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小說作法講義] 15講 ⅩⅡ. 소설에서의 서술 및 행동 사용법

[산정-김익하]

ⅩⅡ. 소설에서의 서술 및 행동 사용법

  서술(敍述. narration)이란 비교적 소수의 단어를 사용하여 일정 기간 발생하였던 일을 통일성 있게 이야기함으로써 그 기간을 빠른 속도로 망라하는 것을 뜻한다. 소설을 전개하는 시간과 사건의 흐름을 모두 기록할 수 없으므로 소설가는 시간과 사건을 단축하기 위하여 사건을 서술함으로써 자연히 작품에 끼어들기 마련이다. 이럴 때  소설가는 비교적 소수의 단어를 사용하여 시간을 메우거나 건너뜀으로써 가능해진다.

  그러면 소설에서의 행동이란 무엇인가. 소설에서 작중인물이 말하거나 움직이는 모든 것을 행동(行動. action)이라 한다. 행동이 나오는 부분을 장면이라고 하며, 장면은 독자가 자신을 주인공 또는 다른 작중인물과 동일시하게 하여 그들을 대신하여 경험하게 하기 위한 목적으로 사용된다. 오늘날 발행되는 거의 모든 소설은 상당량의 행동을 내포하고 있다. 그러나 소설가 지망생들이 저지르기 쉬운 부분은 바로 서술해야 할 것을 행동으로, 행동으로 표현할 것을 서술하는 것이다. 이런 장애를 극복하기 위하여 다음과 같이 소개하는 열세 가지 방법을 제시한다.

1. 어느 일정한 기간 흥미 있거나 자극적인 사건이 전혀 발생하지 않았다면, 그 시간과 사건을 메우기 위하여 서술을 이용하라.

  좋은 예로 『입내새 사냥』1부 4장 첫머리에,

-나머지 수업 시간도 첫날보다 더 나을 것이 없었다. [앵무새 죽이기. 김욱동 역. 문예출판사 2002년간 P65]

  이 소설의 저자 하퍼 리는 단 하나의 서술 문장으로 전 학년의 기간을 메우고 있다. 다시 말해 전 학년 동안 흥미 있거나 자극적인 일(소설의 제재에 전혀 인과관계가 없는)이 전혀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게 서술한 것이다.

2. 스토리를 지속해나가기 위하여 서술을 사용하라.

  소설가는 초고를 마친 뒤 수 주간 옆으로 미루어 놓고 시간을 보낸 후 이제 객관적인 처지에서 읽어보려고 힘써야 한다. 읽어나가다가 스토리를 질질 끌거나, 지루하게 만드는 행동이 나타나면 서술로 바꿔 써야 한다. 예를 들어 남자와 여자 주인공이 근처의 식당에서 식사하면서 전체 이야기의 전개와 인과관계가 없는 대화 몇 토막 나누느라 원고지 서너 장을 소비했다면 아래와 같이 서술로 바꿔야 한다.

-그 날 밤 그들은 그 부근의 작은 중화식당으로 갔다. 식사를 마친 그들은 팔짱을 끼고 아파트로 돌아왔다.

3. 성격 묘사를 위하여 서술하라.

  이 방법은 다음 강의 ‘소설에서의 작중인물 성격을 묘사 방법’에서 강의하기로 약속한다.

4. 행동으로 표현하면 믿기 어려워지는 부분은 서술로 바꿔라.

  행동은 세부 묘사를 내포하기 때문에 세부 묘사가 많으면 많아질수록 주인공 및 사건이 진실 되지 못하고 비논리적으로 표현될 위험성이 커진다. 그 때문에 독자가 실감 나게 받아들일 수 없는 부분도 서술로 표현하면 그 빠른 속도로 인해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작품『보바리 부인. Madame Bovary. 1857』의 다음 문장을 보자.

