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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국제신문 신춘문예 단편소설 당선작/ 부업 / 탁명주
현관문을 여는 소리에 아래층에서 개들이 짖는다. 무식한 사람들하곤 아예 상종을 않는 게 상책이지, 속으로 미움을 다지며 가만히 문을 닫는다. 어림잡아 개를 예닐곱 마리나 키우는 208호를 조용히 통과하는 건 불가능하다. 그 중 한 마리만 인기척을 들어도 단지가 떠내려갈 듯 시끄러워지기 때문이다. 나는 헬스 가방을 옆구리에 끼고 조심스레 열쇠를 넣는다. 내 집 문단속을 하는데도 이렇게 도둑처럼 굴어야 하나? 갑자기 부아가 치밀어 오른다. 신경질적으로 열쇠를 빼다가 놓치고 만다. 요란한 쇳소리가 통로를 울리는 동시에 놈들이 컹컹댄다. 오늘도 기분 좋게 집을 나서기는 틀렸다. 나는 이내 발을 구르고, 부러 가방으로 난간 손잡이를 텅텅 치며 계단을 내려간다. 208호에는 사람이 없는 게 확실하다. 현관으로 몰려와 컹컹대는 놈들의 기세가 문을 뚫고 나올 것 같다. 며칠 전 세입자 운운하며 되레 큰소릴 치던 개아짐을 생각하자 다시금 분통이 터진다. 그 앞을 고분고분 내려가지 못하고 눈썰미에 잔뜩 힘을 주어 현관문을 노려본다. 내 발소리가 멈추자 놈들도 탐색에 들어갔는지 현관문을 기어오르는 발톱소리만 요란하다. 나는 천천히 발을 들어 사정없이 문을 차고 뛰어 내려온다. 계단이 무너질 듯한 괴성이 등뒤를 쫓아온다. 가슴이 쿵쾅거리면서 야릇한 희열이 차 오른다. 입구를 빠져 나와 208호를 올려다보자 베란다 버티컬이 슬쩍 흔들린다. 집안에 사람이 있었던 걸까?
시간이 지났는데도 스포츠센터 셔틀버스가 오지 않는다. 아파트를 등지고 서있는 내 뒤통수가 따끔거린다. 손목시계를 확인하고 은행빌라 쪽으로 고개를 뺀다. 한마음슈퍼 차양아래 가지런히 진열된 과일들이 보인다. 꽤 넓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참외는 벌써부터 햇살에 데워졌는지 색이 탁하다. 몸집이 커다란 버스가 한마음슈퍼를 지우며 다가온다. 나는 셔틀버스에 올라서서 아파트를 돌아본다. 페인트가 바랜 저층 아파트의 몰골이 닭장 같다. 기사에게 고개를 까닥여 인사를 하고 빈자리를 살핀다. 맨 뒷자리에 모여 앉은 여자들이 눈인사를 건네 온다. 가슴 선이 도드라진 옷으로 몸뚱이를 가리고 있는 여자들에게 인사를 보내고는 잠깐 망설인다. 함께 섞이고 싶지는 않지만 여자들의 수다를 듣는 건 재미있다. 나는 안으로 걸어가 노랗게 머리를 염색한 여자의 앞좌석에 자리를 잡는다. 버스가 출발하자 부츠를 신은 키 큰 여자를 중심으로 잠시 멈추었던 수다가 시작된다. 공간도 좁은데다 수다를 떨기에는 그만인 뒷자리. 나는 꼭 몰려다녀야 그림이 되는 이 여자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안다. 팔목에 녹색 아대를 낀 여자와 노란 염색머리를 큐빅이 잔뜩 박힌 헤어밴드로 넘긴 여자는 장식용 꽃과 리본을 접는다. 이들에게서는 꽃을 접어 전기 송곳으로 고정시킬 때 나일론이 눌면서 피워내는 노린내가 따라다닌다. 블랙 톤의 캐주얼 차림에 여름 내 부츠를 신고 다니는 키 큰 여자는 크리스마스트리용 장식 초를 조립한다. 그녀는 부업 오야를 겸하고 있어서 흰색 타이탄을 끌고 가끔 내가 사는 동네에 나타난다. 부업거리를 풀거나 완성품을 수거하러 오는 것이다. 나는 그녀의 몸과 목소리에 숨겨진 양면을 안다. 스포츠센터에서 그녀는 화장품 장사처럼 수다스럽다. 그러나 부업 오야로 나타날 때는 다소 거친 제스처로 최대한 말을 아낀다. 부츠 옆에 앉은 여자는 이들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분위기다. 외양도 깔끔하고 수수한데다 말씨도 조용한 편이다. 그녀는 자신의 이미지와 꼭 맞게도 보석함 접는 일을 한다.
오늘 화제는 여행지인 모양이다. 녹색 아대가 제주도로 출장간 동창생 이야기를 꺼내자 여러 지명들이 메뉴로 올라온다. 여자들은 꼭 지방자치구의 홍보부에서 온 사람들 같다. 무조건 자기가 가본 곳이 최고라는 식이다. 안면도가 좋다느니, 동해안이 좋다느니 떠들던 여자들은 부츠가 사이판 이야기를 꺼내자 일순 조용해진다. ‘국내여행지 안에서’라는 화제의 묵계를 깬 부츠는 싸구려 물건을 팔듯 사이판을 판다.
“산호 방파제에 서있기만 해두 열대어들이 훤히 보이는데, 너무너무 이뻐서 누구래두 보면 기냥 빠져들어. 상상이 가냐? 야자나무 이파리 잘라다가 바비큐 요리 얹어서 먹는 맛, 진짜 죽여준다니까, 기껏해야 공항 길만 외제 흉내냈지, 솔직히 제주도에 뭐 볼게 있냐굩”
그녀의 말에 보라색 헤어밴드가 항의한다.
“그런 거야 만날 테레비에 안나오나. 내는, 고슬고슬한 밥에 다금 바리 한 뚝배기 놓고, 누릇하게 구어 낸 옥돔 발라먹는 기 젤로 좋드라. 제주도에 안 있는기 뭐 있노, 양식 묵고 헛 폼 재마 뭐 나오나?”
