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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석<아래> "네이버 아름다운 우리 시 공모전 당선작 50선"을 '창작시마당'에 옮겨 놓아 봅니다. 공모전 심사는 김명인, 정호승, 안도현, 김용택, 네 분의 시인께서 하셨다고 전합니다. 또한 응모작 모두는 '실명'이 아닌 온라인 '아이디'로만 이루어졌다고 합니다. 당선작 50선 모두를 스크랩하여 올려 놓았으니 천천히 감상해 보시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주의: 모습을 비춰보는 거울에는 낙서를 하지 않습니다.)
<아래>
아름다운 우리 시 공모전 50선 당선작 [네이버 아름다운 우리 시 공모전: 아름다운 한글 시로 담다] 대상 1 백석을 읽는 밤 meron*** 들어봐 밤이, 봄 밤이 오래된 애인들과 어떻게 이야기하는지 꽃들이, 등 아래 핀 벚꽃들이 서늘한 봄 비에 지면서도 얼마나 빛나는지 백석을 읽는 밤 내일을 돌보지 않아도 푸근하고 아린 이런 봄날, 봄밤 발치에 조으는 짐승의 착한 눈꺼풀과 이불 아래 방바닥의 온기와 주전자서 끓는 구수한 보리차 냄새 가지들 마른 울음 그치고 저리던 뿌리들도 축축히 잠드는 이런 봄, 밤 * 김명인 봄 밤의 정서가 백석 시의 따뜻한 낭만성과 어울려 산뜻하게 표현된 작품, 한글 시의 아름다움이 잘 살려지고 있다. 정호승 시를 사랑하는 한국 독자들의 가슴에 영원히 살아있는 백석 시인의 마음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합니다. 시의 형성력이 돋보이고 군더더기가 없이 신선합니다. 김용택 시적 깊이와 문학적 완성도가 높은 작품이다.
우수상 2 강냉이가 된 첫 눈 imhj*** 하늘 턱까지 차 올랐던 철거촌 고개 가쁜 숨 끝 오늘따라 늦은 뻥튀기 아저씨 대포 소리가 철거 촌 천막 사이로 울리면 아이들은 망태기 굵은 올 사이로 떨어지는 흰 강냉이 송이들을 따라 이리저리 흩날리기 일쑤였다 바람이 거친 부스러기로 남은 저녁 마저 핥아 내릴 즈음 가장 가까운 동공으로부터 또박또박 눈들이 반짝인다. 그럴 때마다 하나 둘 밝아지는 도시는 여전히 가난해지고 눈때문에 공으로 돌아간 일진에 퉤하고 뿌리를 내리는 뻥튀기 아저씨의 하루 앞에서 잠시 아이들 잎을 잃은 가로수처럼 망연해진다 때마침 하늘에서는 송이 송이들이 참 희게도 내리고 아이들은 이제 그 폭폭한 것을 혀끝으로 받아 넘기기 시작했다 봉천고개 아래는 첫 눈 때문에 잠시 멈칫 한 뒤 한참 만에야 잊었던 것이 생각 난 듯 진지한 표정이지만 이내 다시 서쪽으로 기운다 사람들은 하나같이 밑이 없는 종이 박스처럼 내리는 것을 한 움큼도 받아 내지 못하는데 발 아래에서 그저 질척이며 귀찮아지는 것이 미안해진 것일까 막 튀겨진 따뜻한 강냉이처럼 첫 눈은 쉽게 쌓여가질 못했다
우수상 3 만다꼬 notforsal*** 만다 이래 자주 내려오노 고생시럽구로 만다 이런 건 사오노 니 묵을 것도 없을낀데 내는 늙어서 인쟈 일없다 이런 건 한창 힘쓰는 니나 마이 묵어라 가시나야 안 무가 빼빼 예빈거바라 요거 무 바라 요것도 무 바라 내는 여 천지로 있으니까 니나 마이 묵어라 서울에 오만거 다 있어도 이거는 없재? 내 안 가 봐도 다 안다. 니 돈 번다고 밥도 제 때 안 묵재? 내 안 봐도 환하다. 그카는 할매는 내 온다고 새벽부터 나와가 기다리가 손이 이래 얼어가 날도 추분데 집에 있지 만다꼬
당선작 4 가로수길 yesol*** 길을 걷는데 포퓰러 사이로 달이 보인다. 노오란 것이 아주 샛노오란 것이 그림자 사이로 나타났다 사라졌다 한다. 꼭 너처럼 그런다.
당선작 5 가위손 blankn*** 아침은 누군가 도착하지 못한 길, 몇 개의 과거 위에 털고 간 흔적이나 낯선 얼굴이 지나는 모습은 낯익다. 뒤척이다 주저앉는 낙엽 하나의 날개짓은 내내 끄적일 수 없었던 푸른 날의 일기들, 가벼웠던 기억이 기억보다 무거웠다고 햇살이 빗겨간 자리에서 바람을 입에 물고 웅얼거리면 외장형 발성으로 뱉어내는 비분절음에 역자의 주가 없어 그는 고독하다. 모퉁이에 모인 분신의 시간 자를수록 웃자라는 그림자를 지우고 붉은 순간마다 해가 미끄러지면 삶이란 때로 어둠의 일부로 타오르는 것 조명을 타고 내려온 하얀 첫 음들이 부스럼처럼 돋은 생각들의 껍질에 닿는 밤, 흐르던 것들도 멈춘 겨울의 액자에 먼 깊이로 숨어 있는 건 아직 만나지 못한 날들일까. 푸른 뜨개질의 남은 올을 풀던 그는 때때로 두 팔을 벌리는 몸짓이다.
