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롤스는 윌리엄 리 롤스(William Lee Rawls, 1883~1946)와 애나 에이블 롤스(Anna Abel Rawls, 1892~1954) 사이에서 다섯 형제 중 둘째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폐결핵으로 몸이 약하였으나 성실하고 근면한 사람으로서, 독학으로 공부하여 변호사 자격을 획득하였고 만년에는 볼티모어 시에서 가장 성공한, 존경받는 변호사들 중의 하나가 되었다. 양친 모두 정치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활발한 활동을 하였는데, 특히 어머니는 당시 여성의 평등권을 쟁취하는 데 적극적이었다. 여성의 권리 신장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어머니의 모습은 어린 시절의 롤스에게 큰 영향을 미쳐서, 평생 사회적 약자들을 위하여 노력하는 정의감을 형성하게 되었다. 당시 볼티모어 시에는 대단위 흑인 거주 지역이 있었는데, 롤스는 흑인 들이 자신과 전혀 다른 환경에서 살고 있다는 점을 알게 되었고, 자기가 흑인 아이들과 동무하거나 흑인 아이들의 집을 방문하는 것을 부모가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고 고민을 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여름 방학을 보내던 메인 주의 휴양지에서 사귀게 된 가난한 백인 아이들의 처지를 알게 되면서, 자신이 큰 혜택을 누리고 있다는 사실에도 고민을 하게 되었다. 롤스는 평생 어린 시절의 이 경험들을 잊지 않고, 자신의 학문 활동의 배경으로 삼았다고 한다.
하버드 대학교 교수로 부임한 이후 10년간, 롤스는 『정의론』의 구상에 전념하게 된다. 이를 위해서 정의론과 관련된 자료들을 활용하는 한편 아리스토텔레스, 루소, 칸트 및 헤겔, 존 스튜어트 밀과 같은 고전적인 사상가들의 저작과 씨름하였다. 롤스의 『정의론』 구상에는 학문적인 문헌들 외에도 당시 미국 사회에 현실도 큰 영향을 미쳤다. 롤스는 1960년대 초 ․ 중반에 일어났던 민권 운동에 깊은 관심을 두면서 시민 불복종의 정당성과 범위에 대해서 깊이 논구하게 되었고, 또한 60년대 후반 베트남 전쟁과 관련된 미국 국내의 비판적 움직임에도 정치 철학자로서 적극적으로 관여하였다. 그는 처음부터 베트남 전쟁을 도덕적으로 부당하다며 공개적으로 비판하였고, 베트남 전쟁에 반대하는 학술 대회에도 참여하여 자신의 입장을 천명하는 한편, ‘전쟁과 관련된 문제들’이라는 과목을 개설하여 ‘정의로운 전쟁’에 대한 다양한 논거들을 다루기도 하였다.
부정의한 전쟁을 수행하기로 결정한 당시 미국의 정치적 선택에 군수 산업과 같은 대기업이며 막대한 부를 가진 개인들이 정치 자금과 조직적 로비를 통해서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현실을 목도하면서 ‘경제적 부의 불균등한 배분과 정치적 영향력의 불평등’의 문제를 자신의 『정의론』에서 다루어야 할 과제로 삼게 된다. 게다가 상류층 자제와 하류층 자제에게 병역 의무가 불공평하게 배분되는 현실에도 분노하여 이러한 부조리한 점을 고치려고 대학 내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한편, 정의론적으로도 이 문제를 중요하게 다루게 된다. 롤스의 『정의론』은 고전적 정치 철학자들의 사상과 현대의 경제학적 이론들 외에도 당대 미국의 현실을 개선하려는 열망이 녹아 있는 대작이며, 이러한 점에서도 현대 도덕 및 정치 철학 분야에서 고전으로 분류한다고 해도 전혀 손색이 없다고 하겠다.
