 꿈쟁이가 되기도 하고 점치는 자가 되기도 한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해서 항상 '하나님의 법'으로 계산되지는 않는다.
'죄의 법'으로 계산될 때가 더 많다. 자기의 사는 모습을 보면 잘 안다.
"내 꿈이 얼마나 용한 꿈인데" 하지마라
나도 나의 딸이 두 살쯤에 왼쪽 귀를 앓았었는데 고름이 계속 나오고
병원에 가도 낫지를 않았었다. 며칠 다니다가 병원에 가야하는 날이
주일이었는데 병원에 가도 낫지를 않는다는 생각에 안 갔다.
그때쯤 꿈을 꾸었는데 할머니 여러명이 나와서 "이 아이의 왼쪽 귀를
고쳐주어야 한다" 면서 무엇을 하는 꿈을 꾸고 나서 까맣게 잊었다.
몇년이 지나서 귀를 파주다가 귀에서 약솜이 굳어서 나오는 것을
보고 그제서야 기억이 났다.
그리고 내가 위가 약해서 항상 체하고 많이 먹지를 못해서 몸이
약했었는데 광명에 살 때 꿈을 꾸는데 할머니 여러 명이 나와서
나의 위를 이식수술을 해주는 꿈을 꾸고 그 후로 위가 좋아졌다.
이럴 때도 그냥 그런가보다 해야지 "내가 용한 꿈을 꾸었다"고
자꾸 나대다가는 용한 꿈쟁이가 되고 점치는 자가 될 수도 있다.
나도 여러 번의 꿈을 그렇게 잘 맞게 꾼 적이 있었다.
그러다보니 정말 남편이 무슨 문제가 있으면 나한테 꿈을
꾸어보라고 했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야 하는 지에 대해서.
그렇게 꿈에 의지하다 보면 용한 꿈 쟁이가 되는 것이다.
그러다 정말 제일 친하게 지내며 우리 집을 위해 기도를 드려주는
엄마 같은 집사님이 꿈에 나와서는 '나는 절에 가야 하는 사람'
이라고 했다. 꿈도 아주 선명했다.
그러면 그 집사님이 나쁜 사람인가? 아니다.
하나님의 테스트일 수가 있는 것인데 이렇게 하신다.
우리가 몰라서 그렇지. 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이다.
마귀가 하나님의 명령 없이 어쩌구 저쩌구 한다고 믿으면 답이 안 나온다.
그럴 때 분별하지 못하면 나는 절에 가야 하는 사람이라고 우기고
간다. "내 꿈이 얼마나 용한 꿈인데, 틀려본적이 없어" 하면서.
항상 무슨 꿈을 꾸었든지 그것을 어떻게하든 해석하려고 하고,
'길몽' 이라고 하고 꿈을 팔기도 하고 사기도 하는 그런 것을
보는데, 하나님을 믿는 우리는 "하나님아버지, 좋은 꿈이면
이뤄주시고, 나쁜 꿈이면 버려주세요" 라고 기도를 드리기를
바란다. 나는 하나님아버지께 그렇게 교육 받았다.
'죄의 법' 의 부류 중 '귀신의 영(사탄)'을 섬기는 자
그리고 정말 말 그대로 하나님이 아닌 '사탄' 이라는 이름을 대놓고
나타내고, 그 존재에게 자기를 바치고 의지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럴 때는 영의세계에서 '죄의 법'의 형상으로 만들어진 '용'이나
'짐승'이나 '거짓선지자'의 입에서 개구리 같은 영이 나오는데
그것을 성경은 '귀신의 영' 이라고 한다.
이 그림은 카톡에서 따온 것이지만 이와 비슷하다
그 사람은 그 '귀신의 영'의 통치를 받게 되기도 한다.
거기서 나오려면 '육체'의 목숨을 걸고 나와야 한다.
(계시록 16:13~14) "또 내가 보매 개구리 같은 세 더러운 영이 용의 입과
짐승의 입과 거짓 선지자의 입에서 나오니 그들은 '귀신의 영'이라 이적을
행하여 온 천하 왕들에게 가서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큰 날에 있을
전쟁을 위하여 그들을 모으더라" 아멘.
정말 그 귀신의 영이 말도 넣어주고, 거짓 예언도 넣어주고,
꿈도 꾸게 하고, 용하게도 맞추기도 하기 때문에 어떤 영적인
힘이 주어진 것 같이 느껴진다.
그것을 성경에서는 '거짓예언자' 라고 한다.
죄의 법?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기 위해 사용하신다
(누가복음 4:6) "이르되 이 모든 권위와 그 영광을 내가 네게 주리라
이것은 내게 넘겨 준 것이므로 내가 원하는 자에게 주노라" 아멘.
