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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손의 카리스마’ 강신호전경련 회장 |
“자질 없는 자식에 물려주느니 전문경영인에 맡겨 기업 살려야” |
황호택 동아일보 논설위원 hthwang@donga.com |
● 기업이 얼마나 애국하는데 反기업 정서라니… ● 이건희 회장에게 보낸 편지, 정부 심부름 아니다 ● LG 구본무 회장, 반도체 ‘빅딜’ 때문에 ‘꽁’…그래도 곧 풀릴 것 ● 전경련도 후원금 낼 수 있는 정치풍토 마련돼야 ● 전경련은 정부 시녀 아니다, 그러나… ● 박카스의 명성, 자이데나가 이어간다 |
강신호(姜信浩·79)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은 우리 나이로 올해 팔순에 들어섰다. 1927년생 토끼띠다. 서울 용두동 동아제약 본사 회장실에서 세 시간 가까이 인터뷰가 이어졌는데도 그는 피로한 기색 한번 비치지 않고 조곤조곤 답변했다. 인터뷰 중간에 비서실 직원이 “원래 한 시간 반으로 약속이 돼 있다”고 상기시켰지만 강 회장은 “괜찮으니 더하자”고 했다. 강 회장은 서울대 의대를 졸업하고 독일 프라이부르크 대학에서 내과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의학박사 출신으로 제약회사 회장을 하고 있으니 회사 이미지를 위해서라도 건강관리를 잘 해야 할 터. 그는 규칙적이고 절제된 생활로 건강을 유지한다. 지하철을 타고 다니며 일을 보고, 골프장에서는 카트를 타지 않고 걸어다닌다. 2003년 손길승 회장이 SK 비자금 사건과 관련해 사퇴하자 전경련 정관에 따라 부회장단에서 연장자이던 그가 회장직(29대)을 물려받았다. 지난해 이건희 삼성 회장을 30대 회장으로 추대하기 위해 승지원(이 회장의 한남동 자택에 있는 삼성 영빈관)을 두 차례 방문했으나 뜻을 못 이루고 다시 회장을 맡았다. 1961년 5·16 쿠데타 세력은 기업인들을 부정축재자로 몰아 수감했으나 얼마 안 가 재계(財界)와 대화의 필요성을 느꼈다.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의 뜻에 따라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이 만든 단체가 바로 전경련이다. 그 뒤 정주영, 구자경, 최종현, 김우중 등 쟁쟁한 재벌기업 오너들이 회장을 맡았다. 중간 중간에 유창순, 손길승 같은 전문경영인이 재임한 적도 있고 김각중, 강신호 등 중견기업의 오너가 나서기도 했다. 강 회장은 지금도 4대 그룹 회장이 전경련을 이끌어야 힘이 실린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일본 게이단렌(經團連)의 회장은 일본 최대 기업인 도요타자동차의 오쿠다 히로시(奧田碩) 회장이다. “도요타는 사실상 세계 최고의 자동차 회사입니다. 일본의 가전회사 히타치, 도시바, 소니, 산요 등 11개사에서 내는 이익을 다 합쳐도 도요타의 3분의 1밖에 안 돼요. 도요타 사람들이 모두 나서 게이단렌 일을 회사 일처럼 도와줍니다. 지난해 제주도에서 전경련 세미나가 열렸는데, 오쿠다 회장이 자가용 비행기로 와서 강의했어요. 세계 어디를 가도 일본의 경제대통령 같은 대접을 받지요. 한국의 나 같은 전경련 회장은 알아주지도 않아요. 누가 하느냐에 따라 차이가 큽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건희 회장이 맡아야지요. 처음에는 할 듯하다가 두 번째 찾아갔더니 건강 때문에 안 되겠다고 그러더군요. ‘폐암으로 수술한 지 5년이 안 돼 재발할지도 모르니까 못 한다’고 했습니다. ‘강 회장이 대신 해주면 협조를 다하겠다’고 하더군요. 