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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토지맥 3구간[만천고개-28국도-태봉산(216.1m)-남대천/쌍계천합수점]終.
◈ 산행코소와 거리 및 소요시간 : GPS 거리 15.5km. 5시간 42분.
만천고개(2차선도로)-승방지-중앙선철로-28번국도-173.4m-비정고개(2차선도로)-태봉산(216.1m)-
270m-삼보산(180.3m)-구미교-남대천/쌍계천합수점
◈ 일시 : 2014. 9.21(일).
◈ 날씨 : 맑음.의성 17.8/26. 전형적인 가을 날씨로 시계좋고 산행하기 좋음.
◈ 동행인 : 요맥회 12명. 강형태 요맥 회장님.한상훈님.정영옥님.최상진님.이선우님.이성모님.정환규님.
최덕조님.장희익님.이덕희님. 정송자님.박종율.
◈ 회비 : 5만원
◈ 지도.
오토지맥 3구간[만천고개-28국도-태봉산(216.1m)-남대천/쌍계천합수점]終.지도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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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토지맥 3구간[만천고개-28국도-태봉산(216.1m)-남대천/쌍계천합수점]終.지도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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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토지맥 3구간[만천고개-28국도-태봉산(216.1m)-남대천/쌍계천합수점]終.지도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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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랙.
◈ 일정정리.
06 : 20. 천안출발.
07 : 30. 일죽 대송휴게소에서 합류하여 감곡IC. 문경휴게소들려 서안동 →남안동. 의성에서 한상훈님과 이선우 님합류.
10 ; 00/08. 들머리옆 만천2리 승방리 마을 남쪽에 있는 아기공룡 화석지를 둘러보고
10 ; 12/18. 의성읍과 금성면 경계인 만천고개 도착. 만천2리 승방리표석.남쪽의 묘지길따라 오름 →호조참의묘
10 : 32. 김해김공묘에서 좌측으로 내려서고
10 ; 37. 승방지를 좌측에 끼고 수레길따라 오름.
10 : 46. 좌측으로 227.9m이 분기하는 수렛길에서 우측으로 내려감. →김해김공묘
10 ; 51. 우측으로 오토산쪽이 보이고
11 ; 01. 중앙선철로.옹벽이 높아 좌측으로 돌아오름
11 ; 05. 28번국도 좌측 절개지에서 산길로 오름.→통사랑 의금부도사 순천장공묘
11 : 08. 뒤로 지나온 오토산-비봉산줄기를 돌아보고
11 ; 10/22. 둔덕봉에서 잠시 쉬어 좌로 내려감.→순천장공묘
11 ; 30.173.4m.잡목봉.우로 꺽어 내려감
11 ; 42. 야생 대추밭끝에서 오토산-비봉산 줄기를 뒤 돌아보고
11 ; 49. 수렛길에서 우측으로 내려서면 바로 능성구씨묘들이 있고 펑퍼짐한 구릉지가
11 ; 55. 비정고개 2차선도로.산수농장700m.의성마늘소작목회표지판.길건너 우측 세멘길로 오름.
11 ; 56. 송계산유공비. 원비는 오후에 다시 만나고 이비는 1987년에 큰길가에 복사본을 세운것임.
12 ; 00/19.경주이공묘에서 점심먹고 우측으로 꺽어 수렛길 따라 감.
12 : 22. 좌측에서 올라온 넓은길을 만나가고
12 :25/32. 임도 삼거리에서 직진해 가다 다시 돌아와 우측으로 복숭아밭을 건너가 수렛길을 따라 가고
12 ; 38. 57번철탑.
12 : 42. 빼곡한 솔밭에서 우측으로 내려가면 →경주이춘백묘
12 ; 45. 송계산유공비.소화8년에 세움.
12 : 55. 좌측으로 184.4m능선분기.
13 : 14/26. 태봉산(216.1m) 납작삼각점(의성465란다). 조진대.조은산.무심이님 메세지.조망없음.
