뫼비우스의 띠 / 윤석호
히터와 에어컨만 있으면 날씨와 상관없이 살 수 있는 세상에 누구는 씨앗을 뒤져 열매를 찾아낸다고 정신이 없고 누구는 그것을 다시 씨앗 속에 욱여넣는다고 세월을 보낸다 한가한 날은 얼마나 빨리 지나가는가 내가 가진 중력은 절대로 부정할 수 없는 내 욕망의 무게다
종일 맑았던 하늘이 막판에 벌겋게 뒤집어진다 울며 태어난 것들은 통곡하지 않고는 어미의 뱃속으로 되돌아갈 수 없다 철도 안던 어린것들에게 어른이랑 똑같이 시간을 나누어 주면 온종일 모여 호작질이나 하고 15살 난 계집애가 현생도 모르면서 다음 생을 알겠다고 출가하는 일이 벌어진다 그리하여 그들은 어른이 되어 간다 집착할수록 대상은 견고해지고 내가 강해지려 할 때마다 상대방만 강하게 키워 놓는다 그런 어느 날 생의 앞쪽에서 예언서가 배달되었다
치료와 위로를 병행하는 것은 시한부 환자뿐이다 위험해 지면 스스로 선명해진다 낮 선 곳에서 혼자 만나는 시간은 얼마나 새로운가 밖으로 밖으로 기를 쓰고 걸으면 안으로 안으로 들어서게 된다 그 어느 정점에서 눈물처럼 질문이 쏟아진다 생은 왜 막판에 다다라서야 질문을 남발하는가 가슴속에서 물고기처럼 요동치던 질문들은 밖으로 쏟아져 나오자 주둥이를 벌리고 버둥거리다가 말 한마디 못하고 사라진다 질문을 잃으면 다시 배고프다 배고프지 않은 새는 간절하게 울 수 없다 울어도 울어도 질문의 허기는 답으로 채워지지 않는다
나는 한 바퀴를 돌아 밖으로 나왔다
시집, 4인칭에 관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