저는 정주영 회장에게서 큰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정몽구 현대자동차 회장한테 해달라고 했더니 그 양반도 대외활동엔 자신이 없어 안 나가겠다고 했어요. 구본무 LG그룹 회장은 전경련에 뭔가 삐쳤는데 그게 너무 오래갑니다. 구 회장도 롯데의 신격호 회장처럼 대외활동을 좋아하지 않아요. 그 다음에 SK 최태원 회장인데 나이가 젊죠. 하지만 4대 그룹에서 회장을 안 맡는다고 해서 전경련이 일을 안 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일을 잘해 4대 그룹 회장이 전경련에 더 관심을 갖게 해야죠.” 이건희 회장에게 보낸 편지 마침 인터뷰를 하던 날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일가가 사재(私財) 8000억원을 사회에 헌납하고 사회공헌활동을 확대하겠다는 발표를 했다. “이 회장이 대단한 결심을 한 것이죠. 사회에 더 공헌하는 분위기가 다른 기업에도 전파됐으면 좋겠습니다. 삼성은 명실상부한 우리나라 대표기업입니다. 수출도 제일 많이 하잖아요. 세금을 그렇게 많이 내니까 정부도 그 돈으로 저소득층을 지원할 수 있지 않습니까. 애국자가 어디 따로 있나요. |
2004년 노무현 대통령 모시고 베트남 호치민시에 갔더니 삼성 광고 간판이 여기저기 서 있었습니다. 노 대통령이 그걸 보고 ‘잘한다’고 하더군요. 러시아 모스크바에 가면 ‘LG 브리지’가 있습니다. 온통 LG 광고로 둘러싸여 그런 이름이 붙었죠. 기업들이 그렇게 수출해서 돈을 벌어들이고 해외에 한국의 이름을 날리고 있습니다. 한국 사람들이 외국에 가서 그걸 보면 자랑스럽잖아요. 기업이 그렇게 애국하는데 반(反)기업 정서가 확산되는 것은 이해할 수 없어요. 미국에 체류 중이던 이 회장에게 편지를 보내 막내따님의 불행한 일을 재계를 대표해 위로했습니다. 그리고 건강진단이 끝나면 귀국해 최대 기업의 주인으로서 한국 경제를 위해 일하자고 했죠.”
그는 이 회장에게 보낸 편지를 보여줬다.
‘갑작스러운 여식의 불행한 일에 무어라 위로의 말씀을 드려야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동안 저의 마음만 안타까웠을 뿐 회장님의 슬픔만 더해드릴 것 같아 즉시 연락을 드리지 못했습니다. (중략) 회장님을 비롯해 우리 재계가 힘을 모으면 반드시 잘사는 나라, 부강한 나라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곳 서울은 혹한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몸과 마음을 회복하시고 회장님의 건강한 모습을 뵐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는 이희범 당시 산업자원부 장관이 “이 회장이 귀국했으면 좋겠다”는 말을 한 적은 있지만, 자신이 보낸 편지는 정부의 심부름을 한 것이 아니라고 설명했다.
‘시녀’ 될 필요도, 싸울 이유도 없다
-김대중 정부 때 이뤄진 대표적인 ‘빅딜’이 LG그룹의 반도체를 현대 하이닉스에 준 것이죠. 빅딜은 시장경제 원칙에도 반하고, 실패한 경제정책이라는 평가가 내려졌습니다. 전경련이 그 빅딜에 협조했다고 해서 LG 구본무 회장이 그 뒤로 전경련 회의에 일절 참석하지 않는다지요.
“구 회장으로서는 기분 나빴을 거예요. 그러나 결과적으로 오히려 잘됐지 않나 하는 얘기도 있죠. LG반도체 인수 후 하이닉스가 굉장히 어려워졌지 않습니까. 하여튼 구 회장이 빅딜 때문에 ‘꽁’ 했습니다. 그래서 전경련에 안 나온다는 얘기도 있죠. 하지만 두 번째 큰 기업체의 회장인데 몇 년씩 꽁하고 있지는 않을 겁니다. 그간은 LG필립스 등 사업확장 때문에 바빴겠지만 앞으로는 전경련 활동을 지원해주시리라 생각합니다.”
-대우그룹은 공중 분해됐고 김우중 회장은 병든 몸으로 재판을 받고 있습니다. 김 회장은 전경련 회장도 지냈는데 귀국한 뒤에 만나봤습니까.