  -서로 변명하며 한바탕 싸움이 벌어졌다. 엘로이즈는 눈물을 글썽이며 팔에 매달려 당신이 부모에게 변명해 달라고 애원했다. 샤를이 아내를 위해 한마디 하려고 하자 양친은 화가 나서 그대로 가 버리고 말았다. [보바리 부인. 김지혁 역. 육문사 1995년 간 제1부 2장 P24]

  그다음 구절에서는 어떻게 전개되었을까. 이 다툼이 죽음에 이르게 하였다고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이 ‘깊은 상처가 되었다. 1주일이 지난 어느 날, 그녀는 뜰에서 빨래를 널다가 피를 토했다. 그리고 다음 날 샤를이 커튼을 치려고 몸을 돌린 순간 그녀는 “아, 어떻게 한담!”하고 한숨을 쉬더니 정신을 잃었다. 그녀는 이미 죽어있었다. 이 무슨 어처구니없는 일이란 말인가? [보바리 부인. 김지혁 역. 육문사 1995년 간 제1부 2장 P24]

 저자인 플로베르가 한바탕 벌이는 싸움 장면을 행동으로 표현했다면, 그 싸움 결과로 폭력이 행사되었을 것이고, 그것이 죽음으로 발전되었다는 것에 독자는 믿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모두 서술로 바꿈으로써 믿기가 매우 수월해졌다.

5. 독자를 과거로 이끌기 위하여 서술을 이용하라.

 ‘기교를 사용하는 방법 2’에서 언급하기로 하고 여기서는 『보바리 부인』에서 적용한 것을 한 가지 예를 들겠다. 엠마가 자신의 결혼생활이 자신의 열정과 환희에 대한 갈망을 충족시켜 주지 못한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깨달았을 때, 저자 플로베르는 이 원리를 사용하였다.

  -그녀가 열세 살 때 아버지는 그녀를 수도원에 넣기 위하여 도시로 데려갔다.

6. 성격 묘사를 위하여 행동을 사용하라.

   이  방법은 ‘소설에서의 작중인물의 성격 묘사 방법’에서 다루기로 한다.

7. 소설에서 흥미 있고 자극적인 사건이 발생- 발생한 그 기간만을 행동장면을 나타내라. 1항 『입내새 사냥』의 1부 4장 첫머리에서 언급한,

  -나머지 수업 시간도 첫날보다 더 나을 것이 없었다. [앵무새 죽이기. 김욱동 역. 문예출판사 2002년간 P65]

  이 흐름과 달리 스카웃이 그 학년을 이수하는 도중 학교에서 쫓겨났다고 가정한 뒤, 이것이 행동으로 표현하기에 충분히 흥미 있는 사건이라면, 아래와 같은 유형의 행동 묘사로 표현되었을 것이다.

 -캐롤라인 선생님은 출석부를 살펴보셨다.

“여기에 이웰이라는 성이 있기는 한데 이름이 없어요. 스펠링을 불러줄 수 있어요?”

“어떻게 쓰는지 몰러유. 집에서는 그냥 버리스라 불러유.”

“좋아, 버리스. 오늘 오후 수업은 면제해줄 테니까 집에 가서 머리를 감도록 해요.”

캐롤라인 선생님은 말씀하시더니 책상에 두툼한 책 한 권을 꺼내시고 책장을 넘기며 얼 마 동안 읽으셨다.

“좋은 가정 치료법으로는 ……. 버리스, 집에 가서 잿물 비누로 머리를 감도록 해요. 머리 를 다 감은 뒤엔 등유를 두피에 바르도록 하라고요.”

“선생님, 왜 그렇게 한 대유?”

“어, 이를 없애려고 그러지요. 버리스. 다른 애들한테 옮길 수도 있어요. 그렇게 바라진 않겠지요?”

버리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까지 내가 본 애 중에서 제일 지저분한 애였다. 목은 짙은 잿빛이었고 손등은 텄으며 손톱 밑 깊숙이 시꺼먼 때가 끼어있었다. [앵무새 죽이기. 김욱동 역. 문예출판사 2002년간 P54]

  이 장면은 크게 자극적이 아니지만, 이 소설에서는 상당히 상징적인 대목으로 묘사한 부분이다. 결국, 톰 로빈슨을 고소하고 투옥하며 드디어 죽음으로 몰아넣는 백색인종의 잔인한 아이러니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가 하면 복선으로 작용한다.