13 : 29. 우로 꺽어 내려가고
13 : 34. 마루금은 좌측으로 돌아 오르나 길따라 우측 계곡쪽으로 가면 →낙엽송밭, 국가유공자묘를 지나
13 : 41. 좌측둔덕봉을 돌아온 마루금북귀하여 우측으로 가고
13 ; 47. 236.6m.좌로 가며 빨간 리본이 나오고
13 ; 59. 빼곡한 솔밭 내림길의 갈림길에서 직진해 내려가다 다시 올라와 좌측으로 내려간다.<주의지역>
14 ; 11. 안부에 내려서기 전에 좌측으로 신의지와 216.9m가 보이고
14 : 13. 안부에선 우측으로 세멘길이 올라와있고 건너편은 옛벌목지로 칡덩굴이 무성하다.
14 : 22. 온길을 뒤돌아 보고
14 ; 24. 216.9m. 정상은 칡덩굴로 덮혀있고 좌측으로 내려간다.
14 ; 32. 앞봉에선 좌측으로 내려가며 비봉산부터 지나온 산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14 ; 38. 다음봉에선 우측으로 내려감.
14 : 56. 약 242m봉에서 직진해 내려가는데 방금전에 목욕하고 간 멧돼지 목욕탕.
15 ; 08/14. 270m봉. 의성461삼각점.우측으로 꺽어 사정없이 뚝 떨어져 내려감
15 ; 22. 앞에 180.3m삼보산과 우측으로 남대천과 마을이 보이고
15 ; 28. 안부는 밭이라 우측 세멘길로 우회해오르면 흥해배공묘가 있고
15 ; 35/39. 삼보산. 180.3m.(영진지도는 삼보산이다) . 큰묘2기.잠시쉬어 우측으로 가고
15 ; 48. 복숭아밭을 지나고
15 ; 50. 도로에 내려서기전 산줄기끝 나무에 축 오토지맥 냄비가 걸려있다.
15 ; 52/53. 남대천을 건너는 구미교.제방따라 좌측 합수점으로
15 ; 59/06. 남대천/쌍계천이 만나는 제방. 수문.쌍계천 건너는 금연정사.
16 : 13. 다시 구미교. 다리를 건너 5. 28번도로로.
16 ; 17. 구미교를 건너 5. 28번도로 삼거리에서 우리 차를 만나 도리원으로 나가 한상훈님은 선암하러 내리고
17 ; 00/53. 남안동휴게소에서 한식부페로 저녁(추천할만한곳이 못된다)
17 ; 56/18 ; 10. 남안동휴게소뒤 조탑리5층전탑과 아동문학가 권정생선생 주거지
20 ; 20/35. 일죽 대송휴게소
21 : 20. 비교적 이른 시간에 천안도착
◈ 산행후기.
※ 산행전.
아기공룡 화석지.
10 ; 00/08. 들머리옆 만천2리 승방리 마을 남쪽에 있는 아기공룡 화석지를 둘러본다.
주차장에서 산모랭이를 돌아가면 작은 소류지가 잇고 그 우측 바위 사면에 아기공룡발자국이 있다.
지도에 나오는 천연기념물 373호 공룡발자국화석은 여기서 직선거리로 950m 떨어진 남쪽 언덕넘어 930번 도로가에 있다.
아기공룡 화석지 안내판.
아기공룡 화석지
아기공룡 화석지 주차장에서 본 만천고개(가운데)와 뒤로 오토산.
※ 만천고개-28번도로-태봉산(216.1m. 8km. 2시간 55분.
10 ; 12/18. 의성읍과 금성면 경계인 만천고개 도착. 만천2리 승방리표석.남쪽의 묘지길따라 오름 →호조참의묘
10 : 32. 김해김공묘에서 좌측으로 내려서고
10 ; 37. 승방지를 좌측에 끼고 수레길따라 오름.