롤스의 근본적인 문제 의식
종교적 영향은 깊이 받았던 학창 시절 이래로 롤스는 평생 다음과 같은 근본적인 물음에 깊은 관심을 가졌다. “도대체 우리의 삶이 구원받을 수 있는가? 구원 받을 수 있다면 어느 정도까지 구원받을 수 있는가?” 즉, “인간의 삶은 살 만한 가치가 있는가? 인간의 삶은 살 만한 가치가 있게끔 만들려면 어떻게 하여야 하는가?” 라는 물음이 롤스의 인생과 학문을 관통하는 평생의 화두였던 셈이다.
인간의 본성이기도 한 악함에서 비롯되는 불행이라든가, 행동에 있어서나 성격에 있어서 악하지 않은 사람들의 삶에서 조차도 종국적으로는 무의미한 직업적 성격에 있어서 악하지 않은 사람들의 삶에서조차도 종국적으로는 무의미한 직업적 성공과 개인적 명예를 위해서 모든 에너지를 투여한 결과 인생의 말년에 맞닥뜨릴 수밖에 없는 허무함 등과 같은 문제들에 대해서 고뇌하면서, 롤스는 개인적으로는 긍정적으로 살 만한 가치가 있는 삶을 영위하고자 애썼고, 학문적으로 살 만한 가치가 있는 삶에 대한 문제에 대한 답을 추구하는 데 조금이나마 기여하고자 애썼다.
특히 학문적인 차원에서 롤스는 이러한 실존적인 문제와 사회 구조의 관련성에 주목하여, “인간의 공동 생활을 살 만한 가치가 있게 하는 사회 질서를 구상할 수 있겠는가?”라는 질문을 제기하였다. 롤스에 따르면, 그러한 이상적인 사회 질서의 구상은 현실의 세계를 이루는 경험적인 조건들 및 인간의 속성들을 고려하는, 실현 가능하고 작동 가능한 것이어야만 한다. 현실적인 유토피아가 가능하다는 사실만으로도 이 세상에 살 만한 세상이라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롤스의 근본 사상은 상당히 종교적이다. 정의로운 사회가 가능하다고 충분히 믿을 만한 근거들이 있다면, 우리는 언젠가 어디에선가는 정의로운 사회를 이룰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가질 수 있고, 그렇게 되도록 노력하게 될 것이다. 현실적인 유토피아에 대한 희망과 믿음만으로도 이미 우리의 삶의 가치는 드높아진다는 것이다-물론 그때에도 여전히 각 개인의 실존적인 고뇌는 남아 있겠지만.
정의의 일차적 주제로서 사회의 기본 구조
롤스 정의론의 전반적인 목표는 “올바른 입헌 민주 사회가 되기 위한 도덕적 기초를 제시”하는 데 있다. 입헌 민주주의 사회의 정의론을 구상하는 롤스의 발상은 1917년의 『정의론』에서 다음과 같이 나타나고 있다.
정의의 문제는 사람들 사이에서 중요하게 여겨지는 이익과 부담의 배분을 둘러싸고 대립되는 이해관계와 상충하는 요구들이 있을 경우, 그리고 개인들이 서로 간에 자신들의 여러 권리들을 내세우는 경우에 생겨난다. 정의를 ‘이익과 부담의 올바른 배분으로 풀이한다면, 이 때 해당 집단의 규모와 성격에 따라서 배분되어야 할 재화인 이익과 부담의 내용이, 그리고 배분의 올바름을 판정하는 기준이 정해질 것이다.
롤스는 정의를 개인 간의 정의(personal justice)와 제도의 정의(institutional justice)로 영역화하고, 자신의 관심을 후자에 한정한다. 그리고 제도와 관련된 정의의 영역에서도 한 사회의 근간을 이루는 제도들의 체계, 즉 기본 구조(basic structure)의 정의에 치중한다. 이 때 사회의 기본 제도란 정치 제도, 소유 제도, 경제 제도, 가족 제도 등과 같이 개인의 삶에 중대하고도 지속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회 제도들이 하나의 체계로 결합되어 작동하는 방식으로서, 이 중요한 사회 제도들이 어떻게 개인들에게 기본적인 권리와 의무들을 할당해야 하는가, 그리고 사회적인 협동을 통해서 발생하는 이득을 어떻게 배분해야 하는가를 규정하는 규범 체계이다. 다시 말하면 한 사회의 헌법적 질서를 기본 구조라고 파악할 수 있겠다.
