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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제: 환난과 희망
본 문: 고후 4:16-18
설 교 일: 2010年 5月 2日
설교구분: 주일예배 (2부) 소망/위로,
소망이 넘치는 삶
<말씀 봉독>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
<등단 후 멘트>
성가대의 귀한 찬송을 감사드립니다. 우리 주 예수님을 사랑하십니까?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십니다.
우리가 주님 앞에 나올 때마다 우리의 마음이 저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기 위해서 늘 회개해야 합니다. 오늘날 우리의 삶 가운데 부족한 것이 회개입니다. 회개하지 않고 신앙생활 하니까 그 삶 속에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가 찬양하고 기도할 때 철저히 회개하는 기도를 드려야 되겠습니다. 주님 뜻대로 살지 못한 것, 기뻐하고 감사하며 살지 못한 것,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기도하지 못한 것. 우리가 회개해야 합니다. 그래서 이 나라가 주님의 은혜 가운데 만세반석 위에 설 수 있도록, 참된 민주주의가 뿌리를 내릴 수 있도록 우리가 기도해야 됩니다. 그래서 우리가 기도하므로 통일이 속히 이루어지고, 이 나라에 계층 간의 갈등과 대립이 사라지고, 참된 화해와 용서로 하나되어 대 대한민국을 이룰 수 있는 우리나라가 될 수 있도록 우리가 기도해야 될 것입니다.
‘주님 우리를 도와주옵소서.’ 우리 주님의 도우심을 간구하면서 함께 찬송을 하겠습니다. “오 신실하신 주”
찬송가 447장 (새찬송가 393장)
1 오 신실하신 주 내 아버지여 늘 함께 계시니 두렴 없네
그 사랑 변찮고 날 지키시며 어제나 오늘이 한결 같네
오 신실하신 주 오 신실하신 주 날마다 자비를 베푸시며
일용할 모든 것 내려 주시니 오 신실하신 주 나의 구주
2 봄철과 또 여름 가을과 겨울 해와 달 별들도 다 주의 것
만물이 하나로 드러낸 증거 신실한 주 사랑 나타내네
오 신실하신 주 오 신실하신 주 날마다 자비를 베푸시며
일용할 모든 것 내려 주시니 오 신실하신 주 나의 구주
3 내 죄를 사하여 안위하시고 주 친히 오셔서 인도하네
오늘의 힘 되고 내일의 소망 주만이 만복을 내리시네
오 신실하신 주 오 신실하신 주 날마다 자비를 베푸시며
일용할 모든 것 내려 주시니 오 신실하신 주 나의 구주
오 신실하신 주 오 신실하신 주 날마다 자비를 베푸시며
일용할 모든 것 내려 주시니 오 신실하신 주 나의 구주
다 같이 기도합니다.
(통성기도)
오 신실하신 주 오 신실하신 주 날마다 자비를 베푸시며
일용할 모든 것 내려 주시니 오 신실하신 주 나의 구주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감사를 드립니다. 저희들을 이렇게 사랑하여 주셔서 많고 많은 사람 가운데 택하여 하나님의 자녀 삼아주시고 오늘 이 시간 이 자리까지 인도해주신 은혜를 감사드립니다. 늘 주님 앞에 나올 때마다 진정한 감사와 찬양을 가지고 주님 앞에 나와 예배드리는 저희 모두가 될 수 있도록 은혜 내려 주시옵소서. 오늘 이 시간도 주의 성령께서 운행하여 주셔서 마음에 기쁨과 평안함이 넘치게 하여 주시고, 주님께서 주신 치료와 용서가 강물처럼 넘쳐나게 하여 주옵소서. 상처 입은 모든 이 나라의 백성들을 치료하여 주옵소서. 하나님 아버지 주의 사랑으로 화해하고 용서하고 하나되는 놀라운 역사 있게 하여 주옵소서. 주님의 귀한 뜻이 이 땅에 이뤄지게 하여 주옵소서. 감사하옵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좌우 옆에 두 분 이상 “예수님이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인사하겠습니다. 예수님이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할렐루야.
