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종우 야고보 신부님
아시시의성 프란치스코 기념일
바룩1,15-22
루카 10,13-16
오늘은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 기념일입니다.
아시시라는 지방은 로마에서 기차로 약 세 시간 정도 떨어져 있는 움브리아 지방의 도시입니다.
저는 이태리에서 유학 생활을 하는 동안, 이곳 근처에서 어학을 공부했고
신자분들이 이태리에 오시면 한번쯤 가봐야 하는 곳이라 셀 수 없이 많이 아시시에 가야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아시시에 수차례 갈 때마다,
고요하고 따뜻한 느낌 속에서 새롭게 유학 생활의 힘을 얻었던 기억이 납니다.
우리가 주변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세례명 중 하나인 프란치스코는
부유한 포목상의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젊은 시절, 집안의 돈을 함부로 쓰고 여자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는 등
삶이 매우 방탕했다고 전해집니다.
그렇게 함부로 시간을 보내다가 기사가 되어 명예를 얻겠다는 꿈을 안고 전투에 나가지만
커다란 부상과 함께 투옥당하고 맙니다.
이후 석방되어 고향으로 돌아온 그는 중병을 앓게 되고 그리스도의 환시를 보게 됩니다.
이 때 그가 들은 말씀은 “네 교회를 고쳐라”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이후 병에서 회복된 그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됩니다.
아버지 가게의 물건을 모두 내다 팔고 성당을 수리하고자 하였으며
모든 인간 관계와 재산을 청산하고 통회의 생활을 시작합니다.
그의 청빈한 생활이 계속되자 이에 감명을 받은 사람들이 그의 주변에 모여들었고
결국 극도의 가난을 살고자 하는 그들의 공동체가
교황님으로부터 수도회로 인정받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작은 형제회, 프란치스코회의 시작입니다.
그들은 이탈리아 내외를 두루 다니면서 통회와 보속의 생활을
단순한 말로 가르쳤습니다.
재산과 인간의 소유물을 거부하였고 교계 진출 또한 사양하였습니다.
프란치스코 성인 역시, 사제품을 맡지 않고 세상을 떠날 때 까지
부제로만 남아 있었습니다.
그는 선교에 대한 열망이 컸으며 무슬림 지역에 선교를 떠날 정도로
하느님께 대한 충성심이 강했습니다.
그러한 와중에 라베르나 산에서 기도를 하던 중,
그리스도의 다섯 상처를 자신의 몸에 입게 되었는데,
이것이 바로 교회가 최초로 인정한 오상입니다.
이 그리스도의 오상은 일생동안 계속되면서 프란치스코 성인에게
육체적인 고통을 안겨 주었습니다.
그는 오상으로 인한 고통 중에도 여러 지방을 다니며 계속 복음을 전하다가
기력이 쇠하여 지고 눈마저 실명되어 갑니다.
자신의 죽음이 다가온 것을 알게 되자 그는 미리 유서를 작성한 뒤
알몸으로 잿더미에 자신을 눕혀달라고 말하고 그대로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현재 그의 유해는 프란치스코 대성전의 지하 묘지에 안치되어 있습니다.
비록 간단하게 말씀드렸지만
이 아시시의 가난뱅이 프란치스코 만큼 교회 안에 커다란 영향을 끼친 사람은 없습니다.
프란치스코 성인의 시대는 교황권이 절대적인 경지에 오른 시기였고
따라서 교회의 입장에서는 황금기였습니다.
국가의 왕권이 교황권에 예속되어 있었을 정도로 교회의 위상은 매우 높았습니다.
그러나 프란치스코는 이것이 잘못된 것임을 끊임없이 일깨우고자 노력했습니다.
그가 보기에 복음서를 통해서 발견한 그리스도는
그와 정반대되는 모습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에게 있어서 그리스도는 가난하시고 겸손하시어 십자가에 못박히신 분,
바로 그것을 통해 인류를 구원하신 분이었습니다.
따라서 프란치스코와 그의 형제들은,
“우리가 따라야 할 그리스도는 영광의 그리스도가 아니라
가난하고 겸손하게 살아가신 그리스도이며,
우리의 구원을 위해 십자가에 벌거벗은 채로 못박히셨던 그 그리스도입니다”
라고 가르쳤습니다.
이러한 “겸손한 그리스도관”은 교회와 모든 신앙인들에게 거듭 회개를 요청하게 됩니다.
당시 부패했던 교회의 분위기 속에서 프란치스코 성인의 정신은
교회를 다시금 일깨워주는 촉진제 역할을 한 것입니다.
이러한 프란치스코 성인의 삶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줍니다.
우리 역시 십자가의 예수님 보다는 부활하신 예수님의 영광만을 기대하는 경우가 많으며,
이러한 교만함으로 인해 하느님의 도움을 상기하지 못하고
그 분의 목소리에 귀기울이는 것에 소홀하곤 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가장 왕성하게 활동하셨던 코라진과 벳사이다,
카파르나움의 사람들을 비난하십니다.
이들은 가장 가까이에서 예수님의 기적들을 바라보았고 가르침을 전해 들었지만
오히려 예수님을 거부하고 배척했던 자들입니다.
그들의 마음은 교만에 가득 차 있었고
하느님의 빛나는 영광만을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그러한 그들의 눈에 초라한 행색의 예수님은 보잘 것 없어 보였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독서에서 나오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처럼,
하느님의 은총을 경험했음에도 이를 상기하지 않고
그저 마음에서 나오는 생각대로 살아갈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먹을 것이 없어도 당신을 따르면 음식을 차려주시는 분,
겸손한 이들에게 당신만의 방식대로 도움을 베푸시는 분입니다.
이러한 하느님 앞에서 겸손한 마음을 갖지 않는다면
주님의 도움을 나 자신의 공로로 착각하게 되며,
그 은총은 빛을 잃어버리고 맙니다.
오늘 미사 중에 청빈과 겸손으로 그리스도와 같은 삶을 살다 간
프란치스코 성인을 기억하며 우리도 그의 길을 따라
겸손하고 초라한 그리스도와 결합되기를 청하시길 바랍니다.
바로 그 때에 하느님의 은총이 그 빛을 되찾아 우리들 앞에서 찬란히 빛나게 될 것입니다.
프란치스코 성인은 다음과 같이 이야기 합니다.
“우리가 자랑할 수 있는 것은 곧 우리의 연약함이며,
매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지는 일입니다." 아멘.
서울대교구 방종우 야고보 신부 님
가톨릭사랑방 catholicsb
서울대교구 방종우 야고보 신부님
첫댓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 합니다.
아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