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못난 외모를 가지고 있는 게 콤플렉스였던 시절이 있었다. 현재는 열등감의 굴레에서 거의 벗어났다. 체념과 달관의 중간쯤에서 영혼의 닻을 내린 덕택이다. 그냥 팔자이려니 하고 살고 있다. 대신 후천적 노력으로 잘생길 수 있는 부분에서 부단한 개량을 시도하는 중이다. 마음이 잘생긴 남자가 되기로 작정한 결과다. 잘생긴 용모는 고개만 빳빳이 들고 거리만 돌아다녀도 과시할 수 있으나 잘생긴 마음은 번거로운 묘사과정을 거쳐야 외부에 노출되기 때문이다.
2-1. 을지로로 향하는 길이었다. 2호선으로 갈아타고자 시청에서 지하철을 내렸다. 자동문이 열리고 열차 밖으로 나오자마자 장애인이 탑승한 전동휠체어와 맞닥뜨렸다. 조심스럽게 휠체어를 피해 내 갈 길을 가려는데 휠체어가 좀체 지하철로 오르지 못하는 광경이 눈에 띄었다. 보통의 휠체어였다면 밀어주고 왔을 테지만, 전동휠체어였으므로 당연히 쉽사리 지하철로 올라가리라 예상했었다.
모른 체 하고 가기가 거시기해서 뒤에서 휠체어를 밀었다. 어라? 왜 이렇게 무겁지? 다리가 불편해 휠체어를 타고 다니던 여직원과 팀을 이뤄 일한 적이 있었다. 탑승자가 손으로 밀어서 움직이는 휠체어였다. 그때 휠체어를 밀어준 경험이 잦았기에 별로 힘들다고 여기지는 않았는데 전동휠체어의 무게는 그보다 훨씬 육중하게 느껴졌다.
어디를 밀어야할지 잘 판단이 서지를 않았다. 손잡이 부분을 밀려고 했는데 거기에는 각종 버튼이 설치되어 있었다. 힘으로 무지막지하게 잘못 밀었다가는 운전장치에 고장을 낼 것 같았다. 조심스럽게 밀어야한다고 계산을 하니까 전동휠체어 미는 작업이 예상과는 달리 간단하지는 않았다. 마침 전동차 안쪽에는 건장한 남자 고등학생 세 명이 있었다. 그들이 달려와 거든 덕분에 전동차 문 앞에서 낑낑대던 전동휠체어는 곧 차안으로 옮겨졌다.
장애우를 도와준 다음 환승통로를 따라 걷는데 부아가 치밀었다. 도대체 어떻게 공사를 했기에, 그리고 어떤 규정에 입각해 플랫폼과 전동차와의 간격을 설계했기에 전동휠체어가 편리한 이기가 아닌 애물단지가 되어야 하는지. 대통령이든 서울시장이든 이동에 제약이 따르는 장애인과 노약자들을 돌보도록 관료들을 적시에 유효적절히 조져댔으면 이런 사태가 벌어졌을까? 잘생긴 마음은 약자에게는 부드럽지만 강자에게는 모질어야 한다.
2-2. 마찬가지로 지하철에서 발생한 사건이다. 사건현장만 다를 뿐이다. 이번에는 신길역이다. 5호선에서 내린 나는 기다란 지하환승로를 따라 걸어서 1호선에 탑승하는 출구로 나왔다. 지상공간이 시작되는 지점이다. 밤 11시 40분이 넘은 시간이었다. 교통체계가 희한하게 짜이는 바람에 가장 이용객이 많은 1호선이 제일 먼저 막차가 끊어진다. 발걸음을 서둘러야 했다.
출구를 빠져나와 10미터 정도 가자니 시각장애인 아주머니가 맹인들이 사용하는 하얀 지팡이로 바닥을 거칠게 쓸고 있었다. 5호선으로 연결되는 또 다른 계단과 맞물려 플랫폼의 폭이 지협처럼 급격히 좁아지는 장소이기에 그녀가 지팡이를 휘두르는 곳을 어쩔 수 없이 통과해야만 했다. 지팡이와의 접촉을 피하기 위해 아주머니가 지팡이를 휘두르는 속도에 맞춰 마치 줄넘기를 하듯 공중으로 깡충 뛰었다.
