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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명품 신자입니까
성경말씀 : 디모데후서 2장 20~21절
설 교
얼마 전 우리 나라에서 독일의 유명한 자동차 BMW 회사 이사들이 모여 회의를 한 적이 있다고 합니다. 회의를 마친 후에 그들은 한국의 백화점 가운데 압구정동에 있는 갤러리아 백화점 화장실을 구경했는데 왜 하필 화장실을 견학했겠습니까?
그 나라 백화점 화장실 문화를 보면 그 나라 사람들이 BMW 차를 타고 다닐 수 있는 백성인지를 알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압구정동에 있는 명품 갤러리 백화점 화장실은 최고급 대리석으로 화장실을 깨끗하게 만들어 놓았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우리 나라 사람들은 명품이라면 깜빡 죽는 백성이지요. 그래서 세계적인 명품들이 한국 시장에서 같이 잘 팔리는 곳이 없다는 것입니다.
크리스마스 시즌이 되면 싱가폴 각 백화점들이 BIG SALE에 들어가는데 주로 한국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몰려드는지 세계적으로 유명한 명품들이 잘 팔린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명품들을 소개하면:
골프채- 테일러매이드, 맥그리너, 혼다, 랭스필드, 미즈노
넥타이- 에르메스, 페라가모, 알르마니
핸드백- 프라다, 구찌, 펜디, 루이비똥, 에트로
시 계- 오리스, 테크노마린, 해리 윈스톤, 에르메스, 로렉스
만년필- 몽블랑, 파카, 워러맨(프랑스명품)
자동차- 롤스로이스 영국에서 1906년 창업, 1934년도형이 1억원이 넘는 가격
최근에 독일 BMW사에서 인수, 뉴 롤스로이스 팬텀은 가격이 6억 5천만원
화장품- 불란서에서 나오는 랑세 화장품
약 400년전 랑세 가문은 귀족과 왕실을 위한 제품으로 향수로 시작
화학재료를 전혀 쓰지 않은 천연재로로 만든 명품
그 릇- 뛕지우드
명품들이 참으로 많은데 명품은 이름만 붙이면 되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적어도 명품으로 소비자들에게 인정받기 위해서는 몇 가지 요건이 갖추어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첫째는 질(質의)문제입니다. quality 즉 품질의 일관성입니다.
둘째는 디자인의 단순성입니다. simple of design 즉 디자인이 복잡하지 않습니다.
셋째는 융통성입니다. acceptance 즉 고전과 현대를 다 수용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넷째는 희소성입니다. scarcity value 희소가치입니다.
다섯째는 특성입니다. character입니다. 특징이 분명합니다. 개성, 차별화입니다.
물건 뿐 만 아니라 우리 인간도 소위 명품 인간이 있고, 저질성 인간도 있다고 봅니다.
노블레스(noblesse) 가문이 있고, 천민(賤民)의 가문이 있습니다.
요즘은 돈 많으면 귀족이 된다고 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귀족은 천민과 다른 점이 분명히 있는 것입니다.
첫째는 귀한 사람은 질이 좋은 인간성을 갖습니다. 인격의 일관성입니다.
둘째는 귀한 사람은 요란하게 자신을 치장하거나 나타내지 않습니다.
셋째는 귀한 사람은 융통성이 있습니다. 관용과 이해심이 남보다 뛰어납니다.
넷째는 귀한 사람은 대중심리에 끌려 다니지 않습니다. 분명한 가치관이 있습니다.
다섯째는 귀한 사람은 다른 사람과 차별화된 사람입니다. dignity 자존감, 품위가 있음
이상은 제가 일반적으로 말하는 명품에 비교하여 귀한 명품으로서 인간은 어떤 사람인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아주 좋은 비교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면 큰집에는 금 그릇도 있고, 은 그릇도 있고, 나무 그릇도 있고, 질그릇도 있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그릇이 귀히 쓰는 그릇도 있고 천히 쓰는 그릇도 있다는 것입니다.
귀한 그릇은 명품 그릇이라고 봅니다.
그러나 천히 쓰는 그릇은 명품 그릇은 될 수 없을 것입니다.
금 그릇이라고 해서 꼭 명품이 되라는 법은 없습니다.
질그릇이라고 해서 꼭 천한 그릇이 되라는 법도 없습니다.
문제는 그 그릇을 누가 만들었느냐 또는 그 가치와 용도에 따라서 명품이 될 수도 있고 명품이 안될 수도 있습니다.
본문에서 말하는 큰집은 오늘날 교회를 가리킨 것이라면 여러 종류의 그릇은 여러 종류의 교인들을 의미한 말입니다. 어떤 그릇이 귀한 그릇입니까?