말을 하면서 보라색 헤어밴드가 손가락 끝을 쪽 빤다. 여자들이 필요이상 고개를 주억거리며 깔깔댄다. 그러나 부츠는 쉽게 고집을 꺾지 않는다. 제주도의 터무니없는 물가를 꼬집고 그 돈이면 차라리 동남아 가는 게 낫다며 항공료 숙박비 식비를 조목조목 열거한다. 녹색 아대가 한숨을 짓는 것으로 화제는 끝난다. 아마도 그녀는 콘크리트로 완벽하게 덮인 사이판이 아닌 환상적인 산호섬의 모습을 상상하며 주눅이 들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이 여자들의 남편 성격과 입맛, 심지어는 섹스 할 때의 버릇까지도 안다. 잠시도 수다를 멈추지 않는 이 여자들과 함께 워킹머신을 하거나 샤워를 하면서 알게 된 내용이다.
그네들의 화제 중 절대적 비중을 차지하는 건 단연 남자 이야기다. 얼마 전부턴 동창생과 작업에 들어간 녹색 아대가 다큐멘터리 식으로 연애담을 연재중이다. 그녀는 자신의 이야길 꺼내기 전에 업무보고를 받듯 다른 여자들의 연애상황을 점검하는 버릇이 있다. 전화 왔어? 혹은 만난 지 오래됐지? 하는 식이다. 그러면 여자들은 경쟁이라도 하듯 파트너의 근황을 보고한다. 이들은 남자 이야기를 감추는 법이 없다. 드러내지 못해 안달난 수다 속에 물버섯처럼 자라나는 외설, 그것은 강한 전염력으로 스포츠센터와 미용실과 카페를 통해 전이되어 가는 것이다. 그것이 이 여자들의 비상구일까? 여기까지 생각하자 그들과 같은 공간에 들어와 있는 무기력한 현실이 참을 수 없다. 남편이 쓸데없는 일에 한 눈만 안 팔았어도 세상 한 구석에 있는 너저분한 동네 따윈 알 필요도 없었을 거였다.
남편은 웹서버를 구축하고 관리하는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대기업인 P그룹 전산실에 근무할 때에도 틈틈이 베이직 프로그램을 만들어 과외 돈을 벌 만큼 그는 자기 분야에서 능력을 인정받았다. 요 몇 년간 남편이 기획한 프로젝트는 인지도를 얻어 국내의 유수한 회사들과 연계업무를 진행하는 중이다. 그가 하락세인 주식을 붙들고 미련을 떨 때만 해도 이렇게까지 추락하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언제까지나 특별시 노른자위 땅에서 품위를 과시하며 동창회나 계모임에 나가는 날엔 한껏 대접을 받고 가끔은 이차를 베풀 수 있을 거라 믿었다. 남편의 미련은 한 번에 끝나지 않았다. 어디서 틀림없는 정보를 얻었다며 시아버지를 설득하더니, 용인에 있는 선산을 저당 잡히고 시설자금까지 끌어들였다. 사활을 걸고 투자한 주식은 초반에 가파른 상승세를 탔다. 본전을 찾는가 싶어 입맛을 다실 즈음, 조간신문에 대서특필된 해당회사의 주가 조작설은 미처 손 쓸 새도 없이 수만 주의 주식을 추락시켜 버렸다. 이년동안 무리한 이자를 감당하며 고집스레 만회할 기회를 엿보던 남편은 결국 부동산을 처분하고 서울 외곽에 있는 이 도시로 거처를 옮겼다. 이사를 온 후 일년이 지났지만 우린 누구에게도 바뀐 전화번호를 가르쳐주지 않았다.
스포츠센터를 나오자 더운 낮 기온에 현기증이 난다. 오늘따라 몸의 리듬과 겉도는 헬스장의 음악이 몹시 거슬렸다. 네 개의 대형 스피커가 토해내는 타악기 소리가 머릿골을 두들겨대는 바람에 속이 다 울렁거렸다. 미지근한 샤워 물로 땀을 걷어내고 입구를 나서는데 차나 한 잔 하자고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즉시 부츠의 목소리를 알아들었지만 뒤도 돌아보지 않고 엘리베이터를 탔다. 앉은자리에서 밑도 끝도 없이 수다를 떨어대는 건 딱 질색이다. 이놈의 동네에서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어울릴 만한 사람이 없다. 그나마 유일하게 말을 섞고 지내는 사람이 이웃인 윤희네다. 옆집이기도 하지만 작은 딸 윤서와 내 아이 누리가 같은 유치원에 다니기 때문이다.
먼지가 앉은 노점들을 지나쳐 은행 무인점포로 들어간다. 급여 수령일이 이틀이나 지나 있다. 생식마을에서 회원제로 대 먹는 식료품값이 밀려있어 오늘까지 입금을 시켜주기로 한 상태다. 자동 인출기 박스는 비어 있다. 나는 통장정리버튼을 누르고 화면의 숫자판을 들여다본다. 화면은 아무 것도 기입하지 않은 채 완료로 넘어간다. 곧바로 통장이 밀려나오면서 ‘기입할 내용이 없습니다’라는 문구가 뜬다. 이상하다. 그럴 리 없다. 나는 옆 기계로 자리를 옮겨 다시 통장정리를 해 본다. 같은 내용이다. 잠시 당황한 나는 일시적으로 기계가 오작동 중일 거라는 데까지 생각이 미친다. ‘개떡같애, 툭하면 고장이야.’ 짜증을 누르고 할 수 없이 무인점포를 나온다. 재래시장이 언뜻 눈길을 붙들지만 아무 것도 내키지 않는다. 찬거리라면 매일 오후 한차례씩 들러가는 반찬 차에서 사면 된다. 채소며 생선, 과일을 사들고 버스를 타거나 걷는 일만큼 비참한 건 없다. 건너편 스포츠센터 건물 앞에 셔틀버스가 대기하고 있는 것이 보인다. 샤워 후 아침보다 더 요란하게 화장을 했을 네 명의 여자들이 건물을 빠져 나와 건널목에 신호대기 한다. 그녀들과 다시 얼굴을 마주치며 눈인사를 나누는 건 끔찍한 일이다. 마침 사거리 신호를 통과한 마을버스가 느리게 다가온다. 구조대를 만난 듯 반갑다.