“이번에 오셨을 땐 못 만나봤습니다. 사실은 제가 그분을 전경련 회장 시켰습니다. 그분이 처음에 자기 사업이 바빠 안 하겠다고 했죠. 제가 젊은 부회장단 8, 9명을 저녁에 초대해 ‘전경련 맡을 사람이 김우중 회장밖에 없지 않느냐’고 분위기를 잡아 김 회장을 추대했죠.
대우에 아까운 기업체가 많았어요. 베트남과 폴란드의 자동차 공장을 비롯해 해외에 사업을 크게 벌렸지 않습니까. 대우가 죽지 않고 계속 작동했더라면 여전히 4대 그룹으로 남아 있겠죠. 대우그룹 같은 기업이 10개만 있으면 저소득층을 다 먹여 살릴 수 있습니다. 대우가 저렇게 된 것은 아쉬운 일이죠.”
-현명관 전 전경련 부회장이 한나라당 공천으로 제주지사에 출마한다지요. 그분이 강 회장 밑에서 부회장을 했지 않습니까. 그런데 지난해 3월 퇴임하면서 ‘정부에 무조건 박수만 치는 게 재계 역할이 아니다. 정부의 실수에 대해서 정정당당하게 비판하는 용기가 있어야 한다’고 했더군요.
“전경련이 정부의 시녀가 될 필요는 없겠죠. 정부 사람들의 실무경험이 부족해 국가경제발전 계획이 현장 상황과 맞지 않아 차질이 생길 수 있죠. 그럴 때 우리가 ‘그런 게 아니다’고 설명하는 거죠. 대안도 내놓고요. 실리주의로 하죠. 정부하고 밤낮 싸운다고 되겠습니까. 실무자끼리 만나 납득을 시켜 우리가 원하고 시장경제에 맞는 방향으로 끌고가는 게 중요합니다.”
-목소리 큰 게 ‘장땡’이 아니라는 말씀입니까.
“목청만 돋우면 뭐해요. 싸움할 거야? 그러면 정부 사람들이 들어줍니까.”
전경련이 왜 정치자금 못 주나
노무현 정부 출범 직후 불법 대선자금 제공과 관련해 재계 총수들이 검찰에 불려다니며 수사를 받느라 곤욕을 치렀다. 과거 전경련은 재계의 정치자금을 모아 여당에 전달하는 창구 노릇을 한 게 사실. 그러나 김영삼 정부 때부터 전경련이 그 일을 안 하게 되면서 재벌들이 각개 플레이로 여당과 야당에 자금을 전달했다. 당선 가능성이 높은 쪽에 더 가게 되지만 세상 일을 미리 알 수 없으니 양쪽에 다 보험료를 냈다. 이 모두 1997년과 2002년에 벌어진 일들이다. 강 회장은 대선자금 수사 때 기업인들이 마음 놓고 기업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수사를 조속히 종결해달라고 송광수 당시 검찰총장을 세 차례나 찾아갔다.
