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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에는 지금 시계 두개가 ‘최종시간’을 향해 째깍째깍 돌아가고 있다.
먼저 ‘연장이냐, 파기냐’ 를 결정해야 하는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시계가 오는 24일을 마감으로 시곗바늘을 돌리고 있다.
그 옆에서는 일본의 경제보복조치인 화이트리스트(수출우대국) 배제조치의 시곗바늘이
효력 발생일인 오는 28일을 향해 째깍거리고 있다.
정부는 일본의 경제보복 초치에 맞서 GSOMIA 파기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일본이 ‘안보상’ 이유로 화이트리스트에서 한국을 배제하는데
‘안보협력국’ 을 전제로 한 GSOMIA 유지는 상호 모순이기 때문이다.
반면 GSOMIA 파기는 한·일관계 뿐 아니라
한·미관계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이유로 반대하는 목소리도 크다.
일부에서는 한·미·일 안보협력 틀을 유지하면서
일본에 대한 대응조치도 되는 방안으로 GSOMIA를 연장하되
‘정보공유의 일시중단’ 을 선언하는 조치를 제시한다.
이처럼 여러 입장이 있지만, 이제는 정부가 ‘GSOMIA 조건부 파기’ 를
하루라도 빨리 선언해야 할 때이다.
오는 24일까지 일본 정부가 화이트리스트 배제를 철회하지 않을 경우
GSOMIA는 파기될 수밖에 없다고 발표해야 한다.
한국은 GSOMIA를 파기해도 한·미·일 정보보호약정(TISA)을 활용할 수 있다.
이에 대해서는 한측이 GSOMIA를 파기하면 미·일도 TISA를 통한 정보제공을 거부할 수 있고,
한·미 동맹 이나 한·미·일 안보 협력 틀이 무너진다는 주장도 나온다.
하지만 GSOMIA는 한·미·일 안보협력 사안의 전략적 옵션 중 하나일 뿐, 전부가 아니다.
GSOMIA는 2016년 한국의 탄핵정국으로 어수선한 틈을 타 미국이 강요한 협정이다.
당시 한국갤럽의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59%가 GSOMIA 반대 의견을 내놓았다.
GSOMIA는 표면적으로 북한에 대한 대응 차원을 내세우고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중국 견제를 위한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의 일환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미국은 GSOMIA 체결을 압박한 당사자인 만큼 ‘결자해지’ 차원에서
GSOMIA 유지를 위해 일본 정부에 압박을 가해야 하는 게 도리다.
세부적으로 보면 GSOMIA는 상호 호혜적 정보교환이지만,
현재는 일본에 매우 유리하다.
북한의 미사일 도발에 대한 대응은 조기경보가 핵심임을 감안하면
한국이 제공하는 정보는 일본 안보에 지대한 도움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GSOMIA가 파기되면 일본의 북한 미사일 발사에 대한
조기경보 시스템 구축은 큰 타격을 받게 된다.
많은 외교 전문가들은 GSOMIA를 파기하면
한국이 미국의 외교적 지원을 받아내기 어려운 상황을 초래하고,
미국의 동북아 핵심전략은 더욱 친일로 흘러갈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한다.
이는 GSOMIA가 한·미·일 관계의 핵심이며,
미국은 한·미동맹보다 미·일동맹 을 더 중요시한다는 얘기와 다름없다.
즉, GSOMIA를 파기하면 한·미동맹이 약화된다고 주장하는 이들의 주장은
한국은 미·일동맹 의 종속변수 정도임을 스스로 받아들이는 거나 마찬가지다.
현재 한·미·일 관계는 상당한 모순을 드러내고 있다.
미국이 추구하는 한·미·일 안보구조가 동등한 대칭적인 것이 아니라,
한·일 관계를 미·일 관계 밑에 두는
계선적인 하부구조로 만들려고 한다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
수직적 한·미·일 계선구도 속에서 GSOMIA가
한국의 전략적 역할과 중요성을 약화시키는 역할을 한다면 파기하는 게 당연하다.
게다가 미국은 일본의 경제침략 도발을 묵인하고 있다.