오늘 저는 고린도후서 4장 16절로 18절 말씀을 가지고 “소망이 넘치는 삶” 이와 같은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 함께 따라하시겠습니까? “소망이 넘치는 삶” “소망이 넘치는 삶”
인도에 가서 복음을 전한 한 선교사가 아이들을 모아놓고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다고 하는 설교를 했습니다. 한참 설교를 하는데 한 여자아이가 우는 거예요. 그래서 선교사님이 설교를 마치고 난 다음 그 여자아이에게 물어봤습니다. “얘야, 얘야, 왜 우니? 무슨 일 있니?” 그러니까 그 여자아이가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나 같은 죄인을 위해서 십자가에 돌아가셨다는 사실이 너무나 고마워서 눈물이 나요.” 말씀을 전했던 선교사님이 충격을 받았습니다. ‘내가 과연 저 어린아이처럼 저렇게 순수하게 예수님을 사랑하고 예수님을 전하고 있는가? 십자가 이야기만 해도 감동하여 눈물이 나는 그 모습으로 내가 주님을 섬기고 있는가?’ 선교사님은 많은 해결을 했다고 하는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처음 믿을 때 그 첫사랑의 감격이 있습니다. 그저 교회 가는 것이 너무나 좋고, 예배드리는 것이 너무나 좋고, 찬양을 드리는 것이 너무나 좋고, 기도하는 것이 너무나 좋고, 그저 교회만 오면 가슴이 설레고 눈물이 나오고 그랬던 시절이 있는데, 시간이 차차 흘러가면서 삶도 바빠지고 또 그 처음의 첫사랑도 식어지고 해서 무감각하게 신앙생활을 하게 되는 그러한 우리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어린아이와 같이 되어야 천국에 간다고 하신 말씀은 우리의 마음이 늘 어린 아이처럼 순수해지고, 늘 주님 앞에 겸손하고, 주님 앞에 가장 주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모습으로 예배드리는 그러한 자세로 살아갈 것을 말씀해주고 있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오늘 여러분 마음이 어린 아이와 같은 마음이 되어서 정말 처음 예수를 믿을 때 그러한 순수한 모습으로 돌아가서 기쁨으로 주님을 섬기고, 감사함으로 주님을 섬기고, “내가 주님 앞에서 예배드리는 것 그 자체가 너무나 큰 은혜요, 기적이요, 감격입니다.” 그러한 고백이 드려지게 되기를 바랍니다.
“나는 모태교인이라서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교회를 다녔으니까 뭐 다 압니다. 저는 목사님 오늘 설교 제목만 봐도 무슨 얘기할 것 다 압니다.” 다 아는 건 좋은데 은혜를 받아야 한다 그 말씀입니다. 여러분, 예수 믿는 사람은 은혜를 먹고 삽니다. 은혜가 없이 사는 것은 참으로 힘든 삶입니다. 예수를 믿어도 은혜가 없으면 기쁨이 없고 감사가 없고요, 그러니까 자꾸 원망과 불평이 나오고, 자꾸 부정적이 되고, 비판적이 되는 것입니다. 은혜가 있으면 참 우리가 모든 것에 감사하고, 기쁨으로 주님을 섬길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나환자촌에 가서 부흥회를 인도하고 오신 목사님 간증을 들은 적이 있어요. 예배시간마다 그냥 눈물바다랍니다. 우리 같은 문둥이가 예수 믿고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니 너무 감사합니다. 눈물, 콧물 쏟으면서 예배를 드린대요. 매 예배가 부흥회고, 매 예배가 하나님의 은혜가 넘쳐나는 은혜의 현장이고, 그래서 말씀을 전하시던 목사님이 은혜를 받고 왔다고 그러시더라고요.
겉으로 보기에는 코도 없고, 귀도 없어지고, 손가락도 없어지고, 머리털은 다 빠지고 그러한 흉측한 모습인데 그들은 그냥 넘치는 감사로 얼굴에 기쁨이 충만해서 주님을 찬양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 간증을 들을 때 우리는 멀쩡한 사지를 가지고 그러한 감격과 기쁨의 찬송을 드리고 있는가? 예배를 드리고 있는가?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 됩니다.
여러분, 매 예배시간이, 일주일에 한번 씩 다가오는 예배시간, 또 한 달에 한 번씩 맞이하는 성찬예배가 그냥 형식적인 예배가 되지 말고, 모든 예배가 주님을 만나는 기적의 시간, 은혜의 시간, 체험의 시간, 부흥의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세 가지 은혜의 말씀이 있습니다.