8. 소설의 대․소장면(大․小場面)에서 행동을 이용하라. 특히 대장면에서는 대립세력이 마주치는 부분만을 극화(劇化)하라.

  대장면은 언제나 갈등이 나타나기 마련인데, 다음 요소로 구성된다.

1). 두 가지 대립 세력 간의 마주침

2). 이러한 마주침에 따르는 갈등의 이용

3). 그 마주침 결과에 대한 확정적 암시

4). 그 마주침의 결과는 갈등을 해결하거나 심화시키는 것으로써 다음 장면 또는 나중의 장면으로 변이(變移)를 이룬다.

  다음 예문을 살펴보자.

  -은희는 너무 늦게 귀가했기 때문에 아버지와 언쟁이 벌어질 거라고 예상하면서 아버지가 기다리고 있는 거실에 들어갈 때 심호흡을 한 번 하였다. 그는 2층 방으로 올라가

게 되기까지 몇 분간 아버지와 언쟁을 하였다.

  이 예문에서 보면 대장면의 모든 요소, 즉 대립 세력의 마주침 부분에서 행동으로 극화하여야 하는데, 서술해버렸기 때문에 8항의 테크닉을 살리지 못하고 말았다.

  소설의 대장면을 행동으로 꾸미는 세 가지 유형이 있다. 즉 움직임만 나타내는 것, 움직임과 대화로 나타내는 것, 대화로만 나타내는 것이다. 다음에서 세 가지 유형에 따라 나타나는 갈등을 살펴보자.

A. 움직임만 나타내는 것

-바깥 공기는 담배 연기와 내뿜어진 호흡의 습기가 없어 프루는 마치 찬물을 뒤집어쓴 것 같았다. 그는 깊숙이 그 공기를 빨아들였다. 갑자기 정신이 드는 듯하였다. 그리고 숨을 내쉬었다. 그를 돌아가게 한 그 피곤하고 넌더리 나는 불안감을 몰아내려고 애를 쓰면서, 그는 힘들게 번 돈 이백 달러를 윌든 자식에게 잃었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와라, 없애 주겠다. 그는 혼잣말했다. 『지상에서 영원으로』

B. 움직임과 대화로 나타내는 것

-엠마는 초조하여 견딜 수 없었다. 만약에 그녀의 두 눈에 힘만 있었다면 그 눈으로 샬 르를 창밖으로 내던져버렸을 것이다. 드디어 엠마는 밤 화장을 시작하였고, 그리고 나 서는 대단히 재미있다는 듯이 조용히 책을 읽어가는 것이었다. 그러면 잠자리에 들어가 있 는 샬르는 그녀에게 잠자리에 들어오라고 부르는 것이었다.

“자, 이제 늦었으니 그만 자요, 엠마!”

하고 그는 말했다.

“네, 곧 갈게요,”

하고 그녀는 대답하곤 했다. 그러나 촛불에 눈이 부셔 샬르는 벽 쪽으로 돌아누워 이내 잠이 들어 버리는 것이었다.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가슴을 두근거리고 옷도 입지 않은 채, 자기 방에서 도망쳐 나오는 것이었다. 『보바리 부인』

C. 대화로만 나타내는 것

-“그놈을 죽일 거야.” 프루가 말했다.

“나는 여기로 나올 때까지 기다릴 거야. 그리고는 그놈을 찾아서 죽일 거야 하지만 나 는 베리처럼 어리석게 떠벌리고 다니지 않을 거라구. 입을 다물고 기회가 올 때까지 기 다려야지.”

“그놈은 죽일 필요가 있어.” 프루가 말했다.

“죽어야 마땅하다구. 그렇지만 그놈을 죽여 본댔자 좋을 것이 하나도 없어.”

”내게는 좋아.“프루가 말했다.

“내게는 무척이나 좋아. 다시 난 사나이다워질 수 있을 거야.”

[지상에서 영원으로에서 프루와 멜로이의 대화]

9. 두 대립 세력이 마주치는 지점에 있는 대분규의 범주에 속한 모든 소분규는 대장면에서 행동을 통해 나타나야 한다.