“송 총장에게 ‘정치자금 준 사람들이 주고 싶어 줬겠냐’고 했지요. 이 사람들이 투자계획을 세우고 중요한 일을 해야 하는데 계속 수사로 붙잡아놓으면 경제에 플러스가 안 된다고 했습니다. 두 번 가고, 세 번째 가서는 ‘제가 왜 온지 아시죠?’라는 말만 했죠. 깨끗한 정치자금만 오가면 그보다 더 좋은 게 없겠죠. 국고(國庫)에서 나오는 돈만 가지고 해결된다면 좋겠지만 그게 가능하겠습니까. 요즘 국회의원들 정치하다 보면 빚이 늘어난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빚이 늘지는 않게 해줘야지요. 일본 게이단렌은 재계를 지지하는 자민당에 돈을 줘요. 다른 당한테는 안 주죠. 우리나라에서 그렇게 할 수 있습니까? 개정 정치자금법이 나왔을 때 과연 정치인들이 그것으로 만족할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습니다. 차라리 양성화해 당에서 전경련에 얼마를 도와달라고 하면 정정당당하게 도와줄 수 있지 않겠나 싶었어요.” -올해는 지방선거, 내년에는 대통령선거, 그 다음해에는 국회의원선거가 있는데요. 정치인들이 기업에 손 벌리는 관행이 과연 단절될 것 같습니까. “전경련이 처음 생겼을 때는 정치자금 모금이 전경련의 가장 큰일이었을 거예요. 그런데 지금은 그 일 안합니다. 다가오는 선거에서 정치자금을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저한테 묻는 기업인이 있습니다. 지금은 정치자금을 주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다 처벌하게 돼 있어요. 세상에 비밀이 어디 있어요. 가령 동아제약에서 준다 할 적에 회계과에 있는 사람이 한두 사람이에요? 그 사람들 입 다 틀어막을 수 있어요? 나중에 탄로나면 동아제약도 큰 손해 보고, 받은 사람도 당하는 거지요. 앞으로 불법 정치자금은 없어지리라고 생각합니다. 과거에는 정치자금 내고 정경유착했지만 그런 시대는 갔으니까요. 이제 기업들은 아이디어를 짜내고 열심히 신제품 만드는 데만 힘을 쏟아야지요.” 전경련을 비롯한 경제 5단체는 지난 1월 국가인권위원회의 국가인권기본계획(NAP) 권고안에 대해 진보세력의 주장을 반영한 이상론이라며 재검토를 촉구했다. 경제 5단체는 “차기 인권위에서는 균형잡힌 시각을 갖고 사회적 덕망을 쌓은 인사들에게 참여기회를 줘야 한다”며 심한 표현으로 인권위를 비판했다. 강 회장은 여전히 강한 톤이었다. “거기서 나오는 얘기가 민노총 슬로건하고 똑같아요. 다른 게 뭐가 있어요? 인권위에서 투표하면 늘 8대 1로 나오잖아요. 반기업 정서에서 나오는 권고를 우리가 어떻게 받아들입니까. 인권위 권고안대로 하면 경제뿐 아니라 나라가 어지러워진다고 5단체장이 의견을 모은 거죠.” -기업과 관련한 세금이나 부의 사회 환원 요구가 지나치다고 생각합니까. “1967년 동아제약이 상장을 했어요. 그때 선친께서 상장협회 회장이셨죠. 그해 이익을 좀 내 30% 배당을 받았어요. ‘아이고 좋다’고 생각했는데, 세금이 너무 많이 나왔어요. 주식 갖고 있어 봐야 큰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어요. 그래서 주식의 일부를 고려대와 연세대에 기증했어요. 그후로 주식에 대한 욕심이 없어졌어요. 내가 농사꾼이라고 해봐요. 쌀을 10가마 수확했는데 세금을 3가마 가져가면 괜찮지만 7가마 가져가면 일하고 싶은 생각이 나겠어요? 사유재산을 인정해야 합니다. 너무 빼앗아가면 기업인이 의욕을 잃게 되죠.” 투자와 사회공헌은 기업의 필요조건 -수출이 잘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기업들이 수출로 벌어들인 돈을 쌓아두고 신규 투자를 잘 안한다는 얘기가 들리더군요. “제가 보기에는 그렇지 않아요. 올해 600대 기업을 조사해보니까 지난해보다 20% 더 투자하겠다고 했습니다. 기업은 가만있으면 시장경제 원리에 따라 자연도태됩니다. 국제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뭐든 해야 돼요. 싸고 좋은 물건을 만들어야죠. 세계 각국의 기업들은 지금도 싸고 좋은 물건 만들어 팔기 위해 경쟁하고 있습니다. 의약품을 예로 들어봅시다. ‘스티렌’이라는 위염 치료제가 있어요. 7, 8년 걸려 개발한 약이지요. 위염 환자가 스티렌을 먹으면 속이 편합니다. 첫해에 100억원, 다음해에 200억원, 그 다음해 340억원 매출이 일어났죠. 올해엔 450억원어치는 팔릴 겁니다. 왜 이렇게 잘 팔리느냐. 효능이 좋으니까요. 좋은 물건을 만들려면 투자를 해야 합니다. 세계적 제약기업인 화이자에는 연구인력만 1만1000명이 있어요. 브리스톨 마이어스 스퀴브엔 9000명, 쓰리엠엔 7000명 있어요. 동아제약 연구인력은 150명 정도 됩니다. 경쟁이 안 되는 숫자지만 운이 좋아서 스티렌과 ‘자이데나’(발기부전 치료제)가 나온 거예요. 신약은 부가가치가 높기 때문에 블루오션으로 가는 징검다리입니다. 신약을 팔아 연구개발비를 빼고 남은 돈을 다시 연구개발에 투자해서 새로운 제품을 만들어냅니다. |
소니가 1970년대까지는 좋은 제품 만들었지만 그후에 좋은 제품 안 나오니까 망하다시피 해 지금 미국인 사장이 와 있잖아요. 새로운 제품 안 나오니까 그렇게 됐죠. 싼 값에 소비자를 만족시키는 제품을 만들려면 투자를 해야 됩니다.