김현종 청와대 국가안보실 2차장은 지난 12일
“(지난달 방미에 대해) 우리의 입장을 객관적으로 설명하고
미국이 한·미·일 공조를 더 중요시하는지,
재무장한 일본을 위주로 나머지 아시아 국가들을 종속변수로
아시아 외교정책을 운용하려 하는지를 파악하려 했던 것”이라며
“미국이 한·미·일 공조가 중요하다 생각을 하면 관여를 할 것이고,
무장한 일본 위주로 아시아 외교정책을 하겠다 하면,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 차장의 말대로 미국이 한·미·일 안보 관계보다
일본의 재무장을 더 중요하게 판단한다면, GSOMIA 파기를 무시할 것이다.
반면 한·미·일 3각관계를 중요시 한다면 일본이 경제도발을 중지하도록 나설 것이다.
특히 미국이 만일 일본과 경제도발을 협의하지 않았다면,
동북아 안보질서를 한·미·일 구도로 가져가기 위한 첫걸음인 GSOMIA의 파기 상황을
그대로 지켜볼 수는 없을 것이다.
사실 ‘GSOMIA 카드’ 는 미국에게 한·미·일 안보체제 를 유지하려면
일본의 한국에 대한 경제침략을 중지시키라는 궁색한 요구로 읽힐 수 있다.
그러나 이는 현실이다.
미국은 3국 안보체제 유지를 위해서라도
한·일간 경제전쟁에 개입해 더 이상 피해를 확산시키지 않도록 해야 할 의무가 있다.
한국 정부는 GSOMIA 파기를 통해서라도
일본의 화이트국가 배제조치 중단을 시도해야 한다.
상대방 아킬레스건을 건드리는 카드를 사용조차 하지 못한다면
두고두고 아쉬움이 남을 것이다.
GSOMIA 파기 선언은 일본이 지난달 각의 결정을 하기전에 했어야 했다.
지금이라도 서둘러야 한다.
시간이 흐를수록 미·일이 고민하는 시간을 줄여 효과는 반감되기 때문이다.
GSOMIA 파기는 또 박근혜 정부 이전으로 한·일 관계를 복원하는 것일수도 있다.
동맹관계를 강화시키는 것은 상호 신뢰다.
일방적 요구나 일방적 양보는 신뢰 상실로 이어진다.
한미동맹에서도 마찬가지다.
미국이 지나치면 지나치다고 이야기 해야 동맹이 강화된다.
한·일간生存적인經濟戰爭이 벌어지고 있는 마당에,
미국 심기를 건드릴까 우려해 GSOMIA 파기조차 결정하지 못하는 나라는 非正常 國家다.
설사 政府의 GSOMIA 破棄 宣言에도 不拘하고
美·日이 아무런 行動 變化를 보이지 않는다면,
韓·美同盟이 堅固하지 않다는 것을 確因하는 次元의 의미가 나름 있다.
아무리 도널드 트럼프 美國 大統領이 원하는대로 防衛費 分擔金 6兆 를 준다 하더라도
韓·美同盟이 ‘沙上樓閣’에 불과하다는 現實에 눈뜨게 될 것이다.
京鄕新聞에서 拔萃
己亥年 光復節 무렵에
恒産恒心으로 너나드리(澯)
★ 삶과 文化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
여름, 이놈도 드디어 바람에 등을 떠밀려 가는구나.
한 줄기 새벽바람에 눈을 떴다.
窓門을 열고 잠이 들었나 보다.
이불을 슬며시 끌어당겼다.
자지러지게 울어대던 수매미도 힘이 빠졌구나.
7年 어두운 땅속에서 나와서 날개 달고
보름 동안 交尾 한 번 하자고
목 놓아 암컷을 부르다 스러져 가고 마는 너!...
그게 너의 고종명(考終命)이거늘!...
오늘따라 쇠잔해진 울음소리가 처연하게 들린다.
여름 내내 수박과 葡萄와 복숭아를 달고 살았다.
과일 값도 장난이 아니니 조각으로
또는 알알이 해체해 비닐봉지에 담아서 冷藏庫에 넣어놓았다.
목구멍은 밤새 갈증에 시달렸다.
새벽에 선잠이 깨면 보드라운 햇사레 복숭아 한 입을 깨물고,
高敞 수박 한 조각을 씹었다.
그래도 조갈이 나면 大阜島 캠벨 葡萄 몇 알을 목구멍에 터뜨렸다.