10 : 46. 좌측으로 227.9m이 분기하는 수렛길에서 우측으로 내려감. →김해김공묘
10 ; 51. 우측으로 오토산쪽이 보이고
11 ; 01. 중앙선철로.옹벽이 높아 좌측으로 돌아오름
11 ; 05. 28번국도 좌측 절개지에서 산길로 오름.→통사랑 의금부도사 순천장공묘
11 : 08. 뒤로 지나온 오토산-비봉산줄기를 돌아보고
11 ; 10/22. 둔덕봉에서 잠시 쉬어 좌로 내려감.→순천장공묘
11 ; 30.173.4m.잡목봉.우로 꺽어 내려감
11 ; 42. 야생 대추밭끝에서 오토산-비봉산 줄기를 뒤 돌아보고
11 ; 49. 수렛길에서 우측으로 내려서면 바로 능성구씨묘들이 있고 펑퍼짐한 구릉지가
11 ; 55. 비정고개 2차선도로.산수농장700m.의성마늘소작목회표지판.길건너 우측 세멘길로 오름.
11 ; 56. 송계산유공비. 원비는 오후에 다시 만나고 이비는 1987년에 큰길가에 복사본을 세운것임.
12 ; 00/19.경주이공묘에서 점심먹고 우측으로 꺽어 수렛길 따라 감.
12 : 22. 좌측에서 올라온 넓은길을 만나가고
12 :25/32. 임도 삼거리에서 직진해 가다 다시 돌아와 우측으로 복숭아밭을 건너가 수렛길을 따라 가고
12 ; 38. 57번철탑.
12 : 42. 빼곡한 솔밭에서 우측으로 내려가면 →경주이춘백묘
12 ; 45. 송계산유공비.소화8년에 세움.
12 : 55. 좌측으로 184.4m능선분기.
13 : 14/26. 태봉산(216.1m) 납작삼각점(의성465란다). 조진대.조은산.무심이님 메세지.조망없음.
10 ; 12/18. 의성읍과 금성면 경계인 만천고개 도착. 만천2리 승방리표석.남쪽의 가축분뇨를 쌓아놓은곳에서 묘지길따라 오름
좀 올라가면 호조참의 안동김공묘가 있다.
가축분뇨장에서 주민이 굼뱅이를 잡고있는데 수확량이 시원찮다.
만천고개에서 본 승방리 아기공룡화석지쪽.
10 : 32. 김해김공묘에서 좌측으로 내려서고
10 ; 37. 승방지를 좌측에 끼고 수렛길따라 오름.
승방지에 비친 가을하늘이 높다.
10 : 46. 좌측으로 227.9m이 분기하는 수렛길에서 우측으로 꺽어 솔밭을 내려가면 김해김공묘가 있다.
10 ; 51. 우측으로 오토산(좌)-홀고개쪽이 보이고
11 ; 01. 중앙선철로. 철로 건너는 28번국도인데 옹벽이 높아 좌측으로 돌아오른다.
11 ; 02. 철로에서 28번국도로 올라가는곳엔 철로 근무자가 오르내리는 길인듯 작은 로포와 나무다리가 있다.
11 ; 05. 28번국도 좌측 절개지에서 산길로 오름.
좌측 골짜기안엔 농장집이 있고 이집을 좌측에 반원을 그리며 돌아 173.4m으로 갈 것이다.
절개지위봉엔 통사랑 의금부도사 순천장공묘가 있다.
절개지위봉에서 좌로 꺽어가며 뒤 돌아 본 오토산-비봉산-금성산능선.
땡겨 본 오토산-비봉산능선.
11 ; 10/22. 둔덕봉에서 잠시 쉬어 좌로 내려감
.순천장공묘에서 좌측으로 내려가며 본 173.4m봉(좌)과 우측으로 태봉산.
173.4m.잡목봉에서 우로 꺽어 내려가며 본 외가못(좌)과 태봉산.