파주 LG필립스 공장은 30층짜리 아파트 50개가 들어가는 규모예요. 상상도 못하게 큽니다. 그렇게 대량 생산해야 원가를 낮출 수 있죠. 국제경쟁에서 이기려면 자본경쟁력이 뒤따라야 합니다. 자본을 투자해서 싸고 좋은 제품을 만들어야 소비자가 만족하고 그래야 돈을 벌 수 있죠. 그게 시장경제입니다. 기업은 투자하지 말라고 해도 투자할 수밖에 없어요. 1년쯤은 안 할 수 있죠. 하지만 2년 투자 안 하면 경쟁에서 밀려 망하는데 왜 투자를 안 하겠습니까.”
-정부의 기업정책 중에서 우선적으로 개선됐으면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규제완화 이야기를 많이 하지요. 강철규 공정거래위원장도 처음에는 규제를 많이 했는데 요새 와서는 누그러졌습니다. 이해찬 총리도 저한테 ‘규제 때문에 사업하기가 어려우면 구체적으로 예를 들어달라. 검토해서 풀어주겠다’고 합니다. 하여튼 기업이 사업을 해 나가는 데 자신감이 생기도록 규제를 큰 폭으로 완화해줬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사회의 반기업 정서가 심각한 편이라고 생각하나요.
“전경련의 메인 비즈니스가 ‘반기업 정서 해소’입니다. 예산의 반 이상을 반기업 정서 해소에 쓰고 있어요. 두산그룹 비자금 사건 같은 것이 터지면 기업 전체에 대한 이미지가 나빠질 수밖에 없지요.
전경련 회원사가 사회공헌사업에 연 3조원을 쓰고 있습니다. 삼성이 5000억원을 쓰고요. 전경련에서 연말에 대통령 모시고 음악회 열어 70억원을 거둡니다. 그 돈으로 지난해 전동 휠체어 2300여 대를 사서 기증했어요. 한 대에 300만원이 넘어요. 신문에서 그런 것도 좀 써주세요. 미국에서도 사회공헌사업을 하는 회사의 제품을 더 많이 사주는 경향이 있다고 합니다. 사회공헌사업은 광고처럼 기업들이 해야 할 필수과목입니다.”
5대 와인 전문가의 와인 예찬
동아제약은 대구에서 사과주와 포도주를 만들던 파라다이스를 인수해 한때 ‘위하여(爲賀汝)’라는 이름의 백포도주를 생산했다. 포도주가 대중화하지 않았을 때였다. 불고기집이나 레스토랑에서 주로 팔았다. 와인셀러(와인을 보관하는 냉장고)가 없어 와인을 땡볕에 내놓던 시절이라 와인이 산패(酸敗)해 반품됐다. 호텔에서도 수입품과 가격이 비슷한 국산 와인을 찾는 손님이 별로 없었다.
농촌에서 포도농장을 가꿀 일손을 구하기도 어려웠다. ‘위하여’ 생산을 중단하고 프랑스에서 주문자상표부착방식(OEM)으로 생산해 들여왔다. 지금은 그것도 집어치우고 계열사인 수석무역을 통해 와인을 수입한다.
강 회장은 내로라하는 와인 전문가다. 아시아나항공 1등석에 들어가는 포도주를 심사하는 다섯 명 중의 한 사람이다. 강 회장은 독일유학 때인 1956년부터 와인을 마시기 시작해 올해로 꼭 50년이 됐다. 그가 와인 이야기를 시작하면 몇 시간 강의를 할 수 있을 정도로 끝이 없다. 의학적 지식을 곁들인 레드와인 예찬론을 들어보자.