瞬間 입안에 퍼지는 단물의 서늘한 카타르시스.
불면에 시달린 머릿속이 淸凉해진다.
果肉의 소확행마저 허락되지 않았다면 나의 여름은 지치고 비루했을 게다.
‘주여, 지난여름은 偉大했습니다.
들녘엔 바람을 풀어놓고...
마지막 과일들이 무르익도록 분부해주소서’(릴케, ‘가을날’ 부분).
지금쯤 검푸른 바다 깊은 곳에는 錢魚와 고등어가 살에 기름을 올리며
그 누구의 밥상 안주를 위해 헤엄치고 있으리라.
개펄 바닥에서는 야들야들한 가을 주꾸미가 자라고,
漁夫들은 아이처럼 禁漁期(5.11~8.31) 解除를 기다린다.
여름내 冷氣만 追從했던 내 미뢰(味蕾)도 이제 입맛을 다지고 있다.
어느 때부터인가.
季節은 思索하기도 전에 火急하게 하룻밤 사이에 가고 왔다.
아직 늦더위가 저만치에서 서성대지만 곧 換節期의 뼈마디가 욱신거리리라.
熟醉의 嫌疑로 일찍 깬 새벽!...
바람의 점성(粘性)이 다르다.
사위는 조용하고 머리는 명징하다.
혼자다.
夜窓에 문득 한 中年 男子가 서있다.
白晝의 窓은 나를 비추지 못했다.
저 몰골, 이게 自畵像이구나.
그 민낯에 秘密과 慾望, 恥辱과 呵責, 虛無와 조바심이 덕지덕지 묻어 있다.
촛불을 끄기라도 하듯 한 줄기 적막한 바람이 쉬익 스며든다.
이때다.
閃光처럼 腦裡를 스친 건지,
어디선가 들려온 건지 나는 모르겠다.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
이 어스름한 개와 늑대의 시간에 靑春 이후 忘却한,
이 짧지만 강렬한 시구(詩句)가 갑자기 튀어나와 창처럼 폐부를 찌를 줄이야.
프랑스 詩人 폴 발레리(1871~1945)의 難解한 長詩
‘海邊의 墓地’ 마지막 연의 絶唱.
後代 詩人들의 오마주.
‘살아야 한다’가 아니고 ‘살아야겠다’다.
‘산다’라는 동사 앞에 ‘tenter(try)’라는 동사가 더 있다.
原作의 意味에 充實하고자
‘살려고 애써야 한다’로 飜譯한 것도 있지만 詩 같지가 않다.
韓國日報에서 拔萃
己亥年 光復節 무렵에
恒産恒心으로 너나드리(澯)
♣ 폴리페서와 앙가주망(engagement)...
오랜 參與經歷의 조국은 폴리페서 아니다
하나, 入閣을 앙가주망이라고 보긴 어려워
敎授 政治參與에 대한 合理的 代案 必要
最近 조국 서울大 敎授가 論爭이 되고 있다.
조 교수가 民情首席에 이어
法務部 長官으로 內定되면서
保守陣營은
그를 ‘폴리페서’라고 盟批判하고 있다.
조 內定者는 自身의 參與는 知識人의 義務人 現實參與,
즉 ‘앙가주망’이라고 反駁했다.
폴리페서란 出世慾에 사로잡혀 本業을 젖혀 두고
權力을 찾아다니는 敎授를 말하는 바,
그를 그렇게 볼 수 없다.
그는 權力을 찾아 불나방처럼 살아온 것이 아니라
오래 전부터 自己犧牲을 하며 社會 參與를 해 왔기 때문이다.
즉 오래 전부터 앙가주망해 왔다.
現 政府에 直接 參與한 것도
그 延長線에서 그랬을 것이다.
따라서 폴리페서의 數十 倍나 더 ‘權力의 走狗’ 로 살아온
自有韓國黨의 政治檢事(‘폴리檢事’) 出身 等이
그를 폴리페서로 모는 것은 웃기는 일이다.
이명박 때 民主化 運動으로 認定한 私奴盟 事件을
시비 거는 것도 마찬가지다.
또 폴리페서가 問題라면,
이명박ㆍ박근혜 政府에 들어간 수많은 폴리페서들에
대해서는 왜 沈默했는가?
