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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76장
다섯 사질이 집안을 정리하느라 바쁜 시간. 진우청은 조부님과 부친 앞에서 뒤늦은 귀가 인사를 드리고 있었다.
“ 야반도주를 하였느냐?”
마주한 자리에서 조부님의 첫마디는 하산을 하며 예측한 그대로였다. 사부를 따라 산으로 갈 땐, 한 이십 년 동안 맡아 가르쳐 달라고 하셨던 말씀을 잊지 않고 계신 것이다.
진우청은 씨익,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답했다.
“ 싹수가 노란 놈이라 도저히 못 가르치겠으니 집으로 가라고 하셔서 쫓겨왔습니다.”
“ 고얀 놈!”
조부는 예전과 비교해 조금도 기력이 떨어지지 않은 목소리로 고함을 질렀다.
진우청은 여전히 웃음을 베어 물었다. 조부님은 전혀 달라지지 않고 계셨지만 자신은 달라졌다. 더 이상 회초리를 겁내던 어린애가 아닌 것이다.
“ 그때 사부께 주셨던 오만 냥은 제가 차차 벌어서 갚겠습니다.”
“ 허허, 이놈이 그래도!”
조부는 어이가 없는 표정으로 거푸 고함을 질렀다. 진우청은 더욱 짖궂은 미소를 지었다.
“ 대신에 매 맞는 연습은 충분히 하고 왔습니다. 이젠 웬만한 회초리로는 기별이 오지 않습니다.”
“ 그만 하거라, 이놈아!”
보다 못한 진장월이 엄하게 말했다.
“ 그러냐, 이놈! 그럼 어디 한번 맞아 보거라. 냉큼 이리로 오너라.”
조부는 서탁 아래에서 곰방대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목침을 무릎 앞에 놓았다.
진우청은 설마 하는 표정으로 조부님을 쳐다보았다.
조부님의 얼굴에 예전의 그 엄한 기운이 흘러넘치고 있었다.
‘ 내가 좀 심했나? 그래도 그렇지, 옛날 같으면 애가 있어도 둘은 있을 나인데.......’
진우청은 내심 혀를 찼다.
“ 어서!”
조부는 다시 고함을 질렀다.
“ 아, 아버님!”
엄한 부친의 기세에 진장월이 나서서 만류했지만 부친의 노여움은 수그러들지 않았다.
입맛을 다신 진우청은 종아리를 걷고 목침 위로 올라섰다.
곰방대를 손에 든 조부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 하, 할아버지.”
조부의 눈에 눈물이 흐르는 것을 본 진우청은 깜짝 놀라 외쳤다.
“ 깊고 황량한 산속에서 뭘 먹고 이렇게 컸느냐? 천금 같은 내 새끼야!”
곰방대를 떨어뜨린 조부는 깍지동이 같은 진우청의 허리를 와락 감싸 안았다.
어린 손자를 산에 보내고 그동안 얼마나 노심초사하고 계셨는지를 조부의 눈에서 읽은 진우청은 한참 동안 아무 말도 못하고 조부를 내려다만 보았다.
“ 이젠 어머니에게도 인사를 드리도록 하여라. 산으로 떠난 후부터 지금까지 하루도 네 얘기를 하지 않은 날이 없었다.”
조부의 귀가 인사를 마친 후, 진장월은 진우청을 어머니 처소로 보냈다.
“ 정말 많이 컸구나!”
진우청은 어머니로부터 벌써 열 번도 더 그 소리를 들었다.
집을 떠날 때도 이미 형보다 컸지만 지금은 비교가 되지 않았다. 키가 크지만 조금은 왜소해 보이는 형의 체형에 비해 철탑 같은 체형의 진우청은 전체적으로 두 배는 더 커보였다.
그런 진우청이 대견하면서도 자신의 손으로 그렇게 키우지 못한 한이 어머니의 눈에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 어머니는 그때나 지금이나 하나도 나이 들지 않고 그대로입니다.”
진우청은 어머니의 손을 잡은 채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 그럴 리가 있겠느냐. 이젠 외할머니 소리를 듣는 처지인걸.”
어머니는 온화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얼굴도 아련한 누나 한 명은 출가하여 벌써 애가 둘이라는 말을 들었다.
그리고 이젠 형도 혼사를 치르면 조만간 친손주도 생길 것이다.
산으로 떠날 때는 말도 제대로 못했던 여동생은 조송령 또래로 자라있었다. 이틀 전, 진우청이 나타났을 때 괴물인 줄 알고 털썩 주저앉았던 소녀가 바로 동생 효민이었다.
그리고 그 아래로 남동생이 둘이나 더 있었다.
한 놈은 그때 젖먹이였던 기억이 나는데 막내 놈에 대해서는 전혀 기억이 없는 것으로 봐서 녀석은 자신이 산으로 떠난 후에도 여전히 변치 않은 부모님 금슬의 결과일 것이다.
‘ 그렇다면 모두 육 남매란 말인데.....’