고도차가 없는 얕은 구릉지인데 키작은 대추나무에 대추가 지천인데
전에 대추를 심고 관리를 안하고 오래돼서 야생화가 된 모양이다.
야생 대추밭끝에서 오토산-비봉산 줄기를 뒤 돌아보고
11 ; 49. 수렛길에서 우측으로 내려서면 바로 능성구씨묘들이 있고 펑퍼짐한 구릉지가 계속된다.
좌측봉이 태봉산일듯.
11 ; 55. 비정고개 2차선도로.
산수농장700m.의성마늘소작목회표지판.길건너 우측 세멘길로 오름.
송계산유공비.
길건너 우측 세멘길로 오르면 삼거리에 있는데
원비는 오후에 태봉산 가는길에 다시 만나고 이비는 1987년에 큰길가에 복사본을 세운것임.
12 ; 00/19.경주이공묘에서 점심먹고 우측으로 꺽어 수렛길 따라 감.
12 : 22. 좌측에서 올라온 넓은길을 만나가며 오즘엔 보기드문 메밀밭과 목화밭을 좌측으로 돌아간다.
12 :25/32. 임도 삼거리.
대추따먹으려 직진해 또다른 철탑쪽으로 가다 가다 다시 돌아와 우측으로 복숭아밭을 건너가 수렛길을 따라 가고
12 ; 38. 57번철탑.
12 ; 45. 송계산유공비.
송계산유공비.
좌측은 비정고개에 있는 1987년에 세운비고 우측것은 소화 8년(1933년)에 세운 원본이다.
소화8년(1933년)에 세운비인데 내용은 훨씬전인 영조대(1725~1776)에 암행어사 박문수의 심판에 의해 송계산을 되찾은것을 기념하는 내용이다.
아래글은http://usss.pe.kr/culture/songaesan.에서 퍼온 글이다.
의성읍 팔성리에서 봉양면 풍리3리로 향하는 길가의 오른 편에 빼앗긴 송계산을 되찾은 기념비가 있다. 이 송계비는 1987년 9월에 세운 것으로, 최근 조성된 것이나, 그 내용이 지나는 이들의 관심사가 되고 있다.
원비[原碑]는 봉양면 풍림3리 풍림 마을 동쪽의 진밭골 못[池]을 지나, 양 마을을 연결했던 옛 길 고개목 왼편에 있다. 그러나 잡초와 송림사이 다니기 어렵게 되자, 이곳으로 이건하게 된 것으로 보이는데, 원비또한 조성된 시기가 일제시대인 소화 8년(1933년) 8월로 기재된 것을 보아서 아주 오래된 것은 아니다. 특히 일제 때까지만 해도 소송의 과반수가 산송[山訟] 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이러한 유[類]의 사건은 별 관심사가 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이곳에 기록된 내용은 이 땅에 한창 송계가 조직되기 시작하였던 18세기 중반 조선 영조시대 사건(1725년~1776년)을 기록하고 있다. 또 하나는 너무도 유명한 암행어사 박문수의 심판에 의해 송계산을 되찾은 것을 기념하고 있다는 것이어서 가치가 있다.
잘 생긴 산세로 인한 산 소유권 경역[境域]분쟁의 전말을 기록한 비문내용을 살펴보면 사건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당시 금성면 초전리[草田里]에 살았던 세도가 김모[某]가 현재의 풍림마을 외백호에 해당하는 태봉산 서쪽 줄기에 선영[先塋]을 마련했는데, 동쪽으로 두 산등성이 너머에 있는 풍림리 내청룡에 해당하는 지맥까지 소유권을 주장하게 되었다.
그 당시는 사대부들이 분묘를 쓸 때는 음양구기설[陰陽拘忌說]에 따라 분묘의 앞쪽은 물론, 좌우 용호지맥의 몇 산등성이 너머까지도 타인의 분묘가 보이는 것을 꺼려하던 때이다.