나는 단번에 그녀를 알아본다. 음식물 쓰레기통을 비우는 여자는 분명 208호다. 며칠 전 말다툼을 한 후로 직접 마주치는 건 처음이다. 나는 그녀를 무시하고 걸어와 한 발 앞서 계단을 올라선다. 발자국 소리를 기다렸다는 듯 개들이 짖어대기 시작한다. 겨우 누르고 있던 부아가 다시 치밀어 오른다.
“제 집이나 잘 지키지 짐승들까지 오만 일에 참견이야.”
내가 하는 말을 들었을 테지만 그녀는 아무 대꾸 없이 집안으로 들어가며 꽝 소리가 나도록 문을 잡아당긴다. 그 서슬에 아우성을 치던 개소리가 딱 그친다.
처음부터 내가 동네사람들과 뜨악하게 지냈던 건 아니다. 그녀와 불편해지지 않았다면 이웃들과도 그런 대로 지낼 만 했을 거였다. 그 때 생각을 하면 아직도 내장이 뒤집힌다. 이사 온지 석 달쯤이나 됐을 때던가, 계단 물청소를 하는데 느닷없이 그녀가 시비를 걸어왔다. “아침부터 피아노 소리 좀 안 낼 수 없나? 그 시간이면 아직 한참 잘 시간인데, 이건 참는다고 끝나는 것두 아니구 말야. 요즘 세입자들은 도대체 예의가 없어.” 그녀의 말투에 적의가 서려 있었다. 어쩌면 그녀는 내가 시끄럽다고 시비 붙을까봐 연막을 친 건지도 몰랐다. 하지만 소음에 관해서라면 나도 할 말이 있었다. “개 짖는 소리는 괜찮고 피아노소리는 소음이에요? 한 두 마리두 아니구 떼거리루 짖어대는 걸 가지구.” 그러자 그녀는 말도 안 되는 억지로 핏대를 세웠다. 세입자면 조용히 살다 가든가 공동주택에서 안 살면 될 것이지, 젊은 게 어따 대고 바락바락 말대꾸냐는 거였다. 세입자 운운하는 그녀의 말에 분한 건 둘째치고 우선 말문이 막혔다. 나는 빗자루를 내던지고 집으로 들어가 버렸다. 이상한 건 그 후로 온 동네가 나를 두고 쑤군대는 거였다. 초록은 동색이라고 구질구질한 주제들끼리 통하는 게 있는 모양이었다. 그 때부터 사람들과 마주치기가 싫었다. 간혹 쟁반을 들고 위아래 집을 오르내리는 개아짐과 마주쳤다. 여자들끼리 주고받는 웃음 속에 치사스런 모의가 느껴졌다. 그럴 때마다 그냥 무시했다. 모두가 한 통속이라고 치부해 버리는 게 오히려 속이 편했다. 어차피 그네들이 내 덕에 사는 것도 아니고 내가 그네들 덕에 사는 것도 아니었다. 진짜 참을 수 없는 건 시도 때도 없이 짖어대는 개새끼들의 소음이었다.
인후통으로 고생하던 며칠 전에도 그랬다. 무슨 일인지 아침부터 개가 짖었다. 그런 날엔 음악이라도 틀어놓고 청소기를 돌리거나 세탁을 하면 되었다. 하지만 몸살기운 때문에 오디오 음향조차 가시처럼 신경을 긁어댔다. 개가 짖을 때마다 못질을 당하듯 머리통이 울렸다. 차라리 밖으로 나가는 편이 나을 듯 싶었다. 이비인후과에 다녀오는 길에 때 마침 외출에서 돌아오는 개아짐과 마주쳤다. 그동안은 부러 상종을 피했지만 그 날은 그러고 싶지가 않았다. 오히려 잘 만났다 싶었다. “집 비울 땐 개를 풀어 놓나봐요, 도대체 몇 마리나 되는 거예요?” 작정하고 물었지만 그녀는 못들은 체하고 나를 지나갔다. 큰 걸음으로 그녀를 따라잡으며 다시 물었다. “떳떳하지 못하면 차라리 양해를 구하든가 안 그럼 상식을 지켜야 되는 거 아니에요?” 그제서야 개아짐이 굳은 표정으로 천천히 돌아섰다. 그녀와 비스듬히 마주선 내 눈에 108호 여자가 마당으로 들어서는 게 보였다. 개아짐이 반색을 하며 108호에게 인사를 건넸다. 굳어졌다 웃었다를 반복하는 개아짐의 표정이 뻔뻔하다 못해 야비했다. 쭈뼛대며 다가온 여자는 우리를 지나쳐 계단 입구로 들어섰다. 동시에 기습적으로 개들이 짖기 시작했다. “저것 봐요, 저 개새끼들 때문에 내 집 드나들면서 왜 맨날 놀래고 불쾌해야 돼요, 이거야말루 폭력이라구요, 한 통로에 살면서 다투기 싫어서 말을 안 해 그렇지 다들 똑같을 걸요.” 잔뜩 벼르던 참이어서 나는 본질적인 문제를 거론했다. 그러자 개아짐이 침을 튀기며 대꾸했다. “아니, 이 여편네가, 말이면 단 줄 알아? 애새끼들 둘씩 셋씩 몰켜 다니매 시두때두 없이 소란 피우는 거에다 비해? 어따 대고 폭력 운운이야?”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반론이었다. “아줌마, 어떻게 사람하구 짐승을 비교해요? 애들도 몰켜 다닐 시간이 있는 거지 아무 때나 할 일도 안하고 다닌답디까?”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얼굴을 찔러 댈 듯 손가락이 올라왔다. “이런 쌍스러운 종자들이 또 있으까, 계단을 텅텅 치구 안 다니나 오밤중에 피아노를 안 쳐대나, 위아래도 못 알아보는 싹바가지들 하곤, 퉤엑.” 침까지 뱉어내며 늘어놓는 그녀의 윗사람 사설에 나는 참았던 분통이 터졌다. “얼마나 차이가 난다구 그래요, 아줌마가 칠십이 됐어요, 팔십이 됐어요? 고깟 나이가 무슨 벼슬인줄 알아요? 그렇게 대단한 나이 먹구 왜 나이 값을 못해?” 변죽만 울리다 말 거라면 시작도 안했을 다툼이어서 나는 조금도 양보하지 않고 대거리를 했다. “츳, 굴러 들어온 돌이 박힌 돌 빼낸 대더니 이놈에 에펜네가 어디서 쥔 행세야, 쥔 행세가. 춤가방 둘쳐매구 다닝게 눈깔에 뵈는 게 없어? 푸엑, 상종 못할 종자들 같으니.” 개아짐은 숫제 욕지거리를 해댔다. 그 순간 피가 거꾸로 솟구치는 것을 누르며 나는 눈을 내리깔았다. “그래요. 아줌마 말 맞다나 나두 세입자라 참구 지내볼라구 했는데, 그럼 따져 봅시다. 공동주택에 살라면 집주인도 기본 매너는 지켜야지 세입자만 지키라는 법 있어요? 그런 지랄 같은 법 있냐구요? 이것도 집이라구 유세야. 한국사람이 한국말 못 알아듣는데 게다가 뭔 말을 더 보태.” 내 비아냥거림에 개아짐의 얼굴이 순식간에 서슬 푸르게 변해 부들부들 떨렸다. 겁날 건 없었다. 오히려 내친 김에 한 마디 더 보탰다. “그러다 한 대 치겠네, 돈 많음 한 대 쳐봐요, 사람들이 모조리 바보라서 가만히 있는 줄 아나본데, 똥이 드러워서 피하지 무서워서 피해?” 순간 개아짐의 얼굴이 천천히 누그러졌다. 광기가 가시는 그녀의 얼굴이 섬뜩했다. 암말 없이 그녀가 돌아서지 않았다면 무슨 결론이 났을까? 아무 소득도 없는 말싸움이란 소모전일 뿐, 차라리 그 편이 나았을지도 몰랐다.