롤스에 따르면, 기본 구조의 정의는 기타 사회 제도들의 차원에서 제기될 정의의 문제에 ‘배경이 되는 정의’로서 역할을 한다. “기타 정의 원리들의 배경을 이루는 기본 구조의 정의 원리들을 찾는 작업은, 다양한 정의의 영역에 공통되는 기준을 적용하면서도 기본 구조와 거기에 속하는 재화들의 특성에 맞는 고유한 방법론을 마련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롤스의 출발점이다. 그리고 “기본 구조를 규율할 정의 원리들을 찾았다면, 이를 배경으로 하여 각 영역에 합당한 관점을 찾아 가면서, 기타의 정의 영역에서 제기될 정의의 문제들을 해결할 원칙들을 차례차례 순서에 따라서 구성하여야 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 롤스의 두 번째 발상이다. 그렇다면 기본 구조의 정의론에 독특한 방법론은 무엇인가?
공정으로서의 정의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의 개인의 인생 전망과 인격에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재화들의 분배 방식을 규율하는 기본 구조는 사회 구성원들의 인생 전체 과정에 중대하고도 지속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이 기본 구조를 어떻게 정할 것인지는 각 개인들에게 거의 생사가 걸린 문제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롤스는 여기서 (1) 일상적인 생활에서 의심 없이 타당하다고 받아들여지는 ‘공정한 경기의 원칙’과 (2) 사회 계약론에서 활용되었던, 국가를 구성하는 행위로서 ‘최초의 합의(계약)’라는 가상적인 개념 도구를 결합하여 기본 구조의 정의론을 구성하는 발판을 삼고자 한다.
‘공정한 경기의 원칙’이란, 상호 협동의 행위 과정에서 생겨난 이익과 부담의 할당을 둘러싸고 경쟁을 벌이는 경우 참여자들은 자기에게 유리한 대로 행동하고자 하는 바를 스스로 제한하고 협동의 규율에 복속하여, 기여한 만큼 협동의 산물인 이익을 배분받을 권리를 가지고, 남들에게도 자기처럼 행동할 것을(욕구의 제한과 협동에의 기여) 요구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다는 것이다. 롤스의 생각에 이 공정한 경기의 원칙이 제대로 작동하려면, 경기(즉 상호 협동 및 경쟁)의 조건 자체를 모든 참여자들이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만일 경기의 규율을 만드는 데 참여하는 당사자들이 자유롭고 평등한 상태에서 자발적으로 그 규율에 합의한다면, 그 규율은 공정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공정’이란 용어는, 자유롭고 평등한 상태에서 자주적인 개인들이 규율을 제정하는 절차를 일컫는다. 상호 협동 및 경쟁의 조건 또는 규율을 만드는 과정 자체가 공정하려면 어떤 요건들을 갖추어야 하는가, 그리고 이 공정한 규범을 제정하는 절차를 통해서 출력될, 기본 구조를 규율할 정의 규범들의 내용은 무엇인가가 ‘최초의 합의 또는 계약’과 관련된 문제이다.