“전에는 흰 술이 70%, 빨간 술이 30% 정도 팔렸어요. 그런데 그게 거꾸로 됐습니다. 지금은 70%가 빨간 포도주예요. 영국에서 발생하는 ‘랜싯(Lancet)’이라는 의학잡지 때문에 그렇게 됐습니다. 랜싯에는 실험방법까지 게재됩니다. 거기에 실린 논문은 세계적으로 인정받지요. 레드와인에는 항산화 작용을 하는 폴리페놀 성분이 있죠.
사람이 살아가자면 산소가 들어가고 탄산가스가 나오는 신진대사를 하지요. 축적된 탄산가스를 빨리 몸 밖으로 내보내야 하는데, 일부 남아 있는 탄산가스가 세포막에 손상을 입혀 노화작용을 일으킵니다. 노인 얼굴에 쭈글쭈글 주름이 지는 것과 같은 원리이죠. 그걸 산화작용이라고 하는데 폴리페놀이 그걸 막아줍니다.
프랑스 프로방스 지방 사람들은 고기를 많이 먹고 레드와인도 잔뜩 마십니다. 상식대로라면 빨리 죽어야 맞죠. 그런데 더 오래 살아요. 레드와인이 항산화 작용을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고기와 술을 많이 마셔도 오래 사는 거죠. 이것을 ‘프렌치 패러독스(French Paradox)’라고 해요. 이런 연구 결과가 랜싯을 통해 세 번 나왔습니다. 제가 국내에 번역해 소개한 적도 있습니다. 레드와인이 건강에 좋다고 소문이 나면서 레드와인과 화이트 와인의 판매량이 역전된 것입니다.”
-와인을 좋아하는 원로 한 분이 강 회장으로부터 칠레 와인 발디비에소 말벡을 대접받았는데 맛이 좋아서 그 뒤로 발디비에소만 마신다고 하더군요.
“2004년 노무현 대통령을 모시고 칠레에 갔을 때 발디비에소 공장에 간 적이 있습니다. 본래 샴페인을 만들던 회사라고 하더군요. 칠레는 세계 10대 포도주 생산국입니다. 아르헨티나가 칠레보다 더 많이 생산하는데 한국에선 칠레 것이 많이 팔리고 아르헨티나 것은 알려져 있지 않죠. 요즘은 싸고 좋은 아르헨티나 제품이 많이 나옵니다. 과거에는 수입 와인의 80%가 프랑스제였죠. 그런데 요새는 40% 이하로 떨어졌어요. 이탈리아, 스페인, 호주, 칠레, 아르헨티나, 미국, 남아프리카 와인이 더 맛이 좋아서라고 할까….” 그는 와인 이야기가 길어진다고 생각했는지 “포도주 얘기 계속 해도 돼요?”라고 물었다. 필자가 “소득이 높아지면서 와인 애호가가 늘어나 좋은 정보가 된다”고 격려했다. “프랑스, 헝가리, 이탈리아, 스페인, 포르투갈 등 유럽의 포도주는 규격이 있었죠. 그런데 미국, 호주, 남아메리카 등 신대륙에서 만드는 와인은 대륙의 양조법을 바꿨습니다. 포도만 넣고 발효시키는 게 아니라 향내 나는 나무를 잘라넣어 함께 발효시키죠. 그래서 냄새와 맛이 좋은 와인이 나오죠. 유럽대륙의 규격을 무시하는 거죠.” -하루에 포도주를 몇 잔씩 마십니까. “점심 때 한 잔, 저녁 때 한 잔 정도죠. 본래 술을 많이 했는데 지금은 나이가 여든이라 절제하고 있죠. 레드와인을 주로 마십니다.” 전문경영인 길러야 살아남는다 동아제약은 지난해 후계구도에 변화가 있었다. 강 회장의 차남 강문석 부회장이 대표이사에서 밀려났다. 동아제약의 지분은 현재 강 회장 5.19%, 강 부회장 2.84%, 4남 강정석 전무 0.43%. 강문석 부회장은 지분매집 경쟁을 벌이다 패퇴해 동아제약을 떠났다가 지금은 계열사인 수석무역 대표이사로 복귀했다. -공사석에서 “동아제약을 세계적 제약회사로 키우는 데 가장 적합한 사람이 맡아야 한다. 