개아짐이 집안에 있어선지 개소리가 잠잠하다. 개아짐네 현관문을 노려보다 올라와 옆집 윤희네 초인종을 누른다. 문을 따준 그녀는 라디오 소리부터 줄이고 일자리로 돌아간다.
“헬스 갔다 와요?”
일거리를 집어들며 의례적으로 묻는다. 그녀가 꿰매는 가죽은 캐주얼 단화의 바닥을 뺀 나머지 부분이다. 완성품은 공장에서 바닥을 붙여 상점으로 나간다. 꿰맨 자리가 도드라진 가죽이 복주머니 같다. 그것이 어떻게 신발이 될 수 있는지 나는 언제나 신기하다. 다 꿰맨 가죽을 플라스틱 바구니에 던져 넣은 그녀가 베란다로 나간다. 세탁물을 처리하고 들어오는 그녀의 손에 유리병이 들려 있다. 아무리 건강이 최고라지만 티백 홍차를 우린 물에 균을 배양해 유산균 음료를 만들어 먹는 그녀의 정성은 감탄할 만하다. 한 컵 가득 따른 시디신 음료가 그녀의 목으로 넘어간다. 입안에 가득 고여드는 침을 삼키며 묻는다.
“아침엔 개새끼들 왜 그 난리를 쳤대요?”
커피 잔에 얼음을 넣으며 그녀가 대꾸한다.
“알게 뭐래요, 은제 개새끼들이 신고하고 짖었남?”
하긴 그렇다. 잔을 건네고 자리에 앉은 그녀가 익숙한 손놀림으로 가죽 묶음을 풀고 조각을 집어든다.
“저 집 애들은 공부가 될까 몰라. 시끄럽구 귀찮을 텐데.”
혼잣말을 하곤 냉커피를 들이켠다.
“구찮은 거 보담두 개털이 그렇게 안좋다잖아요. 알게 모르게 호흡기 속으루 들어간 개털 땜에 죽은 사람두 있다던데.”
오로지 자신의 관심사에만 신경을 집중하는 그녀지만 내 혼잣말을 알아들었던 모양이다.
“제 집 식구야 개 때문에 죽든 말든 무슨 상관이람. 온 동네가 눈치보고 사는 마당에.”
“아래 위 집에서 말 할 사람들이 입을 봉하고 있으니 할 수 없지.”
내 말에 맞장구를 놓으며 그녀가 한숨을 내쉰다. 언젠가 108호 여자가 외출에서 돌아오는 208호 여자를 불러세웠다. 모처럼 친정 엄마가 들렀는데, 시끄러워서 한나절도 못 견디고 돌아갔다는 항의였다. 208호 여자는 태연하게 대꾸했다. 식구들이 나가면서 방문을 열어놓은 바람에 애들이 거실에 나와 놀았나 보다고. 그녀는 개를 꼭 애라고 불렀다. 그녀의 말을 듣다보면 함부로 개새끼라고 부른 사람이 무안해졌다. 처음 두 마리를 키우다가 성대 수술한 애를 주워서 셋이 됐다며 줄줄이 개 족보를 들먹이던 여자는 너무너무 이쁜 새끼를 네 마리나 낳았다고 했다. 충격을 완화한 일곱이라는 숫자는 그렇게 공인되었다. 그 후로 그녀는 틈만 나면 108호에 잡채나 고구마 등 간식을 날랐다. 108호 여자는 208호네 아이들이 개를 너무 좋아해서 사춘기가 지나갈 때까지만 키울 거라고 전했다. 개를 키운 뒤부터 아이들이 친구들과 쏘다니는 대신 집에서 시간을 보낸다는 거였다.
“호흡기 질환도 고질병이래요, 아침에 그것 보느라 일도 못했구마.”
한참 자기 생각에 빠져있던 윤희네가 걱정거리를 털어놓듯 말한다.
“것두 염쯩이 머리로 올라가면 죽는대요.”
아침마다 시청자들의 건강 운운하는 프로를 보며 마음을 빼앗기는 그녀답다. 마치 자신의 증상이라도 되는 듯 심각해지는 그녀의 말을 자르기 위해 결론을 내린다.
“하이튼 개새끼들을 몰아내든지, 그게 싫으면 사람이 나가든지 더는 못 참아요.”
내 말에 윤희네가 풋 웃는다.
“그게 맘대로 되가니, 개아짐 고집을 누가 당해.”