당선작 6 감 씨 bbk0*** 떫은 맛이 싫어 가운데 똘똘 뭉친 감씨 칼이 느릿느릿 내려가게 끝을 잔뜩 주무른다 토독, 경쾌하게 묻어나는 즙 없이 감 밖으로 나간 칼날 조금 물러섰다가 다시 칼끝이 스며 씨는 그걸 온통 누벼낸다 칼이 후빈 흔적에서부터 끝까지 바늘땀을 성글게 꿰매 베인 흔적에 감빛을 먹인다 희번득하게 째리는 쇠붙이가 쇳물로 스밀 때까지 손잡이만 덩그러니 놓일 때까지 씨는 꿉꿉하게 굳어 있지만 칼은 제 몸에 씨의 자락을 걸치고 내리긋다 내리긋다 죽,죽, 한참을 들이받다 툭, 씨의 속살이 뜯어지는 날 감 두 쪽이 꺽꺽대며 갈라섰다
당선작 7 강구안길 시장 풍경 lgs2*** 파도가 잇단음표 줄을 잡고 너울너울 해안가에 밀려든다 악보마다 목을 구부린 높은음자리 물새들이 돌아갈 집이 그리운 시간 우묵한 눈동자 같은 통영항 푸른 바다에 노을은 울컥 울컥 붉은 비린내를 토하고 꿀빵 사이소, 김밥 사이소 생의 애환 길게 뽑는 아낙들의 아니리 소리 중모리 장단에 울음 하는 갈매기 몇 마리가 방금 펄떡이다 도살당한 생선을 노리고 살아서는 밀물과 썰물을 다 마시고도 참서 한 권 되지 못한 해초들이 죽어서야 마른 경전이 되어 건어물 가게에 차곡차곡 쌓여있다 은빛 햇살이 바닷물에 잠드는 섬마을에서 뱃길 따라 푸성귀와 바지락을 팔러 온 노파의 저자거리에 해가 저문다 분주한 사람들은 갈 길을 재촉하건만 이토록 애달픈 곡조의 뜻을 어느 달 어느 별이 알았을까? 말린 문어가 비닐 옷을 입고 조등처럼 걸리는 강구안길 시장에 가을 소슬 바람을 타고 온 여승이 떠도는 구름 같이 불경을 읽고 간다 당선작 8 거리의 맹인 jsgi*** 하늘이 검은 두루마리를 펼치면 보이는, 보이지 않는 노란 접 경위를 줄타기 하는 광대처럼 아슬한 달이 오른다. 풍경은 손목시계처럼 목적지를 향해서 달려가고 쳇바퀴를 돌듯 거꾸로 달이 걷는다. 예민해진 감각을 더듬으며 아스라이 멀어져 간 생의 한 자락을 찾고 있나 새하얀 연필로 풍경 앞에 붙어 있던 아련한 울림 그 습작된 기억을 검은 종이 위 별처럼 함초롬히 점자를 새기며 간다. 한번도 열려 본 적 없는 문, 늘 한가지 색으로 닫혀있던 그의 글자엔 그림자가 없다. 달이 스러져간 자리 새겨진 닻별같은 글자들 그러나 아무도 보지 못한다. 그가 그 누구도 보지 못한 것처럼
당선작 9 겨울밤 dyj031*** 가로등이 켜지면 밤이 오고 밤은 언제나 아버지를 모셔온다. 여물은 가로등 속 싸늘한 밤공기 짊어지고 저만치 아버지가 걸어온다. 밤과 바람과 겨울을 헤치고 눈 나리는 언덕을 지나면 아버지는 하얀 눈사람이 되어 집으로 돌아온다. 한껏 젖은 솜처럼 무거워진 구두와 가방과 눈 쌓인 당신 어깨가 잠 못들게 고독한 어느 겨울밤. 눈 덮인 언덕에 개나리 흐드러지면 당신 어깨의 눈도 녹아내릴까 밤과 바람과 겨울도 아스라질까 녹은 눈송이 또옥똑 떨어질 때 아버지께도 새봄이 오길. 시나브로 개나리가 피어나면 봄이 오고 봄은 언제나 아버지를 모셔온다.
당선작 10 괴다 jis*** 처마 밑 바위에 물 한 방울 떨어지듯, 나는 당신을 만났다. 당신은 내 위로 와서 흩어졌고, 나는 당신을 몰랐다. 처마 밑 바위에 천 번의 물방울이 떨어지고, 이제 나는 나로 향하는 당신을 꿈꾼다. 까맣게 빛나는 눈동자로 나를 향해 웃는 당신을 꿈꾼다. 처마 밑 바위에 홈이 패고 처마 위 물이 그 안에 괴듯, 당신이 나에게 괴었다.
