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9:32
제가 중학교에 다닐 때 까지 해도 새 학기가 되면 학교에서 가정방문을
하였습니다. 물론 가정 환경 조사는 진즉에 했고요. 나라에서 해준 것도
없으면서 조사는 참 많이도 했지요. 70년대는 싸우스코리아나 널스코리아가
개찐 도찐이었을 것입니다. 저희 집은 어머니께서 삯바느질을 하셨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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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봉틀 돌아가는 소리가 끊기지를 않았는데 비단 작업 중일 때가 아니더라도
재단하고 남은 천 쪼가리며, 실 핀, 모나미 풀 같은 것으로 어지럽혀져 있어서
웬만하면 문 밖에서 고개만 내밀어 볼일을 보고 방안으로는 들어가고 싶어
하지를 않았던 것 같습니다. 어머니는 심부름시켜먹기 대장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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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방에서 작업 중일 때는 이것저것 달라고 하셨고, 작업이 끝나면 꼭 청소를
시켰습니다. 저는 우리 아이들 키울 때 아이들에게 청소 같은 것을 단 한 번도
시키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지금도 어머니는 간장 게장을 무치려면 도마, 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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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 고춧가루 등등 누구를 가리지 않고 심부름을 시킵니다.
팔순이 지난 노인네가 함께 사는 막내의 수입지출 뿐 아니라, 육남매의
형편까지 재다 알고 있고 참견을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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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께서 그러시는데 당신 친정엄마가 별명을 형사라고 지어주었다고
하더이다. 과연 적절합니다. 형사 딸을 난 엄마니 어련 하시겠어요?
제가 봐도 울 어머니는 촉이 20-30대 보다 더 날카롭고 빠릅니다.
아버지께서 많이 호전되셔서 중환자실에서 일반 병실로 넘어와서 새로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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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신 처를 결정하는데 돈 때문에 육남매 간에 또 설전을 벌어졌습니다.
명옥이 누나는 돈이 핵심이니 각자 10만원씩을 매월 입금 시키면 자기가 나머지
부담을 하겠다는데 어머니가 심통이 나셨나봅니다. 당신이 아버지에게 밀린다는
생각이 드셨나 봅니다. 그래서 늙으면 애가 된다는 말을 하는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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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어머니께서 지금의 나보다 훨씬 젊은 나이에(40세쯤) 삯바느질로 전권을
뒤흔들었습니다. 새 학기를 시작하면 담임선생님이 가정 방문을 오셨습니다.
저는 부랴부랴 안감들을 걷어 바느질 상자에 넣고 정리 정돈을 했고, 울 어머니는
어떤 선생님도 다 잘 처리해서 보내셨던 것 같습니다. 혹시 촌지를 준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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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0년대만 하더라도 한복을 입는 사람들이 꽤있었는지 읍내 장터 근방에 위치한
금남상회로 제가 이틀에 한번 delivery를 하였는데 치마를 만드는 공임이 150원
저고리가 300원 이었습니다. 울 어머니는 제 육성회비 560원을 만들기 위해
그렇게 매일 날밤을 샜다는 것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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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을 읽다가 도르가 본문에서 어머니 생각이 많이 났습니다. 도르가는 빌립의
복음 전파로 세워진 욥바 교회의 성도인데 그녀의 아람어 이름은 다비다 입니다.
그녀는 재봉으로 손수 옷을 만들어 과부와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주는 등 사도들의
복음 전파 사역을 돕는 일과 가난한 자들을 구제하는 일에 전력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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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르가가 하나님께 헌신하였던 방법은 값진 물건이나 권력을 통해서가 아닌
재봉 술이었기에 여전한 방식의 일상은 더욱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그 속에서 살던 때가 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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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는 사도행전 9:31절을 끝으로 사울의 초기 전도 활동에 대한 이야기를
접어두고 사마리아 방문 이후(8:25)예루살렘으로 돌아간 베드로에게 눈길을
돌립니다. 베드로는 여러 지역을 두루 다니다가 룻다라는 마을에 도착했습니다.
그리고 룻다 마을의 성도들을 심방하여 돌보던 중에 중풍으로 8년을 누워 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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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아를 만납니다. 복음이 예루살렘에만 머물지 않고 점점 그 지경이 넓어지고
찾아가 살피니 실제적인 필요를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베드로가 애니아를 고치는
장면은 예수가 중풍병자를 고치시던 일을 연상케 합니다. 베드로 자신도 이 치유가
자신의 능력이 아니라 예수그리스도께서 하시는 일임을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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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회복된 애니아를 본 사람들은 다 베드로가 아니라 주께로 돌아왔습니다.
내 삶과 사역을 통해 사람들의 시선이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집중되고 칭찬을
하는지 돌아볼 일입니다. 누가는 이제 독자들의 시선을 욥바로 돌립니다.
해변 도시 욥바에 다비다라는 여 제자가 살고 있었는데 아람어 다비다를 번역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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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르가입니다. 그녀는 평판이 좋은 여 제자이었는데 그녀가 병들어 죽었습니다(37).
제자들이 주검을 씻어 다락에 눕혀놓고 두 사람을 욥바로 보내어 지체 말고 오라고
간청하니(38)베드로가 룻다에서 한걸음에 달려왔습니다. 베드로는 도르가의 시체가
있는 다락방으로 올라갔을 것입니다. 다락방에는 도르가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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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부들이 있었고 그들은 도르가 생전에 자기들에게 만들어준 속옷과 겉옷을
베드로에게 보여주었고 베드로는 이와 비슷한 상황에서 예수가 하셨던 것을 따라
합니다. 그는 먼저 애도하는 자들을 다 방에서 내보내고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죽은 여인의 이름을 부르며 ‘다비다야 일어나라’고 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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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을 아람어로 한다면 ‘달리다굼‘이었을 것입니다. 이렇게 욥바에서도 죽었던
도르가를 살리는 기적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주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누가는
도르가를 살린 이야기를 ‘베드로가 욥바에 여러 날 있어 시몬이라 하는 무두장이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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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머무니라(43).’는 말로 마무리 합니다. 확장되는 사역, 재현되는 사역,
죽은 자를 향한 베드로의 사역, 다바다를 살리는 베드로의 기적,
내가 가진 재능으로 누구를, 어떻게? 도울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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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 된 중풍병자를 낫게 하신 베드로의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우리 가족들이 절망과 좌절을 딛고 달리다굼 하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옵소서.
이미 사랑이 다 메말라 죽어버린 우리 부부에게 소망을 보여주옵소서.
어머니의 말년이 예수님으로 인하여 즐겁게 하시고 건강을 지켜주옵소서.
2018.1.22.mon.악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