진우청은 내심 손을 꼽으며 자신을 포함한 형제들의 숫자를 헤아렸다.
산속에서 고아처럼 살아온 그로서는 자신이 육남매 중 한 명이라는 느낌이 너무도 생소했다. 그러면서도 가슴 한구석으로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충만감이 느껴졌다.
그 충만감을 더욱 진하게 느끼게 해줄 존재들이 방으로 들어왔다.
바로 아래의 여동생 효민과 두 남동생인 우명과 우신이었다.
남동생 두 명은 자신과 마찬가지로 좀 서먹서먹해했다. 반면 여동생 효민은 단 몇 시진 만에 십여 년의 세월을 단박에 날려 버렸다.
그녀는 단편적이기는 하지만 둘째 오빠에 대한 기억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이 십여 년이란 세월의 장벽을 무너뜨리는 큰 망치 역할을 했다.
“ 곰 오라버니! 어머니와 무슨 환담이야?”
효민은 진우청을 처음 보았을 때의 놀람을 털어버리려는 지 별명까지 지어 곰살궂게 대했다. 진우청은 솥뚜껑만한 손으로 동생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입을 열었다.
“ 정말 많이 컸구나!”
“ 어머머! 오라버닌... 내가 무슨 어린앤가?”
효민이 펄쩍 뛰며 소리를 질렀다.
진우청은 씨익, 웃으며 두 남동생의 머리도 같이 쓰다듬은 후 막내 남동생의 볼을 꼬집었다.
“ 너도 싹수가 노란거냐?” 막내 남동생은 영문을 몰라 눈을 끔벅거렸다.
“ 하하!”
진우청은 너털 웃음을 터뜨렸다.
두 남동생 중 위엣 놈은 형을 닮아 호리호리했지만, 막내는 형보다는 자신을 더 닮아 어깨가 떡 벌어졌다. 눈을 끔벅이는 모습 역시 자신과 닮았다.
그렇다면 이 녀석의 행동거지도 어떨지 짐작이 갔다.
“ 생긴 것만 막내가 널 닮았다. 성격은 우명이가 딱 너를 닮아 할아버지의 속깨나 썩이고 있단다.”
어머니의 설명을 들은 진우청은 묘한 부조화에 바로 아래 동생을 다시금 쳐다보았다.
민첩해 보이는 몸매와 총명해 보이는 눈빛은 아무리 봐도 형을 닮았지 어디에도 자신을 닮은 구석이 없었다.
“ 형, 나 형 따라가면 안 될까?”
동생 우명이 불쑥 말했다. 진우청은 비로소 이 녀석이 외모는 형을, 성격은 자신을 닮았다는 말이 실감났다.
겉보기만 총명해 보이는 눈동자 뒤에는 할아버지의 속박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는 간절한 소망이 숨겨져 있었다.
“ 어딜?”
진우청은 얼굴에 떠오른 미소를 지우고 대꾸했다.
“ 북제성이나 무림맹에.....”
“ 그곳에 뭣 하러? 열 살도 넘은 놈이 이제와서 무공이라도 배우고 싶은 거냐?”
“ 아니, 절대로!”
“ 그럼?” 진우청은 눈을 끔벅거렸다. 녀석의 말하는 투가 점점 자신과 닮았다는 것이 느껴졌다.
“ 장사 공부도 싫고, 형과 달리 무공도 체질에 안 맞을 것 같고.... 그냥 세상 구경이나 하며 살고 싶어서.......”
진우청은 잠시 할 말을 잃었다.
“ 이런 싹수가 노란 놈을 봤나?”
마침내 진우청은 눈을 부릅뜨며 고함을 질렀다.
잠시 더 환담을 나누다 아침 인사를 하러 온 동생들을 내 보낸 후 진우청은 약간은 긴장된 표정을 했다. 내친김에 여기 온 목적을 달성할 생각이었다.
“ 왜, 무슨 긴히 할 말이라도 있는 것이냐?”
아들의 기색을 읽은 어머니가 먼저 물었다. 진우청은 잠시 더 망설이다 말문을 열었다.
“ 어릴 적 기억이라 정확하진 않지만 어머니의 패물함에 있는 옥패를 보고 싶습니다.”
“ 옥패?”
어머니의 얼굴에 의아한 표정이 떠올랐다.
“ 마름모꼴로 생긴 옥패로 한쪽에는 열쇠 그림과......”
“ 아, 그것 말이구나, 그런데 그건 왜?”
어머니는 약간 어두워진 얼굴로 답했다.
“ 가지고 계신는지요?”
진우청은 서둘러 물었다.
“ 가지고 있다마다. 내 뿌리를 찾을 수 있는 유일한 물건인 것을...”
어머니의 목소리가 쓸쓸하게 흘러나왔다.
결혼하기 전까지 어머니는 사고무친이라고 한 형의 말이 맞는 모양이었다.
“ 그게 어떤 것인지......?”
진우청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 취경원 학사님께 맡겨질 때 내 목에 걸려 있었다고 들었다. 아마도 내 부모님께서 나중에 날 찾기 위해 내 목에 걸어둔 채 맡긴 모양이다.”