1. 낙심하지 않는 신앙
우리가 항상 주님 안에서 축복받은 삶을 살기 위해서는 첫째로 낙심하지 않는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고린도후서 4장 16절에,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
낙심하지 아니한다. 우리 기독교는 희망의 종교입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희망을 말합니다. 왜냐? 우리 주 예수님이 우리의 유일한 희망이시기 때문에.
희망의 신학자 몰트만 박사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신앙은 곧 희망이다. 하지만 희망이 신앙과 동의어인 것은 아니다. 기독교 신앙의 희망은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의 부활 안에 있는 희망이다.”
죽음 조차도 뛰어넘는 영생의 축복이 우리에게 있기 때문에 그 영원한 희망을 붙들고 우리는 믿음으로 전진해나가는 것입니다. 이러한 거룩한 희망이 우리 마음 가운데 있기 때문에 어떠한 문제가 다가와도, 어려움이 다가와도, 슬픔이 다가와도, 고난이 다가와도 우리는 낙심하지 아니합니다. 절대로 포기하고 뒤로 물러가지 않습니다.
왜 많은 사람들이 낙심하고 절망하고 좌절하느냐? 그것은 과거를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과거에 상처 입었던 일, 과거에 실패했던 일, 과거에 배반당했던 일, 과거에 사업을 하다가 파산했던 일. 이러한 내 마음 속에 절망시키던 기억들이 사라지지 않고, 내 마음 속에 둥지를 틀고 있어가지고 끊임없이 나를 끌어당겨서 주저앉습니다.
과거는 지나간 것입니다. 다시 돌아오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꾸 지나간 과거를 돌아보고, 거기서 낙심하고 주저앉습니다.
제가 미국에 있을 때 정신병원에 예수를 처음 믿은 분의 자녀가 입원을 해서 간 적이 있습니다. 미국에 많은 병원이 있는데 그 병원에 환자 수만큼 정신병원에 환자가 있다고 합니다. 굉장히 저는 놀랬어요. 그런데 그 병원이 눈에 보이는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숲속 그 뒤에 병원이 있더라고요. 그 병원은 들어갈 때부터 신원을 확인하고 들어가는데 들어가서 문이 탁 닫히면 안에서 열어주기 전에는 못나가요. 그런데 제가 들어가 보니까 거기 안에 있는 사람들이 그냥 평상복을 입고, 그냥 지내고 있어요. 그런데 의사 선생님이 말씀 한 말이 보통 때는 저렇게 정상적이고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 과거에 어떤 생각만 떠올리면 갑자기 달라진다는 거예요. 그래서 저 사람들이 그것이 과거에 대한 기억을 잊어버릴 때까지 여기서 머물러두게 한답니다. 조금 심한 사람은 그 다음 문을 열고 또 들어가야 돼요. 두 번째 문을 열고 들어가고요. 정말 심한 사람은 또 세 번째 문을 열고 들어가면 독방이 있더라고요. 그런데 과거에 대한 기억만 잊어버리면 저들은 그냥 다 손 털고 나갈 수 있을 텐데, 저렇게 멀쩡하다가도 갑자기 옛날의 생각이 살아나면 막 발작을 하고 이상해진다는 거예요.
여러분, 지나간 과거와 여러분과 지금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과거를 돌이킬 수가 있습니까? 또 과거로 되돌아갈 수가 있습니까? 아닙니다. 이전 것은 지나간 것입니다. 예수를 믿을 때 우리의 모든 슬픔과 고통과 괴로움과 상처의 과거는 다 사라져버린 것입니다.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여러분은 새로운 피조물이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제는 거룩한 꿈을 가지고 소망을 가지고 주님께서 주신 찬란한 미래를 바라보며 믿음의 전진을 해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과거의 상처에, 과거의 절망에, 과거의 실패에 머물러 있지 말고 믿음으로 전진해나가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미국 어디 도시를 가든지 제이 씨 페니(JC Penney)라고 하는 백화점이 있습니다. 이 제이 씨 페니 백화점의 창설자인 제이 씨 페니는 한 때 파산해서 완전히 모든 걸 잃어버리고 절망에 빠져서 죽음의 직전까지 갔던 사람입니다. 돈을 많이 벌어서 은행에, 부동산에 투자를 했는데 대공황이 일어나가지고 모든 주식이 휴지가 되어버리고 부동산 값이 폭락해버리니까 하루아침에 알거지가 되었습니다.
