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산 여행11 - 선인동을 뒤로하고 금수곡경구 산길을 걸어 담판대를 보고 천교에 가다!
10월 22일 루산(여산) 에서 여산경구(庐山景区) 버스 를 타고 함파정 과 여산 박물관 에
모택동 여산시사원 을 구경한 후에 다시 버스로 여산회의구지 와 미려별서 를 봅니다.
버스로 황룡담 과 오룡담 폭포를 거쳐 대천지 와 용수애(龍首崖) 를
보고는 이어 어비정(御碑亭) 과 仙人洞(선인동) 을 구경합니다.
좁은 산길을 돌아가 진셔우구 (锦绣谷景区 금수곡경구) 로 들어가서 德克士(덕극사)
라는 매점을 보는데, 나는 어찌된 일인지 저 글씨 간판만 보면 캔터키프리이드
치킨 KFC 의 중국말인 건더지 肯德基(긍덕기) 가 자꾸 생각나서 실소를 자아냅니다.
그러고는 칭런뚱 情人洞(정인동) 을 지나 관묘정(觀妙亭) 에 도착하는데 여기서 내려다
보는 경치는 "여산 운해" 를 실감케 한다는 곳이지만 오늘은 날이 맑아 볼수
없으니 서운한데...... 근처 절벽에 석각(石刻) 이 있으니 천하위공(天下爲公) 입니다.
그러고는 조금 더 걸으니 담판대(談判台) 인데...... 1946년 7월 9일 미국 대통령 특사인
마셜 원수 가 8차례나 이곳 여산의 진셔우구 (锦绣谷景区 금수곡경구) 를 찾아...
국민당과 공산당의 조정을 위한 담판을 장개석(蔣介石 장졔스) 과 벌였던 장소라고 합니다.
그런데 중국인들이 주고받는 말을 듣자니 귀에는 蔣介石(장개석)을 “장제스”가
아니고 “장지스” 라고 들리는데.... 문득 예전에 대만 타이페이에 갔을때
공항의 방송이“짱카이섹” 국제 공항 에 오신걸 환영한다고 들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북경을 중심으로 중국의 중앙과 동북 및 서부에서 사용하는 북방어는 관어로서
표준어 이니 "보퉁화" 로 부르는데... 중국인의 3분지 2가 사용하며 "장제스" 입니다.
반면에 대만 은 국공내전에서 패해 대륙에서 중국인들이 쫃겨온지라 객가어 도 쓰지만
원래는 복건성 에서 많이 쓰이는 "閩(민)어" 를 쓰니 바로 “짱카이섹” 입니다.
중국의 방언은 크게 분류하면 7가지 이니 보퉁화 와 민어 말고도 "吳(오)어" 는
상해와 절강성 및 강소성 에서 쓰는데 중국 인구의 7% 가 사용하며....
"장시어" 라 해서 여기 강서성을 중심으로 일부 호남성에서도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湘(상)어" 는 호남성과 안휘성에서 주로 사용하는데 중국인의 5% 정도이며
또 "粤(월)어" 는 광동지방과 홍콩 및 마카오에서 사용하며 그 외에 "客家語
(객가어)" 는 북쪽에서 광동 동부와 복건 서부에 피란온 사람들 이 쓴다고 합니다.
다시말해 일,이,삼,사,오,육,칠,팔,구,십... 이치,니,산,시,고,로쿠, 시치,하치, 쿠,쥬...
이,얼,싼,쓰,우,리우,치,빠,구,스 는 한자 一二三四五六七八九十 을 세나라 말로 적은
것이지만, 2천년전 중국 한(漢)나라 사람들의 한자 발음 이니 세가지 모두 중국어 입니다?
우리는 “山” 을 “산” 이라 하고 “江” 을 “강”, “東海” 를 “동해” 라고 하는데 이는 모두
중국말 이니.... 우리나라 말로는“산” 은“뫼” 이고 “강” 은 “가람” 이며 “해” 는
“바다” 입니다. 그런데 동쪽에 해당하는 우리 말은 잊어버렸는데.... 어부들이 동풍 을
샛바람 이라고 부르니 중국말 동해는 우리말로 "샛바다" 이고 백두산은 "흰머리뫼" 일까요?
한국과 일본에 전해진 중국어도 2천년이 흐르면서 그 발음이 조금 달라졌지만 베이징등
북방 지역은 흉노, 선비, 거란, 여진, 몽골, 만주족 의 점령으로 말이 섞여버렸으니
장시성(강서성)의 중국어나 우리나라 중국어(산, 강, 태양, 동해) 는 조금 변한데 비해...
베이징의 중국어는 북방민족으로 인해 엄청 달라졌는데도 수도이다 보니 표준어 인데...
해서 이곳 장시성과 우리나라 중국어가 유사한 것이니 거짓말 좀 보태면 여기
노인들과 대화할 때 "우리나라 말(중국어)" 로 하면 뜻이 대강은 통한다(?) 는 사실이라?
