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향(尙饗)과 사향노루
한자 한문을 잘 알지 못하는 신세대들은, 제사 지낼 때 읽는 축문의 내용을 모르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축문은 유세차(維歲次)로 시작하여 상향(尙饗)으로 끝을 맺는다. 유(維)는 말을 시작할 때 별다른 의미 없이 꺼내는 발어사(發語辭)로, ‘에’ 또는 ‘이에’의 뜻이다. 그러니 유세차는 ‘에, 해로 말하면’이란 뜻이다.
축의 제일 끝에 나오는 상향(尙饗)에 대해서는 정확히 그 뜻을 모르는 이가 많다. 상향의 상(尙)은 바란다는 뜻이고, 향(饗)은 흠향(歆饗) 곧 신이 제사 음식을 받는다는 뜻이니, 상향은 신위가 ‘차린 제사 음식을 받으시기를 바랍니다’란 뜻이 된다. 향은 흠향의 뜻이기에 아주 높여야 하므로, 축문에서 향(饗)자는 줄을 바꾸어 높이 쓰거나 앞글에서 한 줄을 띄우고 써야 한다.
이 흠향에 얽힌 옛 이야기 하나를 덧붙일까 한다.
옛날에, 한 붓 장수가 붓을 팔러 두메산골엘 가게 되었다. 해가 져서 닿은 그 마을은, 글을 아는 사람이라곤 한 사람도 없는 완전한 문맹 마을이었다. 글을 모르니 평생 붓을 본 일도 없어서, 붓을 본 마을 사람들은 그것을 모두 이상히 여겨, 붓을 들고 이모저모 살펴보더니, 끝이 뾰족한 것을 보니 털로 만든 송곳이라 하면서, 털 송곳은 생전 처음 본다며 의아해 하였다.
날이 저물어 할 수 없이 그날 밤을 거기서 머물게 되었는데, 공교롭게도 그날이 주인 집 제삿날이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제사상을 차려 놓고 밤이 깊도록 제사를 지내지 않는 것이었다. 궁금하다 못해 그 사연을 물어 보니, 주인이 말하기를, 자기 마을에는 축을 아는 사람이 단 한 사람밖에 없는데, 마침 그 사람이 볼일을 보러 나가서 늦게까지 돌아오지 않아, 제사를 지낼 수가 없어 그 사람 오기만을 기다린다는 것이었다.
밤이 이슥토록 기다려도 그 사람이 오지 않은 것을 답답히 여긴 붓 장수가 나서서, 자기가 축은 좀 써 봤으니 그래도 되겠느냐고 주인에게 청을 했다. 그러자 날이 샐 것 같은 다급한 지경에 이른지라, 주인도 이를 허락하였다.
그리하여 제사는 겨우 지냈는데, 또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제사는 지냈는데 제사상을 치우지 않고, 제관들이 그대로 앉아 있는 것이었다. 이를 이상히 여긴 붓 장수가 그 연유를 물으니, 붓 장수가 읽은 축이 평소 자기네들이 쓰던 축과 달라서, 그 사람이 와서 다시 지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에 그 전의 축은 어떤 것이었느냐고 물으니, 여태까지 쓰던 축은 마지막에 ‘노루 배꼽’이라는 말로 끝나는데, 붓 장수의 축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었다. 노루 배꼽이라……. 아무리 생각해도 모를 일이었다.
그러기를 한참이나 지난 후에, 드디어 볼일 보러 나갔던 그 축관이 헐떡거리며 돌아왔다. 다시 제사를 지내는데 들어보니, 듣던 대로 맨 끝에 ‘노루 배꼽’ 하는 것이었다. 하도 이상해서 제사가 끝난 후 그 사람에게 그 내용을 물어보았다. 그 사람의 대답인즉 이러하였다.
자기가 글을 모르니 축문의 전부를 알 수는 없는 일이라, 축문의 끄트머리 말 한 마디만이라도 외워서 쓰면, 안 하는 것보다는 낫지 않을까 싶어, 멀리 떨어진 양반 댁에 가서 물으니, 그 양반 나리가 말하기를, 배꼽에 약이 들어 있다는 무슨 노루 이름을 가르쳐 주었는데, 오다가 그만 그 노루 이름을 잊어버리고, 노루의 배꼽만 생각이 나서 ‘노루 배꼽’이라 한다는 것이었다.
이 이야기를 들은 붓 장수는 그 노루 이름이 ‘사향노루’란 것을 단번에 알아차렸다. 상향(尙饗)을 발음하기 쉽게 사향이라 하기 때문이다. 이는 ㅇ이 잇따라 소리 날 때는 그 하나를 생략하는, 이른바 동음생략(同音省略)이 적용된 것이다. 공양미를 고양미라 하고, 평양을 펴양[피양]이라 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러니 그 시골 축관은 그가 잊을까 봐, 선비가 ‘사향노루’란 말을 덧붙여 가르쳐 준 사향 곧 상향은 잊어버리고 (사향)노루의 배꼽만 기억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