당선작 11 귀로 kango*** 어린 시절의 내가 저만치서 빛바랜 둑길을 따라 휘적휘적 소 여물 쑤는 향내와 함께 걸어가고 있다 조심스레 다가가 가을 햇볕에 누렇게 빛나는 그 가는 목덜미를 툭툭 치며 인사를 건네니 굵어진 목청과 시꺼먼 손잔등에 조금은 놀라다가도 이내 녀석이 제 길에 앞장을 세운다 논둑길에서 어린애들은 그저 장난질이다 나 같은 것은 신경도 쓰지 않고 저희들끼리의 놀이에 여념이 없는데 그들을 지나치는 등 뒤로 바람에 흔들리는 산억새 같이 꾸밈없는 웃음소리가 들린다 녀석을 따라 걷다 보니 이윽고 오후 햇볕에 젖은 낡은 고샅 약간 색 바래 누런 햇볕은 한없이 정겹고 푸른 가을 하늘물이 머리 위로 쏟아질 것만 같다 그러다 이 낡은 고샅길 끝에 광주리를 이시고 햇살 속으로 흐려져 가시는 모습을 보고는 가슴속이 벼물결처럼 파도를 친다 나는 하루 온종일 놀다 돌아온 아이처럼 어머니 어머니 소리쳐 부르고 또 불러 보지만 끝끝내 돌아보지를 않으신다 세월이 논둑길 옆 도랑물처럼 소리 없이 스쳐지나간 다음 항상 마음만이 돌아가는 낡은 고향 길 떠나보낸 것들은 어찌나 지독하게 기억이 나는지 그 길 위에서 잡을 수 없었던 많은 것들이 내게 안부를 물으며 어깨동무를 해 온다 여기저기서 고개 드는 빛바랜 추억에 끝내는 손등으로 눈물을 훔치며 돌아가는 길 길 저 너머론 나의 유년이 휘파람을 흥얼거리며 가을 햇살 속으로 사라져간다
당선작 12 귀로 khjin*** 바닷가를 걷다가 백사장 어귀에서 문득 눈에 띈 소라 껍질을 주웠다 귓가에 조심스레 가져가 보니 잔뜩 울상이 된 바람소리가 들려온다 어젯 저녁 급하게 어딘가로 떠나려는 듯 했던 바닷 바람이 아무래도 길을 잃은 것만 같다.
당선작 13 꿈 한 잔 dmstjs1*** 꿈 한 잔 타주세요 오늘 밤 꿈엔 달콤한 달 한 조각 맛 좋은 별 두 스푼 시원한 밤공기 솔솔 부어 그 위에 구름 동동 띄워서 요람 속 아이를 지키며 곤히 잠든 어미를 위해 그 어미와 아가를 품고 잠든 행복한 아비를 위해 달달한 꿈 한잔 종일 날카로운 모래바람 맞았을 저 메마른 낙타를 위해 뜨거운 모래바람 피해 숨어버린 비겁한 우물을 위해 무관심에 삐친 가시투성이 선인장을 위해 달달한 꿈 한잔 들판을 쌩쌩 달리며 자전거 타던 꼬마친구들을 위해 죽는 날까지 도리를 다하리라 맹세한 바둑이 위해 풋풋한 사랑을 주고받는 어여쁜 신랑각시를 위해 달달한 꿈 한잔 오늘 밤 달달한 꿈 한잔 기울이고 눈뜨는 아침엔 빈 잔만 남겨놓고서 모두 서둘러 일어나기로 약속해요
당선작 14 나이테 ghost_rai*** 속이 여문 나무는 기적 소리 요란한 질풍 나무들의 앙상한 숲처럼 하늘 위로 경쟁하듯 내달리지 않는다. 한 해 한 해 쌓여 가는 지난 옛 길을 다시금 돌이켜 마주대하며 한 잎의 시샘도 없이, 아찔한 직선에 그 누구도 세우지 않는 둥글디 둥근 곡선의 강함으로 새 지평을 함께 걷는다. 오르지 않고 오로지 껴안기 위한 나무의 순례길. 속이 여문 나무는 그렇게 겹겹의 질그릇을 꽃피워, 직선에서 밀려난 낙오된 나무들을 오롯이 맞이한다. 산 하나를 껴안을 섬세한 손길로 직선들을 속속들이 에워 감싸며 가시 박힌 숲의 지난 옛길을 다시금 둥글게 내빚는다.
