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창리 답사기
2015년 2월 7일
춘천역사문화연구회 오동철선생님과 어제 만나 칠선동에 대해 이야기 하다가 삼직폭포를 언급하게 되었고, 덕골에 커다란 폭포가 있는데 그 폭포가 삼직폭포일 가능성도 있다고 하신다. 그 밖에 칠선동(광덕계곡)의 절터, 사창리의 창고터에 대해서도 소상히 알고 있어 어제 답사를 갈려고 했으나 이미 시간이 늦어 오늘 약속을 했던 터였다.
현대3차아파트 앞에서 풀발한 시간은 9시 20여분. 봉의산 뒤를 지나 사창리로 달렸다. 중간에 오탄리에서 이항로가 언급한 폭포를 확인하려고 했으나 실패했다. 나중에 귀로에 다행스럽게도 먼발치서 확인할 수 있었다. 날씨가 풀리면 다시 찾아와야 할 곳이다.
길종갑화백을 만나 바로 칠선동으로. 쌍계협에서 잠시 정차했다가 덕골 입구로 이동.
입구는 철문으로 잠겨 있다. 우화하여 임도로 들어섰다. 깊은 계곡이라 아직도 눈이 수북하다. 오선생님은 이곳저곳을 가리키며 몇 십 년 전 일을 설명해준다. 여기는 양조장이 있던 자리, 저기는 두 집이 있었고, 옆에 우물이 있었으며, 건너편에도 집이 한 채, 산비탈은 밭이었고.....
조금 올라가다 폭포에 도착했다. 온통 눈에 덮이고 얼어서 폭포의 모습을 확인하기 어려우나 제법 규모가 있어 보인다. 그러나 칠선동기에 등장하는 삼직폭포는 아닌 것 같다. 조금 더 올라가 소장사들이 넘나들었다던 고개 입구를 확인하고 되돌아왔다.
많이 훼손된 삼직폭포를 확인하고 바로 사창리로 향했다. 사창2리에서 권순덕씨를 만났다. 이 분은 다음주에 만나 창고터를 확인할려고 약속을 한 상태였는데 시간이 당겨져서 오늘 만나게 된 것이다. 사창리에서 농사일을 하면서 지관으로도 알려졌다고 길화백이 귀뜸해준다.
사창2리 마을회관을 조금 지나 텅 빈 집으로 인도한다. 옛 주인은 이사 가고 서울사람이 집을 샀다고 한다. 외부인 접근을 금지하느라 줄을 쳐놓고 대문 앞엔 출입을 금한다고 널빤지에 써놓았다. 바로 대문 앞에서 주춧돌을 확인 할 수 있었다. 제법 크다. 뿐만 아니라 집 여기저기에 주춧돌이 보인다. 집 옆 밭 두둑에서도 돌이 보이고, 밭에선 기와조각과 자기 파편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여기에 있던 돌을 가져가서 집을 짓는데 사용했다는 집을 방문하니 창고에 쓰였던 주춧돌로 보이는 것들이 그 집의 주춧돌로 쓰이고 있다.
창고터에 있었던 주춧돌은 사창리의 역사다. 사창리란 이름이 바로 이 창고 때문에 생겨났고, 곡운선생을 뵙거나, 이후 그의 발자취를 따라 성지순례하듯 오고갔던 수많은 조선후기의 문인들의 문집에 언급되는 창고가 바로 여기인 것이다. 지금은 개인 집의 주춧돌로, 혹은 밭두둑에 덩그러니 버려져 넝쿨이 뒤덮고 있다.
혹 오세동자터에 대해서 들어본 적이 있냐고 물으니 잘 모르겠다며 절터라는 곳으로 안내한다. 창고터에서 서쪽이며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이다. 원래는 완만한 계곡이었으며, 기둥과 기와조각들이 발견되었으나 포크레인으로 밭을 논으로 개간하면서 깊게 파묻혔을 거라고 한다. 문헌에 의하면 창고터에서 서쪽 1리 떨어진 곳에 오세동자터가 있었다고 하니 이곳이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동네 사람들은 오세동자인 김시습의 모습이 스님이었기 때문에 절터라고 불렀을 수도 있다. 그러나 붉은 논이 되어버렸다.
시내(?)에 들려 점심을 먹고 춘천으로 향했다. 오늘 제사가 있어 마음이 바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