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색계선정 수행법 (화엄선원)
화엄선원에서는 무색계선정 닦는 수행을 매일 합니다만 도반들이 잘 따라 들어가지 못하기 때문에, 여기에 몇가지 잘못된 사례들을 들어, 내가 어디에 속해있는지, 자신의 위치를 알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도움이 될 것 같아서 소개합니다.
이 기록은 4월7일 수행 후 늣은 시간에, 도반들 간의 심도 있는 깊은 대화를 통해서 얻어진 기록입니다. 이러한 대화가,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수행의 허점을 발견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런 대화가 가능한 것은 이젠 모두 상당한 경지에 이러렀기 때문입니다. 물론 옛날에도 문제점을 밝힐 시간은 많이 있어지만, 그땐 도반들의 경지가 낮았기 때문에, 문제 제기를 해도 수용 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모두 상당한 체험이 있기 때문에, 이런 대화를 해도 모두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이 됐다는 점이 옛날과는 다른 점입니다.
1. 첫째 사례.
자기의 몸을 해체하여 허공으로 만들라고 하니까, 자기 몸속에 텅 빈 허공을 만들고,
그것을 자기의 눈으로 바라보는 형태.
즉, 자기의 눈으로 몸통 속에 있는 허공을 바라보는 형태.
이 사례는 뒤에 나오는, 세 번째 사례인, 두꺼비의 비유와 형태는 같지만, 그곳에선 자신의 “알아차리는 눈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고 있지만, 1번 사례에선 알아차리는 눈이 어디에 있는지 쉽게 안다. 왜냐하면, 몸통 속의 허공이 작기 때문에 그렇다. 그래서 내가 직접 본다는 사실을 쉽게 알아차릴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되는 이유는, 몸통 속의 허공이, 그 크기가 우주만큼 크지 않고 작으니까 보는 내가 어디에 있는지 쉽게 안다. 그러나 반대로, 우주만큼 크면, 그때는 사정이 달라진다. 왜냐하면 너무 크기 때문에 자신이 어디에서 보는지 잘 모르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형태는 같지만, [허공의 크기가 ‘작고 큰’ 차이 때문에], 세 번째 사례인 두꺼비의 사례와 약간 다르다고 한 것이다. 그러나 넓게 보면 두꺼비 사례와 같다고 할 수 있다.
2. 둘째 사례.
허공을 빛보다 빠른 상태로 달려가라고 하니까, 자기는 달려가지 않고 오히려,
아바타를 만들어놓고, 그 “아바타”가 빛보다 빠른 속도로, 허공 속으로 달려가는 것을, 뒤에서 자기의 눈으로 바라보는 행태.
여기서 자신은 절대 가지 않고(가만히 지켜만 볼뿐) “아바타”만 간다.
또 옥상에서 뛰어내리는 수행도 이처럼 하면 안 된다.
자기는 옥상에 가만히 있으면서 아바타만 뛰어내리게 한다든지.
또는 아예 아바타도 뛰어내리지 않고, 옥상에서 꼼짝도 않고, 가만히 바라만 보기만 하는 경우도 동일하다.
3. 셋째 사례.
나를 해체하여 허공을 만들라고 하니까,
모든 것을 다 해체하여 텅 빔을 만들었지만,
바라보는 내가 허공 끝에 있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하는 형태.
즉
예를 들면,
두꺼비가 눈앞에 적이 나타나니까, 자기의 배를 크게 부풀려, 적이 감히 덤벼들지 못하도록, 배를 둥근 공같이 만들어 상대에게 위세를 떨칠 때와 같은 형태로써,
자기의 배를 자꾸자꾸 불려, 온 우주만큼 크게 부풀렸을 때,
이때 바라보는 눈은 어디에 있느냐 하면, 바로 두꺼비의 눈에 있는 것과 같은 형태.
그러나 여기에서 큰 오해는, 자기의 눈이 어디에서 지켜보는지를 모를 수 있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허공이 너무 크기 때문에 모를 수 있는 것이다. 그 이유는 내 몸이 해체되어 사라졌기 때문이다. 내 몸이 있어야 눈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있는데 내 몸이 없으니까 이런 착각이 일어나는 것이다.
그러나 내 몸이 비록 사라진 것 같지만, 바라보는 나의 알아차림은, 두꺼비의 눈에 있다는 것을 똑바로 직시해야 한다.
이것을 또 다른 각도에서 보자.