당선작 15 니캉 내캉 0428*** 그 가시내 얼마나 이쁘던지 돌심장인 옆집 가가 좋아한다 카더라 지도 너무 궁금해 몰래 엿봤더니 심장이 어찌 두근두근 거리는게 볼태기가 새애빨게 지더라 그 가시내랑 눈이 딱 맞추졌는데 그 가시내 얼마나 깍재인지 내 못본척 하더라 꽃이 참 이쁜것이 꼭 그 가시내 닮았다 오늘은 이 꽃 따다 낼 그 가시내나 주어야겠다
당선작 16 달빛과 꽃잎 choina*** 달은 달 속에서 저물지 못하고 지구에 와 저무네 꽃잎이 허공에서 지네 달빛과 꽃잎의 사랑방에서 낯선 객처럼 들어 쉬며 저물 곳에 대해 생각하네 너무 두꺼워 하룻날, 한 생애에는 다 읽어내지 못할 것 같은 달빛의 서책에 꽃잎 갈피를 끼워두고 베개 벼 빈둥거리다가 짐승처럼 꺼이꺼이 울어도 보고, 열 오른 몸 부비며 식어가던 한 늙은 여인의 물결 진 주름을 뒤란 장독처럼 삭여내보기도 하는 것인데 그러하는 동안에도 달빛은 자꾸 달을 떠나와 비루한 내 몸에서 저무네 하염없이 꽃잎이 지네
당선작 17 달이 뜨다 pingpong0*** 모를리가요 눈 거울에 비친 그대 모습이 시리도록 아름답게 말해주는데 지나쳤어요 눈처럼 새하얀 그대 얼굴이 잡으면 녹아내릴 것 같아서 아- 그대 뒤로 달이뜨네요 뭐가 그리 두려운지 반만 쏙 빼놓고 떠오르네요
당선작 18 당신은 내 세상에 없던 바람이다 ashl*** 삼킨 말은 많았고 느낀 말은 궁색했던 첫 만남의 저기압을 나는 기침으로 터뜨렸다 지나간 여름과 다가온 가을 새 그 아련한 계절 선물 받은 책장에 갈피처럼 숨어있던 당신을 간절기라고 불러야 할지 그냥 감기라고 고백해야 할지 당신의 밀어로 나눈 바람이 아직 혀뿌리에서 맴돌기에 무엇이 내 목구멍을 이리도 간질이는지는 좀 더 기침을 해봐야 알 것 같기에 오늘도 동살이 잡히기 전 혹은 어둠별이 달안개로 목 축일 무렵 당신의 시차를 애면글면 펼쳐본다 채 넘기지 못한 호흡의 얼룩 탁본하듯 더듬는 내 입술은 이 가냘픈 바람이 저 이름 모를 별에 전하는 순문 언어가 되지 못한 소리의 그림자로 가 닿은 당신은 내 입술에 기묘한 볕뉘를 새긴다 기침이 밭아지며 머문다.
당선작 19 만선 junyong1*** 배에 달이 드리운다. 빈 곳 하나하나 가득 채워주는 달의 채색 달에 취한 어부의 눈은 삶의 무게를 지우고 밝은 달의 미소를 닮았다 회향하는 빈 배를 위해 유유한 밤갈매기는 어스레한 만월을 그리고 배는 붉은 깃발도 없지만 달빛도 모자라는지 바다를 가득 채운다
당선작 20 모과꽃 편지 ram9*** 모과꽃 필 때 여기 왔습니다 분홍 꽃잎이야 점점이 날렸겠지요 훨씬 오래 전 울음으로 새들은 날았겠지요 이젠 사랑도 봄 하루 길어야 한낮 그럴 뿐인가요 당신과 나란히 꽃 보던 마음 저 얼룩무늬 고요한 나무는 알고 있을까요 그늘 좋고 햇살 좋은 열매들 노랗게 익을 때 다시 여기 왔습니다 제 몸 향기로 드러내는 여름 지나 겨울 봄 내가 떠난 뒤에도 가지마다 이 꽃은 피겠지요 어디쯤 가 계신가요 모과꽃 질 때 나는 다시 여기 옵니다 당신 없이 나 혼자 봄을 기다립니다.
당선작 21 모시 짜는 여인 starinfor*** 여인은 모래를 씹어서 금실을 만든다 태모시의 올을 섬세하게 쪼개기 위해선 끓임없이 부리를 송곳처럼 날카롭게 갈아야 한다 한 필의 말이 시원한 여름을 달리기 위해선 석되의 침을 석 달간 발라야 한다 혹시 바람이라도 들어 실이 끓어질세라 여인은 세상을 닫은 움집에 갇혀 있어야 한다 베틀소리가 어둠의 강을 건너 갈 때 쯤 호롱불이 깜빡거린다 간밤에 채운 기름이 다 탓 다는 신호다 동살이 찾아왔으니 이제 아침밥을 지을 때다 오늘은 서둘러서 감자를 다 캐야 한다 곧 무더워지니 속히 모시 짜기를 마쳐야 한다 폭포를 실고 온 산바람이 모시적삼에 스미니 지아비와 시어미의 여름밤이 꿀처럼 달다
당선작 22 묵호항 qowjdgn*** 칠번 국도를 타고 아니면 강릉행 기차를 따라 푸른 바다가 보이는 해거름 즈음에 철도 날도 없는 불빛이 보일거야. 서울의 달동네가 아니라 거기에 묵호가 있어. 이차선 무식쟁이 같은 시내를 돌아들면 묵호항이 있지. 그곳에 가끔 바람만 들면 가볼 수가 있었어. 아버지 따라 홍게며 물곰이며 운이 좋으면 알이 꼴똑찬 새우를 만나고 운이 나쁘면 트럭에 치인 갈매기와 만나지. 바다냄새보다 사람냄새가 찌인한 아버진 항상 그곳에서 가판대 커피를 사주셨지 묵호항 부둣가는 깊이도 모를 만큼 진창인데 그렇게 선심 쓰듯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어. 구석에서 꽁초를 만들며 줄낚시 하는 아저씨도 있단 말야. 인생이 궁상스러워도 이 때는 즐거운 법이야. 바지 끝을 조금만 양보하면 바다를 얻어갈 수도 있었어. 비늘그물조각 조개껍질 갈매기깃털 생선대가리 묵호항에 오면 도야지 같은 개복치도 있고 새벽물 젖은 오징어도 있고 별 생선 같지 않은 것들도 많아. 차별이 없지, 바다는 짠내만 쫌 풍기면 다 지 자식인 줄 알고 품고 사니까. 나는 그곳에서 바다를 배웠지. 저 속에 뭐가 들어 있는지 무엇이 저리 품고 살게 만드는지.