또한 세도가가 거주하던 초전마을의 사람들 또한 비봉산의 봉이 깃들이길 기원하며, 마을의 뒷산을 오동산[梧桐山]이라 이름하고, 마을에 마[馬]씨가 들어와 살면 혼자서 발복을 독차지한다고 하여 마씨 성가진 사람들의 전입을 불허할 정도로 풍수를 굳게 믿던 사람들이다.
특히, 조문국시대 태자의 태를 묻었다는 명산 태봉산[胎峰山] 주변지역에 해당하는 산 줄기이기에 더욱 외외청룡[外外靑龍] 지맥을 확보하려는 마음이 간절하였을 것이다.
임야 경계를 무시하고 송계산을 강압적으로 탈취하게 되자, 비봉마을 송계의 대표이던 이기영, 김기진, 최운경 등 삼씨가 항쟁하였다. 이에 세도가 김모가 현령의 힘을 빌어 이들을 하옥하고 여러차례에 걸쳐 모진 악형을 가하게 되었다. 사건이 더욱 커지게 되면서, 어사 박문수가 파견되기에 이르렀다. 이같은 소식을 접한 박문수 어사는 현령을 비롯한 일당을 엄벌하고, 본래의 소유자에게 환원하였다. 이같은 쟁송에 승리한 것을 기념하기 위하여 경계지에 표석을 세우게 되었다.
송계비는 이 당시에 모진 고초를 겪으면서 송계산을 지켜낸 송계원들의 유공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비석으로 송계산의 가장 오랜 역사가 기록돼 있는 기념물로서 당시의 상황을 되돌아 보게 하고있다.
비봉리의 송계산은 의성읍과 봉양면, 그리고 금성면 경계 지점에 위치한 산으로, 별도의 이름을 갖지 못한 무명의 산이다. 태봉산 줄기 동쪽에서부터 오동산 줄기의 북쪽까지의 역[逆] C자 모양의 수백 정보(ha)의 임야가 곧 송계산 영역이다.
비봉리로 봐서는 서쪽과 남쪽, 그리고 봉양면 풍림[豊林]마을로 봐서는 동쪽 골짜기에 놓여있는 산줄기 전체가 송계산이다. 송계산의 가장 높은 곳이 해발 155m에 불과할 정도로 매우 나지막한 구릉성 봉우리들로 구성되어 있다.
골짜기를 향해 뻗어내린 송계산의 지맥들 하나하나가 모두 잘생기고 옹골차기 그지없다. 따라서 분묘를 쓰기에도 좋은 지세이다. 이처럼 좋은 지세이었기에 산송[山訟]이 있었을 것이다.
또한 풍림마을을 지나면서 골짜기 양쪽으로 눈이 시리도록 짙푸른 솔숲이 펼쳐진다. 이처럼 숲이 울창하게 잘 관리된 것은 송계에 의한 것이다. 60년대 땔 나무를 사용할 때까지 송계에 직접 참여하였던 분들에게 들어본 진술에서 당시 상황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당시 나무를 심기에 좋을 봄이되면, 한 집에 한 사람씩 반드시 부역에 나와서 산에 나무를 심는 것은 물론, 산에서 땔감을 하는 양을 엄격하게 규제하였다고 한다.
송계원에게도 예외는 없었으며, 송계원 아닌 사람들은 이 산에서 나무를 할 수 없었다. 이처럼 엄격한 송계규율로 인해, 대규모로 숲을 훼손한 바가 없었다. 또한 끊임없이 나무를 심으면서 적당히 나무들을 솎아 땔감으로 사용하는 등 합리적이면서도 지속적인 생태관리가 있었다.
'굶어 죽으나, 얼어 죽으나, 죽기는 매한가지'라는 말이 전해져 온다.예전에는 땔 나무를 얻는 것은 식량을 확보하는 것에 버금가는 중요한 일이었다.
