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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의 生과 死의 기록
삼성전자·반도체에서 일하다가, 병들거나 죽은 사람들, 그리고 그 가족들 이야기
이윤정 신송희 이희진 유명화 故 황민웅 한수영 故 김주현 故 연제욱 故 박지연 김옥이 한혜경.
삼성에서 일하다가 불치의 병을 얻어 투병 중인 이들, 생을 달리한 이들의 이름이다. 그들의 죽음과 병에 대해 삼
성은 사과는커녕 “증거를 가져오라”고 도리어 큰소리를 친다. 유족 정애정 씨는 말한다. “죽어가는 사람들보다 더
어떤 확실한 증거가 필요하다는 건지 저는 모르겠습니다.”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 ‘반올림’ 또한 “노
동자의 권리를 보호하고자 만들어진 산재보험의 법적 취지는 산재를 당한 노동자들의 신속하고 공정한 보상을 제
공하고 산재를 예방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개인 질환이라는 증거가 없다’ 면 산재로 인정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삼성과 근로복지공단은 이들의 목소리에 언제쯤 귀 기울일까?
소중한 딸을, 남편을 떠나보낸 사람들
삼성반도체 노동자 황유미 씨의 아버지 황상기 씨는 딸의 죽음에 의문을 품고 백방으로 호소하고 절규하며 시간
을 보냈다. 결국, 반도체 노동자들의 산재 문제를 최초로 공론화하고 반도체 노동자들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 ‘반
올림’이라는 단체를 만드는 결정적 계기를 이룬다. 한 사람의 외로운 몸짓이 마침내 사회적 반향을 일으킨 것이
다. 한편, 삼성반도체 기흥공장에서 남편 황민웅 씨를 만나 누구 못지않게 행복했던 정애정 씨는 남편과 만나는
인연을 만들어준 직장, 자신이 10년 넘게 몸 담았던 직장을 하루아침에 아이들의 아빠를 빼앗아간 원수로 삼아
야 했다. 남편 황민웅은 분명 산업재해였다. 망자를 떠나보낸 가족들은 그들의 투병 과정을 지켜보며 이렇게 안
타까움과 아쉬움을 토로했다.
“차라리 그렇게 빨리 간 게 다행이에요. 너무 힘든 병이야. 너무 고생을 해.”
(고 황유미의 아버지 황상기 씨)
“너무 짧죠, 너무 짧아. 3년 살았으니깐. 1년은 애 낳는다고 떨어져 있고
그 뒤로는 바쁘고 아프고……. 9개월 아팠지.”
(고 황민웅 씨의 아내 정애정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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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든 가족을 내내 지켜봐야 하는 사람들
소중한 아들딸을, 아내를, 동생을 가족으로 둔 사람들의 슬픔과 고통 역시 그에 못지않다. 가난한 집안 형편 때
문에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삼성에 들어간 아들딸, 동생을 둔 이들, 결국 그 소중한 사람들이 이름마저 낯선 병,
다발 경화증, 중증 재생 불량성 빈혈, 베게네육우종증, 종격동암 등으로 힘겹게 투병 중이다. 그 가족들의 마음
역시, 떠나보낸 이들 못지않다.
“하루는 소동을 부리더라고요. 나는 그냥 죽겠다, 죽는 게 낫다……. 보면 눈물이 납니다.”
(이윤정 씨의 남편 정희수 씨)
“산재라고 밝혀져도 문제인 게 유전이 되는 병이면요? 만약에 삼성 다닐 때, 그러니까 애들 임신하기 전에 아내가 병에걸린 거면……. 애들까지 그렇게 되어버리면……. 나는 진짜 가서 누구 한 놈 죽여 버릴 거 같아요. 아내도 그렇게 됐는데 자식한테까지 대물림된다면……. 제발 내가 바라는 거는 산재가 아닌 거, 우리 애들을 낳고 나서, 차라리 그러고 나서 병에 걸린 거예요. 만약 산재가 맞는다면 얼마나 비참하겠어요. 삼성이 죽일 놈이죠, 나의 원수죠.”
(이윤정 씨의 남편 정희수 씨)
“휴가 때 오면 집 안으로 안 들어오고 밖에 앉아 있던 게 신선한 공기를 마시고 싶었던 거였어요. 일하는 데가 하도 냄새가 심하니까. 쟤가 삼성에 들어가고는 살이 쪽 빠졌어요. 힘들어서 그런 거였는데 우리는 그것도 모르고, 애가 예뻐졌다고만 했어요.”
(신송희 씨의 언니)
또 하나의 가족 삼성은 가족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렇게 가족들을 떠나보낸 사람들, 병든 몸을 안고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앞에 두고 삼성은 산재 가능성에 대
해서 일축한다. 초일류기업 삼성에서 그런 후진적인 일은 절대 발생할 수 없다고. 심심한 위로의 말은 전하지만,
또 대기업이어서 장례나 치료를 도와줄 수는 있지만, 그 모두가 산재에 대한 응분의 대가가 아니라, 회사의 시혜
라고. 그럼에도 산재 신청을 하려는 가족들에게 삼성은 외려 협박과 회유를 일삼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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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재라니요, 증거 있으세요? 큰 회사를 상대로 싸우려면 싸워 보시든가요.”
