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드베르그 변주곡
아청 박혜정
“선배님, 임윤찬이 밴쿠버에 온대요.” “정말?” 한국에서도 항상 완전 매진이라 연주회 표를 구하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이다.’ 그런데 비행기를 타지 않고도 임윤찬 연주를 볼 수 있다니. 그 후배는 임윤찬의 피아노 음악으로 인해 많은 위로를 받아 힘든 삶을 견딜 수 있다고 했다. 그래서 북미주에서 하는 임윤찬 연주는 찾아다닌다. 나도 음악을 연주하지만 음악이 그렇게 삶에 위안과 평안을 준다고 생각하니 연주를 하는 입장에서 책임감까지도 느끼게 된다.
내 생각보다 티켓 가격이 비싸지 않았다. 그래서 일단 좋은 좌석을 사고 무슨 곡을 연주하는지 찾아보았다. 달랑 1곡. 무슨 곡이지?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이다. 오케스트라가 없이 혼자 피아노를 연주한다. ‘아, 그래서 티켓이 싸고 쉽게 살 수가 있었구나.’ 하지만 이 곡 한 곡을 연주하는 데 1시간이 더 걸리는 곡이다.
처음 이 곡을 피부로 접하게 된 것은 2008년 2월 UBC 근처에서 렉쳐(Lecture) 연주회에서였다. 생소한 제목의 렉쳐 연주회. 이날은 눈이 와서 가기를 망설였지만, 연주회 제목에 대한 호기심으로 가게 되었다. 피아니스트 강수정 씨가 J.S. Bach의 아리아와 30개의 변주곡 일명 “골드 베르크 변주곡”을 좀 더 구체적으로 악보를 분석해 가며, 짧은 페세지(passage)를 연주하면서 제목답게 곡에 대한 설명을 했던 연주회였다.
이 곡은 바흐가 살던 드레스덴 주재 러시아 대사였던 카이저링크(Keyserlingk) 대사가 불면증에 시달려서 바흐의 제자였던 골드베르그를 고용해서 그가 잠들 때까지 밤마다 옆 방에서 연주를 하게 했다. 하지만 그의 불면증은 더 심해져서 평소 그와 잘 알고 지내던 바흐에게 밤에 들을 수 있는 음악을 작곡해 달라고 부탁했다. 바흐는 그의 부탁을 들어주었고 카이저링크 백작은 이 곡을 잠이 오지 않을 때 골드베르그에게 연주를 부탁했다. 바흐는 이 곡을 “아리아와 변주”라고 제목을 붙였지만, 이 변주곡을 골드베르크가 연주한다는 전제 아래 “골드베르크 변주곡”이라는 부제로 불리었는데 지금은 원제보다 부제로 더 잘 알려져 있다.
바흐의 곡을 접하면 접할수록 바흐는 참 체계적이고 수학적인 사람 같다. 지금의 피아노 조율 방법도 바흐의 평균율에서 시작되었다. 평균율이라는 곡은 각 조의 도, 도#, 레, 레# 이런 방식으로 반음씩 올라가며 장조 12개, 단조 12개의 모든 조성으로 작곡이 되어있다. 또한 골드베르크라는 곡도 어떤 법칙을 가지고 만들어졌다. 첫 번째 캐논에서 같은 음으로 시작하여 다음 캐논에서는 음정을 1도, 그다음에는 2도 등으로 1도씩 벌어지며 순서대로 전개 된다.
렉쳐 연주회에 갈 때는 ‘그 음악을 들으면 자장가처럼 들릴까?’ 내심 기대하며 ‘가서 잠이 오면 어떡하지?’ 하는 마음으로 갔지만 강의를 듣다 보니 그렇지는 않았다. 평상시에도 잠을 자기 위해 들어도 그렇게 자장가 같지는 않았다. 굳이 잠이 올 것 같은 곡은 첫 번째 아리아와 25번째의 잔잔한 변주곡뿐인 것 같다. 하지만 이 곡이 생소한 곡 같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왜냐하면 영화 “양들의 침묵”과 “잉글리시 페이션트”에서 첫 곡의 아리아가 흘러나오기 때문이다.
처음 클래식 음악을 감상했을 때는, 전문적으로 음악을 감상하는 사람들은 같은 곡을 왜 여러 개의 레코드나 CD로 가지고있는지 궁금했다. ‘차라리 없는 곡을 더 사지?’ 그런데 듣다 보니 같은 곡이라도 연주자마다 곡 해석이 다르고 하물며 같은 교향악단이라도 지휘자에 따라 음악이 달라진다. 그래서 난 누가 연주하는 무슨 곡이 좋더라. 이렇게 이야기하게 된다. 요즘은 유튜브가 잘 되어있어서 바로바로 여러 개를 비교해서 들어 볼 수 있다. 좀 더 쉽게 이야기하면 대중음악도 가수에 따라 느낌이 다른 것과 같다고 보면 된다.
임윤찬은 이 곡을 어떻게 연주할지, 다른 연주가들과는 어떻게 다를지, 기대가 크다. 그래서 좀 더 세심하게 살펴보려고 악보를 구해 놓았고, 곡도 분석해 본 후, 직접 가서 감상해 보려 한다. 이번 연주는오케스트라 반주 없이 하는 연주라 그의 페달을 밟는 발도 세심하게 살펴보면 좀 더 곡을 표현하는 방법을 아는데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곡이 셈여림이 과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그렇게 달콤하거나 반복되는 멜로디도 별로 없어서 쉽게 와 닿는 곡은 아니다. 하지만 바흐가 만든 목적대로 잠이 잘 와서 졸다 올지 아니면 그의 음악을 듣고 그의 연주를 보면 집중력이 생겨 다른 연주자 특히 이 곡의 연주자로 유명한 캐나다 피아니스트 글렌 굴드와는 어떻게 다르게 표현할지도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