어머니의 목소리는 젖어들고 있었다.
“ 그 목걸이를 고이 간직하고 있으면 뿌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로 살았는데,
이제까지 아무런 소식이 없었으니 그 기대는 그만 포기해야 할 때가 된 것 같구나. 그런데 그건 왜 묻는 것이냐?”
어머니는 문득 의문을 느꼈는지 눈을 들어 진우청을 쳐다보았다.
“ 그냥 저 역시 어머니 뿌리가 궁금하여 물어본 것입니다. 그런데 어머니를 취경원에 맡긴 사람이 누군지는 학사님께서도 모르시던지요?”
진우청의 질문에 어머니는 무겁게 고개를 흔들었다. 다른 사람의 손에 의해 취경원까지 맡겨진 것이거나, 문밖에 놓여진 상태로 발견된 모양이었다.
어머니의 표정이 너무 안쓰러워진 진우청은 더 이상 질문을 하지 못했다. 대신 다른 것으로 관심을 돌렸다.
“ 좀 보여주시겠습니까?”
“ 옥패 말이냐?”
아무런 표정 변화 없이 진우청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머니는 잠시 진우청을 쳐다보다 옷장 깊은 곳에서 작은 상자를 꺼냈다.
탁-
상자 뚜껑을 열자 여러 종류의 패물과 함께 어린애 손바닥만한 옥패가 모습을 드러냈다.
진우청은 자신도 모르게 가빠지려는 숨을 골랐다.
옥패는 예전의 모습 그대로였다.
영록한 녹색도 그대로였고, 양쪽에 새겨진 정교한 문양도 그대로였다.
특히 양각된 열쇠 문양 표면에 덧칠된 금박은 마치 옥패의 일부처러 단 한 곳도 벗겨진 곳 없이 완벽히 보존되어 있었다.
“ 예사 물건이 아닌 것 같군요.”
진우청은 탄성처럼 말했다.
‘ 그러면 뭐 할꼬, 아젠 아무런 의미가 없는 물건이 된 것 같은데......“
어머니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 그럼 이걸 제게 잠시 맡겨주시겠습니까?”
진우청은 잠시 뜸을 들인 후 말했다.
“ 무얼 하려고?”
“ 이렇게 감춰놓는 것보다 밖으로 나돌아 다니는 제가 목에 걸고 다니면 누군가 인연 있는 사람을 만날지도 모르지요.”
진우청은 어머니를 속이는 것 같아 죄스런 마음이 들었지만 자신 역시 제대로 아는 것이 없엇고, 그나마 아는 것들을 어머님께 다 알려드리기에는 너무 위험한 물건이었다.
아무런 의심 없이 자신에게 넘어오는 것이 훨씬 나았다.
“ 언젠가 수린이에게 넘겨주려고 했는데..... 차라리 네게 주는 것이 낫겠구나. 그렇게 하려무나. 대신 형에게는 내보이지 않게 하거라.”
어머니는 옥패를 진우청에게 넘겨주었다.
어머니의 처소에서 나온 후 자신의 처소로 돌아온 진우청은 조심스럽게 창룡금시라 이름 붙여진 옥패를 꺼낸 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정교하게 새겨진 문양들은 볼수록 감탄을 자아내게 했다.
분명히 누군가가 깎아 만든 것일진데, 비상하는 용 문양과 금박을 한 열쇠문양은 전혀 인공의 흔적을 느낄 수 없을 정도로 완벽하게 양각되어 있었다.
진우청은 옥패를 이리저리 돌려보며 세세히 조사했다.
그러나 비상하는 용 문양과 금박 열쇠 문양 외에는 다른 특별한 점은 아무것도 없었다.
“ 이것이 어떻게 북제성 사람들의 운명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인가?”
혼잣소리와 함께 진우청은 훨씬 더 집중력을 발휘하여 옥패를 살폈다.
두 개의 문양 외 여전히 특별한 것은 없었다.
옥패의 외양에 한 동안 관심을 쏟고 있던 진우청은 입맛을 다시며 옥패를 품에 집어넣었다.
“ 그런데 이것이 어떻게 사부의 손에서 어머니에게 전해진 것일까?”
진우청은 품속에 갈무리한 옥패를 손으로 쓰다듬으며 옥패의 존재만큼이나 궁금한 사실을 떠올렸다.
돌아가신 큰사백이나 성주이신 둘째 사백에게서 들은 바로는, 두 번째로 사문으로 돌아온 사부는 북제성 사람들의 기막힌 운명을 알아내고는 그 해결책을 이 옥패에 담아 왔다고 했다.
사부의 말을 모두 허튼소리로 여긴 북제성 사람들은 그걸 믿지 않고 사부를 공격했고, 사부는 심한 상처를 입고 탈출하셨다.
물론 창룡금시도 같이 가지고 탈출하셨으니 그 뒤에 이 옥패는 어머니에게로 전해졌을 것이다.