당선작 23 바다 아침 andy012*** 바다 아침은 계절도 없이 반짝반짝 꽃을 피운다. 물굽이 이랑마다 떨어지는 빛살로 마치 꽃그물이라도 이루듯 바다 아침은 꽃으로 철썩거린다.
당선작 24 바람도 시를 쓴다 - 정지용 생가에서 minaa1*** 시인이 살던 집 봄 햇살만큼 가슴이 따뜻해질 것 같아 기척 없는 사립문을 들어서 마당을 서성이다 마루에 앉았다 펜과 함께 숨쉬는 시인의 소리 들린다 시인의 집에는 바람도 시를 쓰고 간다 텃밭 농부는 작년의 흔적 불을 놓아 지우고 땅 위에 파란 시를 꼭꼭 눌러 쓰려나 보다 연기 내음에 잦아드는 잔기침 까지 시인의 입김으로 다가오고 댓돌 위 시인의 신발 옆에 작은 발자국 하나 찍어 본다
당선작 25 박대 redsou*** 마당에는 살이 통통히 오른 박대 몇 마리 널어져 있다 소금기 묻은 바람 포구를 지나 마당까지 불어오면 박대는 제 안에 품고 있던 바다를 흘려보낸다 뼈까지 바싹 말라 납작해진 몸뚱이 텅 빈 그곳을 짜디 짠 햇볕과 모래로 채운다 뒤 안, 장독대 옆에서 까무룩 졸고 있는 엄마 몸은 볕에 말라 납작해진 박대 같다 사르락 거리는 소리를 내며 바스러져 버릴 것 같은 텅 빈 젖무덤 아니다, 비어버린 것이 아니다 젖무덤엔 박대가 많이 잡혔던 그 섬 위도의 기억이 있다 돌아 갈 수 없는 고향의 짜디 짠 햇볕과 모래가 있다 어린 딸년이 엄마 모양으로 장독 옆에서 까무룩 졸고 있다 통통히 살 오른 몸에 소금기 묻은 볕이 든다
당선작 26 봄소풍 mission*** 손가락 사이로 햇살이 조용히 흘러나와요 반짝이는 것들에게는 별을 달아주지 않아도 된다 말하는 길 위에서 만난 목소리도 덩달아 함께 춤을 추어요 왜 그렇게 화살처럼 달려왔을까 매듭짓지 않아도 될 시간들 나는 다시 어디로 날아가야 할까요 숨어있는 별들은 살아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먼저 다가가 빛이 되어줄거예요 지금 싹 틔우고 있는 저 어린 꽃처럼 꽃은 말이 없어요 그래도 나비는 꽃에게로 다가가 조용히 앉죠 곁이 같은 사람에게로 날아가고 싶어요 나비처럼, 집으로 돌아오는 길 사람들 등 뒤에 조용히 조용히 사랑한다 사랑한다 속삭여요 손가락 사이로 묻어두었던 그리운 마음 하나 두울 조용히 흘러나와요 따순 엄니 밥처럼 방긋 웃는 햇살처럼.
당선작 27 비오는 날 jjyoung*** 딸꾹 딸꾹 빗소리가 딸꾹질을 하네요 베란다 창 너머로 누군가 놓아둔 그릇에 빗방울이 떨어지는 소리군요 아침잠이 더 밀려드네요 빗소리는 참 좋은 자장가예요 엄마의 까칠한 숨소리처럼 포근한 입김처럼… 빗방울 또르르 또르르 달콤한 늦잠을 자네요 잎새의 소곤거림이 들리네요 빗줄기가 더 굵어지나봐요 부끄럼쟁이 잎새들과 바람들의 소근거림이 수근수근 왁자지껄 걸죽한 수다를 즐기네요 평온한 일상이 되지는 않겠네요 같이 둘러앉아 그 수다스럼에 동참할까 해요 행복한 그들속에 같이 묻어 가려구요 조금만 더 이렇게라도 행복해지고 싶어요 이전 시보기26다음 시보기28
당선작 28 빨래 삶는 날 cardinalb*** 왠종일 삶어낸 빨랫더미가 몽실몽실 더운 김 바트낸 게 창문 위로 가득 서렸데요 처음 크레파스 쥔 아가처럼 설은 손가락 집어들고 물빛 국화꽃 한 송이 그렸더니 그제야 뜨문뜨문 보이는 바깥에 서그럽게 이슬비 오고 있데요. 뉘 울음처럼 물은 쿨쩍쿨쩍 끓고 유리창에 빗방울은 미끄럼 타니까 촉촉히 비 내리던 길다란 버스 타고 가던 그 날 생각나데요. 베란다 난간 느지막이 두드리며 안녕안녕 자꾸만 외치는 그 소리를 이제 듣는 법을 잊은 나는 눈만 멀겋게 뜨겠지요.