자식을 잃은, 형제자매를 잃은 가족들의 고통을 어떻게 몇 마디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그러나 삼성은 그 고통을
손가락으로 짚으면서 명료하게 ‘계산’해주었다.
“그러니까 아버님, 하나 유미 씨 죽고, 둘 그것 때문에 유미 씨 할머니 쓰러져 돌아가시고, 셋 유미 씨 어머니 우울증 걸리고, 넷 모아둔 돈 다 유미 씨 치료비에 들어가서 집도 못 옮기고. 이거죠? 이거 네 가지 회사에 전하면 되는 거지요?” ‘손해’는 금액으로 환산됐다. 2억도, 3억도 권해졌다.
(삼성 직원이 고 황유미 씨의 아버지 황상기 씨에게 한 말)
‘우연’치고는 너무 이상한 ‘우연’
하지만, 같은 공간에서 같은 일을 한 사람들이 병에 걸렸고, 그것도 목숨을 위협하는 중병에 걸렸다면 과연 그것
이 개인의 ‘불운’ 에 불과한 것일까? 그러나 불운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이상한 ‘우연’ 이다. 특히 삼성반도체에는
이런 ‘우연’ 이 유난히 많이 일어났다. 2인 1조를 이뤄 일한 두 명의 여성(황유미, 이숙영)이 모두 백혈병으로 사망
했다. 한 작업장에서 일하던 이들이 같은 시기 혈액암 계열인 백혈병과 림프종에 걸렸다. 특정 공정, 특정 라인
에서는 유달리 질병자가 많이 나왔다. 이상한 우연이었다.
대한민국에서 산재신청을 한다는 것의 어려움,
산재승인을 받는다는 것의 거의(!) 불가능함
대한민국에서 피해 노동자가 직업병임을 인정받는 과정은 서럽다. 아픈 몸을 이끌고 병과 업무의 연관성을 입증
하러 다녀야 한다. 서류를 떼고, 회사에 정보를 요청하고, 공무원들과 전문가들에게 머리를 조아린다. 수개월에
서 수년이 걸리는 과정이다. 시간에 지친 노동자들은 자신을 의심하게 된다. 내가 몸이 약해서, 불운해서 생긴
문제가 아닐까? 화학물질에 노출된 채 12시간 이상을 일했지만 내 문제인가 싶어진다. 대개는 결국 산재신청을
포기한다.
노동자가 오랜 고민을 하고 있을 때, 전문가 집단은 짧은 시간에 명료한 판정을 내린다. 직업병 여부를 판단하
는 전문가 집단은 서류 몇 장을 훑으며 노동자의 몇십 년 노동을 훑는다. 그 과정에서 종종, 손쉬워 보이는 노동
자의 단순반복 작업이 몇십 년 동안 365일 지속되었다는 사실을 간과하기도 하고, 인간의 몸은 기계가 아니라는
사실을 놓치기도 한다. 그럼에도 ‘과학적 입증’이라는 말은 잊지 않아, 직업성 암에 걸린 이들은 과학적으로 업
무 연관성이 인정되지 않은 경우가 많다. 그러나 다른 나라보다 몇 배나 적은 수의 발암물질만을 규제하고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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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몇 배나 적은 직업성 암을 인정하는 이곳 대한민국의 과학을, 과학자들을 얼마나 믿을 수 있을까?
(현재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은 ‘업무상 질병에 대한 구체적인 인정 기준’으로 크게 7가지의 발암물질만을 인정하고 있다. 1963년 제정 이후 단 한 차례도 개정된 적이 없는 발암물질 기준이다. 또 국제노동기구에 따르면, 매년 세계적으로 60만 명의 노동자가 직
업성 암으로 사망하지만 한국에서 직업성 암을 인정받은 사례는 1년에 20∼30건에 그친다. 2005년에 249건의 신청 중 30
건이, 2010년에는 125건의 신청 중 17건이 직업성 암으로 인정받았다.)
의심을 품은 노동자들은 산재보험금을 내줄 수 없다는 근로복지공단을 향해 묻는다.
“그럼 근로복지공단은 왜 있는 거지요?”
근로복지공단은 직업병 노동자들이 낸 산재불승인 처분 취소 소송에 삼성이 고용한 대형 로펌을 부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사상 첫 산재 인정, 물론 근로복지공단과 삼성은 항소했다
2010년 1월 11일, 김옥이, 송창호, 고 이숙영, 고 황민웅, 고 황유미의 유족은 행정소송을 신청했다. 법원에 ‘유
족급여및장의비부지급처분취소’ 소송을 낸 것이다. 소송 당사자인 근로복지공단은 “소송 결과에 따라 사회적 파
장이 클 것으로 판단되는 사건임을 감안하여 …… 소송 수행에 만전을 기하여주시기 바랍니다” 는 공문을 삼성
에 보낸다. 삼성은 이에 화답해 피고측 보조참가인 자격으로 대형로펌을 통해 재판에 개입했다. 2011년 6월 23
일, 재판장은 조용히 판결문을 읽어 내려갔다.