사문 사람들의 공격을 받고 큰 상처와 함께 탈출한 사부는 어떤 행보를 걸었을까?
그리고 어떻게 어머니에게 옥패가 전해졌을까?
그렇다면 사부와 어머니의 관계는?
궁금증이 꼬리를 물고 일어났지만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 괴팍한 노인네... 같이 있을 때 뭔가 귀띔이라도 좀 해줄 것이지.....”
진우청은 한숨을 푹 쉬며 침상에 드러누었다.
두 가지는 확실했다.
이 옥패가 어떻게 어머니 목에 걸려 있었는지 알 수 있는 단서는 어머니를 키운 취경원밖에 없다는 것!
그리고 또 하나는 사부는 결코 우연히 지나가다가 자신을 제자로 삼은 것이 아니라는 것!
“ 쩝! 그렇다면 오만 냥은 아낄 수도 있었는데..... 할아버지나 아버지, 두 분 모두 사부에 비하면 한참 멀었어.”
진우청은 피식 미소를 지었다.
“ 엇!”
복잡한 상념을 떨쳐 버리려 머리를 흔들던 진우청은 외마디 경호성과 함께 몸을 일으켰다.
밖에서 소란이 느껴진 것이다.
몸을 일으킴과 동시에 진우청은 문을 박차고 나갔다.
정원 안으로 내려서는 인물들을 보며 진우청은 일단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들은 적도들이 아니라 남패천 무적대였다.
몇 명의 무적대원들을 뒤로 삼조의 조장 배염오가 진우청을 보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황산으로 간 것으로 알고 있는 진우청이 이곳에 있는 것이 이해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궁금증을 뒤로한 배염오가 급하게 입을 열었다.
“ 가족들과 함께 피하셔야겠습니다.”
배염오는 누가 쫓아오기라도 하느지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 어떻게 여기에?”
배염오의 다급한 모급과는 상관없이 진우청은 슬쩍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이들과 같이 다니면 ‘나 여기 있소.’ 하는 것과 마찬가지인지라 황산으로 가는 것처럼 하고는 소리없이 방향을 튼 것이다. 그런데도 이들은 이곳으로 왔다.
“ 쓸데없는 짓들을 한 건 아니겠지요?”
진우청은 경설형을 보며 말했다. 혹시라도 그들이 고의로 흔적을 남기지 않았나 해서였다.
경설형은 고개를 흔들었다.
“ 흔적을 찾아내어 따라온 것은 아니오. 북제성 사람들을 추적할 만큼 실력을 갖추지 못했으니까 말이오.
황산으로 가던 중 서왕문 놈들이 이곳으로 대거 움직이고 있다는 비원각의 연락을 받고 대주의 지시로 두 패로 나누어 우리는 곧장 이리로 온 것이오.
오던 중에 놈들과 맞부딪쳤는데, 대원들은 고립되고 우리만 탈출하여 우선 이곳에 위험을 알리러.....”
배염오는 최대한 빠르고 간략하게 설명했다.
“ 고립?”
진우청은 와락 눈을 치켜떴다.
채준생이나 성성이 인간을 통해 머지 않아 서왕문 놈들이 이리로 올 것이라는 짐작은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놈들에게 무적대가 고립되어 자신들만 탈출했다는 말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비록 반으로 인원을 나누었다고 했지만 서왕문의 졸개놈들이게 당할 무적대가 아니었다.
“ 놈들은 얼마나 되오?”
“ 삼백 명 정도입니다.”
배염오가 이를 악물며 답했다.
“ 그럼 당신들은?”
“ 팔십!”
“ 무적대 팔십으로 서왕문 졸개들 삼백을 못 꺾어 고립되고, 당신들만 이곳으로 위험을 알리러 왔단 말이오?”
진우청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 졸개들 뿐이라면 두 시진이면 되겠지요. 하지만 그들 속에 극강의 고수들이 섞여 있었습니다. 금강불괴처럼 도검이 통하지 않았소.”
“ 도검이 통하지 않는다고?”
배염오의 설명에 진우청은 의문스럼 표정을 지었다.
다른 사람들의 도검이라면 또 모르겠지만 남패천 최고의 전투부대인 무적대의 도검도 통하지 않을 만한 고수들이 있단 말인가?
경설형과 을지소소 등도 서서히 긴장하는 눈을 했다.
“ 그들은 어디 있소?”
“ 저 산 너머 평원에 있습니다.”
배염오의 눈에 초조감이 어렸다. 아마도 동료들의 희생을 걱정하는 것 같았다.
배염오의 설명을 모두 들은 진우청이 눈에 서서히 불길이 일었다.
밤도 아니었지만 그 불길은 밤에 마주친 야수의 눈빛처럼 벌겋게 쏟아졌다.
진우청은 급히 방으로 날아들었다.
“ 사숙!”
방에서 용곤과 호곤을 등에 꽂고 나오는 진우청을 보며 을지소소가 앞을 막았다.
“ 사질들은 혹시 모르니 내 가족들을 대피시키고 보살펴 주시오.”
