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학중 고향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1월 26일 개학 등교하여보니 급우들 하이컬러 머리가 제법 조금씩 넘어가고 어른스러워지는 모습도 보였다. 그러나 다들 변화된 나의 생활을 알아차린 급우들은 아무도 없었고 광주시내에도 오직 자취식구인 종곤 밖에는 아는 사람이 없었다.
졸업전 일선현장에서의 교생실습 20일을 받기 위해여 2월 24일 고향 묘량초등학교를 찾아갔다.
김흥수 교감선생님께서 반갑게 맞이 해주셨다. 박송렬 교장선생님의 소개로 인사를 드린 후 오늘은 담임이 못나온 4-1반을 맡아 지도하라고 하는 것이었다.
직원은 교장 교감을 비롯하여 손정모 박춘식 조성만 신극팔 유병관 최상만 최기창 백유인 고혜련 김영윤 등이었다. 제3일 째부터 교감선생님이 담임한 2-1반 30명을 맡아 지도하는데 월암리 김문석어린이가 월등히 학력이 좋았다. 1/3가량이 문자미해득아여서 방과 후 매일 부진아 지도를 열심히 한 결과 학부모로부터 좋은 반응이 나타나 계속담임을 하였으면 한다는 풍문이 들려오기도 했다.
연구수업은 토끼의 꾀에 넘어간 고래와 코끼리의 줄다리기 연속그림을 붙여놓고 글짓기를 시도했는데 소재가 좋아서인지 맞춤법은 서투르지만 줄줄 샘물 터지듯 저마다 글을 쏟아내는 것이었다. 3월 14일 까지 20일 실습을 마치고 송별연을 받은 후 떠나려니 벌써 마음 한구석이 허전하고 선생님들과 악수할 때마다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것이었다.
3월 20일 드디어 우렁찬 박수 속에 기다리던 광주사범학교 졸업식을 강당에서 하게 되었다. 광주시장 김일도 문교사회국장 도장학관박석주 전사친회장 기성회장 동창회장등과 학부모님을 모신가운데 개식사로 시작하여 상장수여 학교장회고사 축사가 있은 후 폐회로 끝나니 이로써 3년간의 시련 끝에 국민학교정교사 영광을 안기게 되었다. 졸업장과 횃불34호 앨범을 받아 들고 집에 오니 감개가 무량하여 밤이 깊도록 서투른하모니카를 불러댔다.
①영광초등학교, 초임발령
◊ 4월 7일 발령 신규교사들이 광주중앙교에 모여 사령장 전달식에 참석하였다.
나는 영광군으로 배치받은 사령장을 받아 영광교육구청 김장학사에게 넘겨주고 통지서만 간수하였다. 그리고 10일 10시까지 교육구청에서 다시 모이기로 하고 헤어졌다.
집에와 건너방 정애 그리고 큰방 상준네 주인식구들께 마지막 작별인사를 나누고 삼광여객 버스에 몸을 실어 삼학교에 내리니 비가 억수같이 내리고 있었다. 종남 형님집에서 우산을 빌려 왕촌 집에서 부모님을 뵈니 다들 졸업을 축하하며 발령배치를 기뻐하는 것이었다.
4월 10일 영광교육구청으로 가 보았다. 이윽고 식이 시작되었는데 정병택 교육감님의 훈시가 있은 후 저마다 사령장을 받았는데 희비쌍곡선이 연출되는 순간이었다. 29명의 발령사항은 다음과 같았다.
영광 - 김용수 김일균 군서-박은식 묘량서-송일근 박봉주 영광서- 고영희 정용우 정명초 홍농-임동일 송흥-전준후 박선근 이중길 대창-김갑전 조원호 염산북-조정룡 백수-이찬문 염산-양동원 신안자 김창규 백수서-정영진 위도-주영후 백철수 송태정 안마-김광일 유재식 백수남- 전병옥 이유일 안마분교-유태오 삼덕-김부덕
사령장을 들고 영광교를 찾아 갔다. 교장실에 들리니 손대벽이라는 명패가 테이블 위에 올려 있었다. 이윽고 교장선생님을 뵈니 왜소하신 편이나 얼굴 모습에서 위엄이 흘러나왔다. 인사를 드리니 책망부터 하시는 것이었다. “일선학교에서 어린이들을 가르칠 선생님들의 행동이 그게 뭐냐?”고 교육청에서 보았던 못마땅한 광경을 쏟아내는 것이었다. 발령식이 끝나자 튀어나오는 소리를 바로 곁에서 들으신 것이었다. “위도로 갈놈들 모여라, ○○에 난놈들 한턱들 내라, ○○는 좋겠다”...... 텅 텅 불만의 구두소리까지 …….
알고보니 손교장께서는 영광교육을 대표한 교육회장으로서 발령식에 참가하셨던 것이다. 나는 한마디도 못하고 그저 고개만 숙이고 있었다. 신규교사를 처음부터 잡으려는 심산이셨는지……. 같이 발령이 난 일균이는 오지도 안 했는데 나 혼자 당하려니 억울하기만 하였다.(다음 10회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