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충 산다
나는 요즘 대충 산다.
그래도 세 끼 끼니 걱정 없이 편안하게 산다. 이 '대충'이라는 두 글자는 나이가 들수록 점점 더 정확해진다. 복숭아를 상자에서 꺼내 냉장고에 넣을 때도 개수를 일일이 세어보지 않는다. 하지만 머릿속에는 이미 복숭아의 개수와 크기, 탐스러운 색깔이 자연스럽게 그려진다.
장날 시장에 가서 장을 보는 일도 대충이다. 배추며 무, 상추를 무심한 듯 툭툭 장바구니에 담아 오지만, 아내는 늘 잘 사 왔다며 칭찬한다. 소고기나 돼지고기, 두부, 생선, 파 같은 온갖 장거리를 그저 손에 잡히는 대로 사 와도 "어쩜 이렇게 잘 샀느냐"라며 덧붙인다. 수십 년의 경험이 쌓여 힘을 빼고 툭툭 집어도 최상의 조합이 되는 연륜이 생긴 까닭이다.
우리는 보통 타인(他人)에게 "단디 살아라", "열심히 공부해라" 하고 당부한다. 하지만 알고 보면 다 부질없는 언사(言辭)일지도 모른다. 힘을 풀고 대충 해도 삶의 목표점(目標點)에 도달하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으니 말이다. 이것은 결코 삶을 소홀히 대하는 방관(傍觀)이 아니다. 수십 년 생명(生命)의 결을 지켜보고 30년 공직(公職) 생활을 거치며 몸으로 터득한, 삶의 힘을 뺄 줄 아는 ‘내공(內功)의 미학(美學)’이다.
어느 날 한 기업체(企業體)에서 전화가 왔다. 가로수 나무뿌리가 회사 정문 당직실 바닥을 들어 올려 벽이 무너지고 있다는 연락이었다. 현장에 가보니 정말로 벽에 금이 가며 갈라지는 중이었다. 나무뿌리가 땅속 깊이 뻗어나가지 못하고 위로 치솟았기 때문이다. 가로수가 물을 마실 수 있는 면적은 너무나 협소(狹小)하다. 도로 대부분이 아스팔트와 콘크리트로 덮여 있으니, 물을 마실 곳이라곤 보도블록의 미세하게 갈라진 틈뿐이다. 그래서 밑동이 위로 치솟게 되는데, 도시의 거의 모든 가로수가 비슷한 생태를 보인다. 결국 그 큰 나무를 전동톱을 동원하여 제거해야만 했다.
언젠가 접수된 또 다른 민원(民願)은 하수구가 나무뿌리에 막혔다는 내용이었다. 나무가 수분을 찾아 집요하게 하수구 안으로 뿌리를 뻗은 것이다. 현장에 출동해 포크레인을 불러 뿌리를 절단(切斷)해 주었다. 미물(微物)이라 여긴 나무조차 살기 위해 이토록 처절하게 먹을 물을 찾는다. 나무의 상태만 슬쩍 보아도 잘 먹고 있는지 아닌지 단번에 알아채고 도시 생태의 고단함을 짚어내는 것, 그것은 생명을 가꿔본 사람만이 가지는 직관(直觀)이자 세월이 선물한 경험치(經驗值)다. 이렇듯 사람은 경험과 쌓인 내공으로 힘을 빼고 대충 살 수 있다. 그러나 식물은 대충 살지 못하고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산다. 인간의 여유로운 '대충'과 대비되는 식물의 치열한 생존 본능을 보며 삶의 또 다른 면모를 깨닫는다.
밤하늘의 별과 달도 그저 대충 바라본다. 하지만 그 무심함 속에서도 은하수(銀河水)의 흐름을 읽고, 견우와 직녀가 오작교(烏鵲橋)에서 만나는 희망(希望)의 다리를 떠올린다. 어쩌면 먼 옛날 양반들이 게으름 피우는 노비들에게 일을 시키기 위해 만들어낸 전래동화가 아닌가 하는 아쉬움도 든다. 퇴계 이황(李滉) 또한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보듯 노비들에게 일을 시키고 재산을 모으는 데 일생을 바쳤다고 하니, 성리학(性理學)이라는 학문의 도(道)와 높은 벼슬에 맞는 현실적(現實的) 삶은 표리부일(表裏不一)이자 언행불일(言行不一)의 ‘따로 국밥’이었던 셈이다. 높은 도의를 논하던 이들조차 현실에서는 욕망을 움켜쥐려 애썼다는 사실은, 도리어 힘을 빼고 사는 삶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요즘 마당을 대충 둘러보면, 장마가 지난 뒤 비가 오지 않아 연이어 피어나던 마당의 장미꽃들이 시들해져 삭막(索莫)하기 그지없다. 장미꽃이 사라진 메마른 정원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쓰인다. 이럴 때만큼은 '대충'이 잘되지 않는다. 이제는 자연에만 맡기지 않고 수도꼭지를 틀어 단비를 흠뻑 내리게 한다. 마른 정원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따뜻한 애정 앞에서는 '대충'도 잠시 접어두게 된다.
이 세상은 대충 살아도 백 년(百年)이요, 단디 애쓰며 살아도 백 년이다. 어차피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억지로 움켜쥐려 애쓰기보다 자연스럽게 몸을 맡기는 것이 지혜다. 그러니 마음 편히 근심과 걱정을 털어내고 대충 살아가자. 우리 몸과 마음은 애써 더 배우지 않아도, 이미 삶을 유유자적(悠悠自適)하게 살아가는 지혜(智慧)를 다 알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도 나는 기꺼이, 마음을 내려놓고 '대충'이라는 이름의 내공을 누리며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