그릇을 누가 만들었느냐? 에 따라서 명품이 될 수도 있고 명품이 안될 수도 있습니다.
경기도 이천에 가면 도자기 공장이 많습니다.
전문성이 없는 우리 눈으로 보기에는 어느 것이 명품인지 명품이 아닌지 분간할 수 가 없습니다.
그러나 어떤 도자기는 우리 눈으로 볼 때에는 별로 신통한 것 같지 않은데 값이 엄청나게 비싼 것을 보면 만든 분이 보통 분이 아니로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 합니다.
하나님은 그의 자녀들을 하나님의 손으로 새롭게 빚으셔서 명품을 만드시기를 원하십니다.
귀한 그릇으로 만드시기를 원하십니다. 사람과 하나님 앞에 존귀한 사람으로 만드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하나의 진흙덩이로 하나님의 손에 맡겨져야 합니다.
오래 전에 제가 미국 어느 교회를 방문했을 때에 그 교회 전면에 프래그(Flag)를 걸어 놓았는데 네 가지 글귀가 아주 인상적이었습니다.
Melt Me!(나를 녹이소서), Mold Me!(나를 만드소서), Fill Me!(나를 채우소서), Use Me!(나를 쓰소서)란 글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1. 나를 녹이소서(Melt Me!)
먼저 좋은 그릇을 만들려면 흙을 곱게 빠고 부서트려서 녹여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인간도 하나님께서 존귀한 그릇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교만한 마음도 부서져야 하고, 완악한 성품도 녹아져야 하고, 고집도 버려야 하고, 때로는 나의 지식도 버려야 합니다.
우리 자신이 비참할 정도로 깨져야 합니다. 딱딱하게 굳은 흙으로는 귀한 그릇을 만들 수 없습니다.
굳은 마음, 완고한 성격, 거칠은 성격을 가지고서 어떻게 하나님께서 우리를 귀한 그릇으로 빚으실 수 있겠습니까?
사도 바울은 자기 자신을 가리켜 "나는 죄인 중에 괴수"(딤전1:15)라고 할 만큼 교만했고,
육신을 자랑했고, 지식을 자랑했고, 율법을 자랑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후부터는 전혀 그의 모습이 달라졌습니다.
부드럽고 겸손한 사람이 되었을 뿐 만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고 주님의 기쁨을 위하여 살아가는 영적인 사람으로서 그가 녹아진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에스겔서에 보면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겔36:26)라고 하였습니다.
내 힘으로는 불가능하지만 성령께서 하시면 나를 녹이실 수 있습니다. 그의 불로 나를 녹이실 수 있습니다. Melt Me! 나를 녹이소서! 이것이 명품 그리스도인이 되는 첫 번째 과정입니다.
2. 나를 만드소서(Mold Me!)
다음은 하나님께서 나를 만드시도록 나를 하나님께 위임해야 합니다.
자아가 너무 강하고 나 자신을 하나님께 위임하지 못하면 결코 하나님은 우리를 새롭게 빚으실 수 없습니다.
곱고 부드러운 흙이 준비되면 그것은 토기장이의 손에 들려져야 합니다.
그런데 귀한 그릇이 되느냐 천한 그릇이 되느냐는 그 그릇을 만든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서 달라지는 것입니다. 우리 나라에도 이름난 훌륭한 도예가들이 많습니다.
그런 분들이 만든 그릇이나 도자기는 부르는 값이 없을 정도입니다.
마찬가지로 누구의 손에서 만들어지느냐에 따라서 그 사람의 정체성이 달라집니다.
인간이 누구의 손에서 그 인격이 형성되느냐는 대단히 중요한 것입니다. 황우석교수와 같은 탁월한 과학적인 지식이 있는 사람에게서 수업을 받고 기술을 익히면 역시 훌륭한 과학자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을 삐뚤어지게 보는 사람에게 배우고 자란 사람은 언제나 세계를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운동선수들도 누가 그 팀의 감독이 되느냐에 따라서 엄청나게 그 팀의 실력이 달라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로마서에 있는 말씀을 보면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드는 권이 없겠느냐?"(롬9:21)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귀한 명품 그리스도인으로 만드시는 토기장이가 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반드시 하나님의 손에 들려져야 합니다.
그것이 믿음의 삶입니다.
이사야서에 보면 "우리는 진흙이요 주는 토기장이시니 우리는 다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이라."(사64:8)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진흙덩이에 불과한 인간인데 하나님의 손에 들려지면 귀한 그릇으로 빚어집니다.
하나님 만드시면 하나님의 사람이 됩니다.
당신의 뜻대로 나를 만드소서! Mold Me! 이것이 명품으로서 그리스도인이 되는 두 번째 과정입니다.
3. 나를 채우소서(Fill Me!)