10년 전이면 분명 걸리지 않았을 게다. 1년에 서전트 점프가 1센티미터씩 낮아지는 느낌이다. 170이 겨우 넘는 신장에도 불구하고 내가 한때는 농구골대의 림을 잡았다. 믿거나 말거나. 주머니의 동전개수를 확인하며 그녀에게 얼마의 돈을 쥐어주려 했는데 의외의 부탁이 아주머니 입에서 떨어졌다. 5호선으로 통하는 계단까지만 인도해달라는.
그녀가 지팡이를 휘둘렀던 이유는 시각장애인들을 위해 설치된 울퉁불퉁한 요철계단으로 자신을 안내해줄 자발적 도우미를 찾기 위함이었다. 앞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누군가를 애타게 기다리며 지팡이를 휘둘러야 했을 그녀의 답답한 심정을 헤아리니 속이 아렸다.
아주머니는 지금 주변에 사람이 없느냐고 물어왔다. 시각장애인이 장시간 동안 대책 없이 지팡이를 휘저어야 할 만큼 인적이 뜸한 건 아니었다. 대부분의 통행자들이 그녀가 혹 구걸이라도 할까봐 피해갔으리라. 그녀에게 거짓말을 했다. 험한 세상인심을 적나라하게 발설하기가 두려워서였다. “막차 다닐 때라 전혀 없어요.!”
여의도역 3번 출구로 내려야 한단다. 생각 같아서는 그곳까지 데려다주고 싶었으나 나 역시 막차를 걱정해야 하는 옹색한 처지였다. 사실을 까발리면 나는 아직 그런 수준까지는 마음이 잘생기지 못했다. 내 심정을 눈치챘는지 아주머니는 고맙다는 말과 함께 총각도 얼른 집에 가라고 이야기했다. 일반인에게는 결핍된 섬세한 육감이 작용했던 걸까? 내가 미혼임을 어떻게 알아냈을까?
또 열을 받았다. 그 많던 공익은 어디로 갔을까? 맹인이 땅바닥에 주저앉아 지팡이를 휘두르면 한번쯤 달려와 사정을 확인해야 하는 게 정상 아니겠는가? 아니, 비록 시각장애인일망정 최소한 자기가 목적하는 행선지만큼은 남의 도움 빌리지 않고 갈 수 있는 환경과 시스템이 구비되어야 하는 게 아니겠는가? 미국과 자유무역협정 체결해도 나라 망하지 않는다는 자신감을 대통령이 공공연히 부추기는 국가라면.
3. 요 며칠의 일들을 종합하면 감히 단언할 수 있다. 나는 마음이 잘생긴 남자라고. 나의 마음을 얼굴에 대입하면 아마 장동건이나 원빈, 차인표나 정우성 비슷할 것이다. 아니면 말고지 뭐!
한국사회는 분야별로 잘생긴 남자들이 똬리를 틀고 있다. 혀가 잘생긴 노무현, 지갑이 잘생긴 이건희, 벼슬경력이 잘생긴 고건. 그럼에도 대한민국의 간판스타만은 마음이 잘생긴 남자가 꼭 되었으면 좋겠다. 마음이 미녀인 여자도 물론 대환영이다. 정치란 게 별건가. 휠체어 탄 사람 휠체어 밀어주고, 앞 못 보는 사람 차 타는 데까지 바래다주는 거지. 나는 2007년 대통령 선거에서 마음이 잘생긴 남자나 여자를 지지하기로 결심을 굳혔다. 최소한 그들은 턱이 높고 요철계단이 끊어진 삭막한 지하철역을 나 몰라라 방치하지는 않을 테니까.
윗 글은 미디어 몹에서 활동중인 공희준 씨라는 분의 글을 퍼서 올린 글입니다.
제 갠적으로는 가장 친한 친구고 특히 글에서 처럼 마음이 아주 잘 생긴 친군데 요즘 좀 삐쳤답니다. ㅋㅋ
첫댓글 미남종류가 많군요~~~혀가 잘생긴.....지갑이 잘생긴......ㅎㅎㅎ하지만.....마음이 미남인 님께서....최고 미남이십니다~~~!!!!!!!
제 주변엔 유난히 마음이 미남,미녀분들이 많은 것 왜일까요 풍무소리님은 마음도 외양도 미녀시니 복이 많으시네요.
이스크라님이 저를 유심히 보시더니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