진우청은 을지소소와 경설형을 보고 말했다.
“ 그곳에는 저희들이 가겠습니다. 여기는 사숙께서 지키는 게 어떻겠습니까?”
“ 그동안 무적대에게 많은 신세를 졌소. 또한 놈들은 우리 가문을 치러 오는 것이 분명하오. 그들을 처치하지 못한다면 나중에 더 위험해질 것이오.”
진우청은 단호하게 말했다.
“ 그럼 제가 따라가겠습니다.”
경설형이 검을 어깨에 둘렀다.
“ 저도 가겠어요.”
걱정스런 표정과 함께 을지소소도 나섰다.
“ 사매는 장 사제와 여기 남아서 무슨 일이 있으면 흑풍, 백왕, 설아를 움직여 연락해. 운 사제와 조사매는 나와 같이 간다.”
경설형이 단호하게 말했다.
을지소소가 반박을 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어쩌면 이곳에서 진우청의 가족들을 보호하는 게 더 중요할지도 몰랐다.
“ 안내하시오.”
진우청은 배염오를 다그쳤다.
배염오는 같이 온 부하들에게 명령을 내려 을지소소 등과 함께 이곳을 지키게 하고는 자신 혼자만 몸을 날렸다.
“ 대체 저게 뭐지?”
남궁상조는 어이없는 표정을 하며 동생 남궁상무를 바라보았다.
남궁상무 역시 남궁상조와 비슷한 표정으로 앞만 바라보고 있었다. 두 개의 구릉과 그 구릉 사이를 넓은 잡초 지대가 가로 지르고 있었다.
잡초는 아무런 방해 없이 마음껏 자라 사람 키를 능가하고 있었다.
파앗-
파아앗-
파공음과 함께 무성하게 자란 잡초들이 허공으로 솟구치다가 비산했다.
까까까깡!
이번에는 쇳소리가 연속적으로 터졌다.
여러 개의 도검이 어디엔가 한꺼번에 부딪치는 소리였다.
파앗-
한 무더기의 잡초가 다시 허공으로 비산하자 잡초 속에서 혈전을 벌이던 인영들의 모습이 드러났다. 한 명의 회의인을 향해 네 명의 사내가 사정없이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까강-
두 개의 검이 포위된 회의사내의 몸에 부딪쳐 튕겨 나가고, 다른 두 개의 검은 회의사내의 허리와 등, 가슴을 가격했다.
네 명의 흑의인이 뿌리는 검은 가히 벼락을 방불케 했기에 회의사내의 몸은 여러 토막으로 잘려져야 마땅할 상황이었다.
그러나 회의사내의 육신은 조각나지도 않았을뿐더러 훨씬 더 쾌속하게 팔을 휘둘렀다.
그들은 서서히 공포의 대명사로 자리잡아 갔다.
처음에는 칙칙한 회의에 머리에도 복면을 쓰고 있었는데, 혼전 중에 복면이 벗겨지자 그 속에서 호랑이 얼굴이 튀어나왔다.
안면 전체에 호랑이 얼굴 문신을 한 결과였다.
겉모습도 괴기스러웠지만 그들의 능력은 아예 공포였다.
여러 사내들이 혼신의 힘으로 휘두르는 도나 검이 그들의 몸에 미세한 상처 하나 새기지 못하였다.
까앙-
다시 한 번 금속성이 울리며 흑의사내 하나의 검이 동강 나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그들은 남패천의 무적대였다.
동강 난 검을 따라 한줄기 굵은 선혈이 허공으로 솟구쳤다.
동료 한 명이 쓰러진 것을 본 네 명의 무적대원이 분기탱천한 모습으로 한꺼번에 달려들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두 개의 검은 팔에 맞아 튕겼고, 다른 두 개의 검은 호면괴인의 목과 심장을 가격했지만 호면괴인은 끄덕없었다.
그런 싸움이 여러 곳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주변으로 수백 명의 사내들이 싸움터를 포위하고 있었다.
“ 저게 누구이든 우선은 도와야 하지 않나요?”
한 여인이 날카롭게 소리를 질렀다.
스물을 갓 넘었을까?
얼굴은 소녀의 티가 조금 남아 있었지만 훤칠한 키에 굴곡이 완연한 몸매는 어떤 여인보다도 성숙해 보였다.
그녀는 남궁가의 암표범 남궁석랑이었다.
그녀의 말과 함께 남궁상조의 얼굴에 갈등의 빛이 어렸다.
흑의인들, 그러니까 남패천의 무적대를 도와 행동을 같이하라는 맹주의 친서를 받고 여기까지 바라처럼 달려오긴 했지만 가공할 무위를 지닌 호랑이 얼굴 괴인들을 보니 선뜻 내키지 않았다.
남패천 무적대 다섯 명의 합공을 받고도 끄떡없는 저들과 상대한다면 남궁가의 피해는 불을 보듯 뻔했다. 그러기에 선뜻 나서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 우리가 무램맹을 돕지 않는다면 무림맹 역시 우리를 돕지 않을 것이고, 그러면 예전처럼 정파무림은 사패천의 발아래에서 굴욕을 겪을 수밖에 없어요.”
