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葆光의 수요 시 산책 82)
32(XXX)
Love came to us in time gone by
When one at twilight shyly played
And one in fear was standing nigh—
For Love at first is all afraid.
We were grave lovers. Love is past
That had his sweet hours many a one:
Welcome to us now at the last
The ways that we shall go upon.
지난날 우리에게 사랑이 왔지요,
한 사람은 황혼 무렵 수줍어하며 장난치고
한 사람은 두려워하며 곁에 있었지요—
사랑은 처음엔 다 두려우니까.
우리는 무덤의 연인이었지요. 사랑은 이제 과거의 것,
향기로운 수많은 시간들.
이제 마지막 순간
우리 각자 따로 걸어갈 길을 맞이해요.
- 제임스 조이스(1882-1941), 『사랑은 사랑이 멀리 있어 슬퍼라』, 공진호 옮김, 아티초크,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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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문韻文이라고 하지요. 우리의 시가 문학에서는 시와 운문을 혼용하기도 하지만 엄격하게 말하면 운문은 일정한 운율을 지닌 문장 양식으로 리듬이나 정형성에 제약받지 않는 자유로운 문장의 산문散文과 대립하는 시문만을 말합니다. 우리의 시가는 시조 등 일부 정형시에서 음절과 음보를 맞추는 음수율과 음보율 등 율조를 사용하지만 운은 거의 사용하지 않습니다. 자유시는 이도 저도 거의 안 쓰지요. 운문에서 압운押韻은 문장에서 구나 행에 규칙적으로 같은 운의 글자를 배치하는 것으로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압운으로는 배치하는 자리에 따라 첫머리의 두운頭韻, 중간의 요운腰韻, 끝의 각운脚韻이 있고, 자음이나 모음의 비슷한 음절을 반복하는 것으로 끝 자음이 서로 다른 낱말에서 강세를 가진 모음을 반복하는 유운類韻(모운母韻), 끝이나 중간의 자음을 반복하는 자운子韻 등이 있습니다. 이 운율을 라임이라고도 하는데 시에서는 거의 볼 수 없는 라임을 요즘에는 힙합 가수들의 랩에서 외려 빈번하게 들을 수 있습니다. 제임스 조이스의 『사랑은 사랑이 멀리 있어 슬퍼라』에 수록한 시들은 전부 이 압운을 배치하고 있는데 각운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위 시에서도 각 연의 1, 3행(by[bai] nigh[nai] / past[pæst] last [læst])과 2, 4행(played[pleiˈd] afraid[əfréid] / one[wʌn] upon[əpάn, əpɔ́ːn])에 각각 배치한 각운을 볼 수 있습니다. 한시 외에 번역시는 원시를 거의 옮기지 않았으나 오늘은 압운을 보여드리려고 원시도 함께 옮겼습니다. 아일랜드 더블린 태생으로 20대 초에 유럽으로 이주해 이탈리아 트리에스테, 프랑스 파리, 스위스 취리히 등지에서 살았던 제임스 조이스는 『젊은 예술가의 초상』 『율리시즈』 등의 소설로 널리 알려진 작가이나 창작 활동의 시작은 시로 시작했으며, 원고를 출판사에 보내 출간을 꾀한 3년 뒤인 1907년에 발간한 위 시집이 첫 책입니다. 『사랑은 사랑이 멀리 있어 슬퍼라』는 사랑에 빠진 청년의 목소리로 청춘의 사랑과 그 상실을 노래한 시로 채워져 있습니다. 연보를 보니 이 시들은 1901년 열아홉 살 때부터 쓰기 시작했는데 동생의 증언으로는 제임스 조이스가 막상 사랑에 빠지자 더 이상 사랑에 관한 시를 쓰지 않았다고 하니 아이러니합니다. 제임스 조이스는 자신의 시들이 노래로 만들어지기를 원했다고 하는데 희망한 대로 많은 작곡가들이 그의 시에 곡을 붙여서 그 수가 140곡이 넘는다고 합니다. 위 시의 화자는 한 편의 이 시에서 사랑의 처음과 끝을 다 노래하면서 “수줍어하”고 “두려워하며” 맞은 “사랑”도 “과거의 것”이 되자 한때의 “연인”을 “무덤의 연인”이었다고 하네요. 이별의 순간이 매우 모질었더라도 화자의 이 자책은 끔찍합니다. 어쩌면 허구의 상상으로만 쓴 시여서 가능한 시문이었을까요. 심한 말을 내뱉은 뒤 우리도 가끔 그러잖아요. ‘아니 말이 그렇다는 거지.’ 말이 그렇더라도 안 할 말은 애초부터 안 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겠습니다만, 이것이 실제라면, 이런 관계가 어디 사랑뿐이겠습니까. 세상사 많은 관계가 이렇게 끝이 나서 “이제 마지막 순간/우리 각자 따로 걸어갈 길을 맞이해”야 할 때라도 “수많은 시간들”을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라도 추억할 수 있도록 절대 돌이킬 수 없는 미움만은 서로 짊어지고 가지 않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남은 생 동안 한때의 내 사람을 “무덤의” 사람으로 마음에 두고 살아가기에는 우리의 삶이 너무 짧아서입니다. (20250205)
첫댓글 제임스 조이스의 시를 잘 읽었습니다.
사랑의 처음과 마지막 순간이 극적으로 대비되어 좀 슬프기는 합니다만.
영시의 운율도 잘 보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