심한 우울증에 빠져가지고 죽음을 생각하게 되었고 정신요양원에 입원하게 되었습니다. 삶의 희망을 잃고 하루하루 지납니다. 거기에서 몸과 마음이 좀 안정을 얻었지만 그 마음의 절망에서 헤어 나오지를 못했어요.
그러던 어느 날 아침 식사를 위해 일찍 일어나서 이 복도를 가고 있는데 어릴 적에 자기가 즐겨 부르고 듣던 찬송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그래서 찬송 소리가 나는 곳을 향해서 그냥 발걸음을 무심코 옮깁니다.
(찬송가 432장)
너 근심 걱정 말아라 주 너를 지키리
주 날개 밑에 거하라 주 너를 지키리
주 너를 지키리 아무 때나 어디서나
주 너를 지키리 늘 지켜 주시리
거기 한 방에서 의사 선생님과 간호사 선생님들이 모여서 예배를 드리고 있는데 그 찬송이 흘러나온 것입니다. 그런데 문 앞에 가보니까 그 안에서 성경말씀이 들립니다. 마태복음 11장 28절에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그 말씀이 그의 마음 가운데 울려 퍼지는 순간 주님의 은혜가 임했습니다. 마음에 평안함이 임했습니다. 그 마음을 누르고 있던 실패와 좌절의 무거운 돌이 굴려지고 주님의 평안함이 임한 것입니다. 거기서 다시 일어났습니다. 마음에 꿈과 희망이 되살아났습니다.
그때 그는 이런 고백을 합니다. “그때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나는 설명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인생을 바꾸는 기적이었습니다. 나는 그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습니다. 나는 영광스러운 하나님을 보았고 교회에 나가 침례를 받고 신앙생활을 열심히 할 것을 계획 세웠습니다.”
절망을 딛고 일어나서 그가 다시 백화점을 세우고 하나님의 큰 축복을 받게 되었는데 전국에 1700여개가 넘는 백화점을 세운 백화점 왕이 되었습니다.
그가 주님 안에서 꿈과 희망을 회복하니까 이런 기적이 임한 것입니다.
절대로 포기하지 마십시오. 낙심하지 마십시오. 뒤로 물러가지 마십시오. 꿈과 희망을 갖고 나아가는 한 하나님의 기적이 임하는 것입니다. 축복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5장 17절은 말씀합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여러분, 주님 앞에 나와서 예배드릴 때마다 늘 여러분의 삶 속에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여서 새로운 꿈과 희망이 넘쳐나게 되기를 바랍니다.
교회 오기 전까지는 마음이 무겁고 피곤하고 지치고 힘들고 어려운 상태에서 왔지만, 예배를 드릴 때 주님이 주시는 놀라운 은혜로 말미암아 우리 마음속에 염려도 사라지고, 근심도 사라지고, 걱정도 사라지고, 성령 충만함 받아서 거룩한 꿈으로 가득하게 되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러분은 이미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습니다. 새롭게 변화 되었습니다. 여러분의 마음이 예수님을 믿고 변화받아 새로운 주님의 자녀의 모습으로 변화되었고, 그 다음 나아가서 여러분의 삶 자체도 이제 새롭게 변화된 하나님의 자녀로 변화되어 살아가는 그러한 삶을 살아가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삶 가운데 과거의 모든 상처 기억을 다 내버릴 뿐만 아니라 여러분의 삶의 모습 속에서 과거에 주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게 한 모습으로 살았던 그러한 잘못된 행실을 다 내려놓아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 믿기 전에 잘못되게 살았던, 잘못된 삶을 살았던 것, 또 성격을 다스리지 못해서 늘 혈기부리고 소리를 지르고 남에게 피해를 주었던 것, 또 알게 모르게 거짓말 하는 습관이 있어서 남에게 거짓말을 통해서 상처를 주었던 것. 이러한 과거의 모습도 다 내려놓아야 되는 것입니다. 이전 것은 다 지나갔다고 했으므로 과거의 상처만 지나간 것이 아니라 과거의 잘못된 행실도 다 지나가서 이제는 주님 앞에서 거룩하고 아름답고 온전한 모습으로 주님을 섬기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4장 16절에,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