당선작 29 산낙지 mira*** 산낙지가 뼈에 좋다더라 불 꺼진 8인 병실에 아버지 들고 오신 까만 비닐 느닷없이 무슨 산낙지냐 곁을 주지 않던 마흔 살 아들 앞에서 말없이 등 돌린 채 꾸역꾸역 낙지를 드시던 일흔 살 아버지 간신히 꿈틀대던 낙지 조각처럼 보일 듯 말 듯 흔들리는 아버지 뒷모습
당선작 30 상처는 돋을새김이다 namchung*** 누군가를 만나고 또 저렇게 사랑하는 일이 물에 돌을 던지는 것과 같아서 서로 물무늬를 만들고 그 물무늬가 서로에게 다가가 같은 진폭으로 흔들리는 일 누구도 그 흔들림의 깊이는 헤아릴 수가 없어 그렇게 돌들이 쌓이고 물은 흘러 우리가 가을 강처럼 이별을 건널 때 기꺼이 여백이 되는 물위에 돋을새김으로 남는 건 한 때 아무렇지 않게 던져 넣었던 돌들 앞뒤가 모두 끊어져 버린 뜬금없는 것들이리니 연인들의 물무늬 환한 공원 혼자 잦아드는 가슴에 빠끔히 돋는 돌 무엇 때문이었을까 돌아 서서 가늘게 한숨을 쉬던 사람
당선작 31 새벽의 목련 lsis*** 해가 진다 어슷하게 기운 집들 공원에는 가로등처럼 부푼 목련 나무 거리의 창문들은 질끈 하루를 감아버리고 목련 나무는 밤을 켠 채 환하다 누군가 벤치에 버리고 간 코카콜라 캔이 짓밟고 간 안개꽃 다발 한 뭉치가 누군가 잃어버린 공원의 신발 한 짝이 밤이 오면 이불을 덮고 눕는 파리한 풍경 셔츠 하나를 걸친 공원의 그가 누군가의 시집을 낭독하는 시간이 왔다 익숙하지 못한 어둠이 걷히면 간밤에 얼굴을 벗어던지는 대기 귀 기울이면 그 속에는 달빛처럼 흘러나오는 당신의 반쯤 벌린 입술 아직은 나를 향해 달려올 것만 같아 우물거리는 행간의 입술 사이를 그 어둔 길을 지팡이로 툭툭 치며 걸었다 목련 위로는 거무스름한 발자국의 풍경 당신의 따듯한 발짝 소리 날이 새도록 내 두 귀를 녹이는 소리가 아스팔트 위로 내려앉는다 매일 새벽, 적요한 그의 낭독 내 상처는 무릎을 덮은 꽃잎처럼 더 깊게 뿌리를 내린다 문득 환해지는 등불 같은 목련 아래 꽃잎을 하늘 가득 날려본다 그 밑동에는 검은 고양이 한 마리 당신의 푸근한 영혼처럼 잠들어 있다 밤 가로등 같은 이마를 한 그와 내가 한 잎씩 지는 오늘 새벽도 겨우겨우 목련이었다 이전 시보기30다음 시보기32
당선작 32 서리 kdger*** 서리 낀 창가에 무심코 웃음을 그렸더니 양쪽눈가에서 흐르는 물줄기가 나를 보는 것 같아 언제나 웃는 눈을 따라 흘러 내리는 눈물의 끝에 슬픔을 들키지 않으려 다문 입술까지도
당선작 33 섬진강의 이름 manuh*** 두꺼비가 피난 내려온 강이라는데 두꺼비만 내려왔을까 사람도 왔지 싶어 소리 내어 섬진강, 불러보다 물 길어 먹던 사람들이 섬기는 강이라 섬기다 섬기다 하다 섬긴 강이 섬진강이 아닐까 쌀 짓던 사람들이 나락 섬을 지고 강 건너가니 섬 진 섬 진 하다 섬진강이 아닐까 섬진강에서 다슬기 잡던 아이들이 토닥 토닥 모래섬 짓던 곳이라 섬진강이 아닐까 생각하는 사이에 하동과 구례가 사이좋게 흐른다 등지지 않고 섬지며 흐른다
당선작 34 소낙눈 cjm6*** 모든 바스라진 것들이 제자리로 몰아치는 울음이라 했다. 돌쩌귀에 서릿발 갸울거릴 때까지 노인은 구름을 꾸짖지 않았다. 온갖 살꺼풀 흰가루 되면 비로소 피를 잊는다고 했다. 그의 주름 속 파묻인 얼룩엔 더운 흙의 성글은 숨 고요히 글썽였다. 골골샅샅 너푼거리며 그들은 하늘 등성이를 짓이긴다. 가을 오라기 뭍바람에 여위는데 노인은 잠든 아궁이 달랠 뿐 쏟아지며 녹으며 아른거린다. 덜미에 하얗게 사분사분 뭇별의 고함소리 나부끼는데 내게 노인은 아무 말 없이 군불어린 부지깽이만 쥐어주었다.
당선작 35 소리 한마당 youngan*** 둥근 지붕에 둥근 박들이 크고 있다 아직 까만 아내의 눈길 속에 오종종 자라나는 아이들 저 웃자란 풀들이 두렵다 지난해 사 준 청바지가 딸 아이 종아리에 걸려 있고 봉긋봉긋 가슴이 박처럼 자란다 가난한 아비는 희망도 그렇게 자라길 빌며 헛웃음 한바탕 쏟아낸다 둥근 지붕에서 둥근 박을 따는 아내의 등이 둥글다.
