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9강 걸레-스피치와 시낭송 문학의 집·구로 2014. 11.3. 월
걸레
민문자
지금부터 걸레에 대하여 말씀드리겠습니다.
걸레는 더러운 곳을 닦거나 훔쳐 내는 데 쓰는 헝겊을 말합니다.
그래서 버려도 아깝지 않은 걸레는 보통 헌 옷을 쓰는데 헌옷 중에도 면사(綿絲)로 된 것이 좋습니다. 옛날에는 걸레가 제대로 형태를 갖추지도 못했지요. 낡을 대로 낡은 헌 옷이나 걸레로 쓸 수 있었으니까요. 반세기 전만해도 가난한 집에서는 걸레가 미역줄거리처럼 갈가리 찢어졌는데도 버리지 못하고 계속 썼습니다. 흰 메리야스 헤진 것은 걸레로 쓰기 아까워 행주로 쓰던 시절이었습니다. 학교 선생님께서 걸레를 만들어 오라고 하면 속에는 이리저리 찢어진 것으로 채우고 겉만 제대로 된 헝겊으로 덮어 누벼서 만들어가곤 했지요. 이런 걸레를 물에 빨아서 교실바닥이며 책걸상과 창가를 선생님과 함께 고사리손으로 닦던 초등학교 시절 추억이 떠오르는군요.
이제 시대가 바뀌고 가정이나 나라살림이 윤택해져 학교환경도 바뀌어 걸레의 형태도 새것으로 마포대걸레를 많이 쓰며 청소용품도 학교에서 일괄 제공해준다고 합니다.
지금 학생들은 제공되는 걸레로 복도와 교실만 닦고 화장실 청소와 유리창은 일자리 창출로 온 어른들이 청소한다고 합니다.
책걸상도 없어서 마룻바닥에 엎드려서 공부를 하는가하면 6, 70명씩의 콩나물교실, 오전 오후반을 하던 시절을 생각하면 격세지감을 아니 느낄 수가 없습니다.
걸레는 이 세상 모든 것을 깨끗이 닦아주는 희생적인 물건이지요. 자신이 대신 몸을 더럽혀서 상대를 깨끗이 정화시켜주니 거룩한 물건이나 우리는 걸레의 고마움을 잊고 삽니다.
행주도 깨끗이 닦아주는 희생적인 것이지요. 행주는 그릇, 밥상 따위 등 우리 입으로 가져가는 것과 직접 관계있는 것을 닦거나 씻는 데 쓰는 것으로 걸레보다는 격이 높고 훨씬 깨끗하지요. 그러나 이렇게 깨끗한 곳을 닦는 행주가 한 번 잘못 쓰이면 걸레가 됩니다. 더러운 곳을 닦으면 더워진 몸뚱이가 되었으니 걸레가 된 거지요.
가정에서도 이제 걸레는 옛날의 그 걸레가 아닙니다. 멀쩡한 옷이나 깨끗한 타월이 쓰이는데 빨아 널면 걸레의 모습이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걸레와 행주는 같은 일을 하지만 신분의 차이가 커서 같은 빨랫줄에 널고 시어머니의 혼찌검을 몹시 들었던 며느리도 있습니다. 행주가 걸레로 변하기 쉽기 때문이지요. 걸레는 빨아서 아무리 깨끗해도 걸레입니다. 걸레는 태생적으로 비극적인 이름을 지니고 있는 것입니다. 걸레를 좋아하는 사람은 없으니까요.
가만히 생각해보면 자신의 온몸을 바쳐 주위를 깨끗하게 만드는 일을 했으니 참 좋은 일을 한 것입니다. 칭찬을 받아도 모자랄 판에 우리는 더럽다고 걸레를 경원시합니다.
‘걸레 같은 년!’ ‘걸레 같은 놈!’
우리는 앞으로 이런 소리는 하지도 듣지도 말아야겠습니다. 말조심을 합시다.
저는 지금까지 걸레에 대하여 말씀드렸습니다.
정일근 시인 약력
1984년 월간문학 신인상 시조 당선
1984년 실천문학(5권) 신인 작품 발표
1985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6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시조 당선
1995년 문예진흥기금(시집발간) 수혜
1996년 문학의 해 기념 유공자 표창
1998년 한국문학 특별 창작지원금 수혜
2000년 한국시조 작품상 수상
2001년 중학교 1학년 2학기 국어교과서 시 "바다가 보이는 교실" 수록
2001년 시와 시학상 젊은시인상 수상
2003년 문예진흥기금(시집발간) 수혜 / 제18회 소월시문학상 대상 수상
★시집 : 마당으로 출근하는 시인(2003, 문학사상 신작시집)
누구도 마침표를 찍지 못한다(2001, 시와시학), 경주남산(1998, 문학동네)
감지의 사랑(1995, 빛남, 300부 한정본), 처용의 도시(1994, 고려원)
그리운 곳으로 돌아보라(1993, 푸른숲)
유배지에서 보내는 정약용의 편지(1판 1991, 빛남/2판 2002, 새로운 눈)
바다가 보이는 교실(1987, 창작과 비평사),
★시선집:첫사랑을 덮다(1998, 좋은날)
★산문집 :시인의 편지 유혹(2002, 새로운 눈)
★현재 경남대 기초교양학부 교수이며 청년작가아카데미원장으로 일하고 있다.
