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0회 계룡 전국여성백일장 심사평
"여성 특유의 섬세함, 문학적 언어 탐구 능력 돋보여…"
<계룡 전국여성백일장>은 계룡시의 대외 이미지를 기존의 전원 ․ 국방도시뿐만 아니라 문화 ․ 예술도시로서의 위상을 드높이고, 나아가 여성문학의 중심축이 되어 페미니즘[Feminism]문학의 자존심을 지키고 있는 대한민국 대표 전국 여성백일장으로 자리매김하였으며, 또한 향토문학 저변화에 부응할 수 있는 역량 있고 참신한 인재 육성을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아울러 문학에 대한 깊은 열정과 관심이 있는 전국의 여성들을 대상으로 '창작'에 대한 결실과 비전을 제시하고 있는 <계룡 전국여성백일장>이야말로 어느 백일장에 견주어도 손색없는 대한민국 최고의 권위와 전통을 자랑하는 지상 백일장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특히, <계룡 전국여성백일장>이 오늘날 화두가 되고 있는 '소통'의 역할에 있어 문학과 여성, 그리고 독자와의 거리를 좁히는 소통의 공간으로써 정착 단계에 접어들어 여간 기쁘지 않을 수 없다.
문학작품은 작가와 독자와의 거리를 연결 짓는 소통의 설계도이다.
여기서 소통의 설계도를 작가가 창조해낸 문학적 산물이라면, 그 설계도에 의해 지어진 집은 독자의 마음속에 생성된 건물과 다를 바 없다. 독자들은 각자 가지고 있는 독특한 심상의 질감을 통해, 바닷가 언덕 위의 하얀 집을 짓기도 하고, 전통기와를 얹어놓은 조선 한옥을 탄생시키기도 한다. 심지어는 대리석으로 가득 찬 유럽식 복고풍 건물을 짓기도 한다.
"문학은 활자로 창조해낸 이미지의 집이며, 이미지는 소통의 신호이다."
올해 10회째를 맞이하는 계룡 전국여성백일장 응모작들을 한마디로 정리하면, 여성 특유의 섬세함과 문학적 언어 탐구 능력을 선보인 일명, '책문(策文)시대'를 연상케 할 만큼 여성문학의 새로운 시대를 열고 있었다.
책문(策文)이란 조선시대 과거시험의 마지막 관문이다. 책문의 백미는 조선조 임금인 광해군이 초시와 복시를 거쳐 올라온 서른 세 명의 과거 합격자들을 대상으로 한 "지금 당장 시급하게 힘써야 할 것이 무엇인가"라고 물음이었다.
이 물음은 왕 앞에서 치르는 최종 시험인 전시에서 국왕이 몸소 출제한 '책문' 인 것이다. 36살의 임숙영은 답안지격인 '대책'에서 "임금의 잘못이 곧 국가의 병"이라 일갈하며 왕에게 자만을 경계하고 겸양의 도리를 배우라고 충언한다. 그의 대책문을 읽고 진노한 광해군은 합격자 명단에서 임숙영의 이름을 삭제할 것을 명했다.
과거시험의 합격자들이 내놓은 대책은 "새로운 시대를 설계하려는 시대의식의 투영"이라 할 수 있다. 죽기를 무릅쓰고 써 내려간 젊은 지식인들의 글은 시퍼런 선비정신과 기개가 살아 있다. 곧 우리시대 작가정신과 일맥상통한다. 마찬가지로 이번 계룡 전국여성백일장에 투고된 수백편의 응모작품들은 예심을 거쳐 33편이 본심에 올려졌다. 본심에서 응모작품들은 경연(競演)을 방불케 하는 책문 그 자체였다. 이들은 각각 다른 장르에서 타의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독특한 빛깔의 캐릭터[Character]로 대중들의 가슴을 적실 감동의 카타르시스[Catharsis]를 생산해내고 있었다. 때문에 심사위원들은 당선작을 선정함에 있어, 대단히 곤혹스러운 심경을 토로하며, 즐거운 비명을 지르게 되었다. 본심에 올려 진 작품들을 참신성, 주제의 완결미, 진실성, 신선함 등의 잣대로 두 번, 세 번 이상 정독하고 토론하는 과정을 거쳐서 작품의 비전 역시 고려하여 2편의 운문, 3편의 산문에서 당선작을 선정하는데 합의점을 도출하였다.
대상(大賞)으로 선정된 준희의 시 「적당히 습기 찬 저녁」은 일상에서의 여성 특유의 섬세한 시적 탐구를 통해 삶의 철학적 미학을 직조해내는 참신성과 표현력이 탁월했다. 이는 곧 심사위원들로부터 큰 점수를 받는 원동력으로 작용하였다. 마치 알을 뚫고 세상에 비상하는 나비처럼, 시어들이 살아 꿈틀거리고 있었다. 또한 가족의 내력을 불 밝히는 언어의 조탁 속에, 양지보다 습지 같은 음지 속을 살아가는 이 시대의 슬픈 초상마저도 감지해내고 있었다. 이 작품은 영화의 한 장면을 상상케 하는 활달한 시상전개와 선명한 메시지가 모여, 활어(活語)가 수런거리며 출렁이는 새벽 바다를 빚고 있었다.
