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여년 전~!!우리의 자화상입니다.
♠풍요로움을 후손들에게 물려주신 옛날 어린이들♠
누더기 옷에 헐벗고 굶주림에 살았어도
따스한 온정이 흐르던 시절 이었습니다.
추운겨울 냉기가 감도는 방에서 나와 따듯한 햇볕에서
늘 언몸을 녹이곤 했지요. 헤진 옷을 입고 살아도 다들
그렇게 사니 부끄러움이 뭔지도 모르고 자랐습니다.
세상에서 제일 좋은 어머니~ 추운겨울 양말이 없어 맨발이
시려도 어머니 등에 업히면 엄마 품에서 나는 젖내음과 따
듯하고 포금함은 지금도 잊을 수 가 없었습니다.
투방집=나무로 얼기 설기 쌓아서 흙으로 빈 공간을 막아서
지은 집입니다.
소 외양간에 창을 만들어 소 여물을 먹이는 모습이 정겹습니다.
소가 재산목록 1호였으며 사람은 굶어도 소는 늘 따근하게 쇠
죽을 끓여서 주곤했지요. 물론 소없는 집이 대다수였지만....
두메산골 추운 겨울을 나기위해 월동 준비를 해놓은 장작더미
앞의 세모자입니다. 초라한 모습과 천진 난만한 표정이 가슴을
찡하게 만듭니다.
굴피나무 껍질로 지붕을 덮어놓은 너와라는 지붕이지요.
겨우살이를 위해 준비해둔 옥수수와 산골의 가정 풍경입니다.
옥수수 죽이나 감자등으로 연명하며 겨울 나기를 했지요.
아이를 업고 김을 메는 어머니의 표정이 힘들어 보입니다. ..
신문팔이, 신문배달 참으로 어렵게들 사셨습니다.
추수가 끝난 동구밖 들판은 아이들의 놀이터로서 최고였지요.
어촌의 아이들이 부모님의 일손을 도와 어포를 말리는 중입니다.
생활은 어려워도 꿈과 희망이 넘첬던 시절이었습니다.
텃밭의 짚더미는 추위도 녹여주고 놀이터로 활용되고....
학교 다녀오면 부모님 일손을 돕고 밤이돼야 숙제를
할 수 있었습니다. 가물 가물한 호롱불 밑에서 꾸벅 꾸벅
졸면서 숙제하다 머리카락 많이 태웠었지요. 연필심
마져도 품질이 좋지 않아 ,침을 발라 두어자 쓰고 또 침 바르고...
암닭이 알을 놓기가 바쁘게 책보허리에 메고 따듯한 계란을
들고 학교로 내달렸지요. 문방구에 가서 계란으로 공책이나
연필등 학용품으로 물물 교환했답니다.뛰어가다 엎어져
계란은 깨지고 눈물 콧물 울기도 했습니다,
금방 낳은 계란에 기쁨을 감추지 못하는 표정....
학교 다녀와선 어김없이 지게지고 밭으로,
산으로 땔감을 구하러 가곤 했지요
가축들도 거두고, 한겨울에 고무신 신고 신발이 꽁꽁 얼서서
발에 붙어 떨어지지도 않았답니다. 그때는 동상 안 걸린
아이들이 이상했지요
설걷이를 하기 위해 빈그릇 솥가마등을 안고 동네 우물가로
설걷이를 하러 가는 모습입니다. 가마솥 뚜겅을 머리에 쓰고
가는 모습이 설걷이를 많이 해본 솜씨 같습니다.
지게를 못지는 여자아이들은 나무를 묶어서 머리에 이고
산에서 내려오다 많이도 구르고 다치고......
먹고 살기위해 학교 다녀오면 길거리로 구두딱이, 껌팔이,
신문팔이 무엇이든 했답니다.
구두를 닦는 아이의 표정이 무척이나 고달퍼 보입니다.
어머니의 바쁜 일손을 돕고 있읍니다. 요즘 머리에 물건 이고
다닐 수 있는 어린이들은 아마 없겠지요.
부모님들은 공사장이나 들에 나가고 어린들은 학교 다녀와서
동네의 잔 일거리들은 다 하였지요.
곡괭이나 삽질도 잘했지요.
당시 정부에서 덩그러니 학교 교실 하나 지어주면 나머지
모든 공사는 학생들 차지 였습니다. 돌을 이고 지고 학교
축대 쌓는 작업을 하고 있네요. 머리에 돌을이고 있는
어린이 모습.. 돌을 어깨에 맨 아이...