안될 걸 뻔히 알면서 인정상 자기 자식에게 기업을 넘겨줬다가 망하는 경우를 많이 봤다”고 말하던데요. 이 소신에 변함이 없습니까. “고생을 해야 사람이 되는지, 선천적으로 그런 성격을 타고 나는지 그건 모르겠어요. 어쨌거나 사장 자격이 있는 사람이 사장을 맡아야지요. 공사(公私)를 구분 못하거나 낭비벽이 있는 사람은 사장 자격이 없지요. 회사 돈과 주머니 돈을 구분할 줄 알아야 해요. 사장 자격이 없는데도 아들이라고 해서 회사를 맡으면 되겠습니까. 기업은 일을 통해 사람을 키웁니다. 사람을 못 기르면 결국 그 기업은 망하고 맙니다. 그래서 요새 경영권을 놓고 고민하는 오너가 많은 거 같아요. 자식을 귀엽게 키우다보니까 고생을 제대로 안 했다고 할까요. 자식이 기업에 들어와 제대로 안 하는 거죠. 그러면 아랫사람이 따라오지 않습니다. 리더십이 통하지 않으면 회사가 와해돼요. 그렇게 되는 게 좋겠습니까, 아니면 전문경영인이 책임감을 갖고 시작과 끝을 잘 매듭지으며 일을 추진하는 것이 좋겠습니까. 회사는 전문경영인에게 맡기고, 아들에게는 맞는 일을 찾아주는 것이 아들을 위해서도 좋지 않을까요. 나중에 회사가 망하는 것보다는 그게 낫지요. 큰 회사를 맡을 능력이 없는 아들에게는 작은 회사를 떼주거나 개인사업을 하도록 도와주는 게 좋아요. 유한양행을 설립한 유일한씨는 아들에게 회사를 넘겨주지 않고 전문경영인에게 맡겼습니다. 중국계 부인과의 사이에 낳은 아들이 한때 회사 경영에 참여했는데 아들에게 실망했죠. 하여튼 지금 유한양행에 주인이 없잖아요. 주인이 없지만 전문경영인들이 제대로 끌고 가면 훨씬 좋은 거지요. 기업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전문경영인을 길러야 합니다.” 강 회장이 후계구도에 관한 이야기를 하자 배석한 동아제약 임원들이 긴장해 듣는 모습이었다. 꽤 민감한 이야기여서 다음날 전화를 통해 다시 한 번 확인했다. 그는 거듭 “공사를 구별 못하고 자격이 없는 자식에게 회사를 넘겨 망치기보다는 전문경영인에게 맡겨 회사를 살릴 수 있다면 그 길을 택해야 한다. 동아제약을 오너가 없는 유한양행 같은 회사로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
‘박카스’ ‘판피린’ ‘오란씨’ 만들어
그는 후계구도에 관해 이야기하다가 수첩에서 작은 쪽지를 꺼내 보여줬다. ‘유대인, 그 힘의 원천은…’이라는 제목이 붙어 있었다.
‘남과는 무엇이 달라도 달라야 하고, 결코 져서는 안 된다. 어려움을 겪어봐야 비로소 사람이 된다. 투자수익률을 늘 생각한다. 변화를 예측하고, 그 대응책을 생각한다.’
“유대인이 자식 교육을 무섭게 시킵니다. 예를 들어 어느 날 아버지가 돈을 많이 벌었다면서 자식에게 진수성찬을 먹여요. 그런데 어느 날은 돈을 못 벌었다면서 가족을 굶겨요. 어린 자녀에게 돈벌이가 중요하다는 사상을 그렇게 머릿속에 집어넣는 거죠.
이런 일도 한다고 해요. 아버지가 팔로 받아줄테니까 아들에게 몸을 던지라고 해요. 그래놓고 아들이 몸을 던지면 팔을 뒤로 빼버리지요. 아들이 나가 떨어지잖아요. 그래놓고 아버지가 ‘세상에 믿을 놈은 너밖에 없어’라고 말한다는 겁니다. ‘너만 믿어’, 그게 유대인의 자녀 교육이에요.”