연료로 땔나무가 각광받던 시대에는 송계원에 의하여 수목이 많이 보호되고 관리되었으나 요즘은 잘 생긴 지세 탓인지 군데군데 분묘들만 늘어나고, 연료림으로서의 가치가 많이 떨어진 송계산의 일부분이 외지 사람들에게 분할되어 많은 부분 팔려나갔다.
그러나 송계산을 지키고자 온갖 고초를 겪으면서도 굴하지 않았던 송계정신을 오늘에 되살려 볼 일이다.
이와는 달리 분산을 알리기 위하여 예전 산지의 경계 구역을 표시하는 각석이 발견되기도 하였다. 단밀면 속암리 서재배수장 맞은 편 산기슭 암벽을 파내어 安東權氏와 羅州丁氏의 분산 - 墳山, 무덤을 쓴 산 - 임과 건비연대(建碑年代)와 '後方右西'등 위치를 각석(刻石)하고 있는데, 도로변에 있는 안동권씨 분산표시를 보면 속신 꼭대기에서 이곳 바위의 위쪽은 안동권씨 분산[束薪頂此岩上山主安東權氏墳山]임을 표기하는 형식이다.
이러한 사례로 미뤄 보아서 예전 묘지 또는 산지와 관련된 송사가 많았음을 미루어 짐작케 한다.
송계라는 것은 산림을 지키기 위한 계 - 금송계(禁松契)·산계(山契)·산리계(山里契)라고도 한다 - 이다. 이에서 산림자원을 보존하기 위하여 지역민들의 단합된 의식을 엿볼 수 있다.
송계가 조직되는 원인을 따져본다면, 첫째, 마을 주위 산림이 연료채취를 비롯한 공동이용의 대상이므로 이용자들 스스로가 상호규제하여 산림 훼손을 막고자 한 것이다.
다음으로는 선조의 묘역을 수호하는 데는 풍수지리상 수목의 형세가 긴요하였기 때문이다.
끝으로 마을 주민이 권세가의 예속민일 경우에 송계가 유력한 씨족의 선산보호를 주목적으로 하는 경향이 뚜렷하였다.
수령은 산림의 보호책임자이기도 하므로 송계를 장려하고, 때에 따라서 어느 정도의 형벌권을 허용했던 것으로 보아, 송계의 관허계적(官許契的) 성격을 엿볼 수 있다. .
13 : 14/26. 태봉산(216.1m) 납작삼각점(의성465란다).
솔밭속이라 조망은 없다.
조진대.조은산.무심이님이 3시간 전인 오늘아침 10시에 지나가며 메세지를 님겼다.
조우할수있는 기회였는데 아쉽다.지금쯤은 산행이 긑났겠지요?
맥사랑이라 쓴것은 달인클럽을 맥사랑으로 착각하신듯.
세분들 오래오래 건강하세요!!
오래오래라 쓰고보니 지난 8월에 가신 이거종님이 생각난다.
그친구 전용문구인데
13 : 14/26. 태봉산(216.1m)
내친김에 잠시 쉬고.산곡 이성모님이 폼난다.
※ 태봉산(216.1m)-270m-구산리 합수점. 7.5km. 2시간 50분.
13 : 14/26. 태봉산(216.1m) 납작삼각점(의성465란다). 조진대.조은산.무심이님 메세지.조망없음.
13 : 29. 우로 꺽어 내려가고
13 : 34. 마루금은 좌측으로 돌아 오르나 길따라 우측 계곡쪽으로 가면 →낙엽송밭, 국가유공자묘를 지나
13 : 41. 좌측둔덕봉을 돌아온 마루금북귀하여 우측으로 가고
13 ; 47. 236.6m.좌로 가며 빨간 리본이 나오고
13 ; 59. 빼곡한 솔밭 내림길의 갈림길에서 직진해 내려가다 다시 올라와 좌측으로 내려간다.<주의지역>
14 ; 11. 안부에 내려서기 전에 좌측으로 신의지와 216.9m가 보이고
14 : 13. 안부에선 우측으로 세멘길이 올라와있고 건너편은 옛벌목지로 칡덩굴이 무성하다.