당선작 36 수수꽃다리 asura8*** 길목에 서 있는 수수꽃다리가 꽃을 피웠다 수수꽃다리는 라일락의 순 우리말 그 나무 곁을 지날때면 나는 걸음을 멈추고 이파리를 팔랑이는 그 나무를 향해 수수꽃다리, 수수꽃다리 소리내어 꼭 두 번 그 이의 이름을 부른다 그 이가 나를 기억하도록 더욱 더 진한 향기를 풍기도록
당선작 37 숨바꼭질 youngjima*** 썰물 때 도착한 갯벌 위에서 우연히 꽃게를 보았다 멀리서 오라고 손짓하기에 놓치지 않으려 뛰어갔는데 어디로 갔는지 숨어버렸다 구멍 앞에서 기다렸는데 안나온다 손가락으로 꾸물꾸물 발가락으로 꼬물꼬물 구멍 속에서 스쳐갔는데 안보인다 체념하고 일어서면 불쑥 반가워서 앉았는데 쏘옥 보고싶은데 가까이서 보지도 못하고 난 항상 술래다. 이전 시보기36다음 시보기38
당선작 38 식탁 dfdf1*** 해는 저 깊이 스러지고 비닐 테이프로 칭칭 감긴 가난한 저녁이 종이 박스 위에 오른다 두평 남짓한 쪽방에 우스운 종이 식탁이 방바닥을 긁어내며 기침을 하면 온 식구가 비좁게 들어앉는다 우리 식탁은 다리가 없다는 미운 일곱 막내의 투정에 아버지는 멋쩍게 웃는다 식탁 옆자리에 비집고 앉은 소주병이 설운 눈물을 담아낸다 비단 몇 되지 않는 반찬과 말마따나 없는 다리 빼고는 남부러울 것이 없건마는 해는 저 깊이 스러져도 다리 없이 절룩이는 식탁 위엔 가난한 만찬이 어김없이 오른다
당선작 39 연 잎 snowr*** 빗살 모은 연 잎 물방울 돌돌말려 톡 또 하나의 하늘 내려놓네.
당선작 40 왕씨아저씨 tmdnc*** 우리 집 창밖에 세 들어 사는 똑똑한 왕거미씨는 아침저녁으로 꼼지락꼼지락 평수를 넓혀 우리 집 불빛에 주거침입하려는 무례한 모기녀석들을 잡아 매일 밤마다 꼬박꼬박 방세를 낸다
당선작 41 우리는 한동안 같이 먹을 것이다 mona*** 김치를 뒤적이며 하얗고 통통한 배추 밑줄기를 좋아한다고 나는 말 할 것이고 당신은 풀린 파마머리 같은 위쪽 줄기를 좋아 한다고 말 할 것이다. 그러다 우린 갓 담근 김장김치에 하얀 쌀 밥을 먹던 날을 떠올릴 것이고 나는 당신 입에 들어가는 그 배추잎을 유심히 쳐다 볼 것이다. 우리는 한동안 같이 먹을 것이다 그것이 사랑이라 해도 좋겠다
당선작 42 장롱 dong*** 문을 열면 말없이 우두커니 서 있는 아버지의 등허리가 보인다 짐짓 모른 체 가지런히 걸려 있는 아버지의 속은 달래어도 텅 빈 무처럼 바람이 숭숭 뚫려 있었다 문틈으로 보이던 어둠 어둠 한 뿌리라도 기어이 버리겠다고 아버지의 헤진 바지에서는 잘 자란 관엽식물들이 군데군데 피어 나풀거리고 어머니의 조금 삐뚤어진 어깨는 촘촘히 비좁아 생의 가장자리에서도 자리 하나 만들기 쉽지 않았다 삶은 퇴행성관절염 같아 더 이상 버틸 수 없을 때에도 오래된 옷가지처럼 버리지 못하고 쌓여가고 있는 것일까 나는 듬성듬성 난 수염만큼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자라나갔다 문틈은 또 하나의 세상 그곳에 별이 있었고 어둠이 있었고 숨어 버리면 사라질 수 있는 마법이 있었다 나이테처럼 나이를 먹어가는 옷들은 어느새 나랑 어울리지 않는 것들이 되어갔지만 나는 장롱 속에 나란히 걸려서 살아간다 문을 열고 문을 닫고 하루는 막다른 골목 안 풍경이었다가 어느 날은 철지난 옷들이 만들어내는 따뜻한 봄날의 시간 너울성파도처럼 일렁이는 옷들 속에 내 지난날들이 온전히 다 걸려 있다
당선작 43 전신주 복덕방 wantyouh*** 늦은 밤 창가에 불빛도 몇 들지 않는 동네 전신주는 수십 년간 산 아래를 바라오다 끝내 내려간 이들을 알고 있었다 어떤 이들은 건물 사이 세평짜리 땅을 평생의 과업을 이룬 양 여기기도 했다 연기 오르는 여남은 집 지붕 위에는 전선줄이 새벽부터 하늘을 갈라 졸부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구획을 나눠주었다 하지만 점점 간밤에 사라지는 사람들이 늘어났고 아무도 사라진 사람이 누군지는 알지 못했다 나는 지금 산동네 꼭대기에서 뒤를 돌아본다 전신주가 지나온 길을 표시하고 있다 재개발 현수막은 찢겨져 날리고 먼 곳에 높이 솟은 건물들 산 아래 모습만이 눈요기가 될 뿐 사글세 전단지에게 제 몸을 내줬던 남은 흔적들도 옛일이다 그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이곳에 서서 누군가가 살았던 흔적이 되는 것 전신주는 이제 어떤 손님도 달갑지 않다