이 ‘최초의 계약’을 맺는 상황에 참여하는 개인들은, 가령 헌법 제정을 위한 국회에 참여하는 제헌 의원들처럼, 비슷한 이익과 입장을 가진 사람들을 대표하는 자격을 가지고 자신의 이익과 자기가 대표하는 잡단의 이익을 최대화하는 정의 규범을 제정하려고 매우 진지하게 최선을 다할 것으로 가정할 수 있다. 롤스가 생각하건대, 최초의 계약 당사자들은 출신과 가정 환경, 재산 소유 및 학력, 재능 및 신체적 능력 등과 관련해서 차이가 날 수 있는데, 만일 당사자들이 이러한 차이를 가진 채 사회의 기본 구조를 규율할 정의 규범을 창출하는 최초의 계약 행위에 들어오는 것을 허용한다면 산출된 정의 규범에는 계약 당사자들의 협상 능력의 차이가 반영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사회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있는 개인들과 이들을 대변하는 계약 당사자들은 이러한 계약 과정을 통해서 산출된 정의 규범에 자발적으로 동의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롤스는 기본 구조를 규율할 정의 규범의 구성에 중요한 조건을 부가하는데, 이 조건이 저 유명한 ‘무지의 베일(the veil of ignorance)’이다. 즉 롤스는 최초의 계약 행위에 참여하는 당사자들은 자신(과 자기가 대표하는 사람들)의 출신 배경, 사회적 지위, 신체적 ․ 정신적 능력 등에 대한 정보를 가지고 있지 않(아야 한)다고 가정한다. 이들이 알고 있는 점은, 자신과 자신이 대표하는 사람들이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그리고 자주적 인간으로서) 살고 활동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기본적인 재화들’이 무엇인지, 그리고 이 재화들의 배분 기준을 정하는 데 고려해야 할 정의론들의 목록(가령 공리주의적, 홉스주위적, 직관주의적, 칸트주의적 정의론 등)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인간은 자주적인 존재로서 (1) 자신이 좋다고 생각하는 바대로 인생 계획을 설계하고 이를 실현하고자 노력하는 능력과 (2) 타인들과 논의하여 동의한 규범을 —남들도 그러할 것이라고 믿을 만한 상황 아래에서는— 준수하고 그 내용대로 사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점 등이다. 이러한 공정한 조건 아래에서 계약 당사자들이 정의 규범을 산출한다면, 사회 구성원들 중 아무나 뽑아서 이 정의 규범에 동의할 것인지 물어 보아도 누구나 긍정적으로 답할 것이라고 롤스는 주장한다. 이 ‘무지의 베일’은 공평성(불편부당성 impartiality)을 엄격하게 보장하는 기능을 수행하는데, ‘무지의 베일’의 조건에 따르는 경우에는 심지어 우리의 적이 재화 배분의 기준을 정한다 하더라도 우리가 그 산출된 정의 규범에 기꺼이 동의할 정도로 공평하다는 것이다.
자유와 평등의 정의
그렇다면 위에서 설명한 공정한 절차 아래에서 산출되는 정의 규범은 어떤 것일까? 기본 구조의 정의 규범을 제정하는 데 고려되어야 할 재화들은 한 개인이 자주적 인간으로서,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살아가기 위해서 반드시 구비해야 할 것들로서, 가령 ‘기본적인 자유와 권리, 직업 및 교육의 기회, 권력 및 권한, 경제적 부’와 같은 재화들을 상상할 수 있다.
롤스는 이러한 재화들을 ‘기본적인 재화들’이라고 부르고, 이 기본적 재화들을 분배하는 정의 규범의 제정은 최초의 계약 행위에 참여하는 당사자들과 그들이 대표하는 사람들의 운명에 매우 중대한 결과를 낳기 때문에 계약 당사자들은 신중에 신중을 다할 것이라고 본다. 즉 계약 당사자들은 자신과 자신이 대표하는 사람들의 이익이 최대화되는 방향이 아니라, 정의 규범의 제정으로 입을지도 모를 손해가 가장 적게 되는 방향으로 매우 조심스럽게 협상을 하게 될 것이다. 롤스는 이러한 협상 전략을 ‘손해 최소화의 전략(maximin strategy)’이라고 부르는데, 이 전략은 모든 종류의 정의 규범 제정에 합당한 일반적인 전략은 분명 아니지만 적어도 개인의 인생 전반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기본 구조의 정의 규범을 제정하는 데에는 가장 적절한 협상 전략이라고 본다. 계약 당사자들이 자신의 출신, 사회적 지위, 재능 등에 대한 정보를 모른다는 ‘무지의 베일’ 조건 아래에서는, 각 계약 당사자는 어쩌면 자신이 정의 규범이 제정된 후에 사회에서 가장 불리한 지위에 놓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가질 것이고, 따라서 사회에서 가장 불리한 지위에 있는 자들도 인간다운 생활을 누릴 수 있게 하는 정의 규범을 제정하고자 할 것이다.