나이가 들면 원하던 원하지 않던 흰머리가 늘어납니다. 그러나 흰머리가 늘어남과 동시에 몸이 쇠하여 지는 것 같으나 그 마음은 주님의 은혜로 날마다 새로워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그 은혜로 말미암아 놀라운 축복이 그 삶 가운데 임합니다. 이것이 바로 신앙의 연륜이고 경험입니다. 예수를 처음 믿은 사람하고 오래 믿은 사람하고 어떤 차이가 있느냐? 날이 갈수록 믿음이 깊어지고 은혜가 풍성해지고 주님의 모습을 닮아가는 그러한 변화가 다가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님의 은혜 가운데 날마다 속사람이 새로워지게 되기를 바랍니다. 속사람이 새로워지면 우리는 어떠한 문제도 고통도 어려움도 능히 이기고 승리의 삶을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 앞에 나와서 찬양을 부를 때 우리가 새로워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 앞에 나와서 회개하고 기도할 때 우리가 새로워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의 말씀을 듣고 말씀을 실천할 때 우리가 새로워지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우리가 주님 앞에 넘치는 감사를 드릴 때 우리가 새로워집니다. 날마다 새로워지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예수 믿는 사람은 나이와 상관없이 삽니다. 오늘 나이 많으신 분들이 은혜 받으시기 바랍니다. 왜냐? 저희 고모부님이요, 북한을 다녀 오셔가지고 미국에 지금 거주하고 계시는데, 사진을 하나 가지고 오셨어요. 사진을 갖고 오셨는데, 67년 전에 저희 고모님이 결혼하신 결혼식 사진을 갖고 오셨어요. 그런데 우리 고모님 옆에 들러리로 누가 서 있느냐? 방지일 목사님 누이가 서 계시더라고요. 방지일 목사님께 전화드렸어요. 그랬더니 “어휴, 내 누이가 거기 들러리로 섰다고.” 기억력이 생생하시더라고요. 방지일 목사님 101세시거든요. 얼마나 건강하신지 101세신데도 60년, 70년 전 기억이 생생하십니다. 지금도 매일같이 하루에 두 번씩 말씀 전하러 다니시고. 얼마나 건강하신지 몰라요. 할렐루야.
여러분 속사람이 날마다 새로워지니까 건강해지니까 100세가 넘어도 이렇게 하나님께서 큰 은혜를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속으로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우리 조용기 목사님도 100세가 넘도록 건강하게 주님의 일을 하게 하여 주옵소서.’ 할렐루야.
속사람이 새로워지니까 육신의 그 머리가 흰 것은 상관이 없는 거예요. 100세가 넘어도 그렇게 건강하게 다니시고, 아 얼마나 식사도 잘 잡수시는지. 중국에 선교사로 가셨기 때문에 중국식 음식을 잘 드시는데 음식도 많이 잡수시고, 커피를 드시는데 설탕을 일곱 숟갈을 넣고. 설탕물인지 꿀물인지. 그래도 당뇨도 없으시고 건강하시고요. 야! 옛날 어르신들 다 그랬잖아요. 커피에 설탕을 막 일곱 개씩 넣고 드셨잖아요. 저희 할아버님 생각나더라고요. 건강도 주시고. 얼마나 감사합니까.
속사람이 새로워지니까 육신도 건강해지는 거예요. 오늘 여러분 모두가 속사람이 새로워지기를 바랍니다. 건강의 축복을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2. 환난을 이기는 신앙
둘째로, 우리는 환난을 이기는 신앙을 갖고 살아야 합니다.
고린도후서 4장 17절에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환난이 다가오는데 환난이 우리가 보기에는 큰 환난 같지만 환난이 경한 것, 아주 약한 것이 나중에는 아주 큰 축복을 우리에게 가져다주는 것이 된다. 축복의 그 기초를 환난이 놓는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환난은 변장된 축복입니다.
사실 이 세상은 고난으로 뒤덮여 있습니다. 그래서 세상을 가리켜서 고난의 바다라, ‘고해’라고 말합니다. 태어날 때 울음으로 태어나서 마지막 가족의 울음으로 끝나는 것이 우리 인생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인생은 눈물의 길, 눈물의 가시밭길이라고 말을 합니다.
사도 바울도 주의 복음을 전하다가 얼마나 환난을 심하게 받았는지 살 소망이 다 끊어졌다고 그랬어요.