(계시록 13:2) "내가 본 짐승은 표범과 비슷하고 그 발은 곰의 발 같고
그 입은 사자의 입 같은데 '용'이 자기의 능력과 보좌와 큰 권세를
그에게 주었더라" 아멘.
이 말씀을 보면 사탄이나 용이 어떤 큰 힘이 있는 것 같고 권세가
있는 것 같다. 하지만 그 어떤 권세도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사용하는
것인데,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함이지 사탄이 하나님을 대항하는
그런 권세가 아니다. 성도들과의 기도싸움이다.
(계시록 20:1~2) "또 내가 보매 천사가 무저갱의 열쇠와 큰 쇠사슬을
그의 손에 가지고 하늘로부터 내려와서, '용'을 잡으니 곧 옛 뱀이요
마귀요 사탄이라 잡아서 천년 동안 결박하여" 아멘.
그렇게 힘이 있어 보이고 권세가 있어 보이던 그 '용' '옛뱀' '마귀'
'사탄' 이라는 것이 무저갱의 열쇠를 갖고 있는 천사에 의해 순한 개처럼
잡혀서 무저갱으로 들어가는 것을 본다. 싸워서 이긴 것이 절대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참'도 주시고 '거짓'도 주셨다. 원래 창조 때부터 주셨던
것인데, 누가 잘 사용하느냐 잘못 사용하느냐를 보신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참'을 잡고 나가도 그대로 밀어주시고,
'거짓'을 잡고 나가도 그대로 밀어주시는 분이시다.
하나님은 뒤에서 미시는데 나의 '방향키'는 내가 잡고 가야 한다.
그런데 '기도'를 드리면 하나님께서 나의 '방향키'를 잡으시고 가신다.
그래서 '거짓예언자'는 안 믿는 자에게서도 나타나고
하나님을 믿는 자에게서도 나타나고 있다.
하나님을 믿으면 '천사'로 안 믿으면 '귀신' 으로
이런 영적인 현상은 문화를 이끌어가는 예능계에 많이 일어나는 것 같다.
영화 제작이라든지, 작곡을 한다든지, 그림을 그린다든지 할 때 타고나는
것이 있다. 하지만 개발해서도 할 수 있는데 어떤 사람은 꿈에 어떤
여자가 나타나서 영감을 준다고 하는 얘기도 들었다.
영화 제작 중에 귀신을 보면 대박이 터진다는 말도 있다.
사람이 무언가 간절히 원할 때는 하나님께서 이모저모로 도와주신다.
좋은 것을 구하면 하나님께서 복으로 갚아 주시고, 나쁜 것을 구하면
징계로 갚아주신다.
사람들이 사는 것이 사람 스스로 한다고 생각하지만 하나님께서 주셔야
할 수 있는 것인데,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기도를 드리면서 도움을
요청할 때는 성령하나님께서 영감도 주시고 지혜도 주시는 것이지만,
안 믿는 사람들에게도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심은 대로
거두기법'을 사용하시면서 도움을 주시는 하나님께서는 그런 귀신을
사용하셔서 할 수 있게 하시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이 볼 때는 귀신이 주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귀신을 섬기게 된다. 그 뒤에 계시는 하나님을 볼 줄을 모른다.
그렇게 하나님은 베일로 가려져 있다.
귀신이라고 해서 어감이 나쁘고 기분이 나쁘지만, 하나님과 반대적으로
쓰임 받는 현상에서 나타나는 모습인 것 뿐이다. 하나님의 세계는 모든
것이 형상으로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무언가를 쓰임 받을 때도
그 형상이 쓰임 받는다.
믿는 사람들이 지혜를 달라고 기도를 드린다면 하나님께서 '지혜의 영'을
보내시는데 영의세계에서 보면 '천사의 형상'로 보여지는 것이고,
하나님을 안 믿는 사람들이 지혜를 구하면서 깊이 생각하고 연구하고
파고들 때 하나님께서 이때도 '지혜의 영'을 보내시는데 영의세계에서
보면 '귀신의 형상'으로 보여 진다는 것이다.
이는 이 사람이 나빠서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죄의 법' 안에 있는 사람이라서 그렇다.
영감의 모습인 천사든 귀신이든 '사람'의 모습으로
천사로 보여 진다고 해도 사람의 모습으로 보여 지고, 귀신의 모습으로
보여 진다 해도 거의 꿈에서나 볼텐데, 머리를 길게 풀어헤치고 얼굴 반을
가리고 눈이 번쩍 빛나고 하얀 한복을 입고 하는 전형적인 한국적 귀신의
모습은 보기 힘들다.