갑자기 任命職으로 政府에 들어가는 敎授도
辭表를 내도록 法制化하겠다고
나서고 있는 것 亦是 웃음밖에 안 나온다.
그게 問題라면 이명박ㆍ박근혜 때
法制化하지 왜 이제 와서 亂理인가?
단 나는 ‘苦難의 參與’의 길이 앙가주망이지
華麗하게 권력으로 들어가는 것을
앙가주망이라고 볼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앙가주망이라는 말을 처음 쓴
프랑스 哲學者 사르트르도 알제리 植民戰爭 反對 等
權力에 반하는 외로운 實踐을 指稱했지,
入閣을 앙가주망이라고 부르지는 않았던 것 같다.
즉 조 內定者의 오랜 實踐은 앙가주망이지만
입각을 앙가주망이라 부르는 것에는 否定的이다.
대신 保守的 學者가 문재인 政府에 反對해
靑瓦臺 앞에서 弄聲을 한다면,
설사 그것이 틀린 것이라고 하더라도
앙가주망이라고 보아야 한다.
우리는 이명박ㆍ박근혜 政府에 參與하는 것은
出世를 위한 폴리페서이고
김대중ㆍ노무현ㆍ문재인 政府에 參與하는 것은
知識人의 使命에 의한
앙가주망이라고 생각해선 안 된다.
前者도 순수한 知識人의 使命에 의한
앙가주망일 수 있고
後者도 出世慾에 의한 것일 수 있다.
어느 쪽이건
“우리는 너희와 다르다”는 道德的 優越意識에서
“나의 參與는 앙가주망이고,
너희들의 參與는 폴리페서”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폴리페서와 앙가주망을 가르는 것은
어느 편이냐가 아니라
具體的 個人의 이전의 삶과 實踐經歷일 것이다.
歷史的으로,
박정희 政權 때는 敎授들이 辭表를 내고
權力에 들어갔다.
그러나
政權이 무너지자 이들이 洛東江 오리알이 되는 것을
본 後輩들은 전두환이 들어서자
休職을 할 수 있도록 規則을 바꿨다.
民主化가 되자 學生들이 들고 일어나 이들을 쫓아냈고,
辭表를 내고 參與하도록 다시 學則을 바꿨다.
김영삼 시절 서울대의 박세일, 이각범 敎授는
辭表를 내고 參與했다.
그러나 2000年代 들어서자
政ㆍ官界로 나가는 敎授들에게 私立大學들이
로비 必要性 때문에 앞장서 休職을 勸誘했다.
이에 國立大學들도
政ㆍ官界 나갔다가 다시 돌아와
敎授를 하고 싶다는 敎授들의 集團利己主義 때문에
選出職이 아닌 경우 休職을 해 주도록 學則을 바꿨다.
그러나 나는 硏究機關長 등이 아니라면 長官이나
首席 같은 職責으로 들어갈 경우도
辭表를 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美國은 그렇지 않지만
雇用市場이 완전히 開放되어 있는 美國 大學과
우리는 다르다.
그것이 비싼 登錄金을 내고 敎授가 아닌
時間講師 授業을 들어야 하는 學生들이나
敎授자리 나기만 목 빠지게 기다리고 있는
수많은 時間講師 等 後學들에 대한 禮義라고 생각한다.
事實 그들이 華麗한 權力의 맛을 보고 돌아와
얼마나 좋은 敎授와 學者로 講義와
硏究를 할 수 있을지 疑心스럽다.
조국 論爭이 小毛賊인 政爭을 넘어서
이에 대한 合理的인 代案을 만드는 契機가 되기를 빈다.
조 內定者도 聽聞會를 通過해 長官이 되면
스스로 敎授職을 整理하고
더 큰 길로 나가는 것이 順理이다.
손호철 서강대 명예교수(정치외교학)
韓國日報에서 拔萃
己亥年 光復節 무렵에
恒産恒心으로 너나드리(澯)
첫댓글 이넘의 우방 이라는것도 이권이 없으면 수수방관 하니 고게 문제요
매번 이렇게 살아가야 허는지 어찌 큰소리 치며 살아가는 나라가 되면 안되나?
國力을 키워야 해! 國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