그 말과 함께 남궁석령은 검을 뽑아들었다.
“ 그럼 바깥을 둘러싼 서왕문의 포위망만 무너뜨려라. 호랑이 문신을 한 놈들에게는 절대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 남패천 무적대의 힘으로도 안 되는 자들이라면 우리도 소용없다.”
남궁상무는 엄한 눈으로 남궁석령을 쳐다보았다. 남궁석령은 고개를 끄덕거린 후 땅을 박찼다. 그와 함께 남궁가의 무사들이 소리없이 들판으로 쏘아졌다.
“ 뭐, 이런 게 다 있어?”
무적대 일조의 조장 서한적은 숨을 몰아쉬며 고함을 질렀다.
괴물같은 인간들!
아니, 인간 형상을 한 괴물들이 더 맞는 표현이다.
다섯 명의 호면괴인 때문에 이곳에 갇혔고, 그 열배도 넘는 무적대원들이 그들을 상대로 사투를 벌이고 있다.
그 바람에 진즉에 베어져 시신이 되었어야 할 서왕문 졸개들은 뒤쪽으로 물러서서 두려움 반 호기심 반인 눈빛으로 관전만 하고 있다.
‘ 이러다간 몰살이다.’
서한적은 필사적으로 검을 내리쳤다.
까앙!
놈들은 결코 이지가 없는 괴물이 아니었다.
필사적인 힘이 실린 검은 피해내고, 자신의 몸으로 막을 수 있는 검에는 몸을 맡겼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기절초풍할 일이 아닌가?
아무리 힘이 빠졌다고 하지만 남패천 무적대의 도검을 맨몸으로 막아낼 인간들이 어디 있단 말인가?
그것도 한둘이 아닌 대원들의 검을......
“ 뒤로!”
구릉 위에서 남궁가의 사람들이 달려오는 것을 본 서한적은 고함을 질렀다. 무림맹 소속의 구원군이 온 것이다.
저들이라고 이런 괴물 앞에서는 별수있으랴마는, 저들과 혼전을 벌이는 틈을 타 대원들을 조금이나마 숨을 돌리게 할 작정이었다
“조심해라!”
명령을 내렸던 서한적은 다급하게 고함을 질렀다.
뒤쪽에서 포위망만 구축하고 있던 서왕문의 졸개들이 산개하는 대원들을 향해 그물을 조이듯 달려들고 있었다.
회의를 걸친 괴물들만 아니라면 두 시진 사냥감도 도지 앟을 조무래기들이 저 괴물 같은 인간들을 상대하느라 지친 대원들을 향해 달려들고 있었다.
“ 가소로운 놈들!”
서한적은 쾌속하게 검을 휘둘렀다.
피보라가 일며 두 명의 사내가 한꺼번에 쓰러졌다.
호면괴인들에 비하면 마치 썩은 나무토막 같았다. 그러나 그 나무토막마저도 더 이상은 쉽게 자를 수가 없었다.
기진맥진한 상태라 진기가 제대로 이어지지 않고 있다.
그건 대원들도 마찬가지였다. 설상가상으로 이제껏 자신들이 포위한 채 공격을 하던 호면괴인들이 안에서 치고 나왔다.
“ 크윽!”
비명과 함께 호면괴인 한 명의 손이 부하의 가슴으로 파고들었다. 부하의 가슴이 마치 푸줏간의 고기처럼 쩍 갈라지며 그곳에서 피가 터졌다.
단 일수에 갈비뼈가 끊어지고 심장까지 꿰뚫린 것이다.
“ 하앗-!”
야차처럼 고함을 지른 서한적이 피가 뚝뚝 떨어지는 호면괴인의 손목을 향해 혼신의 힘을 다해 검을 내리쳤다.
‘ 피?’
서한적은 어이없는 눈으로 호면괴인의 손목을 쳐다보았다.
처음으로 몸에 상처가 생기며 주춤 뒤로 물러나는 호면괴인의 손목에서 선명한 붉은 색의 피가 흘러나왔다.
서한적은 순간적으로 다리에 힘이 풀리는 것을 느꼈다. 저 괴물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것이 자신들 몸에서 흐르는 것과 똑같은 피라니.....
강시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것 같은 시커먼 죽은피,
흑혈이라면 당연히 여기고 분기탱천하여 계속 검을 휘두를 것이지만 자신들과 똑같은 피를 흘리는 인간이라 생각하니 썰물처럼 힘이 빠졌다.
강시니 고루니 하는 괴물이 아니고, 자신과 똑같은 인간이 이처럼 극강의 고수라면.....
절망감!
백화원에서 귀면랑인지 뭔지 하는 일행과 마주쳤을 때 느낀 높다란 벽 같은 절망감이 다시 느껴졌다.
“ 위험해요!”
뒤에서 날카로운 여인의 목소리가 들리며 칼을 쳐내는 소리도 같이 들렸다.
