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도 책 판권에 선명한 기획 (서정 에이전시)란 문구가 나온 책 한권이 발행됐다. 160번째 되는 책. 책 기획을 해서 저자의 원고를 출판사에 섭외하는 출판 에이전트 일을 한지도 8년여의 시간이 흘렀다.
책을 기획한다는 것은 기획 아이디어부터 시작해, 저자의 원고마감까지, 그리고 편집에 이어 인쇄에 이르기까지 매우 지난한 작업이다. 책이 출간이 되면 난 책을 코에다 대고 맡아보는 일종의 습관이 생겼다. 무슨 이유인지는 확실치 않으나 아마도 책에서 나는 종이 냄새 때문일 것이다.
막 나온 서정 기획의 신간을 바라보다 문득 떠오른 생각.
‘아 오늘은 한국제지 주최의 종이를 찾아 떠나는 가을 여행 가는 날이구나’
서둘러 짐을 챙겨 잠실나루역 근처의 관광버스로 향했다. 천명한 가을 하늘, 편안한 버스를 도구 삼아 종이를 찾아 떠나는 가을 여행이 시작됐다.
황학사 직지사에 들러 단풍나무 숲 길을 길어면서 오늘 모인 가을여행 참가자 분들의 규모에 놀랐다. 단체사진을 찍으려고 보니 100명은 족히 되 보이는 이 인원의 분들이 어떻게 이 자리에 오게 됐을까를 생각해보니 출제모 카페의 영향력이 무척 대단하다고 느껴졌다.
짧은 거리는 아닌 온산공장에 도착하니 한국제지 직원 분들이 반갑게 맞아 주신다. 가을 여행 내려오는 길과, 직지자 여정, 그리고 온산공장 견학에 이르기까지 유심히 보니 한국제지 분들의 마음 씀씀이가 무척 풍요롭다. 일단 정이 가니 한국제지 직원분들이 만들어내는 아르떼와 밀크라는 브랜드에 대해서도 왠지 믿음이 생겨나는 것은 도대체 왜일까.
온산공장의 종이를 만들어내는 공정을 보면 참 신기하다. 종이의 원료가 막연하게 나무(펄프)라고만 알고 있었던 내게 실제로 그 펄프가 여러 공정을 통해 종이로 탄생되는 광경은 늘 책과 씨름하며, 종이 냄새를 맡으며 일하고 있는 출판 에이전트에게는 또다른 의미로 다가 온다.
온산공장 종이 제조 과정의 감흥은 회와 소주 한잔인 곁들어진 저녁 식사 자리로 이어졌다. 가을 여행 참가자뿐만 아니라 한국제지 직원분들이 함께 어우러져 여행의 여독도 풀고, 종이와 출판을 벗삼아 다양한 이야기 꽃을 피웠다.
둘째날은 새벽부터 일정이 시작됐다. 고등학교 때였던 가, 국어 교과서에 실린 석굴함을 다룬 각종 현란한 문장의 기억은 석굴암에 대한 경외감으로 남아 있던 차였다. 그래서 기대되는 새벽 일출과 석굴암 견학은 아쉽게도 날씨 관계로 일출은 잘 보지 못해 절반의 기대치만 충족됐다. 위안 거리가 된 것은 웅장한 규모의 불국사 전경을 산책하며 샅샅이 보았다는 것.
불국사를 내려오는 길에 출제모에서 만난 한 지인과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눴다. 요즘 출판 경기가 안좋다는 그의 말을 들으면서, ‘종이’ ‘출판‘의 앞날은 어떻게 될까, 하는 상념이 또오른다.
불국사 견학을 마치고 귀경하는 길에 들른, 휴게소에서 보니 가을여행의 여독이 채 풀리지 않았는지, 대부분 참가자 분들은 피로해 보였다. 그래도 한켠에는 이번 종이를 찾아 떠나는 가을 여행의 풍성한 여정에 매우 만족해 보였다.
이번 종이를 찾아 떠나는 가을여행에서 난 종이의 매력에 다시 한번 취한 듯 하다. 이 종이에 참 의미있는 콘텐츠를 담아야 할텐데, 어깨가 무거워지니 이번 가을여행의 여파가 무척 큰 듯 하다.
내게 이러한 참 좋은 부담감을 안겨 주신 한국제지 임직원 여러분들과 출제모 운영진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서정콘텐츠그룹 김준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