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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 생명을 찾는 경봉 스님 가르침’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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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도사 군자’이자 ‘영축산 도인’으로 추앙받았던 경봉 스님은 18세에서 85세에 이르는 67년 생애를 소상히 담은 ‘삼소굴 일지’를 남겨 후학들에게 길을 제시할 정도로 섬세했던 당대의 선지식이다.
스님은 1892년 경남 밀양에서 태어나 독학으로 한글을 깨치고 한문사숙에서 ‘사서삼경’과 ‘명심보감’ 등을 배웠다. 이때 익힌 출중한 한문 실력은 불경을 익히고 오도 이후 한시의 율격에 맞게 선시를 쓰는 바탕이 되기도 했다. 만해 스님에게 ‘화엄경’을 배우면서 나라와 민족에 눈을 뜨고, ‘조선 백성들에게 지혜를 심어주겠다’는 다짐도 했다.
은사의 명으로 절 사무를 보던 어느 날 습관처럼 펼쳐든 ‘화엄경’에서 ‘종일수타보 자무반전분(終日數他寶 自無半錢分, 종일토록 남의 보배를 세어도 반 푼어치의 이익이 없다)’이라는 대목을 보는 순간 그 구절이 불화살이 되어 머리에 꽂혔다. 경전 구절마다 진리의 말씀 아닌 것이 없기는 하지만 그것은 부처님의 보배이지 자신의 보배가 아니라는 생각이 머리에 들어서면서 더 이상 그대로 안주할 수 없었다.
경봉 스님은 ‘일대사를 해결하겠다’는 발심으로 은사조차 모르게 통도사를 떠나 제방의 선지식을 만나며 가행정진을 이어갔다. 그리고 통도사로 돌아와 조실 해담 화상의 허락을 받아 ‘화엄경’을 설하는 화엄살림법회를 연후 1주일 만에 바람 한 점 없는 새벽에 갑자기 촛불이 춤추는 것을 보고 확철대오, “내가 나를 온갖 것에서 찾았는데, 눈앞에 바로 주인공 나타났네. 허허 이제 만나 의혹 없으니, 우담바라 꽃의 빛이 온 누리에 흐르네”라는 깨달음의 노래를 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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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봉 스님은 "사바세계를 무대로 연극 한바탕 멋들어지게 해야 한다"며 주체적 삶을 살아갈 것을 당부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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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후학들에게 “깨닫겠다는 집착을 버리고 무심히 구름이듯 바람이듯 어디에도 걸리지 말고 중답게 수행할 것”을 당부했던 스님은 1982년 7월17일 “야반삼경에 대문 빗장을 만져보라”는 임종게를 남기고 입적했다.
“사바세계를 무대로 연극 한바탕 멋들어지게 해야 한다”고 했던 경봉 스님은 스스로도 그렇게 살아가면서 수많은 경전을 보며 부처님 가르침을 익혔고, 수행을 통해 그 가르침을 체화했다. 이어 수행승은 물론 어린 학생이나 촌부까지도 자상하게 제접하며 부처님이 그랬던 것처럼 그 사람 사람마다에 맞게 대기설법으로 가르침을 전했다.
그때마다 스님은 옛 조사나 부처님 말씀을 있는 그대로 빌리기보다 자신의 혜안으로 가르침을 전해 상대를 감화시키고 발심하도록 했다.
‘참 생명을 찾는 경봉 스님 가르침’은 저자 김현준이 스님 열반 30주기를 맞아 세상 사람들이 한바탕의 멋진 연극, 멋들어지는 삶을 이루는데 밑거름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엮었다. 스님 말씀을 ‘도 어디에 있는가’, ‘무상과 꿈과 자성’, ‘참 생명을 찾는 공부’, ‘공부를 잘 하려면’, ‘화해롭게 살아라’, ‘일상에서의 깨우침’ 등 여섯 장으로 나눠 오늘날 현대인들이 스님의 가르침을 직접 듣고 삶의 잣대로 삼을 수 있도록 구성했다.
책에는 영축산 도인 경봉 스님의 참 생명을 찾는 공부와 도에 대한 가르침, 무상하고 꿈같은 인생의 실체에 대한 가르침, 참선 수행을 통해 참된 주인공을 찾고 진짜 보배를 찾는데 필요한 가르침, 부부의 도·자녀교육·자연 속에서 화해롭게 사는 법, 사바세계를 무대로 삼아 멋있게 사는 법 등 스님의 가르침이 다양한 이야기와 함께 자세하게 실렸다.
“쾌활하고 낙관적인 기분으로 활기찬 생활을 해야 한다. 여태껏 생활해 온 모든 사고방식과 생활 관념에 잘못이 있으면 텅 비워버리고 바르고 참되고 활발한 산 정신으로 살아가야 한다”면서 그 방법을 고구정녕 일러주었던 도인의 가르침을 듣고 나면, 한바탕 멋진 삶을 살아갈 자기만의 무대를 만드는 일도 두렵지 않을 것이다. 6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