잠시 망연한 표정을 짓던 서한적은 다시 검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파앗-
뒤에서 달려들던 서왕문도 한 명의 허리가 갈라졌다.
“ 우선 쉬운 놈들부터!”
서한적은 고함을 지르며 서왕문도들 틈으로 스며들었다. 오히려 이놈들을 방패삼아 숨을 돌리 생각이었다.
부하들 역시 서한적과 같은 생각으로 서왕문 졸개들 사이로 파고들고 있었다. 마치 전갈의 독침을 피해 벌 떼들 사이로 몸을 피하는 형국이었다.
“ 고맙소, 소저!”
서한적은 연신 검을 휘두르며 남궁석령에게 사의를 전했다.
“ 그런 인사는...... 나중에!”
남궁석령이 악을 쓰며 한 명의 서왕문도를 더 베었다.
“ 위험하오!”
같이 한 명의 팔을 자르던 서한적을 발악적으로 고함을 지르며 검을 휘둘렀다.
호면괴인 한 명이 잡초를 가르며 나타나 팔을 뻗어오고 있었다. 그의 입가에는 보통 사람들처럼 희미한 조소가 어려 있었다.
깡-!
남궁석령의 목덜미를 향해 뻗어오던 호면괴인의 손이 주춤 뒤로 튕겨졌지만 그것도 잠시, 다른 한 손이 더 강하게 서한적의 가슴을 향해 뻗어왔다.
서한적은 급급히 퇴로를 밟았다.
“ 뒤를 조심해요!”
남궁석령이 고함을 쳤다. 뒤에서 또 한 명의 호면괴인이 다가들고 있었다.
서한적은 전신으로 소름이 끼쳐 옴을 느꼈다. 이놈들은 자신이 수장임을 알고 있었다.
대주 유화성이 없는 이곳은 전적으로 자신이 지휘했다.
놈들은 자신을 먼저 잡아 대원들의 사기를 떨어뜨리려 하고 있었다. 그런 행동은 강시라면 절대로 불가능한, 이성이 가미된 움직임이었다.
까앙-!
돌아보지도 않고 휘두른 검이 뒤쪽에서 다가들던 호면괴인의 팔에 부딪쳐 비명을 토했다.
“ 령아야!”
멀찌감치에 서서 서왕문도들을 상대하던 남궁상조가 다급한 고함을 지르며 몸을 날렸다.
절대로 호면괴인 곁으로는 접근하지 말라고 했지만 젊은 혈기는 왕왕 무모한 짓을 벌이기 마련이다.
까앙-!
남궁석령이 다시 한 번 위기에서 벗어났지만 또 한 명의 호면괴인이 측면에서 달려들고 있었다,
“ 아미타불!”
불호가 들리며 폭음이 터졌다.
측면에서 달려들던 호면괴인이 주르르 밀렸다.
“ 청허 스님!”
남궁석령이 놀라 고함을 질렀다.
무림맹 비무대회에서 보았던 소림의 후기지수였다. 그 역시 소림으로 복귀하던 중 무림맹의 급보를 받고 이곳으로 달려온 모양이었다.
그 뒤로 여러 명의 승려들이 달려오고 있었다. 이젠 수적으로는 열세를 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의 상황은 수가 문제가 아니었다. 저 괴물같은 인간들을 처치하지 못한다면 다시 열세에 놓이게 될 것이다.
퍼엉-!
청허의 주먹에서 산을 무너뜨릴 만한 권풍이 터졌다. 하나 여전히 호면괴인은 뒤로 주르르 밀렸을 뿐 내상을 입거나 쓰러지지 않았다.
“ 괴사로다! 아미타불.....”
이곳저곳에서 불호가 터졌다. 도검과 장력에 가격당해 상의는 너절해져 흘러내릴 듯했지만 호면괴인들은 자신들끼리 신호를 주고받으며 공격을 늦추지 않았다.
서한적은 잠시 가쁜 호흡을 골랐다.
남궁가와 소림의 가세로 전멸을 당할 위험에서 벗어났다. 하지만 피해가 막심하다.
서한적은 부하들의 상태를 살폈다. 멀쩡하게 서 있는 부하들의 숫자가 많이 줄어 있었다.
백화원에서 북제성의 흑궁 사람들을 상대한 이후 최대의 피해였다. 서한적의 눈에 살기가 충만했다.
“ 장우!”
서한적은 부하의 이름을 불렀다.
그사이 몇 명의 서왕문도들을 베었는지 온몸에 피칠을 한 장우가 급히 달려왔다.
“ 저놈, 한 놈은 꼭 베어라. 대체 어떤 놈들인지 알고 싶다.”
서한적은 자신의 혼신을 다한 검격에 팔에 상처를 입고 피를 흘리던 호면괴인을 지적했다.
“ 알겠습니다.”
장우는 고개를 숙인 후 대원들을 지휘했다.
파앗-
팟-
무적대 여섯 명의 검이 팔목에 상처를 입은 호면괴인을 향해 떨어져 내렸다.