배타고 나가 부모님 일손도 돕고.....
소먹이러 가고...비록 힘들게 살았어도 국경일이면,
산골마을 독가에서도 꼭꼭 태극기 게양 했지요...
초가집 앞 텃밭에서 농사일을 돕고 있네요.
한겨울 강아지를 안고 따라로운 햇볕을 쬐고있습니다...
강아지 안으면 온몸이 따듯했지요...돌아가면서 안고,
순서를 기다리는 두어린이 표정이...*^^*
엄마가 세수시켜 줄 때면 제인 먼저 코풀어! 하시고 ...
따듯하게 물데워서 어린 동생들을 돌아가며 세수를
시키셨지요.
아파도 병원이 없어서, 너무 멀어서, 늘 집에는 아까징끼
(머큐롬)을 비치해두고 발라주시곤 했지요. 자식의 아픈
고통을 대신하듯 어머니의 표정이 너무도 안타깝게 보입니다.
이발관이 없어서, 돈이 없어서 동네 한 두곳 이발기계 있는
집에가서 머리를 깎고 했지요. 부실한 기계로 머리털 뽑혀서
눈물은 줄줄...
간혹 사회 복지가들이 학교 찾아오시어 사탕이나 먹을것을 전해주시고...
아이를 등에 업고 갯벌에서 하루 종일 일하시곤 밤이면 아고고
허리야! 고통으로 잠못 이루시던 우리 어머님들 이셨습니다.
수안보 어는 산골마을 학교입니다.
부모님들 일손이 모자라 등교길 이린이들은 스스로 조그만
나룻배를 타고 도강하는 모습입니다. 안전 사고도 많았었지요.
학교 교실에서 공부하는 모습입니다.
책상 걸상 무척 정겹습니다. 특별 활동시간 주산부(수판) 어린이들 입니다.
추억어린 풍금입니다. 선생님이면 누구나 풍금을 다룰 수 있어야 했지요.
양말도 신지 않은 어린이, 무척 진지해 보입니다...
비가 조금만와도 중간에 수업포기 잽싸게 개울을 건너 집으로 내 달렸지요.
물이 불으면 건너지 못했고, 빨리 집에가서 집안 비 설거지 해야지요.
모든게 공부보다 집안 일이 우선이었지요...
여자는 코고무신 남자는 검정 고무신, 한겨울 양말이 없어 발이 시린
아이들은 신발에 짚을 넣고 신었었답니다.
학교 안가는 날이면 어린이 애향단(동호회)이 골목도 쓸고
마을 어귀에 꽃길도 만들고 자기 마을 가꾸기를 했답니다.
빗자루는 요즘 보기 힘든 싸리나무로 만든 빗자루 입니다.
학교주변 수목원도 만들고...참으로 꿈과 희망이 많았던 시절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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널뛰기하는 여자 아이들 모습입니다. 가운데 한 아이가 올라가 앉아
중심을 잡고 누가 누가 높이뛰어 상대를 떨어뜨리나 껑충 껑충~
요즘 보기 힘든답니다.
운동회가 열리는 날이면 온동네 어른 아이 할것 없이 모두의 대 잔치
였습니다... 부모님들과 함께 뭉쳐서 힘 겨루기를 했지요.
뛰어가면서 사다리 통과하기 무릅이 벗겨저서 피가 줄줄 흐르고...
기마전으로 힘 겨루기도 하고...
누가 누가 멀리 뛰나 훨훨...
청군 이겨라! 백군 이겨라! 목청것 소리치고 나면
다음날은 모두가 목이쉬어 .....
지금의 운동회는 점심시간 지나면
끝이지만 당시는 하루종일 온마을
잔치로 해가 질때까지 했지요.
학교마다 보통 공 두개정도(배구공,축구공) 최고의 놀이감 이었습니다.
눈을 감고 블로킹하는 어린이 모습이^^*
이렇게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차범근, 이회택과 같은 세계적인
스타들이 탄생 하셨습니다.
한창 태권도 붐이 일어 학교마다 가르키는 모습입니다...
기마자세 태극1장이던가요..?
무용연습 중인 여자 아이들입니다... 특별활동 시간이면 언제나
책 걸상 뒤로 밀어 붙여놓고...