롤스는 이러한 숙고 과정을 거쳐서 계약 당사자들은 다음과 같은 정의 규범의 제정에 서명할 것이라고 본다.
첫째, 기본적인 자유와 권리라는 재화와 관련해서, 여기에는 언론과 집회의 자유를 포함하는 다양한 정치적 자유, 양심의 자유와 사상의 자유, 신체의 자유와 사적 소유 권리, 자의적인 구속과 체로로부터의 자유, 고문 등과 같은 권력의 가혹 행위로부터 보호받을 권리 등등이 속하는데, 모든 계약 당사자들은 자유와 권리가 최대한 넓은 범위에서 평등하게 배분되는 원리를 채택할 것이다. 평등한 자유의 배분은, 사회 구성원들에게 가장 작은 범위의 자유들을 할당하는 자유들의 집합 L1에서 평등하게 할당될 자유들의 몫을 늘려 가는 L2, L3, L4 ……, Ln의 배열 체계로 구분할 수 있다면, 이 중 모든 사회 구성원들이 가장 적정한 상태에서 동등하게 기본적 자유들을 향유할 수 있는 배열 LK - 즉 동등한 자유들의 배당 체계 중에서 가장 적정한 상태의 자유들의 집합 - 에 대하여 계약 당사자들은 동위할 것이다. 둘째, 직업 및 교육의 기회, 권력 및 권한, 경제적 부와 같은 재화와 관련해서 계약 당사자들은 좀더 복잡한 계산을 한다. 만일 이러한 재화들이 순전히 능력과 업적이라는 효율성 기준에 따라서만 배분된다면, 결국 이 능력과 업적상의 우월성을 낳게 한 가족 배경, 인종, 종교, 성 그리고 사회적 배경이 정의 규범의 원천이 되는데, 이는 도덕적인 관점에서 보았을 때 자의적인 기준일 뿐 아니라 자신의 재능과 사회적 지위에 대해서 알지 못하므로 ‘손해 최소화 원칙’을 택하는 계약 당사자들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도 위험성이 너무 크다. 따라서 이들은 두 가지 경우로 나누어서 배분의 기준을 정하고자 할 것이다. (1) 동일한 능력과 재능을 가지고 동일한 노력을 하는 개인들에게는 자기가 선택한 분야에서 거의 동등한 성공의 전망을 가질 수 있게끔 기회 균등의 원리가 보장되어야 한다. 따라서 가족 배경, 인종, 종교, 성 그리고 사회적 배경이 성공의 전망에 작동할 수 없게끔 무거운 상속세를 부과하고 광범위한 공공 교육을 제공하며 다양한 차별 금지의 대책들을 마련하는 방향으로 재화가 분배되어야 한다. 이러한 조건이 충족된다면, 직업 ․ 교육 ․ 권한 ․ 경제적 부는 능력과 노력이라는 기준에 의해서 할당되는 것이 정당하다. (2) 재능 및 능력, 노력과 같은 개인적 자산이 천성적으로 뛰어난 사람들의 집단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의 집단이 나뉘어지는 경우, 엄밀하게 보면 우월한 개인적 자산은 해당되는 개인의 노력의 산물이라기보다는 사회적 환경의 산물이므로 사회적인 공유 자산이다. 따라서 개인적 자산이 우월한 사람들은 자신의 지위를 높이는 데에만 자신의 재능을 사용할 것이 아니라 사회 전체의 이익을 높이는 데에도 사용하여야 한다. 즉 개인적 능력이 뛰어난 사람들에게 그 능력과 업적을 걸맞게 권력, 권한, 경제적 부가 배당되어야 하겠지만, 이는 이러한 배분을 통해서 사회 전체의 재화를 더 많이 생산하고 사회 최소 수혜자들의 지위를 높이는 결과를 낳을 경우에만 정당하다. 곧 불평등 배분이 정당한 경우는, 이러한 배분을 통해서 사회 전체의 재화를 더 많이 생산하고 사회 최소 수혜자들의 지위를 높이는 결과를 낳을 경우에만 정당하다. 곧 불평등 배분이 정당한 경우는, 이러한 불평등 배분을 통해서 사회 내 모든 집단의 이익을 증대시키고 더 나아가서 가장 불리한 처지에 있는 집단의 이익을 최대화하는 결과를 낳을 때이다. 롤스는 이와 같은 정당한 불평등의 배분 원리를 ‘차등 원리’ 라고 명명한다.
