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일요일날 살짝 얼은 무, 배추, 대파를 수확하여 후다닥 김장 60포기를
담그고 나니, 한결 마음에 여유가 생깁니다.
오늘은 느긋한 마음으로 달려가 회장님댁을 방문하여 들기름, 농주, 햅쌀을 사고,
대파랑 무우를 또 넉넉하게 얻어왔네요.
* 농가에서의 마지막 추수는 밀려있던 콩타작입니다.
이웃집 바오로 어르신이 오셨는데, 2주전 담가서 자녀들에게 나누어준 김치가
어쩐 일인지 오래 보관이 안되게 되었다며 추가로 김치를 담근답니다.
넉넉한 재료들을 모두 사용해버려서 절임배추랑 양념꺼리들을 새로 사와야 한다네요.
* 메주콩을 삶는 중에 콩깍지를 불태우며 콩 한톨이라도 알뜰하게 챙기는 사모님.
80나이에 도리깨질 힘들게 해서 들기름을 여러병 짜놓았더니, 딸들이 모두 싸가버렸다고...
도둑X이라고... ㅋㅋ
그래도 어르신의 얼굴 표정은 밝기만 합니다.
* 쌀쌀한 햇빛에는 검은콩 서리태가 빛나고...
회장님도 금년에는 마늘을 비닐하우스에 보관했다가 거의 썩혀버려서
종자마늘을 이 집 저 집에서 얻어다가 겨우 심었다네요.
한여름 하우스내 온도는 60-70도를 웃도는데... 마늘을 삶은 수준이겠지요.
그 때문에 또 마나님과 티격태격 싸웠다는...
* 적당히 널어놓은 콩대 옆에 도리깨가 있길래 어릴 적 기억으로 모두 두들겼습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붉은 고추를 수확해서 이제는 고춧대를 모아 불태울 일만 남았네요.
회장님댁 들깨, 고추, 대파는 진작에 거두어 들였고, 도시농부의 마지막 텃밭배추랑 대파만
추위에 떨고 있습니다.
힘이 있는 넘은 그래도 꼿꼿이 서있는데, 힘없는 자는 벌써 파김치가 되어버렸네요.
하지만 한겨울 영하 20도의 추위에서도 뿌리는 살아남아 새 봄에 싹을 틔워올립니다.
이제는 나무도 흙도 조용한 휴식이 필요한 시간입니다.
봄부터 수많은 생명들을 키워내고 꽃피우고 열매를 맺게 했던 이 땅도
한숨 자고 쉬어야 할 때입니다.
마지막 쌈배추를 수확하고 내주부터는 할 일이 없게 되었지만,
그래도 주말이면 나도 모르게 민통선을 향해 달려갈 것 같습니다.
가꿔야할 농작물은 없지만, 인정많은 어르신들의 따스한 손길이 있기 때문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