“망(亡) 황유미, 망 이숙영에게 발병한 백혈병의 발병경로가 의학적으로 명백히 밝혀지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각종 유해화학물질에 지속적으로 노출되어 백혈병이 발병하였거나 적어도 그 발병이 촉진되었다고 추단할 수
있으므로 업무와 상당히 인과관계가 있고, 따라서 피고(근로복지공단)의 유족급여 부지급 처분은 위법이다.
”이로써 황유미 씨와 이숙영 씨는 직업병을 인정받았다. 세계적으로 반도체산업에 있어 직업병을 인정한 첫
판결이었다. IBM 등 세계 각국의 노동자들이 반도체 회사를 상대로 법정싸움을 했지만, 공식적인 직업병 인정
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러나 백혈병 유발물질의 노출기간과 노출량이 적다는 재판부의 판단으로 나머지 세 명은 직업병을 인정받지 못했다. 물론, 근로복지공단( 및 삼성)은 재판 결과에 불복해 항소하기로 했다.
하지만, 2011년 삼성반도체 노동자들의 질병은 산업재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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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기억해야 할 사람들
이윤정. 1980년생, 여성. 1997년 삼성전자 반도체 온앙공장 입사,
6년간 고온 테스트 업무. 2003년 퇴사. 2010년 뇌암(악성 뇌종양) 진단
신송희. 1979년생, 여성. 2000년 삼성전자 반도체 기흥공장 입사,
6∼8라인 공정관리 파트 소속으로 5년 6개월간 웨이퍼 검사 업무. 2009년 유방암 진단
이희진. 1984년생, 여성. 2002년 삼성전자 LCD사업부 천안공장 입사,
4년 3개월간 LCD 패널 화질·색상 패턴 검사 업무. 2008년 다발 경화증 확진
유명화. 1982년생, 여성. 2000년 삼성반도체 온양공장 입사. 2001년 중증 재생 불량성 빈혈 진단
황민웅. 1974년생, 남성. 1997년 6월 삼성반도체 기흥공장 입사,
7년 4개월간 근무, 1라인 백랩(연마) 및 5라인 CMP 설비 엔지니어. 2005년 백혈병으로 사망. 당시 32세
한수영(가명). 1969년생, 남성. 삼성반도체 기흥공장 디퓨전 공정 엔지니어. 34세에 베게너육아종증 진단
김주현. 1986년생, 남성. 2010년 삼성전자 LCD사업부 천안공장 FAB 컬러필터 공정 설비 엔지니어로 입사,
그해 자재관리 부서로 이동. 2011년 1월 기숙사 13층에서 투신 사망. 당시 26세
연제욱. 1982년생, 남성. 삼성전자 LCD 탕정공장 설비 엔지니어로 입사. 2009년 종격동암으로 사망. 당시 28세
박지연. 1987년생, 여성. 2004년 삼성전자 반도체 온양공장 입사,
QE그룹 품질 실험 특정 검사 및 엑스레이 검사. 2년 7개월 근무. 2010년 3월 백혈병으로 사망. 당시 24세
김옥이. 1969년생, 여성. 1991년 삼성반도체 부천공장(온양공장 전신)에서 1년간 근무,
1992년부터 온양공장에서 절단·절곡 공정에서 6년간 근무. 퇴직 후 2005년 급성 골수구성 백혈병 진단
한혜경. 1978년생, 여성. 1995년 삼성반도체 LCD사업부 기흥공장 입사,
모듈 공정에서 6년간 근무. 2005년 소뇌부 뇌종양 진단, 뇌종양 제거수술 후 장애1급 판정
6 더 이상 죽이지 마라
2011년 3월 6일 현재, 삼성전자·반도체 피해자 제보 현황을 보면, 총 115명의 노동자가 실명, 가명 또는 ○○○
으로 기록되어 있다. 삼성 외 사업장까지 합하면 모두 150명에 이른다. 지금 이 순간에도, 삼성에서, 그리고 다
른 반도체 사업장에서 누군가가 병들고 죽어가고 있다. 반올림은, 노동자의 건강권 확보를 지지하는 모두는 이
렇게 호소한다. 제발, 더 이상 죽이지 마라!
첫댓글 한권 구매해야겠네요.
용돈긁어모아사서 친구들나눠줘야겠어요
이 전 시리즈들 읽었는데, 많은 분들이 같이 읽었으면 좋겠어요 홍보열심히할게요^^
힘내세요!!
사람냄새, 먼지없는방, 위 책 모두 다 사서 읽었습니다.
사람냄새에 나오는 삼성이 하는짓이
정말 저에게 했던거와 똑같더군요.(냉장고화재로)
일단 도서관에 신청부터 했습니다
이거 사서 읽었습니다...읽기전에는 알수없던 내용이에요 ㅠㅠ
모두가 읽을수있게 많은 홍보가 필요할거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