롤스는 계약 당사자들이 위와 같은 숙고 과정을 통하여 사회의 기본 구조를 규율할, 다음과 같은 원리들에 도달한다고 한다.
1. 제1의 정의 원리 체계 : 평등한 자유의 원리
․ 각자는, 모든 사회 구성원들이 동등한 자유의 몫을 배분받는 배열 중에서 가장 적정한 자유들의 집합을 요구할 평등한 권리를 가진다. ․ 정치적 자유들의 경우에는, 모든 사회 구성원들이 배당된 정치적 자유를 실제로 평등하게 효과적으로 향유할 수 있게끔 다각적 수단들이 보장되어야 한다.
2. 제2의 정의 원리의 체계 : 정당한 불평등 배분의 원리
․ 공정한 기회 균등의 원리 : 직책, 직위 및 권한, 경제적 부와 같은 사회 경제적 재화들은 공정한 기회 균등의 조건이 충족되어 있어서 사회적 배경이 각자의 능력과 노력의 차이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다면, 각자의 능력과 업적에 따라서 배분되어야 한다.
․ 차등 원리 : 위에서 시행된 사회 경제적 재화의 불평등한 배분은 사회의 최소 수혜자들의 이익을 개선하는 데 가장 효과적으로 기여할 수 있게끔 조정되어야 한다.
롤스는 이러한 정의 원리들의 체계에 따라서 조직된 기본 구조를 가진 사회라면 인간다운 생활을 보장하고 각자의 능력과 소질을 충분히 개발할 수 있는 정의로운 사회라고 본다. 이처럼 롤스의 정의 원리는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면서도 정당하지 못한 사회 경제적 불평등을 교정하려는 평등주의적 관점을 견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평등 자유주의적 정의론의 초석을 마련하였다고 평가할 수 있다.
2. 의의 및 영향
롤스의 『정의론』은 도덕 철학, 정치 철학, 법 철학 등의 실천 철학의 영역에서 ‘계약론적 전환’이라고 불리는 전환점을 제공하였다. 즉, 도덕 원리, 국가 권력, 법 규범의 정당성이 그러한 규범들을 창설하는 데 참여하는 당사자들의 이성적 합의에 의해서 결정된다는 사상은 1970년대 이후 실천 철학의 각종 논의에 출발점을 이루게 된 것이다. 인간을 자기의 이익을 최대화하려는 ‘합리적이고 이기적인 존재’로 보는 홉스주의적(또는 경제 자유주의적 libertarian) 진영이든, 인간을 무엇보다도 공공적인 논의 능력을 가진 자주적인 존재로 보는 칸트주의적 진영이든, 인간을 공동체적 존재로 보는 아리스토텔레스적(또는 공동체주의적 communitarian) 진영이든 롤스의 『정의론』과 씨름하지 않고서는 안 될 정도로 1970년대, 80년대, 90년대, 21세기 초를 관통하는 고전으로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추상적 사유 방식과 보편적 이성을 중심에 두는 남성 중심적 실천 철학을 비판하면서, 구체적 사유 방식과 맥락을 중시하고 타인에 대한 배려를 중심에 두는 여성주의 실찬 철학도 롤스와 하버마스(J. Habermas, 1929~ )의 사상에 대한 비판으로부터 시작할 정도로 실천 철학 전반에 드리우는 영향력이 크다.