거의 내가 알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으로 나올 수도 있고,
할아버지나 할머니의 모습으로, 여자의 모습으로,
조상의 모습으로 나오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예능에 뛰어나고 싶은 그 사람이 귀신을 찾고 제사를 드리고 귀신에게
도와달라고 기도드린 것도 아닌 것이다. 깊이 생각하고 연구하고 많이
노력 했던 것이다. 이럴 땐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물론 고사를 지낼 수도 있는데, 이렇게 고사를 지내는 것도 하나님이
아닌 다른 어떤 신적 존재에게 도와달라고 비는 것인데 그럴 때 쓰임
받는 존재도 귀신인 것이다.
이렇게 대놓고 귀신을 찾고 섬기는 것은 하나님께서 싫어하시지만
그렇다고 그 사람을 막 죽이시지는 않으신다.
무언가 계산이 들어가서 삶의 어느 구석에서 힘이 들 수도 있는데
돈으로 해결할 수 없는, 내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힘든 상황이 펼쳐
질 수도 있다. 가정이 시끄럽다든지 행복하지 못하다든지 등으로.
믿는 사람들도 하나님께 기도를 안 드리고 작곡도 할 수 있고 그림도
그릴 수 있고 예능의 일도 할 수 있다. 이때도 쓰임 받는 것은 귀신이다.
하나님을 믿어도 기도생활을 하지 않으면 '죄의 법'으로 계산된다.
하지만 기도를 드리면 '천사의 형상인 영감' 으로 오는 것이고,
더 감동어린 것으로 만들어질 수 있고, 모든 사람들이 볼 때 좋다고
하는 것이다. '대박'이 터지기도 한다.
하나님을 일부러 대적하지 말고 사람과도 좋은 관계를
하나님께서는 믿는 자나 안 믿는 자나 '하늘은 스스로 돕는다'는
'심은 대로 거두리라' 법을 적용하시기 때문에 꼭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대박이 터지거나 제일 잘 사거나 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삶이 더 힘들 수도 있는데 바른 사람으로 만들어 가시기 위한
방편이시기도 하다. 하나님을 믿는 자로서 욕을 먹지 말아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것을 '의로운 고난' 이라고 착각하고 살고 있기도 하다.
이런 모든 것들도 전부 하나님께서 주시는 권세로 하는 것인데 잘 쓰임
받든 잘 못 쓰임 받든 하는 것이다. 누구는 하나님께 좋게 쓰임 받고
누구는 나쁘게 쓰임 받고 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나는 좋게 쓰임 받았기 때문에 나는 하나님께 상 받을 것이고 칭찬 받을
것이라고 자랑하고 있어도 안 되고, 나는 나쁘게 쓰임 받은 것이기 때문에
내 책임이 아니라고 할 것도 아니다.
무조건 일부러 말로라도 하나님을 대적하지도 말고, 사람과 나쁜 관계를
만들지 말고, 미워하지 말고, 용서하면서, 이해해 주면서, 남을 힘들게
하지 말고, 해를 끼치지 말고, 일부러 욕하고 싸우려 하지 말고,
사랑하지는 못해도 좋아하면서 서로 도우면서 사는 것이 바람직하다.
성경의 인물이든 누구든 함부로 정죄하고 비난하지 말라
하나님께서는 아무리 '주의 종' 이라고 해도 남을 비판하려고 하는
일이나, 어느 교회를 도마 위에 올려 놓고 이단인지 아닌지를 밝히는
일을 하는 주의 종의 하는 일이 '옳지 않을 때'는 그 도마 위에 있었던
교회와 주의 종이 망하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목회다운 목회는 하지
않으면서 이단 정죄를 일삼고 교회를 함부로 도마 위에 올려 놓고
난도질을 하고 있었던 그 목사의 교회가 망하고 그 목사가 욕을 먹고
있다는 것을 보았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자녀라 할지라도 잘못하는 것을 그냥 보고만
계시지 않으신다.
성경에 나오는 나쁘게 쓰임 받은 '가룟 유다'나 '헤롯 왕'이나 '빌라도'라
할지라도,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소리쳤던 '백성들' 이나,
'대제사장'이나 '바리새인'이나 '서기관' 이라고 해도 설교에서 비난하고
비판하는 것을 싫어하신다.
그런 비판이나 비난이나 정죄식의 설교를 하는 주의 종의 교회가
안 되고 어렵고 부흥이 안 되고 시끄러운 것을 본다.
우리는 그렇게 살지 말라고 하시는 말씀이시지
그 사람을 비난하고 정죄하라고 하시는 말씀이 아니시다.
(야고보서 4:12) "입법자와 재판관은 오직 한 분이시니 능히 구원하기도
하시며 멸하기도 하시느니라 너는 누구이기에 이웃을 판단하느냐" 아멘.