자기의 눈이 두꺼비의 눈에 있다는 것을 모르는 또 다른 이유는,
무한대의 텅 빈 허공이 만들어지면,
텅 빈 허공 한가운데에 작은 아바타를 하나 만들어놓고, [그 아바타의 입장에서 보면] 앞과 뒤가 모두 비어있기 때문에, 스스로 말하길 “앞뒤가 없고 위아래가 없어 텅빈 대 허공 자체가 됐다”고 착각하여, 나는 무한대의 대 허공이 됐다고 오해하는 형태.
이런 이유 때문에 자기의 알아차리는 눈이 두꺼비의 눈에 있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할 수도 있는 것이다.
위의 1과 3의 사례는 형태는 같지만, [허공의 크기가 작고 큰 차이 때문에], 첫 번째 사례와 다르다고 한 것이다. 그러나 넓게 보면 첫번째 사례와 같다고 할 수 있다.)
4. 넷째 사례.
그러면 정확한 사례는 무엇인가?
바라보는 눈이 한가운데 있는 것이 올바른 사례다.
그러므로 내가 어떠한 곳에 있더라도 관계없다는 뜻이다.
즉 앉아있으면, 앉아있는 나에게 그 눈이 있고.
허공을 달리면, 달리고 있는 나에게 그 눈이 있다.
그렇지만, 앉아있고 달리고 있는 그중에서도, 그 눈을 가지고, 항상 뒤와 앞을 동시에 볼 수 있으면 된다.
또 나의 눈이 우주 끝에 있어도 괜찮다(예로. 제3의 두꺼비 사례에서, 두꺼비의 눈에서 앞의 텅 빈 우주만 보지 말고, 그 자리에서, 즉 두꺼비의 자리에서, 즉시 뒤의 우주를 함께 보면, 바로 그대로 가장 정확한 눈이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앞은 이미 텅 빈 우주가 되어있으니까 이미 완성이 됐고, 남은 것은 뒤만 뚫리면 되니까, 그냥 그대로, 즉시 뒤를 보면, 완벽한 앞뒤가 완성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주 끝에 있는 그 자리에서 뒤와 앞을 동시에 보면 된다.
다시 말해,
바라보는 눈이 한가운데 있는 것이 올바른 사례다.
그러므로 우주 끝에 있는 그 자리에서 뒤와 앞을 동시에 보면 된다.
A. 앉아있을 땐,
앉아있는 상태에서, 머리를 뒤로 돌리지 말고, 마음의 눈으로 뒤를 보면, 뒤가 텅 비게 된다. 또 그 상태에서, 마음의 눈으로 앞을 보고 또 위와 밑과 좌우를 동시에 보면, 사방이 모두 텅 빈다.
B. 달리는 상태에선,
달려가면서 뒤를 보면 뒤가 텅 비어진다. 그 상태에서, 마음의 눈으로 앞을 보고 또 위와 밑과 좌우를 동시에 보면, 사방이 모두 텅 빈다.
C. 우주의 끝에선,
우주의 끝에 있더라도, 그곳에서 뒤로 보면 뒤가 텅 빈다, 그 상태에서, 마음의 눈으로 앞을 보고 또 위와 밑과 좌우를 동시에 보면, 사방이 모두 텅 빈다.
그러므로 내가 앉아있건, 달리고 있건, 우주 끝에 있건, 어떤 상태에서도, 마음의 눈으로 뒤와 앞 그리고 위아래 좌우를 동시에 보면, 온 우주허공이 텅 빈 것을 볼 수 있다.
이렇게 보는 것이 핵심이다.
4개의 사례를 그림으로 그렸다.
서툴고 웃기는 그림이지만 자세히 보면 이해가 쉬울 수 있다.
1번 그림.
작은 우주가 몸속에 있고 그것을 내 눈으로 바라보는 형태.
2번 그림.
우주 허공 속으로, 빛보다 빠른 속도로 앞으로 달려가라고 하니까, 내 몸은 안 가고 아바타를 만들어 놓고 아바타가 달려가게 하는 형태. 그것을 뒤에서 바라보고 있는 그림.
3번 그림.
내 몸을 해체하여 우주만큼 텅 비게 했지만, 그것을 바라보는 눈이 우주 끝에 있는 줄 모르는 형태. 마치 배를 불린 두꺼비와 같음.
정답은, 나의 눈이, 우주 한 가운에 있어야 한다.
우주 가운데 있으면서 앞뒤 좌우가 모두 비고, 안과 밖에 모두 비어, 사방천지가 모두 텅비어야 되는데도, 아직 그 이치를 눈치채지 못하는 형태.
4번 그림.
이 그림이 정답이다.
설명하자면, 나의 위치가 어떤 곳에 있던지
내가 중심이 되어
앞뒤 좌우 상하가 모두 텅빈 상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