고린도후서 1장 8절로 9절에,
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힘에 겹도록 심한 고난을 당하여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우리는 우리 자신이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한번은 돌에 맞아가지고 다 피투성이가 되어서 숨이 다 나갔어요. 그래서 죽은 줄 알고 끌어다가 내다 버렸더니 다시 숨이 돌아와서 또 일어나서 복음을 전하고. 하여간 죽음 직전까지 가는 그러한 고난을 많이 겪었습니다.
그러나 어떠한 환난이 다가온다고 할지라도 환난은 잠깐이요, 축복은 영원한 것입니다. 여러분이 다가오는 환난에 그 문제와 어려움 속에 좌절하지 마시고, 예수님의 십자가 바라보고 믿음으로 일어나시기 바랍니다. 믿었던 사람이 여러분을 배반하고 떠난다고 할지라도, 갑자기 사업이 어려워져서 파산하게 된다고 할지라도, 자녀가 부모님에게 대들고 집을 나간다고 할지라도, 거기서 낙심하고 좌절하지 마시고 주님을 바라보고 환경을 바라보지 말고 십자가 붙잡고 믿음으로 승리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주님 앞에 부르짖어 기도하면 환난이 변하여 축복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다윗이 골리앗을 넘어뜨린 후에 사울왕의 시기를 받아서 오랜 시간동안 쫓겨 다녔지만 그 모든 환난의 시간을 지나고 난 다음 이스라엘의 두 번째 왕으로 높이 세움을 받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었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에게 장차 다가올 영광을 바라보면서 믿음으로 전진해 나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합니다.
베드로전서 4장 12절로 13절에 성경은 말씀합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연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고린도후서 1장 9절에,
우리는 우리 자신이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지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심이라
C. S. 루이스는 고통의 문제(The Problem of Pain)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즐거움 안에서 우리에게 속삭이시고, 우리의 양심 안에서 말씀하시지만, 우리의 고통 속에서는 크게 외치신다. 우리의 고통 속에서 외치시는 하나님의 음성은 귀머거리와 같은 세상을 깨우시는 하나님의 확성기와 같다.”
환난을 통해서 우리를 깨우시는 것입니다. 환난을 통해서 우리를 주님을 더 바라보게 하시고 주님을 의지하게 하시고 부르짖게 하시고 믿음으로 나아가게 하시는 것입니다. 환난이 다가올 때 문제가 다가올 때 어려움이 다가올 때 낙심하고 포기하고 뒤로 물러가지 말고 오직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예수님만 바라보고 전진, 또 전진, 전진해 나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지구촌교회 장로님이시고 칼기 기장으로서 41년 동안 21,200시간 무사고 비행, 그런데 기장으로서 4400명을 전도한 신일덕 장로님의 간증이 있습니다. 2002년 8월 31일날, 국민일보에 '할렐루야 캡틴'이라는 제목으로 간증이 나왔습니다.
1990년 11월 아주 맑은 날씨에 이 신일덕 기장이 승객 165명을 태우고 사이판으로 가는 비행기를 몰고 갑니다. 이제 도착할 때가 되어서 랜딩기어를 내리고 바퀴를 내리고 비행기가 착륙해야 되는데 바퀴가 내려오지를 않아요. 랜딩기어를 내렸는데 바퀴가 고정되어서 내려지지 않습니다. 기체결함이 생긴 것입니다. 큰 일 났습니다. 그래서 승객들에게 말했습니다. “지금 비상착륙을 해야 되니까 다 머리를 숙이시고 팔을 안고 준비하고 계십시오.”
그런데 바퀴가 없이 착륙하면 대부분 비행기가 폭발하기 쉽습니다. 내릴 때 충돌해서 비행기가 폭발하게 되면 많은 피해가 납니다. 그래서 이 신일덕 기장이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믿음이 좋아서 언제나 기도하며 이 비행기를 몰았던 기장이기 때문에 그 때는 더 간절히 주님 앞에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이 역사하여서 이 시간 기적을 베풀어주셔서 우리 모든 승객들이 살게 하여 주옵소서.” 간절히 기도하는데 얼마나 열심히 기도했던지 성령이 충만해서 막 그 비행기 조정석이 부흥회 장소가 되었어요.
