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혹함으로 얼룩진 로마의 콜로세움!
시인 마르티알리스는 그의 책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이집트 인들아, 피라미드를 자랑하지 말거라.
아시리아인들아, 바빌론를 입에 담지 말라.
황제의 새 원형경기장 앞에서
그것들이 설 자리는 없으니 모든 명성은 이를 위한 것.
모두가 이 그림자에 가려지리라.”
시인이 비길 데 없이 위대하다고 일컬은 황제 원형 경기장!
세계 7대 불가사의로 알려진 콜로세움!
2주간의 서유럽 여행도 막바지에 다달아 해질 무렵 찾은
콜로세움은 바로 감동 그것이었다.
황제들의 정치무대 콜로세움!
우리나라에서도 많이 알려진 로마의 상징이며 거대한 원형경기장으로
당시 로마인들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대표적인 건축물이다.
콜로세움 주변(Piazza del Colosseo)은 콜롯세움과 포로로마노 등의
고대로마의 유적이 많이 남아있다.
네로의 궁전의 뜰에 있었던 인공연못에 AD 72년에 건설을 시작하여
80년에 완성된 대형 원형투기장 겸 극장이다.
생사를 겨누는 검투사와 짐승과의 격투기 등이 여기에서 개최되었고
80개 정도가 되는 출구에 5만 5000명도 넘는 관객이 입장할 수 있는 경기장이었다.
네로 통치시대를 영화로 한 영화 "쿼바디스"에서는
기독교도의 박해장으로 사용된 콜로세움 장면을 잘 보여준다.
콜로세움은 위대한 로마문명을 대표하는 건축물로,
지금 현재 남아있는 콜로세움은 원형의 약 1/3규모라고 한다.
그러나 당대 이 건물들은 명실상부 로마최고 최대를 자랑하는 원형극장형 경기장이었으며
또한 이곳은 황제들의 놀라운 정치무대이기도 했다니......
(사진 중에는 동행한 이규희 교장 카페에서 스크랩)
.



콜로세움 경기장 기는 길목에서

경기장 앞 풍경들


대리석 기둥에 수많은 구멍이 나 있는데,
이것은 대리석에 청동조각 등 장식물을 설치하던 구멍이었다 한다.
로마 멸망 후 혼란기에 귀족들이 자신의 저택을 장식하기 위해
노예를 동원하여 장식품들을 떼내어 가자,
이렇게 흉물스런 구멍들이 노출되게 된 것이다.


시민들을 위한 다양한 쇼를 보여주기위한 건물인
콜롯세움(콜로세오)는 4층의 초호화 구조물인
콜롯세움은 모두가 익숙한 원형경기장이다.
크기로는 로마에서 가장 크며 72년 베스파시아누스 황제가
네로의 궁전이었던 도무스 아우레아가 있는
늪 지대에 세운것이라 한다.
콜롯세움(Colosseo)은 '거대하다'라는 뜻의 콜로살레에서
유래했고 정식 이름은 '플라비오 원형극장'이다
이곳에 거대한 네로 동상이 있었지만 지금은
흔적도 없다.
콜롯세움의 크기는 둘레 527m, 높이 48m에 이르는 방대하고
웅장한 모양이며 불과 건축기간이 8년이라니
로마인들의 건축기술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그래서 많은 건축 관계자들이 로마를 찾는 이유가 있는가보다

플라비아누스 황제 때 세워진 것으로 원래는 플라비아누스 원형경기장이라고 불렸다.
70~72년 베스파시아누스 황제 때 공사를 시작해 80년 티투스 황제 때
100일간의 경기가 포함된 제전을 위해 공식적으로 헌정되었고
82년 도미티아누스 황제가 최상층을 덧붙여 공사를 완성했다.
여분의 떠받치는 힘을 더하기 위해 적당한 언덕을 파서 세운 이전의 원형경기장과는 달리
콜로세움은 돌과 콘크리트로 세운 완전한 독립구조물로서
가로, 세로가 각각 190m, 155m에 이르며 5만 명의 관객을 수용할 수 있었다.





이 경기장에서 수천 회에 걸친 검투사 시합과, 맹수들과 인간의 싸움,
모의 해전 같은 대규모 전투장면이 실연되었다고.
중세 때에는 낙뢰와 지진으로 손상되었으며 반달족에 의해 더욱 심하게 파손되었으며
대리석으로 만들었던 좌석과 장식물들은 남아 있지 않다.

이 거대한 건축물은 4만 명에서 7만 명이나 앉을 수 있으며 4층으로 되어 있다.
1층은 높이 10.5m의 도리아식 반원주,
2층은 높이 11.85m의 이오니아식 기둥,
3층은 11.6m의 코트린식 기둥으로 되어 있고,
4층은 관중들이 작열하는 햇빛을 피할 수 있게
벨라리움이라는 천막을 고정시키기 위한 장대장치를 지탱하는 240개의 기둥들로 되어 있다.
경기장 바닥은 모래로 덮이고, 곳곳에는 사냥장의 분위기를 살려 나무와 구릉을 설치하였다.
바닥 밑에는 노예들과 맹수들을 수용하던 각종 우리 시설이 갖추어져 있었다.
처음에는 바다에서의 싸움 장면도 연출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바닥 전체에 물을 가두는 일이 용이하지 않아 별도의 공간을 따로 마련하였다.
그러나 이 건물의 설계자가 누구인지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고......





이 경기장에서는 모의해전은 원래 전쟁의 승리를 기념하던 행사로
강이나 호수에서 병사들이 패전을 재현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것이 경기장 안으로 들어오면서 범죄자나 노예들을 배에 태우게 되었고
한 편이 죽을 때까지 싸우는 피비린내 나는 구경거리로 전락했다.
또한 맹수사냥을 했는데 맹수를 풀어놓고 사람과 싸우게 하는 것,
동물들은 죽은 후 그냥 버려지는 것이 아니라 가죽은 시민에게 선물 되었고,
고기는 이후 진행될 맹수 사냥을 위해 우리에 갇혀있던 맹수들에게 먹이로 주어졌다고.
콜로세움의 경기에 쓰인 동물들은 대단히 중요한 상징성을 띠었단다.
이 경기는 문화적 차원의 기능을 담당할 뿐만 아니라,
동물들을 정복함으로써 로마가 정복한 도시들을 환기하는 것이기도 했다니......
로마가 더 멀리 진출할수록 더 이국적인 동물들을 데려왔고,
맹수사냥으로 매일 죽어나가는 동물의 수만 매년 5천 마리였다고 하니
이처럼 상상을 초월하는 이 엄청난 규모의 축제가 무려 백일동안이나 계속 되었단다.





콘스탄티노 개선문
높이 21m, 폭 25.7m로 3개의 아치로 구성된 로마에서 가장 큰 문이다.


첫댓글 난 그 때 안에는 못 들어가봤다요. 야경은 봤지만예
그러셨군요
다시함 가이소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