내가 움직이고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기운이 있다는 것
남들에게 "저런 사람은 없었으면 좋겠어" 라는 말을
듣지 말고 살아야 한다. 본인은 모르겠지만.
"당신 이라는 사람이 내 옆에 있어서 좋아" 라는
소리를 듣고 산다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는 그저 나에게 주어진 대로, 물이 흘러가는 대로, 상황이 펼쳐지는
대로 살 수밖에 없지만, 그럴지라도 하나님을 안 믿는 사람들에게 부탁하고
싶은 것은, 절대적으로 하나님은 계시기 때문에 일부러 하나님이 없다는
것을 말로 시인할 필요도 없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말들을 하지 말라고
하고 싶다.
하나님이 안 믿어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안 믿어져서 못 믿겠다고 하는
것은 괜찮지만 대놓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행위나 말들을 하지 말기를 바랄
뿐이다.
당신이 지금 숨을 쉬고 움직이고 살아있다는 것이 하나님이 계시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믿어지든 안 믿어지든 말이다.
성경이 거짓이라는 것을 밝혀내기 위한 몸부림은 괜찮은 것 같다.
말로 먼저 뱉지 말라는 것이다. 그렇게 "성경은 거짓이다. 내가 반드시
밝혀낼 것이다" 라면서 성경을 파고들어 갔다가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데
세뇌가 아닌 직접적인 체험을 하게 하신다.
류 웰리스 라는 사람도 그렇게 하다가 '벤허'라는 명작을 남기게 됐다.
하나님께서 만나주셨다. 불교를 파다가 불교로 갈 수도 있다.
그렇게 심은 대로 거두기 법이 적용되고 있다.
하나님을 100% 알고 있는 것도 하나님께서 주신 것
나도 어떻게 하다가 하나님을 믿게 되면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설교를
통해서, 성경말씀을 통해서, 삶에서 나타나는 조금의 체험을 보고 정말
내가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도와 주셨구나를 인정하고 시인했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하나님께서 계심을 몸으로 체험하고 느끼고 있고 알고 있다.
정말 이제는 과거처럼 막연하게 성경책에 나타나 있다고 알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냥 말로가 아니라 직접적으로 몸으로 100% 알고 있다.
우리는 하나님의 기운이 있어야 살 수 있는 것이다. 내가 지금 무언가를
하고 있고 움직이고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기운이 내게 아직 주어지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기운이 떠나게 되면 사람은 살 수가 없어서 죽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기운이 떠나는 것이 내가 죽는 것이다
(창세기 6:3)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나의 영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신이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백이십 년이
되리라 하시니라" 아멘.
이 육의세계의 '육체'라는 것은 하나님의 기운이 있어야 움직일 수 있는데
하나님께서는 이 육체에 하나님의 기운이 영원히 있게 하시지 않겠다고
하신다. 그래서 사람은 120년까지 살수 있다고 하셨다.
그렇다고 딱 120살이 아니라 그 때 쯤인 것이다. 더 살수도 있고 덜
살 수도 있다. 하나님께서 복을 주셔야 120살까지 건강하게 살 수
있는데 모세는 120세에도 눈이 흐리지 않았다고 한다.
우리는 80세만 넘어서 죽어도 '호상' 이라고 하고 그렇게
슬퍼하면서 울지도 않는다.
하나님의 기운이 나에게서 떠나는 것이 나의 죽음인 것이다.
이것은 육의세계에서 하나님의 기운이 떠나는 것이고
나는 이제 영의세계에서 존재하게 된다.
죽어서 하나님께 먼저 간 사람들은 이런 모든 것을 알고 있을텐데
어떻게들 살고 있는지 전화 좀 해서 알려줬으면 좋겠다.
성가대원 중에 어떤 권사님이 오래 못살 것 같이 나에게 말을 하길래
기도드려 드릴테니 오래 살라고 하면서, 나중에 나보다 먼저 죽으면
천국이 어떤지, 하나님의 세계는 어떤 곳인지, 이 땅의 세계는 어떤
것이었는지, 인생은 어떤 것이었는지 다 알게 될텐데, 나한테 꼭
전화를 해서 알려달라고 했다.
그 권사님은 어이가 없어하면서도 "알았다"고 했다.
나는 하나님아버지께서 영의세계를 말씀해 주셔도 형상을 보는 것이
아니고 투명이미지 같이 느낌으로 보기 때문에 정말 더 궁금하다.
전화라도 해줬으면 좋겠는데 어쩜 그렇게 죽은 사람들은 말이 없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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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며칠 시간을 내어 조용하게 읽어보겠습니다. 좋은 말씀인 것 같아 일단은 추천하나 눌러 놓고,갑니다. 긴 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