  대장면을 다룰 부분을 선택할 때, 각 장면에 따르는 갈등을 근거로 선택하여야 한다. 갈등은 갖가지 형태로 나타날 수 있으며 사회와 인간의 본성에 따라 문화적, 심리학적, 사회적, 윤리학적, 경제적, 정신적, 철학적 등등 다양한 분야에 걸칠 수도 있다.

10. 갈등에 있어 대립하는 양측은 서로의 대립 세력을 감소, 압도, 정복, 진정시키려고 해야 한다.

  8항의 예문에서 A에서는 포루는 자신과의 심리적 갈등을 겪는다. 그의 또 다른 자아는 포커놀이를 하러 되돌아가려는 욕망을 이겨내려고 한다. B의 예문에서는 엠마는 샬르가 잠속으로 떨어질 때까지 계속 깨어 있음으로 인해 샬르를 압도한다. C에서는 멜로이는 프루를 진정시키는 데 실패한다.

11. 성격 묘사에 소장면(小場面)을 이용하고, 스토리를 이해하기 위하여 독자가 알아야 할 정보의 전달할 때도 소장면을 이용하라.

12. 철학적 인생관을 표현하고, 진정한 갈등의 위치를 지적하며 스토리를 진전하는 데 기여하기 위하여 소장면을 이용하라.

-“아빠, 깜둥이 애인이 정확히 무슨 뜻이에요?”

내가 물었다. 아빠의 얼굴이 진지해졌다.

“누군가가 너를 그렇게 부르던?”

“아뇨, 아빠. 듀보스 할머니가 아빠를 그렇게 불렀어요. 할머닌 매일 오후 말하자면 아 바를 그렇게 부르면서 준비 운동을 하시거든요. 지난 크리스마스 때 프랜시스가 나더러 그렇게 불렀어요. 그때 그 말을 처음 들었지요.”

“그래서 네가 그에게 덤벼든 거야?”

아빠가 물으셨다.

“네, 아빠.”

“그렇다면 왜 지금 와서 그 뜻을 묻는 거니?”

나는 아빠에게 나를 화나게 한 것은 프랜시스가 말한 내용이 아니라 그 말을 하던 말투 때문이었다고 설명하려고 했다.

“코딱지나 뭐 그런 것을 말하는 것 같았어요.”

“스카웃, 깜둥이 애인이란 아무 뜻도 없는 그런 용어 중의 하나야. 말하자면 코딱지처 럼. 설명하기가 쉽지 않은데, 무식하고 쓰레기 같은 사람들이 어느 누군가를 욕하는 점 잖지 못하고 상스러운 용어가 필요할 때 우리 같은 사람들이 상습적으로 사용하는 말이 되어버렸어.”

“아빠는 깜둥이 애인이 아니지요?”

“정말로 흑인 애인이란다. 난 모든 사람을 사랑하려고 최선을 다하고 있어…….”

[앵무새 죽이기. 김욱동 역. 문예출판사 2002년간 1부 11장 P207]

 소설의 화자인 스카웃이 그녀의 아버지와 나누는 대화인데, 9장에서 12장까지 해당되는 경우이다. 이 소장면의 내용을 살펴보면 대립 세력의 갈등은 없지만, 독자에게 많은 정보를 제공한다. 아버지인 아티커스의 성격을 묘사하는가 하면, 그가 사회로부터 배척당하고 있음을 일러주기도 하고, 갈등의 위치를 예고하는 복선이 되기도 한다. 또한, 윤리적 규범을 설정하고 스토리를 전개하는 역할을 하기도 하며, 아티커스의 인생철학을 드러내 주기도 한다. 이 예문은 소장면의 중요성 및 가치를 입증해 주는 뛰어난 본보기 묘사다.

  오늘날의 소설에서 해설 및 묘사보다는 대․소장면에서 행동을 다루는 소설가의 재능이 더 요구되고 있다. 이는 영화나 티브이 드라마의 영향으로 보는 시각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따라서 소설가는 행동에 확신감과 신빙성을 불어넣어 작중인물에게 이를 의미 있게 침투시키도록 힘써야 한다. 그러나 행동은 소설에서 더디게 묘사되므로 길이가 길어지는 약점이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