길거리 포장마차 비슷한 곳에서 아이들 간식 많이 팔았지요.
불량 식품이 너무 많아 늘 배앓이하고.....
불과 3,40년전의 우리 모두의 모습입니다.
언제부터인지 배부르고 이젠 음식 쓰레기가 넘쳐나는......
예전엔 고기 한점,
죽 한사발도 고맙고 소중했었습니다
양말이며 옷가지 몇번이고 뀌메어 입고 신었는데
이젠 멀쩡한 옷들도 단지 유행지났다고 버리는 시대....
호롱불에 기름 아까워 심지 낮추었고
벽사이에 구멍내어 전구하나로 양쪽방 조명하면서
흐린 불빛에도 어머님은 바늘질 하셨습니다
나무궤짝이나 밥상에서도 책읽고 글쓰고 했었는데
이젠 방과 거실에는 몇개의 전구가 불을 밝히니
지푸라기에서 바늘 찾을일은 없겠지요.
깊어가는 겨울밤~~!!
잠시 어린 시절을 회상해 봅니다......
그들의 경제
- 대게는 욕망에 비하여 그 양이 한정되어 있어
매매나 점유의 대상이 되는 -
또한 심각한 것이어서
모두가 저울추에서 좀처럼 눈을 떼지 못하는데,
하지만 손으로 눈으로 대~충. 수평을 맞추고
허허허 사람 좋게 웃으면 거래는 끝이 났다
/'옛 풍경 에세이' 中
어머니는 장에서는 절대 서두르는 법이 없었다
돈 쌈지는 허리춤에 단단히 감춰 두었고 언제나 물건 주인과 제대로 흥정을 했다
그러면 졸래졸래 따라간 아이는 오히려 상인들에게 미안해 했다
해도 해도 너무 하셨다
그러나 … 어머니는 가족을 위해 필요한 것을 사야만 했고
쌈지에 돈은 턱없이 부족했다
그리고 그 아이는 늘 어머니가 승리하는 것을 보았다
'옛 풍경 에세이' 中
콩!
순간, 땅 울림이 머리 끝에 닿아 친구는 나비처럼 날았다
너무 고운 친구, 너는 더 높게 날거라
콩닥 콩닥, 보는 사람 없어도
가슴이 뛰고…
'옛 풍경 에세이' 中
오늘 하루 두 여인을 비껴 긴 그림자가 지고
'옛 풍경 에세이' 中
겨울 추위가 채 가시지 않은 우물가
엄마는 동생을 업고 겨울 빨래를 나왔다
동생 얼굴이 금새 발그레진다
엄마는 두레박을 내려 물을 긷는다
아직 조용한 동네 우물은 여인네의 만남의 장소
날씨가 풀리면 동네 아낙들의 웃음소리가 정답고
한 여름에 길어 마시던 그 우물물은 그렇게 시원하고 달콤했다
그 우물 속에 넣었다가 꺼내 먹던 참외며 수박은 이가 시릴 만큼 차가웠다
'옛 풍경 에세이' 中
"엄마가 왜 안와"
남매는 조급함에 앉았다 일어섰다를 반복했다
엉덩이가 따가운 것은 지금, 문제가 아니다
가장 잘 보이는 곳에 자리를 잡은
남매의 시선이 구비 구비 돌아오는 마을 길 끝에서 어른거린다
저 멀리 엄마의 종종걸음은 남매의 긴 기다림이다
'옛 풍경 에세이' 中
이 물건은 다른 차와 달리
안전벨트, 브레이크가 아예 없었다
"꽉 잡아"
동생과 나를 태우고
동네를 신나게 달리는데
타고 있는 나 보다 형이 더 신이 났다
'옛 풍경 에세이' 中
자꾸 걸음은 휘청거리는데
길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눈깔사탕 손에 든 아이는
폴짝 폴짝, 한 발로 콩콩, 심심함을 달랜다
마을 어귀를 돌면 엄마가 나타나실끼?
'옛 풍경 에세이' 中
한 겨울 밥을 짓고 불을 땔나무가 떨어졌다
아이는 다른 사람의 산에 가서 조심스럽게
한나절 나무를 하고 이제 됐다
제법 묵직한 게 엄마가 좋아하시겠지
이제 집으로 가는 길
어라?
누군가가 나를 불러 세웠다
왜, 왜 그러세요?