아이들 목소리가 계단을 올라온다. 나는 가방과 열쇠를 챙겨들고 현관문을 연다. 웃으며 달려드는 누리를 안아 이마에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넘겨준다. 손끝에 땀이 묻어 나온다. 더 놀고 싶다는 누리에게 윤희네가 타이른다.
“우리 윤서는 금방 병원 갈 건데, 갔다 오믄 놀아라.”
누리는 결국 울음을 터뜨린다. 나는 심란해져서 누리를 데리고 집으로 건너온다.
갑갑증이 훅 덮쳐온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다시 강남으로 돌아간다는 건 꿈같은 일이다. 강남은커녕 특별시 시민이 되는 것도 아득해 보인다. 마이너스가 누적되고 있기는 했지만 이사를 나오기 전까지는 그래도 강남 사모님이었다. 겨우 일년이 지났건만 강남과의 거리는 까마득하다. 나는 한 컵 가득 냉수를 들이켠다. 그래도 속이 개운해지지 않는다. 칭얼대던 아이가 베란다로 달려나간다. 잠깐동안 마당을 내려다보더니 바닥에 소꿉놀이세트를 늘어놓기 시작한다. 윤희네 모녀가 외출하는 소리에 괜스레 볼멘소리가 새 나온다. ‘아무리 대단한 부업을 하면 무슨 소용이람. 벌면 버는 대로 갖다 바치기 바쁜 걸.’ 그렇게 나오는 대로 뱉고 보니 뒤틀렸던 속이 뚫리는 것도 같다.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며 사다 나르는 약봉지와 그녀 집 냉장고 위에 즐비한 건강보조식품 병들이 떠오른다. 낮에 만난 스포츠센터 여자들이 생각난다. 그녀들 역시도 버는 대로 갖다 바칠 특별한 창구가 있는 걸까? 보석함을 접는 여자는 정교한 기술이 필요한 일이라 단가가 높다고 했다. 부업해서 두 아이 과외비용을 충당하고 있다며 자랑스러워했다. 둘이 한 세트인 꽃 접는 여자들은 부업해서 몸매도 가꾸고 옷 한 가지라도 맘대로 사 입을 수 있으니 좀 좋으냐고 떠벌렸다.
추리용 장식 초를 조립하는 부츠는 남편과 별거 중이라고 했다. 그녀의 목표는 온통 스포츠센터와 다이어트 클리닉에 다니며 몸무게를 확인하는 것이다. 어쨌든 다들 그렇고 그런 이유가 있었던 셈이다.
베란다를 보니 땀이 차 후줄근한 원피스를 허벅지까지 걷어올리고 누리가 화분받침대에 기댄 채 졸고 있다. 아이를 안아다 침대에 눕히고 질끈 눈을 감는다. 부글대던 속이 좀 가라앉으면서 노곤하다. 꿈이라도 꾸는지 잠든 아이의 숨결이 좀 불규칙하다. 곁에 누워 홑이불을 끌어다 덮는다.
계단에서 사납게 짖는 개소리와 함께 아이의 비명소리가 들린다.
“뭔 일이래?”
나와 동시에 현관문을 연 윤희네가 재빨리 신발을 꿰고 계단을 내달린다. 언제 돌아왔는지 외출복 차림이다. 개 짖는 소리가 요란한 이층 계단에 파랗게 질린 아이를 껴안고 207호 여자가 앉아있다.
“물렸어요?”
윤희네 호들갑에 207호 여자가 시선을 일별하고 일어난다. 바지 단을 걷어붙인 아이의 종아리가 힘없이 흔들린다.
“애가 놀랬나봐요, 아이구 어떡해.”
아이를 안은 채 계단을 내려가는 207호를 따라가며 윤희네가 말을 시킨다. 207호는 석 달 전 집을 사서 이사온 여자다. 파트타임으로 우편물 분리를 하러 다니는 여자는 오후 서너 시가 지나야 집에 들어온다. 퇴근길에 유아원에서 아이를 데려온다고 했다. 매번 놀라면서도 사내아이가 호기심이 많아 옆집 대문을 쳐서 개소리를 확인한다고 했던가? 계단 창문으로 내다보니 개선장군처럼 가방을 받아들고 앞장선 윤희네가 무슨 말인가를 주워섬기며 207호와 함께 마당을 빠져나간다. 무슨 신나는 일이라도 만난 양 수선을 피우는 윤희네가 낯설다.
“웬수놈의 짐승들 처먹는 게 아깝지. 들어가지 못해? 이 급살맞을 놈의 짐승새끼들. 들어가란 말야굩”
개아짐이 개들을 몰아넣는 소리가 들린다. 잘못한 아이를 매질하듯 모질게 이어지는 말 소리가 간간이 방바닥을 치는 나무토막 소리에 잘린다. 통로의 공명 때문에 울부짖음이 한층 더 음울하다. 악다구니에도 불구하고 씨름하는 소리는 질기게 계속된다. 어쩌다 뒤엉킨 소음이 들리기는 하지만 개들에게 욕설을 퍼붓는 건 처음이다. 무작정 짜증을 누르고 서 있다가 갑자기 의기양양한 생각이 든다.
윤희네가 큰 걸음으로 계단을 올라온다. 이층으로 올라서자마자 곧바로 앵커맨처럼 중계를 시작한다. 207호가 현관문을 따는 동안 아이가 덜 닫힌 옆집 현관문을 건드렸단다. 문틈으로 뛰어나온 개가 말릴 새도 없이 아이의 정강이를 물었고, 비명소리를 들은 개아짐이 아래층에서 뛰어올라왔다는 말이다. 택시를 잡아주고 병원 가서 검사부터 하라고 시켰다며 윤희네는 208호집 현관문을 슬쩍 열어본다. 집안에 갇혀있던 아우성이 계단으로 밀려나온다. 흰 개 한 마리가 낑낑대며 부엌 쪽으로 뒷걸음을 친다. 짖지 못하는 걸로 보아 놈의 성대를 제거한 모양이다. 화분 틈에서 내다보는 강아지들도 있다. 알고있던 것보다 훨씬 숫자가 많은 개 때문이 아니라 벌어지는 풍경이 놀랍다. 문간방 문틈으로 악착같이 대가리를 내밀며 울부짖는 개들에게 사정없이 빗자루가 떨어진다. 개아짐이 바지를 엉덩이에 걸친 채 빗자루를 휘두를 때마다 풍성한 살점이 따로 놀며 출렁댄다. 그악스레 욕설을 쏟으며 문간방을 수습하고 돌아서는 그녀의 얼굴이 눈물로 번들거린다. 미처 현관문이 열린 줄 몰랐던지 우리를 본 그녀가 당황하며 손바닥으로 눈물을 훔쳐낸다.