이번 중국 남부 지방 여행에서 Ticket 인 票 를 베이징의 표준어 인 "피아오" 가 아닌
우리나라에서 발음하듯 "표" 라고 하고, 또 身分證 을 베이징 보퉁화로는 신펭장
이라고 하는데 여기서는 "신분증" 이라고 우리나라와 발음이 같아 매우 놀랐습니다?
그럼 우리가 쓰는 낱말(단어) 은 대부분이 2천년전 중국 한나라 사람들의 말 인가 봅니다!
여기 루산(여산) 은 남경에 수도를 정한 중화민국 국민당 정부의 여름 수도 였으니
장개석 이 자주 찾았고 3번째 부인인 송미령을 위해 별장 도 만들었다는데
그러고 보니 마셜 원수도 장개석을 만나려면 이곳 여산 을 찾아와야 했던 것입니다.
공산당과 국민당의 관계는 오월동주 라는 말과 비슷한 同舟共濟(동주공제) 라는 말로
표현할수 있으니 서로 원수지간으로 싸우면서도 군벌 타도를 위한 북벌을
위해 1924년 1월 부터 1927년 7월 까지 국공합작 을 했고 일본군의 침략 에
대항하기 위해 1937년 9월 부터 1945년 8월 까지 2차 국공합작 을 해서 함께 싸웠습니다.
원래 同舟共濟(동주공제) 라는 말은 “같을 배를 타고 함께 물을 건너다.”
라는 뜻이니 고락을 함께 한다는 것인데.... “회남자(淮南子)”
병략훈(兵略訓) 과 “후한서(後漢書)”주목전(朱穆傳) 에 나오는 말입니다.
“오나라 사람과 월나라 사람 들은 서로 미워했는데 그런 그들도 같은 배를 타고
강을 건널 때 풍랑을 만나면 서로 돕기가 마치 좌우의 손 과 같다."
오(吳)와 월(越) 은 철천지 원수로 ”와신상담(臥薪嘗膽)“ 의 고사
당사자들인데 그들도 위기의 순간에는 서로 도왔으니 '적과 의 동침' 이라....
1945년에 일본이 패망했으니 공동의 적이 없어지자 물과 기름 처럼 이질적인 상대니
내전으로 치닫게 되자... 미국은 마셜 월수를 보내 협상을 붙이려 했지만
병력수에서 100만대 400만이니 4배요, 게다가 미국이 제공해준 전투기와
탱크며 대포등 국민당군 화력은 공산군의 10배 가 넘으니 장개석은 중재를 거절 합니다.
또 同舟共濟(동주공제) 는 수양대군이 세조가 된후 신하에게 내린 말이고 1949년 8월 11일
대만으로 쫃겨간 장개석 중화민국 총통이 대한민국 대통령 이승만을 만나려고
진해공항에 내렸을때 마중나온 광복군 출신인 이범석 총리에게 휘호로 써주었다고도 합니다.
그러고는 다시 산길을 걸어 저팔계 옆모습을 닮았다는 바위등 금수곡 계곡 을
내려다 보며 걷는데... 갑자기 돌계단의 경사 가 급해지는지라 땀을
흘리며 큰 바위에 올라서니 관광객들로 인산인해 라, 발 디딜 틈조차 없습니다.
여기 험봉(險峰) 에서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많은데 연인들이 맹서가 변치말자는 뜻으로
자물쇠를 잠그고는 열쇠 는 멀리 던져버린 자물통이 정상 난간에 메달려 있습니다.
그러고는 좀 더 걸으니 큰 바위 가 나오고 여기서도 사진 찍는 사람들로
인산인해인데... 그럼 바로 이 바위가 만지면 좋은 운을
가져다 준다고 하는 그 하오윈스 (好運石 호운석) 바위 인가 봅니다?
다시 산길을 걸어 한 모퉁이를 더 돌아서니 중국 처녀들이 내가 중국인 처럼
보이는지 티엔차오 (天桥 천교) 가 어디 있느냐고 묻는데..... 주변을
둘러보니 저 아래로 사람들이 내려가길래 지레짐작으로 저 아래 라고 말합니다.
혹시나 틀렸을까 싶어 걱정하면서 우리도 돌아 내려가니 거기에 돌출된 긴 바위
가 보이고 많은 사람들이 바위 위에 위태롭게 올라가서 사진을 찍고
있는 모습이 보이는데..... 어떤 여자분은 아예 엉금엉금 기다시피 들어가네요?
반면에 처음부터 두 발로 서서 걸어들어가는 간 큰 여자분도 간혹 있는데 티엔차오
(天桥 천교) 는 주원장이 진우량에게 쫃겨 여기 절벽에 이르렀는데......
다행히 반대쪽에 다리가 놓여져 있어 무사히 도망갔다는 전설 이 있다고 합니다.