'옛 풍경 에세이' 中
시간은 많았고
누구나 도움이 필요했고
서로가 관심의 대상이었다
그 시절 늘 먹거리가 부족했지만
사랑에는 굶주리지 않았다
'가난하면 정이 많기 마련이다'
'옛 풍경 에세이' 中
단번에 주위를 사로잡는 아이가 있다
친구들을 압도하는 카리스마가 돋보인다
날렵한 시선, 화려한 복장, 선물을 확보하는 솜씨
그는 지적 수준을 웅변하는
영어 크리스마스 카드를 굳이 숨기려 하지 않았다
다만 한가지,
자신감이 지나쳐 앞섶을 너무 열어 젖혔다
한쪽 가슴이 살짝 드러나는 줄 몰랐다
/'옛 풍경 에세이' 中
작은 아가씨 제발 그 미소를 멈추세요
당신은 맑게 웃으시지만
난 그 미소를 견딜 수가 없어요
/'옛 풍경 에세이' 中
뭔가 잘못됐다.
중요한 뭔가가 이상하게 반대로 된 느낌이다
/'옛 풍경 에세이 中
형~ 형아, 무서워, 누가 우리 사진을 막 찍어
그건 우리가 멋있어서 그러는 거지
근데 형아, 우리 초상권은 어떻게 되는 거야?
글세, 저 사람이 그렇게 큰 돈이 있을까?
/'옛 풍경 에세이' 中
기차를 철마하고 했다
시커멓고 육중한 몸이 증기로 달렸다
몇 몇 사람은 차문에 매달려 있다
철마는 간이역마다 멈추며 쉬엄 쉬엄 갔다
/'옛 풍경 에세이' 中
괴력의 탱크,
시커먼 몸이 말없이 눕자,
평화가 왔다
그래, 이놈이
그 놈이란 말이지…
/'옛 풍경 에세이' 中
나룻배를 대신할
큰 다리는 변화를 예고했다
문명은 강에서 시작되었지만
변화는 강물을 가로질러
속력을 내기 시작했다
/'옛 풍경 에세이' 中
총선거를 무사하게 치르기 위해 시청 앞에 진지를 구축했다
무장한 경찰이 경계를 늦추지 않고 있다
총선거로 국권회복을 위한 만반의 태세를 갖추었다
/'옛 풍경 에세이' 中
이제 쉬는 전쟁
초대 교회 마당엔
덩그라니 폭탄 종이 효수됐다
우리가 은혜 위에
은혜를 받았은 즉,
사랑에 사랑을 더하시오
뎅뎅뎅 강도사는 종을 치지만
아직도 남은 참혹한 이 흔적을,
몸속에 품었던
폭발을 누가 용납할 것이며
도대체, 참회가
가당키나 한 것이냐
/'옛 풍경 에세이' 中
불공평이라는 세기의 짐을 졌으나
남녀를 불문했고 노소가 따로 없었다
그것이 그들의 모두였기에 짐이 가벼운 것을 바라지도 않았다
그들은 처음부터 포기할 줄을 몰랐다
다만, 지게라도 있으면 좋았다
/'옛 풍경 에세이' 中
1950년 6월부터 시작된 한국전쟁은
1953년 7월 휴전 조인가지
100만명 이상이 죽었고
250만명 이상이 집을 잃었으며
모든 것이 파괴 됐다
그리고 그들이 있었다…
/'옛 풍경 에세이' 中
그들은 몰랐다
살아남은 자들은
이미 더 강해졌다는 것을
그 강함이 추진의 원동력이 됐다
그들은 몰랐다
반세기가 지나기 전
그 땅에 기적이 일어나고
IT강국에 경제 대국이 될 것을
그들은 몰랐다
그리고
자신이
그 기적의 첫 단추였다는 사실을
하지만 지금
형제가 가장 서러운 것은…
배고픔이다
/'옛 풍경 에세이' 中
남은 건 희망 야만이 휩쓴 자리
모두 사라지고
그들만이 살아남았다
이제 남은 건 희망
절망의 기미가
전혀 없었다.
신작로가
분명 새 문명은 아니었다
그 길을 따라
수탈과 야만이 휩쓸고 지나갔다
지금은 불모의 황야
기다림이 더 필요했다
덜컹대는 달구지처럼
그 경계를 쉽게 넘지 못했다
뿌연 흙먼지 속에서
첫댓글 감사 합니다 담아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