“애는 즈 엄마랑 병원 갔어요.”
윤희네가 냉큼 보고한다. 개아짐은 대답대신 신발장 틈으로 빗자루를 우겨 넣을 뿐이다. 굳은 표정으로 거실에 널린 수건이며 휴지통을 치우는 그녀의 행동거지가 거칠다. 뭔가 할 말이 있는 듯 현관문을 붙들고 서있던 윤희네가 입술을 씰룩인다. 나는 윤희네 어깨를 툭 건드리고 눈짓을 준다. 함께 돌아서는데 개아짐의 목소리가 뒤통수를 친다.
“츳, 변변치 못한 에펜네들, 애새끼 하나 건사 못하는 위인들이 입만 살아선.”
마치 나더러 들으라고 하는 소리 같다. 비위 장이 뒤집혀 단숨에 계단을 올라온 나는 일단 윤희네 집으로 따라 들어간다.
“적반하장이라더니, 누구한테 욕하는 거예요 지금?”
“아짐, 뻔뻔스럽네에.”
윤희네도 그만 혀를 찬다. 그녀가 개아짐에게 감정을 드러내는 건 처음이다. 개아짐의 일방적 의도이긴 하지만 그녀와 개아짐은 특별한 관계다. 전라도 억양이 남아있는 그녀의 말투를 붙들고 동향사람이라며 야단스레 편애를 해왔던 것이다. 필요하다싶으면 아무한테나 써먹는 말인 줄 알기에 정작 윤희네는 그녀의 고향을 모른다고 했다.
“잘됐어요. 이 기회에 결단을 내야지 한 줄에서 안 만날 수두 없구, 애들 하구 맘놓고 살겠어요 어디?”
“참말로, 뭘 믿구 저렇게 떳떳하데, 사단은 애 저녁에 나부렀구만도.”
혀를 차며 윤희네가 일거리를 집어든다. 이해 할 수 없다. 아무리 몰상식한 사람이라도 제집 개가 사고를 냈는데 어찌 저리 뻔뻔할 수 있을까? 그러니, 시끄럽다는 소리 따위에 신경 쓸 위인이 애초부터 아니었던 거다.
“광견병이 얼마나 무서운데, 절대 그냥 넘어가면 안돼요.”
윤희네가 고개를 번쩍 들더니 입술을 씰룩거린다.
“이참에 아주 담판을 내야 한다구요. 한집 취미 생활하는데 여러 사람 목숨걸 일 있어요? 꼭 해야겠다면 천상 단독주택 살아야지 별 수 없잖아요?”
“갈라믄 벌써 갔지, 뭐한다구 버텨.”
“글쎄 그건 그 집 사정이죠, 한 번 문 놈이 또 물지 말란 법 있어요?”
그녀가 다시 위 이빨로 입술을 꾹 누른다.
“그도, 사람만 안 나쁘믄 잘들 살아야지.”
기가 막히다. 기껏 입을 맞추다말고 변덕이 난 이유가 뭘까.
“아짐 신장이 병이 나서 은제쩍부터 변변히 치료두 못 받고 산디….”
알만하다. 환자 앞에선 무조건 후해지는 그녀 특유의 인심이 발동한 것이다.
“누가 먼저 나쁘게 굴었는데요? 것두 다 뿌린대루 거두는 거지 뭐.”
대꾸는 했지만 구멍난 풍선처럼 바람이 빠지는 기분이다.
“사람 몸 아픈데 뭐인들 보이겠어. 그저 안됐잖아요, 누군들 아프고자픈 사람 있으까.”
윤희네가 한 숨을 푹 쉰다. 그녀와는 어차피 결론이 안 나오는 이야기다. 하지만 이 번에 기회를 놓치면, 여기서 이사 나가는 날까지 저 개새끼들의 악다구니 속에 살아야한다. 그것만은 참을 수 없다. 갑자기 마음이 급해진다. 마음 같아서는 동네를 한바퀴 돌면서 연판 장이라도 돌리고 싶다. 발빠른 개아짐이 먼저 207호의 입을 막기 전에 공론화 시켜야 한다. 나는 벌떡 일어나 베란다 밖을 내다본다. 빈 주차장으로 포장을 반쯤 걷어올린 트럭이 들어서는 게 보인다. 반찬 차다.
-신선한 채소가 왔어요, 빛깔 좋은 과일이 왔어요, 싱싱한 생선이 왔어요. 느린 박자에 구성진 목소리가 확성기를 통해 울린다. 산지에서 공급하는 값싸고 맛좋은 생물이 왔어요, 고루고루 왔어요.
리듬을 실어 기분 좋게 채근하는 스피커 소리에 윤희네가 일어선다. 부스럭거리며 잔돈을 챙겨드는 그녀를 따라 내려간다. 마당에는 앞 동 여자 두엇과 우리 줄 여자들이 나와있다. 여자들과 눈인사를 나누고 순두부 한 국자를 샀더니 덤이 반 국자다.
“저, 병원 갔던 사람 오네.”
윤희네가 소리쳐 돌아보니 마당으로 들어선 택시에서 207호가 아이를 데리고 내린다.
“저 집 왜 그래요?”
508호가 묻는다.
“애가 208호 개한테 물렸어요. 개 물리는 것이 보통 위험한 일이 아닌데, 그래도 개아짐 눈썹하나 까딱 않더라구요.”
내 말에 눈이 등잔만해진 여자들 시선이 애한테 쏠린다.
“애는 어티게 됐어요?”
207호가 아이의 칠부 바지를 올려 종아리를 보여준다. 딴딴하게 묶은 붕대에 누런 약물이 배어있다.
“두고봐야 한대요.”