금상(金賞)으로 선정된 박누리의 시조「편지」는 정제된 시어의 정형적 율격을 유지한 가운데, 내면 속에 잠재된 심상을 표출시키는 문학적 육화(肉化)를 가능하게 만드는 저력을 갖고 있었다. 이는 꾸준한 습작과 자아성찰을 통해 얻어진 문학적 역량이 고스란히 작품에 배어나오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3수(首)로 된 이 작품은 탄탄한 주제의식을 바탕으로 뛰어난 형상화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전통 한옥의 장독대에서 오랜 세월 숙성된 조선 장맛과 비유할 정도의 우리 민족 고유의 맛을 느끼게 하는 전통의 가락이 카랑카랑 살아나고 있었다. 다만, 촌철살인(寸鐵殺人)의 정신으로 정적인 제목보다 역동적인 제목을 선택하여 작품전체 이미지를 지배하는 강력한 시조의 필체를 개발한다면 새로운 시조의 지평을 열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
은상(銀賞)으로 선정된 김애경의 수필 「낙서」는 '잃어버려야 하는 기억력' 일명, '치매'에 대한 새로운 생각을 하게끔 만드는 시대적 윤활유 같은 작품이다. 손예진과 정우성이 주인공이 되어 심금을 울렸던 '내 머리 속의 지우개'란 영화를 거론하면서, 우리 시대의 치매문제와 연결 짓는 설정 그 자체는 매우 신선한 산문정신과도 무관할 수 없다. 더구나 삶의 철학을 물리적(物理的)안목과 관조적 자세로 체득해내는 통찰의 과정이 운문과 산문의 경계를 허물고 있었다. 이는 마치 인간을 이롭게 하기 위해 만들어졌던 첨단의 사우나 실에서 보다 황토 진흙 찜질방에서 오히려 원적외선이 많이 나와 인간의 건강을 증진시키고 있는 자연의 섭리처럼, 사회현상을 직시하고 있는 가운데, 이를 문리와 인문학적 감성을 접목시키며 인간의 향기를 물씬 풍기게 만드는 특화된 통섭(統攝)의 문학 장치를 작동시키고 있었다.
동상(銅賞)으로 선정된 김기옥의 수필 「단 칸 방의 추억」은 스물다섯에 강원도 항구 도시에서 벌어진 첫 아이 출산의 에피소드를 잘 그려내고 있었다. 누구나 한 번 쯤 있을 법한 이야기를 소재로 하여, 사루비아 가득한 토담 집 단 칸 방에서의 서정적인 이미지를 재잘재잘 잘 엮어내고 있었다. 결국 여성 특유의 미세하고 세련된 감성들이 파도의 기포처럼 휴머니티의 끝없는 빛깔을 발산시키면서 대중과의 끝없는 소통을 위한 추억의 집 한 채를 설계하고 있었다.
또 다른 동상(銅賞)으로 선정된 조현자의 수필「이어달리기」는 엄마와 딸, 2급 장애아들 간에 벌어지는 진솔한 가족애에 대한 짤막한 성찰을 통해 감동의 장면이 연출되고 있었다. 자식에 대한 모성애가 자연스럽게 이 작품의 중심 테마로 자리 잡으면서, 기초·기본을 바탕으로 한 흠 잡을 데 없는 문맥의 흐름, 튼실한 문체가 어우러져 산문 정신을 적극 발현시켰고 이는 예술성, 진정성을 두루 갖춘 수필로 평가받을 수 있는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이 외에도 이금안의 시「섬진강」, 정다정의 시「백색의 벽」, 김지연의 시「줄 노트에 대한 기억」, 신상진의 수필「배경으로 산다는 일」, 조현숙의 수필「발 이야기」, 류현진의 동화「내 동생, 은솔이」등 최종심에 오른 몇몇 작품들이 있었으나, 공모 규정에 의하여 수상자로 선정되지 못하였음을 밝히며 양해를 구한다. 이에, 아깝게 선외 처리된 분들에게는 따뜻한 격려와 위로의 말씀을 전함과 동시에, 제10회 계룡 전국여성백일장 수상자들에게는 축하의 박수를 보낸다.
1. 수상자 성명
* 대상 1명--상장과 상금 70만원
준희--[시] 적당히 습기 찬 저녁 외 4편
* 금상 1명--상장과 상금 50만원
박누리--[시조] 편지 외 4편
* 은상 1명--상장과 상금 30만원
김애경--[수필] 낙서 외 1편
* 동상 2명--상장과 상금 20만원
김기옥--[수필] 단 칸 방의 추억 외 1편
조현자--[수필] 이어달리기 외 1편
- 심사위원 : 정남채(문학평론가, 문학박사)
<대상작>
적당히 습기 찬 저녁
적당히 습기 찬 저녁이면 어김없이 창문 밑에 숨었다가 슬쩍
더듬이부터 내미는 달팽이 하나 그는 남향인 이 집에서 저 누런
벽지보다도 오랜 주인의 역사를 훔쳐보았을 것이다 그의 동그란 등
안에는 누구도 보행을 돕지않아 화석이 되어버린 그의 아버지가 살고
있다 그의 동그란 등 안에는 매일밤 벌레먹는 배추를 다듬는 부여식당의
어머니와 가위눌린 생에 놀란 누이-상고를 졸업하자마자 띠동갑 사내를 따라
유난히 파도가 높은 바닷가 마을에서 거미처럼 그물을 기우며 하루를 보내는-와
인문계고등학교를 나와 어느날부턴가 아무말 없이 조금씩 밥을 줄이던 그의 막내동생이
살고 있다 금일도 그 아버지의 혹은 어머니의 아들은 남향인 이 집에서 저 누런 벽지보다도
오랜 축축한 생의 길을 내고 있다
첫댓글 심사 하느라 수고 많이 하셨읍니다
"문학작품은 작가와 독자의 거리를 연결짓는 소통에 설계도다" 동감 합니다
정 남채 선생님 좋은글 잘 보았습니다. 다른 당선작 모두를 보고 싶은데 모두 볼수 있을 까요?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