그는 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수첩을 꺼내놓고 경영학 강의도 했다.
“기업은 사람에게 기회를 부여하고, 신뢰하며 맡기고, 나아갈 방향을 제시해야 합니다. 안이함보다는 어려움에 도전하는 힘과 용기를 줘야 합니다. 말은 지도자의 생명이자 무기예요. 말은 공짜인데 말을 잘하면 사람들을 다 내 편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얼마나 좋아요. 직원들은 일이 기대한 대로 되지 않으면 불안해합니다. 리더의 설명이 필요한 시점이죠. 20년간 잘 해온 방법이라 하더라도 그것을 파괴할 때는 새로운 방법이 좋다는 걸 납득시켜야 합니다. 그러면 따라옵니다.
경영자의 실천 지침은 알기 쉽고 명확해야 합니다. 일관된 언행을 보여줘야 하지요. 사내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동기부여를 해야 합니다. 성과에 대한 정확한 평가가 중요합니다. 평가를 제대로 해줘야 돼요.”
-독일 유학해 의학박사까지 됐는데 의대 교수 안 하고 기업 CEO의 길로 들어설 때 혹시 서운하지 않았습니까.
“물론 서운했죠. 제가 광복 전 경성의학전문학교(서울대 의대 전신)에 들어가 광복 후 졸업장은 서울대 의대에서 받았지요. 대학원 다닐 때는 환자 치료도 했어요. 6·25전쟁 후에 제약시설이 거의 다 파괴되다시피 했죠. 제약회사를 복구하라고 미국에서 원조자금을 줬어요. 그 돈을 들고 제약시설을 사러 독일에 갔다가 눌러앉아 공부하게 됐습니다. 3년 반 동안 공부하고 1958년에 학위를 받았어요. 1959년 미국을 거쳐서 미국과 일본의 제약회사 10여 군데를 둘러보고 귀국했습니다.
제가 혼자(외아들)예요. 아버지는 나를 위해 공부하게 하려고 애를 썼는데 대학병원 들어가면 뭐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의학에다 제약 지식까지 가지고 있어 아버지 사업을 도와드리는 데 많은 도움이 됐죠.”
동아제약이 무리한 시설투자와 항생제 제품 과잉으로 경영난에 처해 있을 때였다. 그는 상무로 입사했다. 그가 처음 만든 제품이 ‘박카스’. 그는 ‘판피린’이라는 감기약도 개발했고 음료사업에도 진출해 ‘오란씨’를 만들었다.
슈퍼마켓에 간 박카스
1961년 선보인 박카스는 한국에서 가장 많이 팔린 드링크제. 1980년대 햇병아리 기자 시절에 경찰서장실이나 부장검사실에 가면 으레 차 대신 박카스가 나왔다. 1966년에 연간 판매량 1000만병을 넘어섰고 1976년에는 1억병을 돌파했다. 2000년 한 해에만 7억병이 넘게 팔렸다. 지금까지 팔린 박카스를 줄지어 놓으면 지구를 40바퀴 이상 돈다고 한다.
-최근에는 박카스의 아성이 광동제약에서 내놓은 ‘비타 500’에 밀린다는 얘기가 있던데요.
“박카스가 오랫동안 왕자 노릇을 했는데, 의약품으로 허가를 받아 약국에서만 팔아야 돼요. 그런데 약국의 대형화 추세로 약국 수가 줄었지 않습니까. 젊은 층이 약국에 가서 하얀 가운을 입은 약사한테 400원짜리 박카스 한 병 달라고 하기가 부담스럽죠. 그러니 매출이 줄어들 수밖에요.
그에 비해 ‘비타 500’은 슈퍼마켓에서도 살 수 있습니다. 골프장 그늘집에서도 팔고. 그러니까 매출이 늘어나죠. 요새는 우리가 조금 올라가 다시 비슷해졌을 겁니다. 많이 나갈 때는 한 해에 7억병 팔렸는데 지금은 5억병쯤 나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