14 : 22. 온길을 뒤돌아 보고
14 ; 24. 216.9m. 정상은 칡덩굴로 덮혀있고 좌측으로 내려간다.
14 ; 32. 앞봉에선 좌측으로 내려가며 비봉산부터 지나온 산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14 ; 38. 다음봉에선 우측으로 내려감.
14 : 56. 약 242m봉에서 직진해 내려가는데 방금전에 목욕하고 간 멧돼지 목욕탕.
15 ; 08/14. 270m봉. 의성461삼각점.우측으로 꺽어 사정없이 뚝 떨어져 내려감
15 ; 22. 앞에 180.3m삼보산과 우측으로 남대천과 마을이 보이고
15 ; 28. 안부는 밭이라 우측 세멘길로 우회해오르면 흥해배공묘가 있고
15 ; 35/39. 삼보산. 180.3m.(영진지도는 삼보산이다) . 큰묘2기.잠시쉬어 우측으로 가고
15 ; 48. 복숭아밭을 지나고
15 ; 50. 도로에 내려서기전 산줄기끝 나무에 축 오토지맥 냄비가 걸려있다.
15 ; 52/53. 남대천을 건너는 구미교.제방따라 좌측 합수점으로
15 ; 59/06. 남대천/쌍계천이 만나는 제방. 수문.쌍계천 건너는 금연정사.
16 : 13. 다시 구미교. 다리를 건너 5. 28번도로로.
16 ; 17. 구미교를 건너 5. 28번도로 삼거리에서 우리 차를 만나 도리원으로 나가 한상훈님은 선암하러 내리고
17 ; 00/53. 남안동휴게소에서 한식부페로 저녁(추천할만한곳이 못된다).
13 : 34. 마루금은 좌측으로 돌아 오르나 길따라 우측 계곡쪽으로 가면 →낙엽송밭, 국가유공자묘를 지나 다시 만난다.
13 ; 47. 236.6m.좌로 가며 빨간 리본이 나오고
13 ; 59. 빼곡한 솔밭 내림길의 갈림길에서 직진해 내려가다 다시 올라와 좌측으로 내려간다.<주의지역>
방금전에 조진대님이 표지기를 걸고 갔는데 못보고 지나쳤다.
14 ; 11. 안부에 내려서기 전에 좌측으로 신의지가 보이고
14 : 13. 안부에선 우측으로 세멘길이 올라와있고 건너편은 옛벌목지로 칡덩굴이 무성하다.
옛벌목지뒤로 216.9m
14 : 22. 태봉산을 뒤돌아 보고
14 ; 24. 216.9m.
정상은 칡덩굴로 덮혀있고 좌측으로 내려간다.
14 ; 32. 앞봉에선 좌측으로 내려가며 좌측으로 본 오동산(梧桐山.313.3m).과 뒤로 선암지맥.
14 ; 38. 다음봉에선 우측으로 내려감.<주의>
14 : 56. 약 242m봉에서 직진해 내려가는데 방금전에 목욕하고 간 멧돼지 목욕탕.
15 ; 08/14. 270m봉. 의성461삼각점.우측으로 꺽어 사정없이 뚝 떨어져 내려감
15 ; 08/14. 270m봉.
15 ; 22. 앞에 180.3m삼보산이 보이고
15 ; 22. 우측으론 남대천과 5.28도로가의 문흥리 물량마을이 보인다.
15 ; 35/39. 삼보산. 180.3m.(영진지도는 삼보산이다) .
큰묘2기.잠시쉬어 우측으로 가고
15 ; 50. 도로에 내려서기전 산줄기끝 나무에 축 오토지맥 냄비가 걸려있다.
15 ; 52/53. 남대천을 건너는 구미교.제방따라 좌측 합수점으로
쌍계천건너 28번도로가에 의성소방서가 보인다.