주원장 은 원나라 말기에 먹고 살기 위해 행각승 생활을 하다가 안휘성 홍건적
곽자흥의 수하 로 들어가 곽자흥의 양녀인 마씨와 혼인 하는데
곽자흥이 죽은후 대장이 되어 1356년에 집경(남경)을 점령 하고 세력을 이룹니다.
원나라 도처에서 홍건적등 반란이 일어났으니 당시 몽고족을 쫓아내고 중화인의 나라를
세울 군웅으로“장사성은 재정이 풍부하고 진우량은 병력이 강했으나 주원장은 내세울
장점이 없었다.”해서 사람들은 장사성이나 진우량이 강남의 패자가 되리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주원장은 원나라에 표면상으로 항복하여 조정의 창끝을 피해 위기를 넘긴후 내실을
기하면서 강남의 선비 들을 영입해 “북방 오랑캐의 압제를 물리치고 중화를 회복한다”
는 구호를 내세워 조금씩 강남을 평정하고 세력을 늘리는데 힘쓰니 교활하다 할 것입니다?
주원장 은 1363년 난적인 진우량 을 공격하여 대함대가 파양호에서 세기의 결전을 벌여
승리한후 여세를 몰아 장사성 에게로 창 끝을 돌려 결국 승리하니 1367년에는
북진해 원나라에서 베이징을 탈환하고 황제에 즉위하니 대명(大明) 의 태조 가 됩니다.
주원장 의 적 진우량(陳友諒) 은 원나라 말기 1316년 면양에서 태어났는데 홍건(紅巾)적
서수휘(徐壽輝) 가 반란을 일으키자 부하 장수인 예문준의 휘하 에 들어가 무장으로서
자질을 길러 원수(元帥) 가 되고는 1357년 예문준을 죽이고 안휘성 남부에 기반을 굳힙니다.
주원장 은 사자를 보내 진우량과 그 휘하로 안경(安慶)을 수비하는 조보승을 이간질시키니
거기 넘어가 진우량이 조보승을 급습해 죽이고 지주를 습격하나 주원장의 장군인
서달에게 패했지만 1359년 서수휘를 죽이고 황제에 올라 국호를 대한(大漢) 이라고 합니다.
강주(江州) 에 도읍하고 강서(江西) 와 호남, 호북을 세력아래 두니 장강 이남에서 진우량 의
병세가 제일 강했으니 주원장 이 태평(太平) 을 취하면서 이웃하게 되었는데 진우량이
원의 지주(池州)를 함락하자 주원장이 상우춘을 보내 쳐서 취하니 수차례 서로 공격 합니다.
주원장(朱元璋) 은 진우량이 장사성과 합칠까 걱정해 강무재를 시켜 진우량을 꾀어내
용만에서 격파하고 추격해 안경을 취했으며 무창으로 달아난 진우량이 대선을
건조해 남창을 공격하니... 주원장이 친정해 1363년 파양호에서 싸워 초전의
우세를 지키지 못하고 패하여 전사했으며 아들 진리(陳理) 는 고려로 보냈다고 합니다.
인터넷을 검색하다 보니 yejunfei818 님 블로거 에 공지문이 뜬걸 보고 적잖이 놀랍니다?
“1371년 진우량(陳友諒) 아들 진리(陳理)가 고려로 도망했습니다. 지금 진리(陳理)의
고향에서 (중국 호북성 湖北省 선도시 仙桃市 : 원 면양현 沔陽縣) 진우량(陳友諒)
의 문화 역사탐구회 및 진씨(陳氏) 종족(宗族) 대회를 열기 위해 준비하고 있습니다."
"진리(陳理) 자손들이 이 소식을 보시면, 중국 호북성 선도시 외사교무관광국(外事僑務
觀光局) 진평(陳平) 에게 빨리 연락해주시기 바랍니다. 전화: +86(0728)3491039“
많은 사진사(?) 들이 바위 아래쪽에서 위를 올려다 보며 대기하고 있는데 주로 바위애
올라서서 사진을 찍는 사람은 여자 들인데... 한 무리가 끊겨도 계속 있기에
의아해 했더니 바위 위에 사람이 없을때 티엔차오 모습을 찍을려고 한참 기다렸나 봅니다?
그러고는 시엔런둥 (仙人洞 선인동) 에서 시작해 여기 티엔차오 (天桥 천교) 까지
1시간을 걸어 기나긴 진셔우구 (锦绣谷景区 금수곡경구) 를 빠져나와서는...
내려가니 바로 루친후 (如琴湖 (여금호) 큰 호수가 있는 화징(花徑 화경 꽃길) 입니다.
첫댓글 산위에서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많은데 연인들이 맹서가 변치말자는 뜻으로
자물쇠를 잠그고는 열쇠 는 멀리 던져버린 자물통이 정상 난간에 메달려 있습니다.
중국황산에도 이런 자물통 엄청나더군요.
경치 하나는 좋은가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