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흥수 칼럼 - 현각스님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 |
현각스님의 “하바드에서 화계사까지”라는 책을 보면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나온다. 그분이 어렸을 때 불구자로 태어나는 아기들에 대해서 학교 수녀선생님께 어린 아기들을 사랑하신다는 하나님이 어찌 그러한 일이 있도록 하시는가라고 질문을 하게 된다. 그런데 수녀님은 대답대신 현각이 자신을 놀린다고 생각해서 꾸중을 하신다. 그후에도 그는 이 일에 대해서 풀지 못한 나머지 방황하다가 한국 화계사의 숭산스님을 만나서 불교에 귀의하게 되었다.
우리는 이해할 수 없는 불행한 일을 겪으면서 하나님을 원망하기도 한다. 하나님이 어디 계시는가? 하나님이 계시다면 이러한 일이 있을 수 있는가? 그러나 우리가 겪는 불행한 일이 아무리 큰 불행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과연 하나님의 불행보다 더 큰 불행일 수 있을까? 무슨 이야기인가? 하나님은 죄가 없는 육체로만 인간의 죄를 대신할 수 있기 때문에 인간의 죄를 씻기 위해서 죄 없는 당신의 아들을 이 땅에 보내셨다. 그리고 가장 비참한 사형수가 되어서 만신창이가 되어 몸부림치며 희생의 제물이 되었다. 성경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달린 여섯 시간 동안 하늘과 땅이 어두워졌다고 한다. 하나님은 차마 그 모습을 바라볼 수 없으셨던 것이다. 하늘도 울고 땅도 울었다. 우리들의 죄를 씻고 우리들에게 새로운 세계, 의와 사랑과 평화의 천국을 열어주기 위해서 이 고통을 당하셨던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이성에 의해서 해결할 수 없는 일들을 겪을 때 하나님을 부정하게 된다. 하나님이 계시다면 이러한 일이 있을 수 있을 것인가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어디 하늘과 땅들의 일들 가운데 인간 이성이 완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 얼마나 되는가?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 더 많지 않은가? 수박보다도 작은 머리를 가진 주제에 그 머리로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교만일 것이다. 그 머리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을 겪을 때 하나님을 부인하기보다 오히려 하나님을 더 찾아야 하지 않을까? 사람이 되신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가장 비참하게 죽어야 했다는 사실보다 더 모순된 일이 있을까? 인간 이성으로 이해할 수 없는 비참한 일을 겪을 때 우리는 첫째, 하나님은 그러한 우리의 고통의 문제에 종지부를 찍기 위해서 당신 스스로 가장 큰 고통을 당하셨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왕이 될 것을 마다하고 스님이 되어서 불교를 시작한 석가모니의 이야기는 아름다운 이야기이다. 그런데 만왕의 왕이신 창조주 하나님이 인간의 고통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죄악 세상에 내려오시고 가장 처참한 희생을 당하셨다는 이야기는 모든 이야기에 마침표를 찍는 이야기이다. 불교 이야기보다 몇 천 배 아름다운 이야기이다. 이 아름다운 고통의 이야기를 누가 가장 잘 깨달을 수 있을까? 바로 고통을 당하는 사람이다. 충남 당진의 어느 성도가 외아들을 금이야 옥이야 키웠다. 그런데 그 외아들이 군대에 가서 죽었다. 그 성도는 외아들이 죽은 고통을 겪으면서 하나님의 사랑을 뼈 속 깊이 깨닫고 더욱 감사하는 사람이 되었다고 한다. 하나님의 십자가 고난은 인간의 모든 고통을 수렴한다. 하나님의 고통은 인간의 모든 고통을 녹이는 용광로이다. 나를 위하여 이 우주에서 있을 수 있는 가장 큰 고난을 겪으신 하나님을 생각할 때 우리는 그 거룩한 사랑 앞에 우리의 고통이 모두 눈 녹듯이 사라짐을 체험할 수 있어야 한다.
둘째, 이 세상의 고통이란 바로 그것을 통해서 천국을 바라보는 망원경이라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고통이 없다면 인간들은 이 세상을 천국으로 생각할 것이다. 아마 세상에 아무런 고통이 없다면 인간들은 이 세상에서 천년만년 살고자 할 것이다. 그러나 이 세상은 본질적으로 죄와 욕심으로 타락한 세상이다. 우리가 고통을 겪을 때 우리는 비로소 천국을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죄를 많이 짓게 되기보다 순진무구한 어린이로 세상을 떠나서 하나님 가까이 머무는 것이 더 행복한 일이 아니겠는가? 무엇이 더 복된 일인지 아무도 모르는 것이다. 죽은 자녀를 차마 잊지 못하여 슬프게 지내던 사람들 가운데 그 죽은 자녀가 하늘나라에 올라가는 모습이라든가, 천사들과 함께 하늘나라의 정원에 있는 모습 등을 꿈이나 환상 가운데 보고 기독교 신앙을 갖게 되었다는 사람들을 여러 사람 만나 보았다.
셋째, 이 세상의 모든 일이 현실이 아니라 꿈이요 그림자라는 것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이 세상의 행복도 고통도 영원히 계속되는 것은 없고, 단지 순식간의 꿈일 뿐이다. 이 땅의 모든 일은 순간적이요 연극과 같은 것이다. 누가 이 땅의 지위나 부를 저 세상으로 옮길 수 있겠는가? 이 세상의 행복도 불행도 덧없는 것이다. 유일한 현실, 실상이 있다면 그것은 천국에서의 영생과 영광이다. 성경에 보면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많이 있다. 구약시대 정복전쟁을 할 때 하나님은 이스라엘 지도자들에게 피정복자들의 씨를 말려야 할 것을 명령하시기도 한다. 그러나 이 땅의 문제는 모두 연극이요 상징이라는 것을 알 때 이것을 이해하게 된다. 그러므로 문제는 이 땅의 일을 초월할 수 있는 지혜와 총명을 가져야 한다. 이것이 내가 현각스님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이다.
문흥수 변호사는...
[문 변호사와 함께 하는 성경공부 및 예배 안내] |
<ⓒ '고시정보'의 리더 1등신문 법률저널(www.lec.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2001 LEC.co.kr Allright Reserved |
첫댓글 그런데 이 사람들은 왜 다른 종교, 특히 불교를 까내리고 공격하는 방법으로 자기들이 믿는 개신교가 우월하다고 할까요? 참 분별심이 꽉찬 덜떨어지 인간들이구나...라는 증거가 되네요. 걍 개신교는 그 자체로 좋은 점이 있다고 말하면 그뿐인것을..ㅉ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