구미교에서 본 합수점쪽.
쌍계천,남대천제방안족은 논과 밭,과수원이다.
남대천(우)과 쌍계천(좌)이 만나는 합수점.
합수점앞 제방에서 뒤 돌아 본 구미교(좌)와 삼보산(180.3m).
오토지맥을 마치며.
좌측부터 나. 이선우님. 장희익님. 최상진님. 이덕희님. 정송자님. 최덕조님. 한상훈님. 정영옥님. 정환규님. 강형태요맥회장님.이성모님은 사진찍고.
쌍계천 건너편엔 금연정사가 있고 그뒤는 도리원(봉양)이다.
다시 구미교로 나오며 본 구미교와 오토지맥긑자락.
16 ; 17. 구미교를 건너 5. 28번도로 삼거리에서 산행종료.
※ 산행후.
조탑리5층전탑과 아동문학가 권정생선생 주거지.
남안동 IC근처의 조탑리 5층전탑.
조탑리 5층전탑은 보수공사중.
조탑리 5층전탑은 보수공사중.
조탑리 5층전탑 근처의 아동문학가 권정생선생 주거지
조탑리 5층전탑 근처의 아동문학가 권정생선생 주거지
권정생은?
권정생에 대한 생애와 이력에 대해 잘 전하는 바가 없지만 1937년 일본 도쿄의 빈민가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해방직후인 1946년 고향이라고 돌아왔는데 의지 할 곳이 없어 외가가 있는 경상북도 청송으로 귀국했지만 외가도 넉넉한 살림이 못되어 권장생의 가족을 받아줄 형편이 못되었다.
그리하여 권장생의 가족은 너무 빈곤하여 함께 모여 살지 못하고 모두 뿔뿔이 해어졌는데, 그도 가족들과 헤어져 어렸을 때부터 나무장수, 고구마장수, 담배장수와 가게의 점원 등 온갖 고생을 다하며 살았다.
극심한 영양실조로 결핵에 걸려 늑막염, 폐결핵, 방광결핵, 신장결핵 등을 앓으나 병원에 가저 제대로 치료도 못받았고, 그런 몸으로 대구, 김천, 상주, 문경 등 각지를 떠돌며 나중에는 걸식 까지 하다가, 1967년 경상북도 안동시 일직면 조탑동에 정착하여 그 마을의 교회 문간방에서 살며 종지기가 되었다.
누구에게 체계적으로 배운 것도 아닌데 소설을 쓰기 시작하여 1969년 단편동화 《강아지 똥》을 발표하여 월간 《기독교교육》의 제1회 아동문학상을 받으며 동화작가로서의 삶을 시작하였다.
1973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동화부문에 《무명저고리와 엄마》가 당선되었고, 1975년 제1회 한국아동문학상을 받았다.
1980년대 초 교회 뒤 빌뱅이 언덕 밑 작은 흙집이 바로 그 집인데 동내 청년들이 힘을 모아 지어준 집이라고 한다.
그는 그 집에서 아무도 돌보는 이 없는 방에서 2007년 5월 17일 세상을 떠났다.
그렇게 본인의 생활은 가난하면서도, 그가 죽은 뒤 10억이 넘은 유산을 남겨 가난한 어린이의 장학금으로 써 달라는 유서를 남겼다.
남긴 저서로는 동화에 《강아지 똥》 《사과나무밭 달님》 《하느님의 눈물》 《몽실언니》 《점득이네》 《밥데기 죽데기》 《하느님이 우리 옆집에 살고 있네요》 《한티재하늘》 《도토리 예배당 종지기 아저씨》 《무명저고리와 엄마》 《또야 너구리가 기운 바지를 입었어요》 《깜둥바가지 아줌마》 등과 시집 《어머니 사시는 그 나라에는》, 수필집 《오물덩이처럼 뒹굴면서》 《우리들의 하느님》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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