흑백사진 / 정일근
-7월
내 유년의 7월에는 냇가 잘 자란 미루나무 한 그루 솟아오르고 또 그 위 파란 하늘에 뭉게구름 내려와 어린 눈동자 속 터져나갈 듯 가득 차고 찬물들은 반짝이는 햇살 수면에 담아 쉼 없이 흘러갔다. 냇물아 흘러흘러 어디로 가니, 착한 노래들도 물고기들과 함께 큰 강으로 헤엄쳐 가버리면 과수원을 지나온 달콤한 바람은 미루나무 손들을 흔들어 차르르차르르 내 겨드랑에도 간지러운 새 잎이 돋고 물 아래까지 헤엄쳐가 누워 바라보는 하늘 위로 삐뚤삐뚤 헤엄쳐 달아나던 미루나무 한 그루. 달아나지 마 달아나지 마 미루나무야, 귀에 들어간 물을 뽑으려 햇살에데워진 둥근 돌을 골라 귀를 가져다 대면 허기보다 먼저 온몸으로 퍼져오던 따뜻한 오수, 점점무거워져 오는 눈꺼풀 위로 멀리 누나가 다니는 분교의 풍금소리 쌓이고 미루나무 그늘 아래에서 7월은 더위를 잊은 채 깜박 잠이 들었다.
매생이 / 정일근
다시 장가든다면 목포와 해남 사이쯤
매생이국 끓일 줄 아는 어머니를 둔
매생이처럼 달고 향기로운 여자와 살고 싶다.
뻘바다에서 매생이 따는 한겨울이 오면
장모의 백년손님으로 당당하게 찾아가
아침저녁 밥상에 오르는 매생이국을 먹으며
눈 나리는 겨울밤 뜨끈뜨끈하게 보내고 싶다.
파래 위에 김 잡히고 김 위에 매생이 잡히니
매생이를 먹고 자란 나의 아내는
명주실처럼 부드러운 여자일거니, 우리는
명주실이 파뿌리가 될 때까지 해로할 것이다.
남쪽에서 매생이국을 먹어본 사람은 안다
차가운 표정 속에 감추어진 뜨거운 진실과
그 진실 훌훌 소리내어 마시다 보면
영혼과 육체가 함께 뜨거워지는 것을.
아, 나의 아내도 그러할 것이다.
뜨거워지면 엉켜 떨어지지 않는 매생이처럼
우리는 한몸이 되어 사랑할 것이다
맨발의 시 / 정일근
맨발처럼 좋은 눈은 있는가
꽉 쪼인 구두의 형식은 벗어던지고
구겨진 양말의 문법은 벗겨버리고
은현리 가을 들판을 맨발로 걸어간다
허리 굽은 농부가 빚어낸 황금 문장을
맨발의 두 눈으로 경건히 읽어가노라면
몸 속 가득 찬란한 느낌표는 찍힌다
문자는 쓰고 읽을 줄 아는 사람의
고독한 기호일 뿐이려니
하늘은 하늘의 말씀을
땅은 땅의 말씀을
사람 사는 세상에 불립문자로 뿌려놓았으니
그 말씀 뿌리가 읽어 꽃은 피고
꽃은 읽어 열매 맺는 것이리라
스스로 뛰는 심장을 가진 생명의 문장은
대자연의 호흡으로 땅 위에 남았으니
나는 지구라는 위대한 시인이 쓴
사람의 내일을 알려 주는 예언서를
지금, 맨발의 눈으로 읽고 가는 중이다
감지의 사랑 / 정 일 근
비단 오백 년 종이 천 년을 증명하듯
우리 한지에 쪽물을 들인 감지는 천 년을 견딘다는데
그 종이 위에 금니 은니로 우리 사랑의 시를 적어 남긴다면
눈 맑은 사람아
그대 천 년 뒤에도 이 사랑 기억할 것인가
감지에 남긴 내 마음이 열어주는 길을 따라
경주 남산 돌 속에 잠든 나를 깨우러 올 것인가
풍화하는 산정 억새들이 여윈잠을 자는 가을날
통도사 서운암 성파 스님의 감지 한 장 얻어
그리운 이름 석 자 금오산 아래 묻으면
남산 돌부처 몰래 그대를 사랑한 죄가
내 죽어 받을 사랑의 형벌이 두렵지 않네
종이가 천 년을 간다는데
사람의 사랑이 그 세월 견디지 못하랴
돌 속에 잠겨 내 그대 한 천 년 기다리지 못하랴
바다가 보이는 교실 10
-유리창 청소 / 정일근
참 맑아라
겨우 제 이름밖에 쓸 줄 모르는
열이, 열이가 착하게 닦아놓은
유리창 한 장
먼 해안선과 다정한 형제섬
그냥 그대로 눈이 시린
가을 바다 한 장
열이의 착한 마음으로 그려놓은
아아, 참으로 맑은 세상 저기 있으니
첫댓글 일주일에 한번씩 주어진 주제에 관해 짧은 시간이나마 정리해서 말하는 습관을 들이는게 쉽지는 않네요. 선생님께서 먼저 예문을 보여주시니 생각의 폭이 넓어집니다. 매주 월요일 구마루 언덕을 오르는 길도 아름답고 선생님의 열정적인 강의와 준비해 오신 시들을 통해 아름다운 시어들을 만나니 일주일이 즐겁습니다.~
바쁜 시간 쪼개서 자신의 사유세계를 넓혀 보려는 열정에 박수를 보냅니다.
부디 목표이상의 성과가 있기를, 계속은 힘입니다.