성령으로 충만해갖고 막 은혜가 충만한데 갑자기 그 마음속에 주님이 말씀을 주시는 거예요. 이사야 41장 10절 말씀을 주십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막 성령 충만해서 방언으로 기도한 다음 말씀이 딱 마음 가운데 들어와서 “두려워하지 말라.” 얼마나 기쁨이 충만한지 ‘믿습니다.’ 하고 ‘다시 한 번 조종실에 가서 조종해보자.’고 힘껏 조종간을 당겼더니 바퀴가 착 내려가 가지고. 할렐루야. 하나님께 영광 돌립니다.
모든 승객들은 고개를 다리 사이로 넣고 그냥 양 다리를 손으로 꽉 붙잡고 긴장했는데 갑자기 방송이 나왔습니다. “할렐루야! 하나님이 도와주셨습니다!” 그래가지고 비행기가 착 무사착륙하고 내려가지고 다 같이 손들고 “할렐루야” 하는 장면입니다. 할렐루야. 하나님께 영광 돌립니다.
그래서 내려가지고 이 기적에 감사해서 모두가 다 두 손 들고 “할렐루야” 하고 사진 찍었던 것이 이 기사로 나왔습니다.
그렇습니다. 어떤 환난이 다가와도 정신 차리고 부르짖고 기도하면 성령의 감동이 오고 이길 수 있는 힘을 주시는 것입니다. 포기하지 마세요.
만약 거기서 기도하지 않고 그냥 당황해서 그냥 내렸더라면 막 폭발해서 많은 사람이 죽었을 거예요. 그런데 당황하지 않고 막 간절히 기도하고 부르짖고 부르짖었더니 막 성령이 임해갖고 방언으로 기도하고 그 다음 말씀이 임해가지고 비행기가 착 착륙을 한 거예요. 할렐루야.
어떤 문제가 다가와도, 어떤 어려움이 다가와도 주님이 함께 하십니다. 낙심하지 마십시오. 그래서 165명이 다 살았어요. 얼마나 감사한지요.
요한복음 16장 33절에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세상을 이기신 예수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고 계십니다. 세상을 이기신 예수님께서 지금 여러분 마음 가운데 와 계십니다. 예수님만 믿고 의지하고 거룩한 꿈과 희망을 갖고 전진해 나아가십시오.
3. 영원한 소망을 가진 신앙
셋째로, 우리는 주 안에서 영원한 소망을 갖고 전진해 나아가야 합니다. 영원한 소망을 가진 신앙에 대해서 말씀드리기 원합니다.
고린도후서 4장 18절에,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
여기에 ‘우리가 주목하는 것이 있다’고 그래요. 그런데 우리가 보통 눈에 보이는 걸 가지고 모든 것을 판단하고 결정을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것은 우리가 이 세상에 보이는 것을 가지고 우리의 목적을 삼지 말고 보이지 않는 저 영원한 천국을 바라보고 나아가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저 천국에 딱 초점을 맞추고 천국을 바라보며 전진해 나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그 어떤 어려움과 문제 가운데서도 다 넉넉히 모든 일을 잘 감당하고 승리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저 영생 천국에 대한 분명한 소망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 사람들은 이 세상 것에 대해서 너무 관심이 많습니다. 지나가는 것에 너무 관심이 많아요. 이 세상에 주님께서 주신 것을 가지고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아가면 되는데, 그것이 목적이 되어 있기 때문에 문제인 것입니다.
요한일서 2장 16절로 17절은 이와 같이 말씀합니다.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로마서 8장 24절, 25절에,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지니라
영원한 천국을 바라보고 나아갈 때 하나님께서 놀라운 복을 주십니다. 은혜의 은혜를 더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을 때 우리 마음속에 이미 천국이 이뤄졌기 때문에 우리가 심령천국을 누리고 살면서 이 땅에 주님께서 주신 그 놀라운 은혜로 지상천국을 이루고 장차 주님이 오라 부르실 때 저 영원한 저 천국에 들어가서 주님을 찬양하게 될 것입니다.
많은 믿음의 선배들이 복음을 증거 하다가 목숨을 잃으면서도 주님을 찬양하며 영광가운데 그 모든 일을 잘 감당하고 그리고 순교했습니다.
오병학 목사님의 책,「주기철」이란 책에 주기철 목사님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은 천왕을 신이라고 추켜세우면서 신사참배를 강요할 때 많은 목사님들이 이를 반대했습니다. 그 중에 대표적인 분이 주기철 목사님입니다.