당선작 44 종이 한 장 wjsgkdmsd*** 그 마음은 종이 한 장 꿈을 꾸는 나무였다 나무는 세상에게 속아 몸을 베이고 한 장 종이가 되었다 잦은 바람과 모진 비에 약하디 약한 그 종이는 쉽게도 찢기었다 의미없고 무지한 낙서에 새 하얗던 그 종이는 검게 멍이 들었다 넝마된 종이 위에 눈물 한 방울 똑 떨어진다 그 눈물로 번져 씨앗이 싹 튼다 그 눈물로 번져 어린 나무가 자란다 종이는 이제 어린 나무의 뿌리가 된다 후회가 된다 눈물이 된다 그 마음은 종이 한 장 그 마음도 한 때는 꿈을 꾸는 나무였다 이전 시보기43다음 시보기45
당선작 45 쥐 artfro*** 너는 도망치듯 나가고 아이는 언제나 내 차지다. 잠도 덜 깬 아이를 안고 구두에 발을 구겨 넣는 텁텁한 아침. 빈속인 채로 잠도 덜 깬 아이는 품에서 꼼지락댄다. 그래 그래 안다 안다 토닥이는 진동에 휘청거리는 아침. 차지 못한 사랑을 알리며 아이는 또 할퀴듯 운다. 통할 리 없는 울지마 금방 올게란 말을 한숨처럼 뱉는 아침. 아이의 울음은 문과 함께 닫히고 난 또 쿵 내려앉는다. 그래 그래 괜찮다 괜찮다 누구도 건네지 않는 위로를 하는 아침. 햇살의 찬란함을 카피한 자동차의 반사광이 찍 소리를 내며 지나간다. 온통 복사본 같은 세상에 내가 나 같지 않은 것은 당연하다 자조하는 아침. 문득 회색 아스팔트 위에 아침 햇살 혼자 다 받으며 죽어 가는 쥐. 그래 그래 저건 그냥 쥐일 뿐이라고 담백하고 편리하게 부정하는 아침. 그러니까 반쯤 잘려 나간 플라타너스와 재활용 쓰레기통 사이. 햇살을 카피한 자동차의 반사광이 밟은 까만 눈동자가 누운 자리. 내가 나를 부정한 자리에 나를 카피한 쥐가 죽어가고 있는 아침.
당선작 46 초침 joajo*** 밤마다 자박자박 걷는 소리가 들린다 누군가 잠 못 드는 내 귀로 온전히 걸어 들어오고 있다 가슴 속에 어떤 이가 갇혀 발자국 소리마다 똑똑 누구세요 깜짝깜짝 놀랜다 작은 사람은 덜컹이는 소리에도 덜컥 겁을 집어 먹었다 그래서 나는 나를 이불 속에 푹 담갔다
당선작 47 칵테일 ryunos*** 오늘의 추천 칵테일 한 잔 드셔보시겠어요? 이름은 서울에서의 하룻밤입니다 먼저 해태 뿔 잔을 준비해 주세요 거기에 한강의 푸르름을 1 온스, 북악산의 정기를 0.5온스, 남산 야경의 찬란함을 0.5온스 넣어주시구요 잘 저은 다음 청계천의 조잘거림을 한 방울 떨어트려 주세요 그리고 인사동의 다사로움과 명동의 소란스러움을 한 움큼 떠다가 얼기설기 부채꼴 모양으로 빚어내 올려주면 됩니다 어떠신가요 한 잔 더 드시겠어요?
당선작 48 투정 keadi*** 왜 나헌티 그런디요. 왜 나헌티 꽃을 묻는디요. 뚝뚝 떨어진 꽃잎은 나두 서러워 죽겄구만 왜 그 꽃 어데갔나 나한테 묻는디요. 봄이란 게 원체 오고가고 하는 것인디 떨주는 나물 탓해야지 왜 흔든 바람을 욕뵈고 떨어지는 빗방울을 노려본디요. 그래놓고 왜 또 내한테 꽃을 묻는디요. 파리한 잎사귀도 얼굴 한 번 내밀어 봐야 하지 않겠소. 그것도 기다리며 보낸 날은 꽃이랑 뭐가 다르겠소. 그렇다고 또 그 잎을 따구 막 괴롭히지는 마소. 그냥 보낼 것은 보내면 될 것을 붙잡고 가지마라 칭얼대는 것은 무슨 심보요. 이미 봄은 저물어 가는데, 그게 다 뭔 소용이다요.
당선작 49 할머니는 농사를 지으셨다 ng2*** 태양이 내리쬐는 여름 날 굽은 허리 애써 가누며 밭으로 나가시는 할머니 옆에서 옥수수와 딸기우유를 손에 쥐고 총총총 할머니 옆에서 손잡고 총총총 햇빛이 너무 따가워 그늘에 앉아있던 어린 나의 눈에 비친 할머니의 땀방울 나는 그 땀방울이 옥수수를 그렇게나 달고 알차게 만든거라고 지금까지 믿고 있다
당선작 50 해질 녘 osh*** 모두가 쉬러 가는 시간 사랑하는 사람 보러 가는 시간 그러나 밤은 출근을 한다 부러운 마음에 짙은 어둠이 깔리지만 이내 사이 좋게 낮과 인사하고 집 나갔던 사랑채주인 살금살금 겨 들어오는 마냥 문지방을 넘나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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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만다꼬 추분데 나와 가~아~ 참 익숙한 말입니다. 잘 읽었습니다.
나도 만다꼬 추분데 느낌 아니까 좋아요~~
순수 토종 사투리가 정감이가지요?
ㅋㅋ감솨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