아무리 좋은 그릇이라도 그 그릇에 무엇을 담느냐에 따라서 귀한 그릇도 될 수 있고 천한 그릇도 될 수 있습니다.
이 유리잔에 술을 담으면 술잔이 됩니다.
그러나 생수를 담으면 몸에 생기를 공급하는 귀한 잔이 됩니다.
우리 인간은 좋든 싫든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내 안에 무엇을 담고 살도록 되어 있습니다.
좋은 지식을 담으면 귀한 지성인이 됩니다.
하나님이 없다고 말하는 공산주의 사상을 담으면 세상을 유물론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는 사람이 되고 맙니다.
음탕하고 건전치 못한 책을 읽으면 우리는 타락하는 삶을 살 수 밖에 없습니다.
악성 정보를 많이 갖게 되면 사람은 부정적인 사람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우리 속에 무엇을 담아야 할 것입니까?
성경은 말하기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채우라고 말씀하십니다. "
네 입을 넓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시81:10)고 하셨고, "저가 사모하는 영혼을 만족케 하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주심이로다"(시107:9)고 하였습니다.
말씀과 은혜로 우리 심령에 꽉 채우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우리의 영이 기름지고, 우리의 정신이 진리로 올바르게 서고,
육신생활까지 복되게 될 줄 믿습니다.
사도 바울은 질그릇 같은 우리 속에 보배를 가지라고 말합니다. "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능력의 심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핍박을 받아도 버린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리라."(고후4:7-9)고 하셨습니다.
'보배를 질그릇에 가진자' 그는 결코 망하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질그릇에 보배'가 무엇입니까?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Fill Me! 나를 채우소서! 이는 귀한 그리스도인이 되는 세 번째 과정입니다.
4. 나를 쓰소서(Use Me!)
귀한 그릇은 쓰여질 때에 더욱 빛나는 법입니다.
귀한 그릇을 만들어 놓고 땅속에 묻어 둔다면 그 그릇의 가치를 제대로 발휘할 수 없을 것입니다.
특히 기독교 신앙에서 귀한 그릇은 쓰임 받는데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본문에 보면 우리가 교회에서 금그릇, 은그릇, 나무그릇, 질그릇이 된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주인이 쓰시기에 합당한 그릇이냐에 따라서 그 그릇의 가치가 달라진다고 하였습니다.
금 그릇이라 할지라도 쓰임 받지 못한다면 그 그릇은 무가치한 것이 되고, 질그릇이라 할지라도 주인이 사랑하고 쓰시면 귀한 그릇이 된다고 말씀합니다.
세상적인 가치관은 금 그릇이란 자체, 즉 물질적인 가치에 따라서 그것이 땅속에 묻혀 있더라도 가치가 있다고 생각할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기독교적인 가치는 그렇지 않습니다.
나무 그릇이라 할지라도 귀하게 쓰임 받는 그릇이 귀한 그릇입니다.
제가 아는 어느 목사님은 미국에 유학 가셔서 오래 동안 공부하셔서 Ph.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학위를 받고 보니 벌써 나이가 오십이 가깝게 되니까 학교 교수로도 못 가시고, 교회 목회도 변변하게 못하시고 마침내 은퇴하시고 말았습니다.
그가 천신만고 끝에 학위를 취득했지만 쓰임 받지를 못했습니다.
얼마나 안타까운지 몰랐습니다.
저희들이 잘 아는 연세대학교 총장을 역임하시고, 문교부 장관까지 지내신 백낙준박사님은 북한 평안도 어느 농촌 마을 아주 가난한 농사군의 아들로 태어나신 분입니다.
그러나 그가 선교사의 눈에 띄어 공부할 수 있는 길이 열리고, 미국 프린스톤에 가셔서 박사학위를 하고 귀국하셔서 우리 나라 교육계에 큰 공헌을 하셨습니다.
백낙준 박사, 김활란 박사 같은 분들 우리 나라 기독교계의 거성이고 정말 명품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비록 내가 부자 집에서 태어나서 어려움 없이 공부도 많이 하고 사회적으로 날리는 금 그릇이 아니라도 좋습니다.
나무 그릇과 같고 질그릇과 같은 보잘 것 없는 나라고 할지라도 주님의 손에서 귀하게 쓰임 받고 사랑 받는 그리스도인 되지 않으시렵니까?
이 교회를 위하여 유익하게 쓰임 받고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받는 명품 그리스도인 되시기를 원하십니까?
Use Me! 나를 쓰소서! 진흙 같은 나를 새롭게 빚으셔서 내 안에 진리로 채우시고 은혜 충만하게 하셨다면 나는 기쁨으로 주를 위하여 쓰임 받는 그릇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