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유대인들이 우는 것을 보시고 심령에 비통히 여기시고 불쌍히 여기사(요11:30~34)
30절. 예슈아는 아직 마을로 들어오지 아니하시고 마르다가 맞이했던 곳에 그대로 계시더라.
주님은 아직 마을로 들어오시지 아니하시고 마르다가 맞이했던 그곳에서 마리아를 기다리고 계셨다. 주님은 우리를 찾아 오셨지만 강권적으로 우리가 그 분을 믿고 영접 하도록 강요 하시지는 않으신다. 주님은 우리에게 그 분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보여주시고 알게 하시고 우리가 마음 문을 열고 그 분을 맞아드리기를 기다리신다.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계3:9~10)고 하셨다.
31절. 마리아와 함께 집에 있어 위로하던 유대인들은 그가 급히 일어나 나가는 것을 보고 곡하러 무덤에 가는 줄로 생각하고 따라가더니
마리아와 함께 집에 있어 위로하던 유대인들은 그가 급히 일어나 나가는 것을 보았다. 그러나 그들은 그가 예슈아 주님의 부르심을 듣고 나간 것을 알지 못하고 그가 곡하러 무덤에 가는 줄로 생각하고 따라 갔다.
32절. 마리아가 예슈아 계신 곳에 가서 뵈옵고 그 발 앞에 엎드리어 이르되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하더라
마리아는 예슈아 주님이 계신 마을 입구까지 가서 예슈아 주님을 만났다. 그리고 그 발 앞에 엎드렸다. 그가 주님께서 자기들을 찾아오신 것을 감사하여 경배하기 위함 이었는지 아니면 오라비를 잃어서 슬픔으로 마음이 괴로워서 그랬는지 모르나 둘 중의 하나였을 것이다. 그리고 말씀드렸다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비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마리아도 그의 언니 마르다 처럼 똑 같은 생각으로 주님이 더디 오신 것에 대하여 아쉬움을 표하면서 그는 슬픔을 참지 못하고 울었다.
33절. 예슈아 주께서 그가 우는 것과 또 함께 온 유대인들이 우는 것을 보시고 심령에 비통히 여기시고 불쌍히 여기사
예슈아 주님께서 그가 우는 것과 또 함께 온 유대인들이 우는 것을 보시고 심령으로 비통히 여기시고 불쌍히 여기셨다. 흠정역에는“영으로 신음하시며 괴로워하시고”라고 번역했다. 주님은 그들의 슬픔과 고통을 충분히 이해하시고 그 영으로 신음하시며 괴로워하신 것이다. 그분은 사람들이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한평생 매여 종 노릇 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히2:15)세상에 오신 분이시다. 그러므로 그들의 슬픔과 고통을 모르실리 없으신 분이시다.
“비통히 여기다”는 헬라어로“엠브리마오마이embrlmaomai”인데“안에”을 뜻 하는“엔en”에서 유래한 것으로 마음속으로 화가 나서 씩씩거리다, 분개하다, 통분이 여기다, 책망하다 을 말한다,
34절. 이르시되 그를 어디 두었느냐 이르되 주여 와서 보옵소서 하니
주님은 너희가 그를 어디에 두었느냐고 물으셨다. 물론 주님께서 그가 어디에 있는지 몰라서 물으신 것은 아니다. 그것은 그들의 믿음을 일깨우고 주님이 하시는 것을 보여 주시기 위하여 물으신 것이다. 주님은 38년 된 병자에게 네가 낫고자 하느냐고 물으셨고(요5:6), 세배대의 어머니가 주님께 나아와 절하며 무엇을 구하니 이르시되 무엇을 원하느냐 하셨고(마20:21), 맹인이 겉옷을 내버리고 뛰어 일어나 예슈아 주께 나오거늘 이르시되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막10:50~51)물으셨다,
이것은 주님이 그들의 생각을 몰라서 묻는 것이 아니다 정말로 그들이 주님께서 그 일들(문제)을 해결 하실 수 있는 분으로 믿고 있다는 것을 증거하고 드러내기 위한 것이다. 그들이 주여 와서 보옵소서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