3. 원문 읽기
정의론의 요지(The Main Idea of the Theory of Justice)
나의 목적은 이를테면 로크, 루소, 그리고 칸트에게서 흔히 알려져 있는 사회 계약의 이론을 고도로 추상화함으로써 일반화된 정의관을 제시하는 일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원초적 계약을 어떤 사람이 특정 사회를 택하거나 특정 형태의 정부를 세우는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핵심이 되는 생각은 사회의 기본 구조에 대한 정의의 원칙들이 원초적 합의의 대상이라는 점에 있다. 그것은 자신의 이익 증진에 관심을 가진 자유롭고 합리적인 사람들이 평등한 최초의 입장에서 그들 공동체의 기본 조건을 규정하는 것으로 채택하게 될 원칙들이다. 이러한 원칙들은 그 후의 모든 합의를 규제하는 것으로서, 참여하게 될 사회 협의체의 종류와 설립할 정부 형태를 명시해 준다. 정의의 원칙들을 이렇게 보는 방식을 고정으로서의 정의관이라 부르고자 한다.
그래서 우리는 사회 협동체에 참여한 자들이 하나의 공동 결의를 통해서 기본적인 권리와 의무를 할당하고 사회적 이득의 분배를 정해 줄 원칙들을 함께 채택 한다고 상상해 볼 수 있다. 사람들은 그들이 상호간에 상충하는 요구를 조정하는 방식과 그들 사회의 기본 헌장이 무엇인가를 우선 정하게 된다. 각 사람은 합리적인 반성을 통해서 무엇이 자신의 선인지를, 다시 말하면 그가 추구할 합리적인 목적의 체계가 무엇인지를 결정해야 하듯이 사람들의 집단은 그러한 목적 체계 가운데서 무엇이 정의롭고 무엇이 불의로 간주 될 것인가를 한꺼번에 정하게 된다. 합리적인 인가들이 평등하고 자유로운 가상적 상황에서 행하게 될 선택은 일단 이러한 선택 문제가 해결된다고 생각 될 경우에는 정의의 원칙들을 결정해 줄 것이다.
공정으로서의 정의관에 있어서 평등한 원초적 입장이라는 것은 전통적인 사회 계약론에 있어서 자연 상태에 해당한다. 이 원초적 입장은 역사상에 실재했던 상태로 생각해서는 안 되며 더욱이 문화적 원시 상태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일정한 정의관에 이르게 하도록 규정된 순수한 가상적 상황으로 이해된다. 이러한 상황이 갖는 본질적 특성 중에는 아무도 자신의 사회적 지위나 계층상의 위치를 모르며 누구도 자기가 어떠한 소질이나 능력, 지능, 체력 등을 천부적으로 타고났는지를 모른다는 점이다. 심지어 당사자들은 자신의 가치관이나 특수한 심리적 성향까지도 모른다고 가정된다. 정의의 원칙들은 무지의 베일 속에서 선택되어진다. 그럼으로써 보장되는 것은 원칙들을 선택함에 있어서 아무도 타고난 우연의 결과나 사회적 여건의 우연성으로 인해 유리하거나 불리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모든 이가 유사한 상황 속에 처하게 되어 아무도 자신의 특정 조건에 유리한 원칙들을 구상할 수 없는 까닭에 정의의 원칙들은 공정한 합의나 약정의 결과가 된다. 각자가 상호 동등한 관계에 있게 되는 원초적 입장의 여건들이 주어질 경우 도덕적 인견으로서, 즉 자신의 목적과 정의감을 가진다고 생각되는 합리적 존재로서의 개인들에게 있어서 이런 최초의 상황이란 공정하다고 볼 수 있다. 원초적 입장이란 적절한 최초의 원상이라 할 수 있으며, 따라서 거기에 도달된 기본적 합의는 공정한 것이다. 이로 인해서 ‘공정으로서의 정의’ 란 말이 적합하다는 것을 알게 되는데, 그것은 바로 정의의 원칙이 공정한 원초적 상황에서 합의된 것이라는 생각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명칭은 정의라는 개념과 공정이라는 개념이 동일하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이는 마치 ‘은유로서의 시’ 라는 구절이 시라는 개념과 은유라는 개념이 동일하다는 것을 뜻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