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法頂(법정)스님이 묻고 性澈(성철)스님이 답하다]<요약>
1. 사람은 누구나 한 번 죽습니다. 우리가 죽음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가는 모든 종교의 중요한 과제입니다. 스님의 생사관(生死觀)을 듣고 싶습니다.
「생사(生死)란 모를 때는 생사입니다. 눈을 감고 나면 캄캄하듯이. 알고 보면 눈을 뜨면 광명입니다. 생사(生死)라 하지만 본래 생사란 없습니다. 생사(生死) 이대로가 열반(涅槃)이고 이대로가 해탈(解脫)입니다. 일체만법이 해탈 아닌 것이 없습니다. 윤회(輪廻)를 이야기 하는데 윤회라는 것도 눈감고 하는 소리입니다. 사실 눈을 뜨고 보면 자유만 있을 뿐이지 윤회는 없습니다. 물론 사람이 몸을 받고 또 받고 하여 이어지지만, 모르는 사람은 그것을 윤회라고 하는데, 아는 사람이 볼 때는 그것은 모두 자유다! 그 말 입니다. 대자유(大自由)! 눈을 뜨고 볼 때는. 그래서 생사가 곧 해탈이고 생사 이대로가 열반입니다. 생사(生死)란 본래 없습니다. 현실을 바로만 보면, 마음의 눈만 뜨면 지상의 극락입니다. 이 현실 이대로가!」
2. 가령 친족을 버리고, 이 육신을 버릴 때 어떤 각오로 임해야 할까요? 더 쉬운 말씀으로 풀어 주십시오.
「혹 어폐가 있을지 모르지만 근본 생명 자체를 사람에 비유하면, 이 육신은 옷이지요. 옷이 떨어져서 벗었다하여 사람이 죽는 것은 아니지요. 칠십 팔십년이 되어서 옷이 다 떨어지면 딴 옷을 입게 됩니다. 옷을 아무리 바꿔 입는다 해도 사람은 본래 사람 그대로이니 옷을 따라 갈 필요는 절대 없습니다. 옷을 볼 필요도 없고, 옷이 떨어져서 아무리 바꿔 입는다 해도 하나 아까울 것도 없고, 평생 입은 옷이니 옷이 오래되면 떨어지고 떨어지면 바꿔 입는 것은 정한 이치 아닙니까? 육신을 옷에 비유하면 결국 영과 육을 구분해 보는 것이 아닌가? 이렇게 혹 생각할지 모르나 알고 보면 옷도 또한 절대이니 분리할 것 없지만 비유하자면 그렇다 그 말입니다. 그러니 옷을 갈아입는다 해도 자유한 생활, 해탈이라는 것은 변동이 없습니다. 사람은 항상 그 사람이지.」
3. 스님께서 다음 생에 이루고 싶은 소원이 있으시다면 무엇이신지요?
「사실 ‘다음 생’이란 본래 없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옷을 가지고 그 한계성을 잡아서 옷이 다 떨어지고 새 옷을 갈아입을 그때를 이다음 생이라 하는데, 그러나 그 사람 자체에서 볼 때는 옷 떨어졌다고, 이다음 생이라고 할 수 있나요? 본시 과거도 없고 현재도 없고 미래도 없고 항상 그 사람은 그 사람일 뿐이지요. 내가 늘 생각하는 것은 가장 빈천한 생활을 하면서 최고의 노력을 해서 어떻게 하면 모든 상대, 무정물(無情物)까지도 부처님같이 받들고 부처님같이 모실 수 있나하는 이것이 세세생생의 원(願)이고 또 그 이상 변할 수 없는 것입니다.」
4. 한 해가 가고 또 새해가 다가옵니다. 새해를 맞으며 이 풍진 세상 살아가는데 길잡이가 될 시원할 법문을 들려주십시오.
「거듭 말하지만, 내가 볼 때는 전생도 없고 내생도 없고 항상 금생뿐입니다. 새해라는 것도 달력 만들어 놓고 그것 바뀌는 것일 뿐, 새해 구해 구별할 것 없이 중생이 본래 부처다, 우리가 본래 광명 속에 산다, 광명 속에 살 뿐만 아니라 우리 자체 이대로가 광명입니다. 그런 좋은 광명을 눈 감고 못 보며 헤매고 있으니 참으로 답답합니다. 그러니 우리가 ‘어둡다, 어둡다’하지 말고 어떻게 해서든지 눈을 바로 떠라. 마음의 눈을 밝게 뜨자. 그리하여 일체 모든 상대세계가 절대세계 아닌 곳이 없으니 미래겁이 다 하도록 모든 부처님을 받들고 섬기자, 이 말만 하고 싶습니다.」
5. 가치관의 변화 속에서 현대인이 의지할 가치의식은 무엇입니까?
「인간의 근본가치는 인격에 있는 것이지 물질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잘못된 가치관을 바로 잡으려면 근본적으로 인간의 존엄성부터 회복시켜야 된다고 봅니다. 본래 인간은 절대적 존재입니다. 영원한 생명과 무한한 능력을 가진 절대적 존재입니다. 그런데 물질만능에 그 존엄성이 묻혀서 인간 가치를 상실해 버리고 있습니다. 인간의 존엄성이란 깨끗한 거울과 같습니다. 거울은 본래 깨끗해서 아무 티끌도 없는 것인데 먼지가 꽉 앉을 것 같으면 본래의 작용을 못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먼지를 닦아내어야 합니다. 먼지만 닦아내면 그만이지 거울을 딴 데 가서 구할 것도 없고 또 찾을 필요가 없습니다. 그래서 본래 깨끗한 인간의 절대성, 인간의 존엄성을 복구하는데 있다고 생각합니다.」
6. 불교의 이상은 인간의 범주에 머물러야 합니까, 아니면 초월해야 합니까?
「불교에서 볼 때에는 생멸(生滅) 즉 진여(眞如)이므로 현실이 곧 절대입니다. 따라서 번뇌 즉 보리(菩提)이며 중생 즉 부처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본래 일체를 초월하여 일체를 구족한 절대적 존재이니 다시 초월할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불타가 출현한 것은 중생이 본래 부처임을 전하는 것뿐이요, 중생을 부처로 변성(變成)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질문> 초파일이 되면 ‘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이란 말이 나옵니다.
세상에서는 이 말처럼 이기주의를 잘 나타낸 말도 없지 않느냐고 해석하는 것 같습니다.
<답> ‘아(我)’룰 잘 몰라서 그렇습니다. ‘아’는 ‘소아(小我)’가 아니라 ‘대아(大我)’를 말하는 겁나다, ‘대아’란 ‘우주아(宇宙我)’입니다. 아무렴 석가모니 부처님이 만고성인(萬古聖人)인데 ‘내가 제일 잘났다’는 식의 유치한 말을 하겠습니까? 이 말을 정확히 알아야 합니다. ‘인간 존엄성의 선언’입니다. 우주 전체의 생명이 독존(獨尊), 즉 절대적 존재라는 뜻이지요. ’나‘ 아닌게 하나도 없는 세계, 곧 이타(利他)가 자연히 이루어지는 세계입니다. <1983/5/19 동아일보 임연철 기자 정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