207호의 뒷말을 윤희네가 나서서 얼른 이어준다.
“이빨자국이 여섯 개나 났대요.”
그러자 너두 나두 한마디씩 거든다.
“그 집 개들 을마나 사나운지 집도 뿌셔먹게 생겼어.”
“한참 짖을 때 보면 개가 한 열댓 마리는 되는 거 같애. 동네가 점잖아서 그렇지, 이건 진짜 아홉시 뉴스에 나올 일이야. 안 그래요?”
407호의 말에 508호가 거든다.
“우린 몰랐으니까 들어왔지, 소문나면 집도 안나가요. 이 기회에 개새끼들 몰아내야 사람이 살지.”
왁자해지는 틈에 207호가 아이를 안고 건물로 들어간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뒤따라 들어간다.
이층에 올라서서 207호가 개아짐네 초인종을 누른다. 아직도 갇혀있는지 개 짖는 소리가 멀게 들린다. 개아짐은 집을 비운 듯 아무 반응이 없다.
“없는 거 아니에요?”
207호가 돌아본다. 그럴 리 없다. 그녀가 현관문을 두어번 두드린다.
“문 열어요, 아줌마 거기 있는 거 알아요.”
여자들이 수군거리더니, 손잡이를 잡아당겨 보고 쾅쾅거리며 문을 두드린다.
“있는 거 다 안다구요. 비겁하게 피하지 말구 나와서 얼굴을 보이란 말이야.”
“개를 없애든지 사람이 나가든지 결단을 내.”
얼굴을 마주보지 않아서인지 돌연 반말 투다. 열리지 않는 문이 화를 돋운 걸까? 순식간에 불어난 분노가 걷잡을 수 없이 대문을 차고 흔든다. 안에서 짖는 개소리가 집안을 컹컹 울리더니 문고리 따는 소리가 들리고 곧 현관문이 열린다. 얼굴이 노래진 개아짐이 현관에 버티고 서 있다.
“우리 애 문 놈이 어느 놈에요?”
207호가 쏘아붙인다. 대꾸가 없는 개아짐에게 그녀가 한 발 다가선다.
“우리 애 광견병 걸리면 어쩔 거예요, 책임 질 거야?”
개아짐이 대꾸할 새도 없이 407호가 나선다.
“우린 더 이상 못 참아요. 개새끼들 짖는 소리도 지긋지긋하고 개 비린내도 참을 만큼 참았어. 개를 없애던지 아줌마가 나가던지 결정을 해요. 이건 애완견을 키우는 게 아니라 숫제 개 사육을 하고 있잖아굩”
“집 내 논지 넉 달이 지났는데, 보구 가는 사람은 많아도 계약이 안 돼. 냄새나는 저 층에 개새끼들까지 짖어대는데 누가 오냔 말야. 개새끼들 덕분에 집 값마저 떨어졌어. 알기나 해요?”
같은 줄에 살면서 그동안 분을 참고 있었던 듯 508호가 쏘아붙인다. 나도 끼어든다.
“어쨌든 우린, 연판 장도 돌리고 고소할 거예요. 피해보상은 물론이고 끝까지 싸울 거예요. 아줌마가 그렇게 우습게 보는 세입자도 주거환경에 대한 기본권은 주장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줄 테니 두고보세요.”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개아짐이 털썩 주저앉더니 핏기가 가신 입술로 가쁜 숨을 몰아쉰다.
“고만, 고만들 해굩”
윤희네가 개아짐의 등을 냉큼 받쳐내며 소리친다. 신장이 안 좋은데, 치료도 못하고 있다던 그녀의 말이 생각나 더럭 겁도 나지만, 연기를 하는 게 아닌가 의심스럽기도 하다. 한참 숨고르기를 하던 개아짐이 느리게 내뱉는다.
“집이들은 애들 없능가? 새끼들 안 켜?”
그러곤 숨이 안 쉬어지는 듯 가슴을 친다.
“이 징한 것을 나라구 하구 싶어서 하는 중 아나? 못할 짓인 건 내가 할 소리네. 내 갖은 거라곤 이눔의 집배끼 없는데, 허리두 못쓰는 우리 집 양반 일자리 털어 묵고 나댕기지. 나도 몸뚱이는 아퍼 쌓고, 내가 무슨 재간 있냐고. 집이 애덜은 그래두 에미 애비는 있잖어. 불쌍한 우리 조카 새끼덜 데려다 멕이지두 못허고, 입히지두 못허고 산디, 내 맘졸이는 걸 누가 안가, 개새끼라두 팔어 묵어야 내가 산게. 사람이 살구 봐야지. 인자 집 떠날 날두 머잖았는디, 불쌍한 그 새끼덜 고등핵교는 갤켜야 헐거 아닝가. 나 내놀 것은 목숨배끼 없어. 가이덜 델구 있는 동안은, 날 죽인대두 할 수 없….”
개아짐의 말소리가 목 울음에 잠겨 버린다. 윤희네가 찬물을 떠오는 동안 고개를 떨구고 있던 여자들이 하나 둘 흩어진다. 칭얼거리는 아이를 달래며 207호가 집으로 들어가 버리자 통로엔 나 혼자 뿐이다. 잦은 울음을 삼키는 개아짐과 윤희네를 두고 계단을 올라온다. 쇳덩이라도 매달린 듯 발이 무겁다.
어둑한 창 밖을 보며 남편의 휴대폰으로 전화를 건다. 구멍이라도 난 듯 가슴이 헛헛해지고 자꾸만 눈밑이 시리다. 전화는 불통이다. 손가락 하나도 움직일 의욕이 나지 않아 아이 옆에 다시 눕는다. 베란다 창으로 멀리 산중턱을 가로지르는 서울외곽순환 고속도로가 보인다. 특별시를 중심으로 띠를 둘러 안팎을 구별한 느낌 때문에 저 도로를 볼 적마다 마음이 상한다. 퇴근 무렵인데도 교통체증 없이 연속 질주하는 자동차 불빛이 검은 산 중턱에 야광 띠를 이루고 있다. 그 아래 산밑을 지나는 산업도로는 언제나처럼 정체중이다. 종일 밀리다시피 하는 그 도로는 복잡한 재래시장 같다. 낯익은 풍경이다. 두 개의 도로가 마치 서로 다른 무대 같다. 질주하는 순환 도로가 특별시로 입성하는 무대라면 정체중인 산업도로는 변두리로 내려가는 무대다. 지금 나는 저 자잘한 불빛들 사이에 끼어 옴짝달싹 못한 채 변두리로 마냥 흘러가고 있는 것이다.
