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는 2023년 4월 25일 상화기념관이장가문화관에서 거행될 이상화현진건80주기추념식에서 김미경 <빼앗긴고향> 편집위원장이 발제한 <현진건의 삶과 문학> 원고입니다.
현진건의 삶과 문학
현진건은 우리나라 근 ‧ 현대문학 초창기의 위대한 개척자이자, 일장기 말소 의거로 일본제국주의에 맞섰던 독립유공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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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진건은 1900년 9월 2일 대구에서 아버지 연주현씨 현경운玄擎運과 어머니 전주이씨 이정효李貞孝 슬하 4형제 중 넷째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위로 형 홍건鴻健, 석건奭健, 정건鼎健이 있었는데, 맏형 홍건은 러시아 사관학교 졸업 후 공사관 통역관 등을 지냈고, 둘째형 석건은 판사로 있다가 경술국치 후에는 변호사로 활동했습니다. 셋째형 정건은 대한민국임시의정원(지금의 국회) 경상도 대표 의원, 대한민국임시정부 외교위원 등으로 활동하다가 일제에 체포되어 4년3개월이나 옥고와 고문을 당하고 출옥한 지 6개월 만에 순국했습니다. 정건의 아내 윤덕경尹德卿은 남편이 사망하고 41일 후 음독 자살했습니다.
현진건의 아버지 현경운(1860∼1946)은 구한말 출사해 주로 중앙 관직에 있었는데, 1904년 대구전보사大邱電報司 사장(정3품)을 지낸 후 대구에 정착했습니다. 그래서 현진건이 1900년 대구에서 태어났던 것입니다. 현진건의 할아버지 현학표玄學杓도 무관 출신의 관료로 오위장五衛將(정3품), 내장원 경內藏院卿(정2품), 창원항재판소 판사昌原港裁判所判事 등을 역임했습니다.
현진건은 1915년 경주이씨 이순득과 결혼했고, 그해 11월 사립보성고보에 입학했다가 자퇴하고 도쿄 유학을 떠납니다. 1917년 잠시 대구에 머물 때 이상정, 이상화, 백기만 등과 습작 동인지 《거화炬火》를 발간하고, 다시 도쿄의 5년제 세이조成城중학에 3학년으로 편입하며, 1918년 상하이 호강滬江대학 독일어 전문부에 입학합니다. 그러나 자식이 없는 5촌 당숙 현보운玄普運에 입양되면서 1919년 학교를 중퇴하고 귀국합니다. 그해 9월 현진건은 대구를 떠나 경성부 관훈동으로 이주해서 살아가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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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진건은 1920년 《개벽》 11월호에 단편소설 〈희생화〉를 발표하면서 소설가로 첫발을 내딛은 이래, 식민지 지식인의 암울한 삶을 비유적으로 그려낸 〈빈처(1921)〉와 〈술 권하는 사회(1921)〉, 아이러니 소설기법의 뛰어난 경지를 보여준 민중소설 〈운수 좋은 날(1924)〉, 1920년대 시대상을 집약적으로 조명해 일본제국주의의 폭압 정치를 통렬히 비판한 〈고향(1926)〉, 절묘한 풍자소설 〈B사감과 러브레터(1925)〉 등의 단편과, 불국사 석가탑에 얽힌 아사달과 아사녀 전설을 소재로 한 〈무영탑(1938)〉, 백제부흥운동을 제재로 채택하여 민족저항정신을 고양하다가 조선총독부로부터 연재 중단 조치를 당한 〈흑치상지(1939, 미완성)〉, 독립지사들의 치열한 삶과 사랑을 담은 〈적도(1939)〉 등의 장편을 발표함으로써 걸출한 사실주의 민족문학가로 한국문학사에 출중한 명망을 남긴 소설가입니다.
1920년 조선일보를 시작으로 언론계에 종사한 현진건은 특히 1936년 동아일보 사회부장으로 있을 때 우리나라 선수들의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우승 ‧ 3위 쾌거를 보도하면서 손기정 선수 옷의 일장기를 말소한 의거로 투옥과 고문의 고초를 겪는 참언론인의 면모를 보여줍니다. 결국 현진건은 조선총독부에 의해 동아일보에서 강제로 퇴직당합니다. 그 후에도 조선총독부는 현진건이 언론인으로 다시 활동하지 못하게 했고, 창작집 《조선의 얼굴》을 판매 금지하고 신문에 연재 중이던 장편 〈흑치상지〉도 중단시켰습니다.
수많은 저명인사들이 친일로 변절한 일본제국주의 단말마의 1940년대를 견디면서도 창씨개명까지 거부한 채 일관된 걸출한 민족문학작가이자 독립유공자인 현진건은 울화와 가난과 질병을 못 이겨 결국 43세이던 1943년 4월 25일 젊은 나이로 세상을 등지고 말았습니다. 그날 가장 가까웠던 벗 이상화도 역시 병으로 타계했으니, 생각할수록 참으로 원통하고 분한 일입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 모두는 상화기념관 ‧ 이장가문화관 뜰에 모여 슬픈 마음과 변함없는 존경심을 담아 이렇게 80주기 추념행사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다시 한번 고개 숙여 하늘에 계신 현진건, 그리고 이상화 선생 두 분의 명복을 빕니다.
저는 현진건을 연구하고 공부하는 현진건학교가 발행하는 월간지 《빼앗긴 고향》의 편집위원장 김미경입니다. 현진건, 이상화 두 분의 80주기 추모 행사에 이렇게 뜻깊은 강연을 하게 된 점을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두 분의 치열했던 삶을 우리 모두가 함께 공유하고 함께 느낄 수 있는 자리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품어 봅니다. 저의 부족한 강연을 끝까지 경청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김미경 (월간 《빼앗긴 고향》 편집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