주기철 목사님은 신사참배를 장로교 총회에서 가결했을 때 이렇게 강단에서 외쳤습니다. “주님은 나를 위하여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머리에 가시관, 두 손과 두 발이 쇠못에 찢어져 최후의 피 한 방울까지 흘리셨습니다. 주님, 나를 위하여 죽으셨거늘 내 어찌 죽음이 무서워 주님을 모르는 체 하오리까? 다만 일사각오만 있을 뿐입니다.” 주님이 그 두 손과 두 발에 피를 흘리며 돌아가셨는데 나는 일사각오로 목숨바쳐 주님을 섬기기 원합니다. 아무리 무서운 칼날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고 하더라도 나는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나는 오직 주님만을 전하고 주님만을 위해 살다가 주님 앞에 갈 것입니다. 그 설교가 끝났을 때 그 산정현 교회 성도들이 눈물을 흘리고 울음바다가 되었습니다.
평양경찰서는 1941년 8월 25일 신사참배를 반대하는 모든 죄수들을 붙잡아서 형무소에 넘겼습니다. 주기철 목사님이 형무소에 들어가서 당했던 고난을 말로 표현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얼마나 고난당했던지 나중에는 일어나서 제대로 걷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그의 사모님 되시는 오정모 사모님은 언제나 올 때마다 그 주기철 목사님을 신앙적으로 권면합니다. 사모님이 와서 이와 같은 말을 합니다. “나는 정말 당신을 사랑해요. 하지만 주님께서 당신을 사랑하는 만큼 사랑하진 못해요. 이 말을 절대 잊지 마세요.” 얼마나 훌륭한 믿음의 여종인지 모릅니다. 내가 당신을 사랑하지만 예수님이 당신을 사랑하는 만큼 당신을 사랑하지 못하니깐 절대 이것을 잊지 말고 믿음을 지켜달라고 부탁한 것입니다.
끊임없는 고문과 그 감옥에서 상처를 돌보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1944년 4월 21일 48세를 일기로 주기철 목사님은 천국 가셨습니다. “나의 하나님이여, 이제 나를 받아주소서.” 마지막 기도입니다.
우리 주기철 목사님이 죽은 다음 그 시체가 나왔는데요. 얼마나 고문을 당했는지 손톱, 발톱이 다 뽑혔고, 온 몸이 새까맣게 타고, 하도 맞고 고문을 당해서 그렇게 된 상태로 시신이 나왔다고 합니다.
그러나 늘 천국소망을 품고 그 환난을, 그 고통을 믿음으로 이겨낸 것입니다. 영광스러운 천국에 순교자로서 당당히 걸어 들어가셔서 찬란한 면류관을 받고 주님 곁에 지금 계신 줄로 믿습니다.
본인은 살아생전에 그런 말씀을 했다고 합니다. “나는 주님 곁에 가서도 조선 교회를 위해서 기도하겠습니다. 연약한 자신이 변절되지 않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팔십 된 노모와 병약한 아내, 어린 네 아들을 주님께 맡깁니다.”
언제나 감옥에서 같이 투옥되어 있던 그 목사님들에게 격려했다고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홍포를 입으셨는데 우리는 주님을 위해 청포를 입고 있으니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입니까? 우리 믿음 흔들리지 맙시다.” 마지막까지 아름다운 모습으로 주님을 섬기시다가 순교하여 주님의 품에 안기셨습니다.
여러분, 영원한 천국 소망이 있는 사람은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 것입니다. 어떠한 환난도 두려워하지 않는 것입니다. 오직 믿음으로, 오직 믿음으로, 그 모든 문제와 어려움을 이기고 위대한 승리자로 당당히 믿음의 삶을 살아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가 주님 안에서 위대한 승리자로 살아가십시오. 변치 않는 꿈과 소망을 가지고 믿음으로 전진해 나아가십시오. 장차 주님 앞에 설 때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칭찬받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주님께서 우리를 ‘오라’ 부르실 때 기쁨으로 주님을 맞이하여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칭찬 받을 수 있는 저희 모두가 될 수 있도록 은혜 내려 주옵소서. 예수님을 나의 삶에 구세주로 모시고 일생 다가도록 변함없는 모습으로 주님을 섬기는 저희 모두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