잔뜩 웅크린 아이를 바로 눕히는데 목 줄기에서 열기가 만져진다. 서둘러 해열제를 찾는다. 다행히 냉장고 구석에 먹다 남은 부르펜 시럽이 있다. 고여드는 어둠을 실내등으로 밀어내고 아이를 깨운다. 자던 입에 억지로 저녁을 먹이고 곧바로 해열제를 먹인다. 열기에 축 처진 아이는 칭얼댈 힘도 없는지 다시 잠들어버린다.
입맛을 잃은 채 식탁에 앉아있는데 전화벨이 울린다. 남편이다. 조금 늦겠다는 말끝에 피곤한 목소리로 묻는다.
“당신, 나 없어도 살 수 있지?”
“생뚱맞기는. 근데 무슨 일 있어요?”
“그냥, 당신한테 미안해서 해 본 소리야.”
자존심이 강한 남편에겐 드문 일이다.
“왜 그래, 회사에 문제 생겼어?”
남편은 대답이 없다.
“당신이 뭘 또 잘못한 거야?”
한참을 더 침묵하고 있던 그가 입을 연다.
“그래. 재수 없게 경쟁사 프로젝트를 유출하다 걸려들었어.”
“그럼 어떻게 되는 거야?”
가슴이 철렁 내려앉아 다그친다.
“복잡해. 어음을 못 막아서 연장 걸어놓고 있었는데, 약속한 업체에선 결재두 안 나오구. 씨발, 미치겠다.”
“무슨 소리야, 일 저지른지 얼마나 됐다구 또 그래?”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러버린다. 수화기 저편에서 들려오는 숨소리가 무겁다.
“어떻게든 해결이 되겠지. 당분간 못 들어가두 누리 잘 챙기구 있어. 누가 전화하면 나하구 연락 안 된다구 해. 알았지?”
감정을 수습하는 남편의 목소리에서 불길함이 느껴진다.
“잠깐만 여보, 끊지 마….”
그러나 전화는 이미 끊긴 뒤다. 브레이크를 건 듯 심장이 제대로 뛰지 않는다. 곧바로 남편의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어본다. 불통이다. 급여가 입금되지 않은 통장이 퍼뜩 떠오른다. ‘당장 이번 달부터 생활비가 끊기는 걸까’ 허둥대는 마음을 누르며 거푸 전화를 돌려본다. 회사 전화도 받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동어 반복을 계속하는 부재중 서비스에 치가 떨린다. 순식간에 몸에서 열기가 빠져나가는 것 같다.
해열제를 한 번 더 먹였는데도 아이는 두어 시간 열이 내렸다가 다시 뜨거워져있다. 열한시면 약국도 문을 닫은 시간이다. 혹시나 하는 기대로 윤희네로 전화를 건다. 좌약을 찾아 든 그녀가 당장 건너온다.
“젠작 병원을 가야제, 이 밤까지 아를 고생시키네.”
그녀는 핀잔부터 한다. 누리의 이마며 목 줄기를 만져본 그녀가 혀를 찬다. 코로 열기를 뿜어내는 아이에게 좌약을 투입하는 사이 그녀가 얼음 팩을 만든다. 얼음찜질을 하는 동안 아이는 홍옥처럼 들뜬 얼굴을 부르르 떤다. 그녀가 거즈에 찬물을 적셔와 아이의 팔이며 다리를 씻어낸다.
“숨구멍이 맥히지 않아야 열이 빠질텐데…”
늦은 시간에 달려와 준 그녀가 새삼 고마워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열만 떨어지면 벨일도 아닌데, 하이고 내가 쓰잘대기 없이 소란만 떨었네.”
되려 그녀가 무안해한다.
“누리아빤 오늘따라 늦네에?”
나는 고개만 끄덕인다. 남편을 생각하자 가슴이 콱 메인다. 그녀에게 표정을 들키지 않으려고 지긋이 입술을 깨물고는 벗겨놓은 아이의 옷을 모은다.
“한 꾸러미 마저 끝내고 자야제.”
그녀가 서둘러 일어선다.
“밤일까지 할 만큼 그렇게 일이 많아요?”
“아따 나도 피곤한데, 한 아줌마가 말도 없이 관둬서 일이 밀렸어요.”
그녀의 말에 갑자기 귀가 뜨인다.
“그거 아무나 해두 돼요? 거 하면 한 달에 얼마나 나와요?”
얼결에 내 입에서 튀어나온 말이다. 그녀가 주춤한다. 동네서 누가 한다고 하면 일은 대주겠다고 누누이 말해오던 차다.
“누구 할 사람 있어요?”
그녀가 눈을 맞추며 다가선다.
“그냥, 좀…, 해볼까 싶어서요.”
확신이 안 서는 목소리로 대답은 했지만 그녀의 시선을 똑바로 볼 수가 없다. 대답 대신 그녀가 끄룩 웃는다.
“누리네요? 하이고, 벨 일이네. 누리 엄마 같이 고운 사람이 헐게 따로 있지. 거 힘들어 못해요. 우리네야, 어쩔 수 없어서 하는 거지.”
어색한 웃음을 남기고 건너가 버린다. 얼굴이 화끈 하면서 느닷없이 문화센터 여자들이 떠오른다. 보석상자를 붙이거나 접은 리본을 지지느라 거칠어진 손들. ‘구질구질 해굩’ 구차스런 생각을 떨쳐내려 세차게 머리를 흔들어 보지만 소용이 없다. 문틈으로 악착같이 대가리를 내밀며 빗자루를 맞던 개들과 그악스레 욕설을 퍼부으며 매질을 하는 개아짐의 모습이 따라붙는다. 그런 따위의 감상에 휘둘리지 않으려 이를 악 문다. 거실과 부엌의 세간들이 눈물 속으로 조잡하게 엉겨든다. 가슴뼈가 접힌 듯 숨이 막힌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