까앙-!
호면괴인의 팔에서 쇳소리가 터졌다. 그와 함께 지혈되었던 피가 다시 흘러나왔다.
여전히 선명한 붉은 색이었다.
“ 계속!”
서한적이 고함을 쳤다. 장우와 함께 다른 대원들이 재차 달려들었다. 처음으로 호면괴인의 눈에 두려움이 어렸다.
주춤거리며 뒤로 밀리던 호면괴인이 입술을 움직였다. 전음으로 동료들에게 도움을 청하는 모습이었다.
파아아앗-
귀곡성 같은 굉음이 울리며 구릉 쪽, 서왕문도들이 결집해 있던 곳에서 무지막지한 경력이 쏟아졌다.
결전 속에서 조각조각 베어져 바닥에 흩뿌려진 잡초 줄기들이 먹구름처럼 흩날렸다.
“ 크윽!”
경력에 휘말린 남궁가의 무사 몇 명이 피를 토하며 훌훌 날려갔다.
똑같츤 호랑이 문신 얼굴에 짙은 청의를 걸친 평범한 체격의 사내! 그 사내가 경력이 쏟아진 곳으로부터 걸어오고 있었다.
청의사내가 장내로 나타나자 이제껏 죽기 전에는 멈추지 않을 것처럼 격렬하게 싸우던 호면괴인들이 고개를 숙이며 뒤로 물러났다.
회의괴인들을 뒤로 물린 청의괴인은 바닥에 있는 검 하나를 향해 발끝을 움직였다.
바닥에 나뒹굴던 검 한 자루가 허공으로 떠올랐다. 낚아 채듯 검을 잡은 청의괴인은 느긋하게 미소를 지었다..
그 모습은 마치 오랫동안 떨어져 있었던 애완동물을 쳐다보는 듯했다.
검을 쥔 청의괴인은 무게를 가늠하기라도 하듯 검을 허공으로 한바퀴 돌렸다.
우우웅-
슬쩍 한 바퀴 돌린 검끝에서 무거운 진동음이 울렸다. 너무 낮고 중후해서 오히려 소름이 끼쳤다. 소름이 끼치는 일은 연이어 일어났다.
검을 들자마자 허공으로 한바퀴 돌린 후 미끄러지듯 움직인 사내는 제일 가까이에 있는 무적대원 한 사람에게 사정없이 그 검을 휘둘렀다.
무적대원 한 사람의 몸뚱이가 짚단처럼 두 동강이 났다.
“ 후후!”
처음으로 청의사내의 입에서 인간의 목소리가 흘렀다. 그것은 놀이를 하는 아이 같은 웃음이었다.
“ 피하시오!”
소림의 해원 대사가 고함을 지르며 장력을 뿌렸다.
휘이잉-
장력은 청의사내가 장난스레 흔든 검 끝에서 증발하듯 사라져 버렸다.
혜원 대사의 장력을 흩어버린 청의괴인은 그 여세를 그대로 몰아 검을 휘둘렀다.
쐐애액-
검끝에서 시퍼런 불길이 일었다.
아지랑이처럼 아른거리며 쏟아지는 검광은 만약 지금이 밤이었다면 사위를 넓게 밝힐 만큼 강렬했다.
“ 크윽!”
남궁가 무사 하나의 팔이 검과 함께 떠올랐다. 계속해서 앞으로 쏘아지며 청의괴인은 입술을 달싹거렸다.
그러자 청의괴인의 등장과 함께 뒤로 물러서 있던 회의괴인들이 날개처럼 청의괴인의 양쪽에 포진하며 앞으로 쓸어나왔다.
회의괴인들만으로도 위험천만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그보다 훨씬 더 괴물 같은 청의괴인으로 인해 무적대와 남궁가, 소림승들의 눈에는 짙은 경계심이 어렸다.
“ 후퇴하시오!”
청허가 고함을 지르며 청의괴인을 향해 주먹을 뻗었다.
퍼엉! 하는 폭음과 함께 청허의 권풍이 청의괴인의 가슴 한복판에 정확히 작렬했다. 그러나 청의괴인은 쓰러지기는커녕 입가에 짙은 미소를 피워 올렸다.
“ 아악!”
남궁석령이 비명을 질렀다. 청의괴인의 양쪽에서 학의 날개처럼 뻗어나가던 회의사내들이 갑자기 활짝 펼쳐지며 마구잡이로 공격해 나갔다.
그 와중에 서왕문 문도 한 사람의 검이 남궁석령의 어깨를 가르며 지나갔다. 호면괴인들을 신경쓰며 빈틈이 생긴 탓이었다.
집단전에서 절정고수의 존재는 그래서 중요했다. 오른쪽 어깨를 다친 남궁석령이 재차 날아드는 사내의 검을 막으려 필사적으로 팔을 들어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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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잘봅니다..~~
고맙게 잘보고 있어요~~~
감사ㅎ
즐감
갈수록 흥미가 더해 지네요??
ㄳㄳ
즐감하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